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43
143
143. 레시아 왕국
여울은 북서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카르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그는 이곳 로디스 세계에서 자신의 죽음을 걱정했다. 그중에 도플갱어가 붙은 것을 가장 신경 썼다.
그가 그렇게 나타나서까지 당부를 하니 도서관에서 도플갱어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다. 2층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고, 3층은 몬스터 관련 책이 없고, 4층에서 간신히 찾았는데 딱 한 줄만 나와 있었다.
-상대와 동일하게 변하여 따라다닌다는 몬스터, 실존하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
수백 년 역사가 남아 있는 도서관의 몬스터 백과에 실존 확인조차 안 되어 있는 것, 그만큼 희귀한 놈을 이 세계에 떨어지자마자 만난 것이다.
놈은 따라다니며 말투와 행동, 기술을 복사한다고 했다. 놈은 검기까지 사용했다. 더 강해지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여울은 걸음을 옮기면서 감각을 키워 주변에 놈이 있는지 없는지를 계속해서 살폈다. 하지만 2주일이 다 되는 시간 동안, 놈의 흔적은 단 한 번도 확인한 적이 없었다.
‘이 정도로 걸리지 않는 것은 정말로 없거나, 내가 처리하기 힘든 수준에 도달한 것…….’
자신의 마나는 현재 9레벨 대, 제라틀 백작이 보낸 암살자들의 실력으로 비교해 보아 이 세계에서도 어느 정도 상위급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레벨인 듯하다. 특성 덕분에 9레벨이라 해도 10레벨 또는 11레벨과 동등하다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기감에 걸려 들지 않는다. 도플갱어, 항상 염두에 두고 활동해야겠다.
기기기기기긱!
“캬학, 캬하!”
저 멀리서 거대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몬스터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은신을 하고 한 언덕을 넘어서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채석장인지 땅은 흙이 아니라 돌만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에 거대한 돌을 짊어지고 줄지어 이동을 하고 있다. 남자들은 대부분 바지만 걸친 채 맨발로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바지마저도 누더기에 불과했다. 마치 일개미들 같은 모습이다.
그 사이사이 리자드맨들이 창으로 그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위협하고 있다. 누가 봐도 인간들이 노동을 착취당하는 현장이다.
“어어어!”
돌을 함께 짊어지고 이동하던 두 사내 중 한 사내가 풀썩 쓰러졌다. 뒤의 사내가 중심을 놓고 돌을 떨어트려 앞 사내의 발을 찍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키힉, 키헥!”
리자드맨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와 창으로 쓰러진 사내를 몇 번 찔러 본다. 반응이 없자 돌을 발로 차서 치우고는 사내의 가슴팍을 창으로 꿰어 길 바깥쪽으로 던졌다. 뒤에 있던 사내는 바닥에 버려진 그 사내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저들이…… 마인인가? 굴복하고 들어가서 저런 취급을 받고 있는 건가?’
한 사람의 죽음이 주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물건, 아니, 인간 이하의 노예 취급이다. 뒤에 있던 사내는 마치 그의 죽음을 부러워하는 눈빛이다.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마인이 되고 싶은가? 문득 제라틀 백작이 떠올랐다. 그는 잡히기 직전에도 레시아를 찬양했다. 그 정도의 충성심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의문이 들었다.
‘위쪽으로 올라가면 대우가 확연히 달라지는 건가?’
일단 정보를 모아야 한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리자드맨과 머맨의 수만 몇천 마리는 된다. 그때, 크게 구멍이 뚫린 곳에서 나가가 등장했다. 갈퀴가 세워져 있는 나가가 천천히 기어 나오고, 그 뒤로 네 마리의 나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맨과 리자드맨은 나가들을 보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익숙하다. 케라브 41층에서 봤던 모습이다. 그곳이 로디스 세계의 일부분을 결계화시킨 곳이라는 것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일하는 인간들은 몬스터들보다 훨씬 더 많았다. 쉬지는 않더라도 먹고 싸게는 할 것이다. 그러면 분명 모여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들 안으로 들어갈 틈이 있을 것, 혹시나 관찰 특성자가 있을까 하여 몸을 숨긴 채 멀리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여긴…….’
한 협곡을 지나 거대한 공터가 나왔다. 그곳에는 재질을 추측할 수 없는 금속으로 된 200미터 크기의 거대한 원형 틀이 세워져 있었다. 그 중앙에는 검은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게이트다.’
이놈들이 맞았다. 직접 이 거대 게이트를 만들고 넘어갔던 것이다. 이것만 부수면 막을 수 있을까? 아니다. 이것을 활성화시킨 장본인을 없애야 한다. 게이트로 넘어가서 지구를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장본인을 찾아 죽여야 한다.
이제 조금 더 목표가 명확해지는 느낌이다.
게이트 옆에는 15미터는 넘는 나가 모양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 백여 미터 높이의 성전이 건축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달라붙어 돌을 끼워 맞추고 있다.
저쪽 구석에는 사람도, 몬스터도 잘 보이지 않고 어둡다. 여울은 그곳으로 이동하여 상의를 벗어 칼론의 주머니에 넣고 온몸을 감싸고 있는 디카르를 아래쪽으로 모두 내렸다. 조각 같은 몸이 훤히 드러났다. 여울은 그대로 자연스레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어 돌을 매만졌다. 옆에 있는 중년인이 힐끔거리다가 물었다.
“뭐야, 처음 보는데? 신입인가?”
“예.”
“흐음…….”
그는 의심쩍은 눈으로 여울을 쳐다보았다. 그때, 저 멀리 있던 리자드맨이 가까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키헥! 닥치고 일해!”
푹!
“크흡! 아, 알겠습니다…….”
놈은 중년인의 등에 창을 꽂았다가 뺐다. 꽤 깊숙하게 들어가 피가 줄줄 흐르는데 중년인은 비명 한 번 내지르고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대충 보니 그의 등, 옆구리, 앞 할 것 없이 여기저기 흉터가 많았다. 가슴팍에 있는 흉터는 감염되었는지 검게 썩고 있었다.
여울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아니, 아니오. 일이나 하지.”
일은 밤이 되어 앞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을 때까지 계속되었고, 체감상 12시가 다 될 때쯤에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 것을 보면 숙소로 이동하는 듯했다.
그곳으로부터 1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 인간이 사는 곳과 비슷하게 지어진 마을이 나왔다. 몬스터들이 인간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건축 기술을 이용한 것이다.
숙소는 큰 체육관 같은 곳으로 수백 명이 비좁게 누워 잠만 청할 수 있는 곳이었다.
“흐읍, 흐응…….”
남녀 구별이 없는 곳으로, 그렇게 하루 종일 먹지도 못하고 일을 하고 들어와도 밤중에 야릇한 신음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전쟁 중에도 생명의 탄생은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약 여섯 시간 후 다음 날 아침, 저 멀리 어디에선가부터 거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데에에에에엥! 데에에에엥!
그 소리에 피곤에 전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마치 좀비처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을 중앙에는 3미터 크기의 거대한 종이 있었고, 그곳에는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을 것을 배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식사를 받는 그릇이 밥그릇 하나밖에 없다. 그것에 숟가락 하나가 끝이다. 반찬은 없다는 것이다.
철퍽! 철퍽!
앞에 사람들이 배식을 받는 것을 보니 거대한 통에서 국자로 무언가를 떠서 주는데 진녹색에 이물질이 둥둥 떠다니는 꽤 불길했다.
철퍽!
여울의 밥그릇에도 그 진득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썩은 것으로 만들었는지 악취도 심하다. 도저히 먹을 생각이 들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은 잘도 먹고 있다.
“주방장, 배식 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조금만 더 주면 안 되나?”
“에잇, 내일도 먹어야 할 거 아녀? 꺼져!”
“거참, 야박하기는…….”
그것마저도 아껴 먹고, 더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나? 마인으로 오래 지내다 보니 본래 인간의 삶을 잊은 듯하다.
“왜, 밥맛이 없나?”
옆에 자연스레 앉은 중년인이 자신의 밥그릇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여울은 그에게 밥그릇을 건네주며 말했다.
“예, 속이 좀 안 좋네요. 드시겠습니까?”
“어이쿠, 그럼 나야 고맙지.”
그때 약속이라도 한 듯이 주변의 시선이 이곳에 집중되었다. 매우 차가운 시선이다. 중년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냉큼 받아 들어 게 눈 감추듯 싹싹 긁어먹었다. 여울은 그를 보며 작게 물었다.
“높은 직급의 마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년인은 갑자기 그대로 행동을 멈춘 채 입을 열었다.
“강하면 되지, 강하면……. 레벨이 높으면.”
“레벨이 얼마나 높아야 합니까? 여기 사람들은 모두 레벨이 낮습니까?”
“그렇지. 맨날 일만 하는데 어떻게 레벨을 올려? 레벨을 올리려면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그게 뭡니까?”
“그건 이따가…… 아, 쉿.”
그때, 일터에서 보았던 갈퀴 나가 한 마리가 다른 나가들을 대동하고 이곳으로 왔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밥그릇을 놓고는 그 앞에 이열횡대로 쭈욱 섰다.
갈퀴 나가는 멀찍이 서서 천천히 한 명 한 명씩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눈빛은 마치 사냥 전 먹잇감을 고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잘 보이도록 고개를 쳐들고 앞을 보고 있지만, 몸은 떨고 있고 얼굴에는 두려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울은 그 갈퀴 나가를 집중해서 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 위에 정보가 떴다.
-종족: 갈퀴 나가
-이름: 시엘
-레벨: 10
-경험치: 81퍼센트
-특성: Lv 7(Max) 민첩
10레벨에 경험치가 81퍼센트, 곧 11레벨이 될 몬스터라는 것이다. 몬스터가 11레벨인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니, 자신 말고는 11레벨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빨리 자신의 실력에 버금가는 몬스터를 만날 줄은 몰랐다. 그만큼 많다는 것인가? 시엘이라는 이 갈퀴 나가와 지금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고민을 할 때, 시엘이 검지로 사내들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너, 너, 너.”
시엘에게 지목된 사내들은 모두 덩치가 크거나 날렵해 보이는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때.
쉬익!
“커헉!”
시엘의 손이 가공할 속도로 뻗어 나가 한 사내의 머리통을 틀어쥐었다. 그녀는 사내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입을 열었다.
“감히 내 앞에서 인상을 찌푸려?”
“자, 잘못했습니다, 시엘 님!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퍼석!
시엘은 그의 머리통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사내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으깨졌다. 시엘은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고는 다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거 치워. 한 놈을 다시 골라야겠군…….”
여울은 그 앞에 나온 건장한 사내들을 보며 중년인이 아까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레벨은 몬스터든 사람이든 죽여야만 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고, 강해야만 높은 직급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지목당한 자들은 분명 싸움과 관련된 것으로 뽑힌 것이다. 자연스럽게 높은 직급으로 오를 시간 따위는 없다. 약간의 도박은 언제나 필요하다. 여울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제가 가겠습니다.”
“쉬익!”
“키헥!”
여울의 돌발 행동에 나가들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검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여울은 눈동자 한 번 흔들리지 않고 갈퀴 나가 시엘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엘은 여울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오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놈이 나에게 기쁨을 안겨 줄 수 있겠느냐?”
“맡겨만 주십시오.”
“당돌한 놈이구나. 그래, 이놈을 데려가지. 가자.”
시엘이 뒤돌아서자 네 마리의 나가는 세 명의 사내들을 앞세우며 데리고 그곳을 나갔다.
그들은 마을과 하나의 숲을 지나고 거대한 성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마인과 몬스터들이 반 정도씩 섞여 있었는데 여울과 사내들처럼 웃통을 안 입고 있는 자들은 없었다.
시엘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거대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어떤 식으로 지어져 있는지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건물이다. 위로는 100여 미터 높이에 양옆으로는 1킬로미터가 넘어 보이는 둥근 건물이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옆에 있는 다른 사내들이 몸을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시엘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 건물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콜로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