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45
145
145. 직위 상승
수만의 몬스터들과 인간들이 뒤섞인 콜로세움, 그 중앙에 두 명의 인간이 서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크레멘드는 기형도를 크게 휘둘렀다. 여울은 그 궤적을 예측하여 베이기 직전에 몸을 틀어 피하고는 반격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도의 끝이 희한한 궤적으로 꺾이며 목 뒤로 따라왔다.
챙!
여울은 반격을 거두고 그의 도를 쳐 내며 뒤로 물러났다. 크레멘드는 기형도를 휙휙 돌리며 이죽거렸다.
“제법이군. 얼마나 버티나 보자!”
그는 다시금 바닥을 박차며 여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레벨은 8에서 9레벨로 추측된다. 아무리 특성이 좋아도 7레벨로는 이기기 힘든 상대인 것이 확실하다.
챙! 챙! 채쟁!
여울은 그와 검을 몇 번 섞다가 일부러 옆구리를 길게 긁히며 쓰러졌다.
“와아아아아!!”
“크레멘드!!”
관중들은 아슬아슬하게 싸우다가 크레멘드가 승기를 잡은 것을 보고는 크게 환호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자신의 기형도를 바라보았다가 여울에게 다가갔다.
“졌다.”
여울은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매만지며 항복을 선언했다. 그 행동에 크레멘드는 확신했다.
‘이자, 일부러 져 줬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크레멘드는 기형도를 여울에게 겨눈 채로 가만히 관중들의 함성 소리를 들었다. 여울은 오른손에 녹슨 검을 꽈악 쥐었다. 만약 그가 예상과는 달리 죽이는 것을 택하면 반격하여 처리할 생각이다. 그 타이밍에 반격으로 이기면 시엘도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윽!
“크하아아아아!!”
그때, 크레멘드는 기형도를 하늘 높이 추켜올리며 포효했다. 그 짐승 같은 기세에도 관중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결승전이니만큼 죽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들어 승패를 결정한 후, 크레멘드는 찝찝한 눈빛으로 여울을 힐끔 보았다가 진영으로 돌아갔다.
여울은 패배 판정을 받고 진영으로 돌아갔다. 시엘은 이번에도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펼치며 여울을 맞이했다.
“잘했다. 죽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다음부터는 그럴 때는 항복을 선언하고 도망쳐라. 내 너를 잃고 싶지 않구나.”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가자.”
시엘은 콜로세움 검투 대회에서 언제나 1차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지금 결승까지 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흡족한 것이다. 언제나 준우승까지만 가도 면이 선다는 생각이 드는 그녀였다.
결투는 한 달에 한 번씩만 열린다고 한다. 콜로세움이 위치한 마을은 리르디안성이라는 곳으로, 예전에는 지프센의 수도였던 곳이다.
여울은 결투 이후에 시엘을 따라 저택으로 갔다. 그녀가 본래 머무는 곳으로 반은 몬스터, 하녀와 일꾼들은 사람이었다. 시엘은 하녀 한 명을 불러 여울을 가리키며 말했다.
“검투사다. 방을 안내해라.”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하녀는 지하 1층에 있는 거대한 방으로 안내해 줬다. 침대가 여섯 개인 것을 보면 혼자 머무는 곳은 아닌 듯하다.
“검투사분들이 머물렀던 방입니다. 최근 반년 동안에는 쓴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군, 알았다.”
여울의 자연스러운 반말에 하녀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가 눈을 마주치고는 황급히 다시 내렸다. 아직은 노예 신분이지만 반년 만에 처음 들어온 검투사이니만큼 언제 직급이 올라갈지 모른다.
“그럼, 쉬십시오.”
여울은 하녀가 나간 이후 오랜만에 이렇게 쾌적한 환경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검투 대회를 운 좋게 바로 참여한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이런 시간을 받은 것이다.
벌써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나 싶었지만 저택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울은 어느 날 시엘을 찾아가 부탁했다.
“크레멘드라는 자는 8레벨이 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를 이기고 우승을 하려면 밖에서 사냥을 해서 레벨을 올려야 합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가만히 듣고 있던 시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레벨을 왜 올리려고? 놀잇감이면 그것답게 굴어라. 그 이상으로 설친다면 없는 게 나으니.”
준우승을 했을 때 꽤 기뻐하기에 우승을 위해서는 뭐든 허락해 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역시 종족이 다른 갈퀴 나가는 인간을 그저 놀잇감 이상으로는 보지 않았던 것이다. 여차하면 금세 버릴 수 있는 존재다.
여울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며칠 동안 저택에 머물면서 하녀들에게 정보를 주워들으니 이곳의 계급 체계가 조금씩 이해가 갔다.
갈퀴 나가는 종족의 특성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귀족의 대우를 받는다. 나가는 인간으로 비교하면 기사급, 머맨과 리자드맨은 평민이다.
인간은 노예, 가축과 같은 취급이지만 그 특유의 영민함으로 그중에서도 갈퀴 나가의 줄을 잘 잡아 귀족에 버금가는 직위에 올라간 마인들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수많은 종족들 중에서도 가장 잠재력이 높다고 평가되기 때문에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전장이나 밖으로 나가는 직책은 거의 주지 않는다고 한다.
여울은 그 정도의 직책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마을 안이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직책을 목표로 삼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갈퀴 나가 시엘이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갈퀴 나가 한 마리가 다른 나가 몇 마리와 머맨 스무 마리를 이끌고 저택으로 들이닥쳤다.
“키햐악! 여기 인간들은 깡그리 다 죽여라!”
“캬하!”
놈들은 닥치는 대로 하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같은 저택 출신의 나가와 머맨, 리자드맨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시, 시엘 님을…….”
“어, 어떡하지.”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는지 싸우지 못하고 덤벼들지도 못하고 있다. 한 마리가 괜히 끼어들었다가 그대로 죽임을 당했다.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다른 족속들은 죽이지 않는다는 게 철칙인 듯했다.
여울은 먼저 대장급인 갈퀴 나가를 관찰해 보았다.
-종족: 갈퀴 나가
-이름: 데레가
-레벨: 8
-경험치: 97퍼센트
-특성: 폐활량
8레벨. 여기는 자신의 움직임을 정확히 판단할 만한 실력자가 없다. 여울은 앞으로 나서며 그들에게 소리쳤다.
“멈춰라!”
데레가의 고개가 여울의 목소리를 따라 돌아갔다. 그러고는 눈을 크게 뜨며 검지로 그를 가리켰다.
“저놈이다! 저놈이 내 금덩이를 죽인 놈이다! 찢어 버려라!”
놈의 외침에 몬스터들이 여울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말로 타이를 생각은 없었으니 차라리 잘되었다. 여울은 근처에 있던 리자드맨의 검을 하나 빼앗아 들고는 놈들에게 달려 나갔다.
촤악! 촤악! 촤아악!
여울은 물 흐르듯이 놈들을 베어 가며 직선으로 갈퀴 나가 데레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녀의 목에 검 끝을 겨누며 말했다.
“시엘 님을 위협한 죄, 목숨으로 받겠다.”
“뭐, 뭐?!”
데레가는 한껏 성을 내며 여울에게 네 개의 검을 뻗었다. 여울은 그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손목을 하나하나씩 잘라 내고는 마지막에 목을 베었다.
서걱!
데구루루!
“어멋!”
“허억.”
“가, 갈퀴 나가를…….”
“데레가 님이…….”
그 모습에 몬스터들은 물론 인간들도 놀라워했다. 버젓이 나가 여왕의 영토 안에서 인간이 갈퀴 나가의 목숨을 거둔 것이니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여울은 모두 쓰러져 있는 몬스터들의 시체 위에 가만히 서 있다가 나가 한 마리에게 말했다.
“이거, 치워야겠지요?”
몇 시간 후, 저택의 주인 갈퀴 나가 시엘이 돌아왔다. 그녀는 엉망이 된 저택의 상태를 보고는 분노했다.
“누가, 누가 이런 것이냐!”
바로 옆에 있던 나가가 말했다.
“7구역의 데레가 님이 직접 사병을 이끌고 와서…… 저 검투사 인간이 모두 죽였습니다. 데레가 님까지.”
그 말 이후에 장내에 정적이 감돌았다. 무슨 이유에서든 갈퀴 나가를 죽인 죄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먼저 시엘의 사유재산을 건드리려는 큰 죄가 있기 때문에 그녀의 결정에 모든 것이 정해지는 것이다.
시엘은 여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날카로운 손톱이 돋보이는 검지로 이마를 가리켰다.
“네놈이…….”
기운이 범상치 않다. 여울은 속으로 지금 상황에서 시엘을 없애고 지프센으로 다시 도망칠 수 있는지 계산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인간 주제에 겁이 없구나? 잘 처리했다. 이로써 이 시엘의 저택을 만만히 보는 이들은 없겠구나. 내 너를 오늘부터 노예의 직위에서 집사로 올려 주겠다. 대신 검투 대회가 열리는 날에는 검투사가 되어야 한다.”
“감사합니다, 시엘 님.”
집사, 저택의 이모저모를 관리하며 하인과 하녀를 부리는 자리다. 이 자리는 머맨과 리자드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허락하에 혼자서 마을 안에 있는 상점 같은 곳을 다닐 수 있다.
데레가는 여울이 콜로세움에서 죽인 거인 오그손의 주인이었다. 오그손으로 인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그의 절반을 차지했는데, 죽어 버리니 눈이 돌아가 여울을 죽이려고 상위급 갈퀴 나가 시엘의 저택을 쳐들어온 것이었다.
몬스터는 몬스터인지 이성을 잃고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곳이었다. 덕분에 데레가의 저택까지 시엘의 소유가 되어 비어 있는 그곳의 총관리를 여울이 맡게 되었다.
하루는 저택의 보수를 위해 계약을 하러 밖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몬스터도 마인도 없는 어두운 곳, 다리 아래쪽으로 지나가는데 한 사내가 갑자기 튀어나와 손을 뻗었다.
타닥, 탁.
여울은 그의 손을 피하며 손목과 팔뚝을 잡아 꺾었다. 순식간에 제압당한 사내는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크흡, 역시 실력을 속였군.”
사내는 검투 대회 우승을 차지한 크레멘드였다. 그는 여울의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 목적이 뭐야? 마인인 척하며 이곳으로 숨어들어 온 이유가.”
‘이것 봐라?’
재미있는 상황이다. 여울은 그를 벽으로 밀치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지? 나는 인간의 삶을 버린 지 오래다.”
크레멘드는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알지, 이곳에 목적을 가지고 온 자들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온 자들의 눈빛을…….”
그는 작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여울이 지금까지 알아본 레시아 왕국의 정보들과 나가 여왕 레시아의 행보에 관한 것이었다. 그저 마인으로서, 그리고 검투사로서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이었다.
그는 여울처럼 침투조거나 또는 이곳에서 살다가 다른 인간들과 손을 잡고 반역을 꾀하려는 것이 확실했다. 여울은 그를 보며 물었다.
“이런 얘기를 왜 나에게 해 주지?”
“믿음을 주는 거지, 난 네가 어떤 인간인지 아니까.”
여울은 그에게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오늘 것은 못 들은 걸로 하겠다. 가라.”
“못 들은 거라……. 이미 들었고,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면 제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하니 더 믿음이 간다. 자신의 목숨 값의 정보인데 같은 편이 되지 않는다면 제거가 정답이다.
“할 수 있다면 해 봐라.”
여울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며칠 후, 드디어 때가 왔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저택에 머물렀던 시엘이 장기 출장을 가게 된 것이다. 북서쪽 지스타드 왕국의 레리프릴 성이라는 곳을 점령하여 영지화시키기 위해 간다고 한다. 기간은 약 두 달, 그사이에 다른 왕국을 다녀와야 한다.
시엘이 나가들을 데리고 저택으로 떠나는 날, 배웅을 하고 들어가자마자 하녀들에게 두 번째 저택을 관리하다가 시엘이 돌아올 때에 맞춰서 온다고 말을 남겼다. 반대쪽 저택에서도 같은 말을 남기고는 바로 걸음을 옮겼다.
‘우선 남서쪽의 세브렐 왕국이다.’
성을 벗어난 여울은 얼굴까지 디카르로 감싸고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신형이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