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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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몰락한 후작가의 딸
나가 여왕의 레시아 왕국을 벗어나 남서쪽으로 이동한 지 사흘째.
여울은 작은 마을들은 무시하고 지나치며 계속해서 달리는 중이었다.
“그으아아아!!”
저 멀리서 매우 저음의 포효 소리가 묵직하게 들려왔다. 소리만 듣고는 어떤 몬스터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울림통으로 보아 거대하다고만 추측될 뿐이다.
나가 여왕 레시아에게 접근하여 게이트의 실체에 관해 알아보는 것이 현재로써는 가장 큰 목적이지만, 그녀를 없앨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다. 그래서 여울은 레시아 왕국에서는 사냥할 수가 없으니 나와서는 보이는 대로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여울은 바로 그 거대한 포효를 내지르는 몬스터를 향해 내달렸다.
수풀이 사람의 키만큼 높고 나무의 둘레가 2미터는 되는 우거진 숲.
8미터는 될 법한 네임드급 미노타우로스가 거대한 도끼를 추켜들고 있고, 그 앞에는 전신 갑주를 입은 병사들 수십 명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콰아앙!!
“크하악!”
“으윽!”
그때, 뒤에서 나타난 다른 미노타우로스가 도끼를 휘둘렀다. 놈의 휘두름에 병사 서너 명이 날아가고 쪼개진다. 그사이 양쪽에도 미노타우로스 두 마리가 나타났다. 세 마리의 미노타우로스와 한 마리의 네임드에게 포위가 된 형세다. 이미 주변에는 수십 명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
중앙에서 홀로 특이하게 금빛 갑옷을 입고 붉은 머리를 휘날리고 있는 여인, 헤레인. 압도적인 힘을 보이는 네임드 미노타우로스 불레크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절망감이 담겨 있었다.
“젠장, 이렇게 비참하게…….”
헤레인은 세브렐 왕국의 골칫덩이 불레크 토벌에 떠밀려 온 과정을 떠올렸다. 몰락한 후작가, 영지를 노리는 백작들, 영주로서의 자격을 보이기 위해 꾸린 무리한 토벌대……. 그 결과는 지금 주변에 피를 토하며 널브러져 있는 병사들이 대신 보여 주고 있었다.
퇴로는 없다. 어찌어찌 이곳을 빠져나간다고 해도 자신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영지군을 모두 잃고 토벌도 실패한 채 귀환한 영주에게 돌을 던질 것이다. 불명예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따를 수도 있다.
‘저놈만 잡으면…….’
돌아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이성을 지배했다. 헤레인은 검을 다잡고 불레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놈의 약점은 목 뒤. 한 방만 피하고 뒤로 넘어가 그곳을 찌른다.
“하아앗!”
그녀의 두 배는 될 법한 거대한 도끼가 무서운 속도로 쇄도했다. 헤레인은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라 아슬아슬하게 도끼를 넘어서며 그 뒷부분을 다시 한번 차고 도약했다.
‘됐다! 이제는…….’
퍼어억!
“커헉!”
마치 그녀가 더 위로 날아오를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정확한 타이밍에 불레크의 팔이 휘둘러졌다. 그녀는 피를 토하며 저 멀리 날아갔다. 뼈는 몇 개쯤 부러졌을 것이고 장기도 파열된 듯하다. 지금과 같은 힘은 다시 내지 못할 것이다.
이제 끝이다. 재수 없게도 하늘은 눈부시게 화창하다.
후웅!
그때,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는 시야에 검은 인영이 떠올랐다. 자신의 부하들 중에는 저런 옷을 입은 자가 없다. 백작가 놈들이 보낸 암살자인가?
‘음?’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암살자 특유의 공허하고 건조한 눈 안에 어울리지 않은 열정이 비친다. 헤레인은 그런 눈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저 눈은 소중한 누군가를 지킬 때의 눈이다.
휙!
그는 헤레인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공중에서 떨어지면서도 자연스레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네임드 미노타우로스 불레크에게 바로 날아가고 있었다. 불레크는 하늘 높이 날아오는 그를 진즉 발견하고 도끼를 휘두르고 있다. 곧 반으로 쪼개질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안 돼…….’
그 찰나의 눈빛을 보고 연민이 생겼는가? 헤레인은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펼쳐졌다. 그가 불레크의 도끼가 닿기 바로 직전에 공중에서 몸을 희한하게 틀어 도끼를 흘려 보내더니, 양손에서 갑자기 검은 검이 튀어나와 놈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 버린 것이다.
촤아아아악!
“큭, 크흐으!”
미노타우로스의 약점이 괜히 밝혀진 것이 아니다. 웬만한 검은 튕겨 나가는 강철 같은 피부 때문에 연구 끝에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남자는 그런 이론을 싹 다 무시하고 손쉽게 네임드급 미노타우로스의 목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게 만들었다.
불레크가 피가 쏟아지는 목을 부여잡고 비틀거릴 때, 그는 검을 놈의 몸에 꽂은 채 주욱 그으며 아래로 내려왔다.
부우우욱!
가죽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불레크의 몸이 세로로 쩌억 벌어졌다. 이백여 명이 목숨을 걸고 하려던 행동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도 쉽게 해내고 있다.
쿠웅!
“끄윽!”
그제야 헤레인의 몸이 공중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꽤 큰 충격이었음에도 그녀의 시선은 불레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쿠우우우웅!
그리고 바로 그 거대한 몸이 뒤로 나자빠졌다. 헤레인은 온몸이 부서질 듯이 아팠지만 마음은 뛸 듯이 가벼웠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사실이 그녀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다.
‘이제 살았다.’
여울은 남은 미노타우로스들을 처리하고는 죽은 병사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눈을 뜬 채로 기절해 있었다. 여울은 검지와 중지를 뻗어 그녀의 턱 아래에 가져다 대었다.
“어엇.”
“여, 영주님…….”
대부분 부상자들인 병사들은 여울의 행동에 주춤할 뿐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덕분에 죽다 살아났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기에 그의 행동을 제지할 용기있는 자는 이 자리에 없었다.
두근두근.
맥박은 뛰고 있다. 입가에는 피가 흐른다. 여울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을 마주친 병사 한 명에게 말했다.
“너네 영주 죽어 간다. 빨리 치료해라.”
“아! 네, 넵!”
병사들은 팔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다가와 그녀의 입에 아주 맑은 파란색의 액체를 부었다. 내부 회복제다. 팔다리가 잘리는 외상을 입었을 때는 쓰일 치료제가 많다. 트롤, 오우거, 리자드맨, 오크 등의 피가 모두 외상 회복을 돕는 것들이다.
그러나 내부 장기가 파열된 경우에는 그것들의 피로 치료할 수가 없다. 지구에서는 의학, 또는 주보라의 특성인 홀리네스로만 치료가 가능했는데 이곳에서는 신들의 정기를 받은 물, 즉 성수를 마시면 내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그것은 몬스터의 몸에는 통하지 않고, 매우 귀하여 일반인에게는 죽을 위기가 되어도 쓰지 않고 죽게 내버려 둔다고 한다.
몇 시간 후, 여인 헤레인은 피를 울컥 토해 내며 깨어났다.
“우웩! 크흡, 끄으으…….”
그녀는 아직 회복이 덜 되었는지 두 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녀의 영지군과 함께 기다리고 있던 여울은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나는 너와 네 부하들의 목숨을 구했다. 맞나?”
여울의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린 헤레인은 머리를 털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그녀의 눈앞에 얼굴을 들이대는 그를 보고 푸득푸득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넵!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여울의 모습에 주변 영지군들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여울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미세하게 한 번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은인으로서 부탁 한번 하지. 나를 왕궁이 있는 수도까지 안내하도록.”
그 말에 헤레인은 멈칫하며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았다. 수도의 위치를 모른다면 외지인. 이런 실력을 가진 외지인이라면 레시아 왕국이 중앙에 버티고 있으니 외부 지스타드 왕국이나 지프센 왕국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철컥!
헤레인은 재빨리 검을 들어 올려 여울의 앞에 검신을 보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고 한들, 마인을 왕에게 안내할 수는 없습니다.”
여울은 그녀의 단호한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주변 병사들을 둘러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한쪽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그래? 지금부터 너의 부하들을 한 명씩 죽이도록 하지. 언제까지 마음이 바뀌지 않을지 궁금하군.”
여울은 오른손에 디카르를 생성시켜 다리를 다친 병사에게 다가갔다.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병사는 팔로 필사적으로 뒤로 기며 외쳤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사, 살려 줘요! 영…….”
그때, 헤레인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자신의 목에 검을 대며 소리쳤다.
“잠깐! 내가 죽으면 부하가 죽을 필요는 없겠지요. 어차피 쓸모없는 인생, 아버지께 일찍 가야겠습니다.”
그녀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진심으로 검에 힘을 주었다. 여울은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가 검신을 맨손으로 잡았다.
뿌득!
검은색으로 칠을 한 것인지, 원래부터 검은 것인지 의심이 가는 여울의 손이 그녀의 검신을 잡자, 검은 그 안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여울은 검신을 완전히 치우고는 아직도 단호한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잘 알았다. 네가 마인이 아니라는 것은.”
“네…… 에?”
의외의 말에 헤레인은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 후, 여울은 헤레인과 독대를 하며 지프센 왕의 휘장을 보여 주고는 자신의 뜻을 알려 주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왕을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돕겠다고 약속을 했다.
여기까지는 여울이 그녀의 일행을 보고 계획한 대로 잘 흘러갔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그녀의 가문이었다.
“40년간 혼신을 다하여 왕국을 섬겼던 아버님은, 3년 전 마인으로 오인을 받아 그 답답함과 마음의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셨습니다.”
여울은 붉은빛을 띠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살을 했군.”
그녀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버님은 죽음으로 모든 오해를 씻어 낼 수 있을 줄 아셨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죄가 없다는 판명은 났지만 저희 빌더 가문은 그 후로 몰락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백작가들에게 영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으며 시험을 당할 위기까지 처했습니다. 아까 잡으신 네임드 미노타우로스 불레크 토벌도 그 시험의 일부였습니다.”
“시험을 받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백작가가 후작가를 어떻게 시험을 하지? 국왕이 허락한 일인가?”
“아닙니다. 인접해 있는 세 개의 백작가가 저희 영지의 영지군과 영지민들을 대놓고 괴롭히기 때문에 제가 나섰더니 조건을 건 것입니다. 저희는 지금 사병도, 기사도, 영지민들도 모두 떠나가고 극소수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토벌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 그녀는 움직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왕궁 위치만 알려 주면 몰래 잠입하여 국왕을 만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그러나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서 자신을 믿고 안 믿고가 정해진다. 정해진 수순대로 귀족, 그것도 후작가의 요청을 받아 정식으로 왕을 만날 수 있다면 그 신뢰도는 대폭 커질 것이다.
콧대 높고 욕심도 많은 세 개의 백작가, 물심양면으로 레시아 왕국을 쳐야 하는 이때에 그런 귀족들이 섞여 있으면 손해만 끼칠 뿐이다. 여울은 헤레인의 빌더 가문을 돕기로 결정했다.
“일단 이번 시험은 통과했군.”
여울은 거칠게 잘린 불레크의 머리를 흔들거리며 말했다.
빌더 영지는 수도 이퀼리즈와 가깝다고 했다.
다친 병사들을 이끌고 그곳에 도착하기까지는 사흘 하고도 반나절이 걸렸다.
빌더성 안으로 들어서자 눈이 퀭한 주민들이 보였다. 힘도 없고 의욕도 없는 얼굴이다. 바스크가 영주로 있는 세이에라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길거리가 텅텅 비어 있다.
후작이 죽은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다는데 이렇게 낙후될 수 있나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내성 입구에는 이미 연락을 받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을 입고 뒤에는 십여 명의 기사들을 이끌고 있는 것을 보면 귀족이 틀림없었다.
그 얼굴이 심히 야비해 보이는 것이 헤레인이 말하는 그 백작가 중 한 명임이 분명했다.
헤레인은 그의 낯짝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 옆에 걸어 두었던 커다란 검은 가죽을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