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5
15
15. 새로운 환경
사내는 옆구리가 아닌 안쪽으로 손을 넣는 것을 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말이 통하는 아저씨구…….”
그때, 여울의 품에서 반짝하더니 그의 턱에 단검이 꽂혔다. 검 끝은 그의 턱을 관통하여 콧등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여울은 그의 입안에 손을 넣어 아래턱을 잡고 단검을 뽑으며 목을 횡으로 베었다.
촤아악!
“어, 어…….”
사내의 목과 턱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다른 사내들은 입을 멍청하게 벌린 채 잠시 멈칫했다가 현실을 깨닫고는 이내 여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동체시력이라는 특성은 상상 이상의 능력을 가져다준다. 동시에 쇄도하는 세 개의 검의 궤도와 그 끝의 떨림까지도 잡아낼 수 있으니.
후웅
여울은 오른쪽 어깨를 낮춰 찔러 오는 검을 피하며 반 발자국 다가가 그의 팔을 낚아챘다.
당황하여 동공이 커지는 그의 손목을 베고 이어서 경동맥까지 끊어 냈다.
바로 뒤돌아서니 검이 수직으로 그어지고 있다. 여울은 단검을 비껴들고 그의 검로에 갖다 붙였다.
단검과 맞닿은 검은 검로가 틀어져 애꿎은 땅을 찍었다. 여울은 다시 들어 올리려는 그의 손을 잡아 묶고 심장에 단검을 꽂았다.
검 끝에서 심장의 수축이 느껴졌다.
마지막 사내의 검이 단검을 쥔 여울의 손목을 잘라 내기 위해 휘둘러졌다. 푸르른 검신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릿하게 다가왔다.
여울은 단검의 손잡이를 놓고 그 손을 뻗어 엄지와 검지로 검신을 잡았다.
턱
사내가 두 손으로 휘두르는 검은 거짓말처럼 우뚝 멈춰 섰다.
검신은 여울의 손바닥까지 닿지도 못했다. 두 손이 두 손가락의 악력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사내는 이제야 깨달았다.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 조금 더 신중하게 알아봤어야 했다. 토벌대장 김진후가 아닌 다른 사람이 기여도 보상을 받았을 때 조금 더 의심했어야 했다.
‘저거 보여 안 보여? 방패잖아, 방패! 김진후는 방패니까 당연히 편하게 원거리 공격이나 해 댔던 놈들 중 하나가 보상을 받은 거지, 그리고 아무리 잘난 놈이어도 2레벨이 넷인데 누가 당해 내냐? 김진후도 잡을걸?’
‘끌끌끌, 당연하지.’
원수 같은 놈, 그 말을 했던 놈이나 동조했던 놈이나 지금은 목을 부여잡고 싸늘하게 식어 가고 있었다.
세 명이 당하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사내는 바로 검을 놓으며 두 손을 들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는 그저 놈들이 시켜서…….”
여울은 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한 듯이 두 손가락으로 잡은 검신을 들어서 보았다. 그리고 이내 손가락을 튕겨 검을 공중으로 띄웠다.
훙!
검이 반 바퀴가 돌았을 때 손잡이를 낚아채어 횡으로 휘둘렀다.
촤악!
손을 들고 있던 사내의 목에 혈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이내 두 팔과 함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울은 그의 검을 땅바닥에 버리며 입을 열었다.
“나는…… 곧 죽을 놈의 말은 안 믿는다.”
* * *
암살 트롤 탓인지 왠지 다른 층보다 어둡게 느껴졌던 9층, 4레벨이 되고 보니 눈이 밝아져서 이곳저곳에 웅크리고 때를 노리는 놈들의 모습이 더 잘 보였다.
이 정도면 공격해 오는 놈들을 반격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기습을 해도 되겠다. 여울은 생각과 동시에 바로 실천으로 옮겼다.
그렇게 암살 트롤들의 목숨을 손쉽게 끊어 내며 10층을 찾아가던 중, 저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혀, 형님!”
동굴이 꺾이는 부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예전에 8층에서 봤던 무영이라는 소년이었다. 그는 전과는 달리 은신을 풀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 암살 트롤이 슬금슬금 접근하고 있는 게 보였다.
여울은 품에서 단검 꺼내어 던지며 같이 달려 나갔다.
“헙!”
무영은 그 모습을 보고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팅!
단검은 무영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 트롤의 검과 부딪혔다. 거의 동시에 도착한 여울은 쭉 뻗어 있는 트롤의 손목을 잡고 팔꿈치를 위로 올려 쳤다.
우득!
놈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이며 손아귀에 힘이 풀려 검을 놓쳤다. 여울은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공중에서 낚아채 놈의 심장에 바로 꽂아 넣었다.
푹!
“츠으으…….”
트롤은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이 생명력이 꺼져 갔다.
무영은 본인이 처했던 상황은 생각 못하고 박수를 치며 엄지를 추켜들었다.
“우와, 역시 멋있어요! 형님!”
언제부터 형님이 됐는지는 모른다.
‘전에는 아저씨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뭐지?”
“아, 파티 사냥 중이에요. 알죠? 저번에 본 그 파티.”
여울은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리더는 물론이고 파티원들도 꽤 인상 깊었던 파티였다.
“전처럼 정찰 뛰고 있는데 형님이 보여서요. 괜히 또 은신하고 갔다가 칼 맞을까 봐 보이자마자 풀었죠.”
뒤로 돌아가면 될 걸 굳이 위험을 무릅쓰며 모습을 보였는지 이해가 안 갔다.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갈 길 가라.”
여울은 가던 길 가려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형님, 이번에는 혼자서 9층 오셨네요. 여기서 사냥하시려고요?”
어린애와 노닥거리려고 김진후의 정예대원들과 떨어진 것이 아니다.
여울은 말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자 무영이 그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형님, 그 죄송한데…… 10분만 따라다녀도 될까요? 은신 딜레이가 있어서.”
여울은 멈칫했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무영은 암묵적인 허락으로 알고 활짝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무영은 여울과 약 3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뒤에서 지켜보았다.
은신을 하면 눈이 밝아지기에 조금 더 잘 보이지만, 이렇게 평상시에는 보이지도 않는 암살 트롤들을 묵묵히 처리해 가며 나아가는 모습은 매우 인상 깊었다.
그의 앞에서는 그 무서운 암살 트롤도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처음 9층에 올라와서 치명상을 입었던 것은 생각 못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이 형님과…… 같은 파티였으면 참 좋겠다. 대장이랑 이 형님이 만나면 최강의 파티가 될 텐데…….’
하지만 볼 때마다 혼자다. 보스를 잡으러 갈 때만 빼고 말이다.
자신 말고도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러브콜을 받았을 텐데도 혼자인 것을 보면 무슨 이유가 있거나 그의 성향일 것이다.
이 위험한 곳에서도 혼자를 고집하는 사람이면 절대로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먼저 온다면 몰라도…….’
그 전까지는 인연의 끈만 유지해 놓는 게 제일이었다.
[은신이 가능합니다.]시스템 음성이 울렸다. 무영은 진중한 눈으로 여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높은 톤으로 말했다.
“형님! 저 이제 가 볼게요. 다음에 혹시나 안 보이는 애 있어도 막 공격하지 마시고요! 목소리로 먼저 알릴게요. 그럼 우리 살아서 또 봐요!”
여울은 손을 흔들며 서서히 사라져 가는 무영을 지켜보았다.
“살아서 또 봐요!”
기껏 해 봐야 고등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가 하는 말치곤 너무 의미가 무거웠다.
괜히 마음이 감성적으로 변하려 한다. 여울은 생각을 끊고 걸음을 마저 옮겼다.
* * *
여전히 하얗게 빛나고 있는 마법진을 타고 10층으로 올라왔다. 징그럽게 해부된 오우거의 시체는 아직 그대로 있었다.
‘보스라서 그런가?’
보통 몬스터의 시체는 금방 사라졌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예상하기로는 대략 24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재로 화하는 것처럼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나중에 같은 장소에 또 다른 몬스터가 나타났다.
죽이고 하루가 지나면 시체가 사라지고, 하루가 더 지나면 다시 몬스터가 생겨나는 것이다. 생김새를 보면 똑같은 놈이 부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우거를 보니 보스는 다른 듯했다. 하긴, 아이템을 주는 장점도 있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놈이 다시 리젠된다면 그야말로 끔찍했다.
4레벨이라고 해도 혼자서는 절대 못잡을 것이다.
터벅, 터벅.
여울은 동굴 끝에서 빛나고 있는 두 개의 마법진을 향해 걸어갔다.
별 모양의 마법진과 세모 두 개가 반쯤 겹쳐진 모양의 마법진이 보인다.
여울은 허리춤에 꽂아 넣은 두 개의 중검을 뽑아 들고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마법진으로 인해 이동되어 자신은 수 초간 눈이 보이지 않아도 적들은 인식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후우…….”
전혀 새로운 곳일 것이다. 훨씬 강한 몬스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여울은 한숨을 길게 내뱉고는 세모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하얀 빛무리가 순식간에 여울의 몸을 감쌌다.
후우우웅!
[케라브, 11층입니다.]휘이잉!
“음?”
11층으로 올라서자마자 민감한 감각을 건드린 것은 바람이었다. 100일이 넘는 동안,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자연의 바람.
시력이 돌아왔다. 눈앞에 넓게 펼쳐진 사막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푸르른 하늘도 보인다.
‘밖? 밖인가? 드디어 밖으로 나온 것인가?’
“후욱, 후웁…….”
여울은 끓어오르는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밖일까? 드디어 나온 것인가? 은서에게 갈 수 있나?’
타다다다닥!
여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딘가를 향해 달렸다. 일단 어디든 가봐야 답이 나올 것 같다.
푸슉, 푸슉, 푸슈슉!
그때였다.
지나온 길에 이상한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땅바닥을 뚫고 새하얀 손이 여러 개 튀어나와 있었다.
살점 하나 붙어 있지 않은 앙상한, 뼈다귀밖에 남지 않은 손.
그것은 동면에서 깨어나듯이 팔부터 머리, 몸, 다리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힘줄도, 혈관도, 장기도 없었다. 모순된 말이지만 살아 있는 해골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괴물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아직 케라브가 맞았다.
잠시 흥분했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괜히 품었던 희망이 더욱 큰 절망을 안겨 줬다.
그사이 여울의 주변에서도 해골들이 일어났다. 어느새 다섯 마리의 해골들에게 둘러싸인 것이다.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해골들은 그로테스크하게 몸을 꺾어 대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해골임에도 불구하고 키가 2미터가 넘고, 뼈는 굵고 장대했다. 아래턱뼈에 송곳니도 위로 솟아 있는 것을 보니 오크로 예상됐다.
무기도 따로 없고 외관상 힘도 강해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방심은 금물.
일단 힘을 시험해 봐야 했다. 여울은 가장 가까이서 팔을 휘두르는 놈에게 검을 마주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