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53
153
153. 사과
여울은 바로 이곳을 처음 찾아왔을 때 게이트를 발견했던 노역장을 찾아갔다. 또 어딘가에 분명 게이트가 더 있을 것이다. 빨리 찾아서 그 모든 것들을 부숴야 한다.
노역장에 도착하니 몬스터들은 죽거나 도망쳤고, 노예들은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몬스터들에게 부림만 받은 노예이기는 하지만 그들 중에는 꽤 다수가 마인을 자초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게이트는 그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멀쩡하게 서 있다. 여울은 바로 디카르를 휘둘러 검기를 날렸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게이트 한 부분이 푹 파였다. 아무래도 게이트를 부수려면 검기보다는 다크네스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화르르륵!
디카르에 검은화염을 두르고 있는데,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그걸 왜 부수는가?”
뒤돌아보니 낯익은 중년인이 눈에 들어왔다. 특이한 여인, 뮤텔 슈레인의 아버지이자 이 나라의 공작, 뮤탈 공작이었다.
“그것을 통해서 놈들이 미지의 세계로 나가 힘이 약화되었다는데, 그것을 왜 부수지?”
여울은 그의 말에 순간 멈칫했다. 이곳에 사는 인간들에게는 게이트에 대한 인식이 전혀 다른 것이다. 레시아 왕국에서 만든 것이기에 당연히 증오하고 부술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행동을 제지당했다.
바스크라면 몰라도 이 공작에게는 사실대로 말을 할 수 없다. 애초에 믿지도 않을 것이다. 여울은 검을 내리며 그에게 말했다.
“이제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필요가 없다니, 레시아의 잔존 세력을 잡아 거기로 모두 처넣어야지.”
이자는 게이트를 쓰레기 처리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입장에서는 레시아 여왕과 다를 바가 없다.
그때, 바스크와 리디와 함께 다가왔다. 리디가 그들의 대화를 들었는지 걸어오면서 여울을 거들었다.
“그들은 종족 구분 없이 레시아 여왕 아래에 모일 때부터 이 이상한 것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들을 모이게 한 원천일지 모릅니다. 이들이 만든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 버리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바스크의 등장에 뮤탈 공작의 기운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마인 사건 이후로 작위만 공작일 뿐, 현실적인 입지는 자작만큼도 못한 것이다.
그는 조금 전보다 훨씬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잔존 세력이 아직도 많은데…….”
바스크는 그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대답했다.
“나머지는 모두 쓸어버리면 됩니다. 번거롭게 여기까지 데리고 올 필요도 없이. 어차피 작동도 하지 않습니다.”
뮤탈 공작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된 듯하여 여울은 바로 게이트를 부수기 시작했다.
콰광! 쾅! 콰직!
여울이 게이트 기둥을 잘라 버리는 모습을 보고는 리디가 바스크에게 중얼거렸다.
“저 강철 기둥을 어찌 저렇게 두부 자르듯이 쉽게 잘라 버리는 거지? 영주님도 저렇게 할 수 있는 겁니까?”
리디는 당연히 가능할 줄 알고 농담 반 섞어서 물어봤으나 바스크는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 모습에 리디는 입을 쩌억 벌리고는 다시 여울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저자가 영주보다도 강하다는 거야? 내가 뽑은 그 신입이…….’
알면 알수록 더 놀라울 뿐이었다.
* * *
여울은 총 여덟 개의 게이트를 부수고는 지프센 왕국으로 다시 귀환하였다. 다른 세 개의 왕국들도 다시금 자신의 왕국으로 귀환하기에 바빴다.
나가 여왕 레시아를 처치했지만 아직도 그녀를 맹신하는 압도적인 수의 몬스터들이 여기저기 퍼져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수도를 차지하더라도 잔존 세력을 막을 병력이 없다면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것이었다.
영토를 차지하더라도 그것을 유지하고 지킬 힘이 없으면 빼앗은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세 왕국이 모두 천천히 넓혀 가며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귀환 후, 국왕 레기 드 지프센이 왕궁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연회 중간에 국왕은 황금 잔을 들고 일어서서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가 여왕 레시아의 성전을 무너트리는 데 큰 공을 세운 우리 용사들의 공을 치하하겠소! 먼저 바스크 자작!”
왕의 말에 바스크는 마시던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재빨리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삼국 협공이라는 어마어마한 계획을 추진한 공, 그리고 레시아를 쓰러트리는 데 일조한 공을 치하하여 후작의 작위를 부여하겠다.”
그의 말과 함께 연회장 구석에서 하녀들이 온갖 황금과 보석이 담긴 상자와 후작을 상징하는 휘장을 가지고 왔다. 왕은 조심스럽게 휘장을 들어 바스크의 어깨에 걸쳐 놓았다.
“감사합니다. 이 몸이 부서질 때까지 지프센 왕국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부서지게는 하지 마시오. 그럼 못 부려 먹으니까.”
왕은 그 특유의 농담을 건네며 한쪽 눈을 찡끗하고는 바스크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고는 다시 허리를 곧게 펴고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다음. 바스크가 데리고 온 불세출의 검사 여울.”
테라스에 있던 여울은 다급히 그를 찾는 리디의 말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걸어와 국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대는 단신으로 레시아 왕국에 잠입하고, 두 왕국을 설득하고, 레시아 여왕을 처치한 일등 공신이므로 백작의 작위와 글라드 영지를 수여하겠다.”
왕의 말과 함께 바스크 때와 동일한 금은보화와 휘장이 나왔다. 왕이 휘장을 여울의 어깨에 올리려고 할 때, 그가 고개를 들어 왕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머무를 수 없으니 영지는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저를 거둬 준 리디 부장에게 이 공을 돌리겠습니다.”
왕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여울과 그 뒤에 어벙하게 서 있는 리디를 번갈아 보다가 대답했다.
“응? 아, 그래, 그래요. 어차피 리디 기사님에게도 남작위를 내리려고 했는데 잘됐네. 그나저나 아쉽구려. 여울 백작 같은 검사가 다른 곳으로 떠나다니…….”
“감사합니다.”
여울은 짧은 대답 후에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에는 리디가 남작의 작위와 글라드 영지를 수여받으며 작위식과 영지 수여식이 끝이 났다.
그로 인해 연회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고, 귀족들은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언제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함께하는 법, 한쪽 테라스 어두운 곳에는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 뮤탈 슈레인이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하염없이 바깥을 바라보며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뒷모습을 힐끔거리던 귀족들이 이죽거렸다.
“히야…… 저 허리 봐, 한번 감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감으면 되지. 지금 당장 감아 봐?”
“아무리 그래도 공작가인데 그러다가 무슨 꼴 당하려고.”
“영지도 군사도 없는데 무슨 공작가야? 무늬만 공작이지, 남작이야, 남작.”
“스읍, 이참에 나도 슈레인한테 들이대 볼까?”
“멍청한 놈들…… 백날 들이대 봐라. 가시에 찔리기밖에 더하나. 나중에 힘이 완전히 빠졌을 때 허리를 감아야지.”
슈레인은 강한 모멸감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귀족들 몇몇은 피하지도 않고 음욕이 담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빠른 시일에 가문의 몰락을 피부로 느낄 줄은 몰랐다.
전에는 그렇게 따뜻했던 연회가,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공작가의 자제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곳을 나섰다.
나가는 길에 여울의 건조한 눈과 마주쳤지만 금세 시선을 돌렸다. 그를 아직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마음이 복잡한 슈레인이었다.
‘눈물?’
여울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가는 슈레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찾아낸 마인 때문에 몰락한 공작가의 영애, 안타깝지만 그녀 스스로 버텨 내는 수밖에 없다.
예전에 특이한 하루를 같이 보냈다는 정이, 그녀를 돌봐 줄 이유는 되지 못한다. 심지어 이곳은 레벨이 존재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뮤탈 공작의 힘이라면 금세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울은 연회장을 나와 음침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정보 길드가 얼마나 일을 진행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제 막 사창가 골목으로 들어서려는데 구석의 어두운 곳에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슈레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여울을 보고는 눈이 확 커졌다가 금세 가늘게 뜨고 입을 열었다.
“이쪽은…… 아저씨도 남자는 남자군요.”
“만날 사람이 있다.”
“어리고 예쁜 여인?”
여울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가 오해를 풀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몇 발자국 가지 않아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나는 이런 골목을 다녀도 숨을 필요가 없어요.”
여울은 그녀의 힘없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나 아저씨 막 미워했어요. 지금도 사실 조금 미워요. 아저씨 덕분에 아빠가 마수의 손에서 벗어났는데…….”
“당연한 거다. 마음에 두지 마라.”
여울은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움직이려고 했다. 그때 슈레인이 다급히 걸음을 옮겨 그의 옷깃 끝부분을 붙잡았다. 한순간 그녀 특유의 풀잎 향이 코를 자극했다.
“뭐예요? 이렇게 용기내서 사과했는데 가려고요? 사과 안 받아 줘요?”
여울은 뒤돌아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받았다.”
“그러면 화해 기념으로 거기 말고 나랑 놀면 안 돼?”
슈레인은 여울을 올려다보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무언가 위험한 느낌이다. 여울은 허리를 젖혀 얼굴을 뒤로 물리며 대답했다.
“정보를 의뢰했고, 의뢰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
그의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꾸덕꾸덕인다.
“아…… 그 말로만 듣던…….”
“같이 가든지.”
“아, 아니에요. 나 그냥 여기서 기다릴게요.”
“그래라.”
슈레인의 대답에 여울은 망설임 없이 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여울의 뒤통수에 대고 한 손을 마구 흔들어 댔다.
예전에 왔던 사창가로 들어서자 여울을 알아본 그 어린 소녀가 바로 눈을 가리고는 전과 같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잠시 후, 눈을 가린 안대를 푸니 뇌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 시드가 눈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 그윽한 눈과 오뚝 선 코를 보면, 가려진 입까지 보지 않아도 수많은 남자들을 충분히 홀릴 수 있는 여인일 것이다.
“오랜만에 오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소득이 있었습니다만, 먼저 밀린 잔금을 치를까요?”
여울은 바로 안주머니에서 1골드를 꺼내어 주며 말을 이었다.
“말해라.”
“어머, 남은 금액은 이 소녀를 아끼는 마음인가요?”
그녀는 두 손으로 1골드를 받아 들며 그 풍만한 가슴이 도드라지게 모으고는 몸을 꼬았다. 여울은 시선을 그녀의 눈에 고정시킨 채 입을 열었다.
“말해라.”
여울의 반응에 그녀는 자세를 다잡으며 콧방귀를 한 번 뀌고는 말을 이었다.
“흠, 도도하시네.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가면 프세하라는 대륙이 있어요. 그곳에서는 그 비아느라는 여자가 마법사로 이미 유명하던데요? 그곳에서 몇 개월 전에 봤다는 우리 쪽 대원이 있어서 따로 사람을 확보할 필요도 없었어요.”
마법사, 세잎 대륙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희귀한 존재이니 꽤 유명한 것이다. 그녀의 존재가 이곳에 정말로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한 줄기 빛이 내려온 것 같다.
“프세하 대륙…… 그곳은 어떻게 가야 하지?”
“이곳은 세잎 대륙의 동쪽 끝이니까 이야기가 쉽죠. 동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므세란항이라는 부두가 나옵니다. 그곳에서 프세하 대륙행 선박을 타면 됩니다.”
“알았다.”
여울은 대답과 함께 2골드를 꺼내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내가 없는 동안 이 금액만큼은 계속 알아보기를 바란다.”
“화통하시네요. 돈만큼 신뢰할 수 있는 건 없죠. 알겠습니다, 다녀오시지요.”
여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서 검은 안대를 다시 둘러 주기를 기다렸다. 그때 시드와 자신을 데리고 온 소녀가 눈을 마주했다. 시드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소녀는 한 손을 계단 위로 가리키며 말했다.
“안내하겠습니다.”
이제는 안대를 씌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 맡긴 2골드로 그 정도의 신뢰감을 쌓은 것이다.
여울은 사창가를 나서며 생각했다. 목표 지역이 생겼으니 이곳에 더 이상은 머물 필요가 없다. 슈레인에게 말하고 바로 동쪽의 므세란항이라는 곳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음…….”
나와서 슈레인이 기다린다는 곳으로 가 보니 그녀는 그곳에 있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간 것 같다. 번거롭게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려는데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져 있다.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트롤의 눈알이 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