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55
155
155. 프세하 대륙으로
저벅저벅.
여울은 성큼성큼 지하실을 거닐었다. 살려 둔 사내놈에게 들어 보니 이곳은 누군가를 납치하여 감금하거나, 몰래 살인을 하고 뒤처리를 맡기는 작업장이라고 한다. 범죄 안전 지역을 돈 받고 빌려 주는 곳이다.
사내는 앞장서서 달려가 위에 11이라고 적혀 있는 방문을 돌려보며 말했다.
“이곳입니다…… 아직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강철 문이라서 안에서 열지 않는 이상…….”
여울은 사내에게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말했다.
“비켜.”
“아, 넵.”
그는 바로 주먹으로 강철 문을 쳤다.
쿵!
약간의 흠집만 생겼을 뿐 끄떡없다. 사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뒤에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여울이 손가락을 펴고는 다시 강철문에 손을 찔러 넣었다.
콰직!
강철 문은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여울의 손은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는 안에 잠금장치를 찾아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이익.
그곳에는 맞았는지 고운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고, 옷은 거칠게 찢겨져 있는 슈레인이 있었다. 아직 목숨은 붙어 있어 다행이다.
“찾았다.”
여울은 그들을 보자마자 바로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왕궁에서 함께 연회를 즐기며 슈레인을 보고 음담패설을 나누었던 귀족들이다. 그는 시간이 멈춘 듯이 얼음이 되어 있는 귀족들에게 바로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그들의 얼굴을 잡고 오른쪽 벽에 찍었다.
콰직!
“큭!”
“커헉!”
두 귀족은 쌍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여울은 그들을 내려다보며 슈레인이 지금 기절해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랜턴 가져와.”
여울은 뒤에 가만히 서 있는 사내에게 랜턴을 받아 귀족들 앞에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벌써 아파하지 마라.”
여울은 가까이 있는 귀족의 머리를 잡아 한 번 더 벽에 박고는, 랜턴을 해체하여 기름을 그의 아랫도리 가운데에 부었다.
“으으! 이, 이게 무슨 짓…….”
여울은 바로 엄지와 검지를 그의 입 안에 넣어 혓바닥을 잡고는 밖으로 쭈욱 뺐다.
“시끄러워.”
서걱.
여울은 한쪽 손가락을 감싸고 있는 디카르를 길고 날카롭게 변형시켜 그의 혓바닥을 잘라 냈다.
“끄륵, 케헥, 켁.”
그러고는 그의 목덜미를 잡아 복도에 내치고는 랜턴의 불씨를 그곳에 떨어트렸다.
화르르륵!
“끄아아아악!!”
그는 가운뎃다리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하여 이리저리 굴러다녔으나, 불은 꺼지지 않고 오히려 온몸에 완전히 번져 살갗이 타들어 갔다.
여울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방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느새 남은 귀족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슈레인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가, 가만히 있어! 그러지 않으면…….”
턱, 턱.
여울은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는 당황하며 그녀의 목에 댄 칼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여울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그의 손목이 확 꺾였다.
“아악!!”
여울은 칼을 든 그의 손목을 꺾고는 다른 손으로 그의 목을 잡아 벽에 던졌다. 그러고는 그의 두 손목을 잡고 발로 가슴을 밟으며 말했다.
“이 쓸데없는 팔부터 뽑아 주지.”
촤아악!
“끄아아아악!!”
여울은 그의 두 팔을 강제로 뽑아 버리고는 이미 불에 타 죽은 자와 동일하게 가운뎃다리에 랜턴 기름을 붓고는 불을 붙였다.
“끄흐, 끄아, 살려 줘어!!”
여울은 피부가 녹아내리며 발버둥 치는 그의 발악을 무시하며 슈레인을 데리고 그 지하실을 나섰다.
* * *
꿈뻑꿈뻑.
슈레인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앞에는 기절하기 전에 보였던 악마 같은 놈들과 칙칙한 지하실이 아닌, 밝게 빛나는 달빛과 쏟아 내릴 것만 같은 별들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그 전에 일이 모두 꿈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 볼과 입 안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그 일이 사실임을 알려 주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아…….”
지프센의 수도 지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그곳에 자라나 있는 작은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보인다. 검은 옷에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에 건조한 눈빛, 그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본 순간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깨달았다.
“흐읍…….”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에게 오늘은 매우 긴 하루였다.
여울은 가만히 슈레인을 기다려 줬다.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든 그녀는 두 손을 뻗어 여울의 손을 잡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위기에서 구해졌지만 그녀의 눈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만든 비참한 현실은 아직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들, 연회 때 본 귀족들이던데.”
“그걸 어떻게…….”
“나는 한 번 본 사람은 잊지 않는다.”
그 말에 여울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슈레인은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맞아요…… 나를 납치하고 강제로 겁탈하려고 했던 그들은…… 귀족들이에요. 내가 아버지의 딸인 것을 알고도 이런 짓을 한 거죠…….”
여울은 뒷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가자, 왕궁으로.”
“네, 네?”
여울은 슈레인을 반강제로 끌고 왕궁으로 향했다. 왕궁에 도착하여 그녀의 아버지인 뮤탈 공작을 만나자 바로 달려가 그를 껴안았다.
“크흡, 흡, 흐어엉! 아빠아…….”
많은 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슈레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뮤탈은 당황했지만 내치지는 않았다. 잠시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이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딸, 대체 무슨 일이냐.”
“흐윽, 흑, 그게…….”
슈레인은 어린아이처럼 끅끅거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을 듣는 뮤탈 공작은 점점 표정이 악귀와 같이 변하였다. 그가 안에 갈무리하지 못하고 내뿜는 살기는 주변 귀족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 씹어 먹을 놈들이…….”
잠시 후, 여울이 살려 둔 그곳의 안내자 사내가 두 귀족의 시체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여울은 슈레인, 뮤탈과 함께 국왕을 알현하여 이번 사건을 소상히 밝혔다.
사내가 증인이 되어 죽은 귀족들의 죄가 밝혀지고, 그 범죄의 소굴은 소탕 명령이 떨어졌으며 두 귀족의 가족들에게도 죄를 물어 영지를 빼앗고 귀족 작위는 박탈하였다.
국왕 레기 드 지프센은 뮤탈 공작도 뛰어난 검술로 레시아 여왕을 잡는 데 일조를 했지만, 그 전의 일이 있어서 공을 치하해 주지 못해 찝찝해 하던 차에 잘되었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명했다.
“뮤탈 공작에게 이번 사건을 일으킨 귀족과 그 가족들의 처우, 영지와 영지군의 분할 등 모든 것을 일임하겠다.”
“감사합니다, 전하.”
국왕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두 영지와 영지군을 뮤탈 공작에게 수여한 것이다. 덕분에 뮤탈은 전보다는 아니지만 그 절반에 가까운 영지와 영지군을 얻었고, 그의 위상은 다시금 오를 기세였다.
그날 이후, 슈레인은 뮤탈 공작이 붙여 준 친위대를 이끌고 쉼 없이 사냥을 다니며 레벨을 올렸다.
이틀 뒤, 지프센 왕국의 땅끝 마을 므세란항.
몇 개의 배가 세워져 있는 부두 앞에 열 댓 명의 사람들이 여울과 마주하고 있다.
“덕분에 큰일을 해냈다. 언제든지 환영해 줄 테니 찾아와라.”
바스크의 말에 여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세하게 웃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바다 건너에 숨겨 둔 애인이라도 있나…… 슈레인 아가씨가 관심 있어 하는 거 같더만 그런 여자를 두고 어딜 그렇게 바삐 가냐.”
여울은 서운함에 툴툴거리는 리디의 어깨를 두 번 툭툭 치며 말했다.
“나는 사실, 슈레인만 한 딸이 있습니다.”
“으잉?”
“어?”
그의 말에 충격에 빠진 두 사내의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흘린 여울은 바로 뒤돌아서 배 위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그들을 보며 한 손을 살짝 들었다.
“잘 지내십시오. 갑니다.”
그들은 얼떨결에 마주 손을 들고는 흔들었다. 그 뒤에 바스크의 친위대들도 절도 있는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부우우우우웅!
묵직한 저음의 뱃고동 소리와 함께 여울을 실은 배가 출발하였다. 바스크와 리디는 그가 탄 배에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지프센 왕국에 짧은 시간 머물면서 결코 가볍지 않은 행적을 남기고 간 여울이 그들에게는 강렬하게 기억에 박힌 것이다.
촤아아아아악!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배가 바다를 가르며 빠르게 나아간다. 평균 4레벨이 넘는 사내들 열댓 명이서 배 내부에 있는 거대한 원형 손잡이를 돌린다. 그러면 배 뒤꽁무니에 설치되어 있는 프로펠러가 돌아가 추진을 얻는 방식이다.
사내들의 힘이 일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만큼 웬만한 현대의 배처럼 힘 있고 빨랐다.
여울은 뱃머리에 서서 수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제 차원의 문을 넘어서 로디스 세계에 온 지 6개월, 약속한 시간은 앞으로 1년이 남았다.
알아본 바로는 나가 여왕 레시아 외에도 그녀와 같은 몬스터 왕들이 여섯 마리가 더 존재한다고 했다. 남은 기간 안에 그들을 처리하기란 불가능하다. 레시아가 말하는 ‘그’라는 존재를 찾아야 한다.
그 전에 전제 조건이 있다. ‘그’를 없앨 만한 힘.
그 힘을 얻기 위해 이번에 프세하 대륙으로 넘어가면 최소 3개월 동안은 레벨업에 집중하여 12레벨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약속한 기간이 다가와도 게이트를 막지 못한다면?
‘은서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그그그그.
그때, 배가 심하게 흔들리며 급격한 제동이 걸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옆판에서부터 강력한 파동이 느껴졌다.
쿠과아아아앙!!
“꺄아아아!”
“으아악!”
“해적이다아!”
여울은 중심을 잡고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배 옆판은 검은색으로 도배가 된 다른 배가 뱃머리로 깊이 찍은 상태였다. 그 검은 배 위에서 검은 두건을 쓰고 창검을 든 사내들이 우르르 넘어오며 소리쳤다.
“크하하하! 이게 얼마 만에 먹을 거냐!”
“우리는 제르칼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대가리 박고 엎드려라!”
제르칼이라고 밝힌 해적들은 무기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사람들을 굴복시켰다. 검의 손잡이에 손을 대려고 하거나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자세를 보이면 가차 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과감하고 일사불란하여 채 5분도 되기 전에 갑판 아래에 있는 손잡이를 돌리는 선원들까지 끌려 나와 바닥에 엎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여울의 차례가 되었다. 마지막까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서 있는 여울에게 제르칼 해적 한 명이 창끝을 들이대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넌 뭐야! 죽고 싶…….”
그때, 여울은 다가오는 창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교묘하게 창끝을 피하고 창대를 감아 확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것을 잡고 있던 해적의 몸이 쭉 딸려 왔다. 여울은 가볍게 주먹을 날려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파직!
해괴한 소리와 함께 해적의 얼굴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순식간에 머리를 잃은 그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는 동안 장내는 정적이 감돌았다.
여울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주먹을 털며 제르칼 해적들 중에 대장으로 보이는 자를 바라보았다.
“나의 시간을 빼앗은 대가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