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57
157
157. 해룡 레비톤
파아아아앙!
인식하지 못했던 눈을 감싸고 있는 어떠한 막이 깨졌다. 눈앞이 티끌 하나 없는 검은 세상으로 바뀌었다. 몸을 옥죄고 녹이고 있던 진득한 점액질의 위산들도 사라졌다. 자신의 몸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다.
해룡의 몸 안을 마치 무수히 많은 제삼자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전체적으로 다 보였다. 그의 위장 기관, 혈관, 세포까지도 세세하게 보인다. 무엇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지식도 파도처럼 밀려 들어온다.
후우우웅!
갑자기 제삼자의 눈이 더욱 멀어지기 시작했다. 중력도, 바람도 느껴지지 않아 속도를 체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육감이 상상하지 못할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해 준다.
해룡의 몸 전체가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보였고, 그가 머물러 있는 넓은 바다가 보였고, 그 안에 있는 무수한 물고기, 해초, 플랑크톤들이 보였다.
아무리 눈이 좋아졌다고 한들 그것들을 어떻게 이렇게 세포 단위로 자세하게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때쯤, 한 단계 더 멀어졌다. 하얀색, 푸른색, 검은색, 녹색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하나의 구가 나왔다.
여울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로디스다. 그 주변에는 조그맣고 둥근 것들 수십여 개가 보였다. 조금 더 멀어지니 이 넓은 곳을 밝게 비추는 거대한 행성이 보였다. 그곳에 로디스보다 수백 배는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지구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은 시리도록 아름다운 빛을 내뿜고 있다. 그리운 곳이다. 그때 이 광활한 우주에 부유하는 수많은 별들이 동시에 푸른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점점 커지더니 여울의 눈을 가득 채웠다.
파아아앙!
그 빛은 과부하가 되듯이 강렬하게 발산하더니 이내 산산조각으로 깨져 버렸다. 그 빛이 거두어지니 해룡의 위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끈적거리는 점액질이 몸을 녹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죽음의 위기인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눈앞에 형형색색의 다른 물질들이 아주 세밀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여울은 그것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마나다.’
여울은 의식의 손을 뻗어 그것들을 끌어당겼다. 다루는 방법은 매우 익숙했다. 강도와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디카르와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 형형색색의 마나들을 끌어와 자신의 몸이 녹아내리지 않도록 막을 만들었다. 그러자 실제로 운신이 자유롭고 살갗을 녹이던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는 볼썽사납게 흩어져 있는 디카르도 잡아당겨 몸에 둘렀다.
마치 생각만 하면 실제로 구현이 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실제 세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은, 만져지지도 잘 보이지도 않는 것이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구현된다. 이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는 짧게 생각해도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이것이 바로…… 마나의 힘!’
마나. 자신의 몸을 이루고 있던 것이지만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대다수 빠져나갔던 그것. 마나를 볼 수 있게 되면 강제적으로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케라브의 기억을 세밀하게 더듬으며 다시 재생된 눈꺼풀을 닫았다. 그러고는 팔다리를 편안하게 양쪽으로 뻗고는 지금 이곳에 있는 마나에 집중했다. 자신의 마나로 만든 막이 위산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으니 급할 것도 없다.
여울은 천천히 그 형형색색의 마나를 자신의 몸 안에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혈관을 타고 광속으로 자신의 몸을 수천 바퀴 돌며 배꼽 아래에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는 양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늘어나 끌어들이는 마나량도 더욱 늘려야 했다.
정신없이 마나를 흡수하며 안착을 시키는 중에 갑자기 천둥과도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이놈!!
파란빛이 번쩍이며 눈앞에 소년의 형상이 나타났다. 놈은 악귀와 같은 표정으로 자신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죽은 줄로 알았더니 악랄하게 마나를 흡수하고 있었다니, 연기가 탁월한 놈이었구나!
여울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마나를 계속해서 받아들였다. 여울은 알고 있었다. 저 소년의 형상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는 것을. 그것에게는 물리적인 마나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사념의 마나 집합체일 뿐이다.
여울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자, 눈썹을 한 번 꿈틀거린 그는 표정을 바꾸며 말을 이었다.
-내가 딱 한 번 입구를 열어 주지. 지금 하는 일을 멈추고 당장 나간다면 아무런 죄도 묻지 않겠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감당하지 못할 일을 겪을 것이야!
여울은 그의 말과 표정을 보고는 확신했다. 지금 이곳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축적되어 있다. 마나를 흡수하기에는 이만한 공간이 없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다시 해룡이 자신을 공격한다면 아무리 본래의 힘을 되찾고 마나를 깨달았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지 미지수다. 여울은 눈을 천천히 뜨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군.”
-이노오오옴!!
입이 찢어져라 크게 소리치는 그 형상은 사방으로 터져 나가더니 이내 사라졌다. 동시에 이곳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어어어어어!!
거대한 굉음과 함께 위산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뒤쪽으로 하얀빛이 점점 새어 나와 뒤돌아보니 자신을 삼켰던 늪과도 같은 기관이 다시 열린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위산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자신을 밀치기 시작했다.
여울은 그것들을 헤치며 아래로 내려가 두 손을 뻗었다. 양손에서 디카르가 갈고리 모양으로 뻗어 나와 놈의 살에 단단하게 박혔다.
푸욱!
여울은 구부정하게 앉은 모양새로 그 해일과도 같은 밀침을 버텼다. 얼마나 강하게 몸을 두드리면 갈고리가 박힌 놈의 살이 반쯤 뜯겨 나와 피가 새어 나왔다.
그아아아아아!!
더욱 거대한 굉음과 함께 위산이 모두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반대쪽에서는 위산과는 다른 검은 액체가 덮쳐 오는 것이 보였다. 위산이 빠져나갈 때는 버텼지만, 그 검은 것들과 부딪치는 순간, 놈의 살이 뜯기며 그것에 휩쓸려 밖으로 빠져나갔다.
여울은 그 순간 마나막으로 온몸을 감싸 보호했다.
촤아아아아아악!!
몸은 가공할 속도로 날아가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순간의 빛이 눈을 멀게 할 것처럼 환하게 비쳐 왔다.
후우우우웅!
여울은 검은 액체와 함께 하늘 위로 수백 미터 솟구쳐 올라온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고개를 쳐든 해룡이 검은 액체를 쏟아 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공중에 뜬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니 그 안보다 수십 배는 마나의 농도가 옅다. 자신이 흡수한 양은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꾸우욱.
여울은 한 손을 들어 주먹을 꽈악 쥐어 보았다. 힘이 넘쳐흐른다. 지구에서의 힘을 되찾은 것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힘이 느껴진다.
레벨이 그릇이고, 그 그릇만큼만 마나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마나를 가지면 그 그릇도 더 커지는 것인가?
어찌 됐든 일단 눈앞의 괴물을 먼저 처치해야 한다.
여울은 의문을 잠시 미뤄 두고 한 손에 디카르를, 한 손에는 베아를 들고 아래를 향해 다이빙을 하듯 자세를 취했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곳이 바다인 이곳에서, 이 해룡을 따돌릴 곳은 없다. 죽는 것 아니면 죽이는 수밖에 선택권이 없다. 그리고 지금이 적기다.
“하압!”
여울은 바람의 마나를 모아 발바닥에 충돌시켰다. 그러자 그의 몸이 역으로 검은 액체들을 뚫으며 해룡의 입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는 놈의 입 안에 들어가자마자 검은화염을 감싸고 베헤모스의 기운과 검기의 기운을 한껏 품은 두 검을 한곳에 박아 넣었다.
쿠과과과과과광!!
“키헤에에엑!!”
그 거대한 충격파에 끝없이 쏟아 내던 검은 액체가 역류하고 해룡의 아래턱이 수십 미터 크기로 찢어졌다. 생각했던 대로 겉의 강철 같은 비늘보다는 안의 살이 훨씬 부드러웠던 것이다.
촤악! 촤악! 촤아악!
여울은 이 틈을 놓칠세라 역류하는 검은 액체에 검기를 연속으로 뿌려 댔다. 놈은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고, 그는 검기를 모두 쏟아 낸 후에 상처가 난 곳에 두 검을 꽂고 난도질을 하며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철퍽철퍽! 촤아아악!
망망대해 위에 둘레 40미터, 몸길이 300미터에 육박하는 초대형 괴물 해룡이 펄떡이며 인공 파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의 주변에는 반투명한 액체와 검은 액체가 떠다니고 있었다.
그 몸부림이 얼마나 강한지 그 주변에 다가갔다가 부딪치기라도 하면 몸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 강렬한 몸부림은 해가 질 때까지 이어졌다. 끝이 없을 것만 같다고 생각하던 그때, 해룡이 대가리를 곧추세우며 입을 쩌억 벌렸다.
“끼에에에에엑!!”
츄와아아아아악!
놈은 그 중심으로 굵직한 파동이 만들어질 정도로 거대한 포효를 내뿜더니 이내 뒤로 넘어갔다.
바다 위에 배를 까 보인 채 둥둥 떠 있는 모양새다. 놈의 입에서는 검은 액체가 끝없이 흘러나왔고, 그 어마어마했던 힘은 온데간데없고 발가락 하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때, 놈의 배 중앙이 갑자기 불룩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이내 사방으로 찢기며 사람 한 명이 튀어나왔다. 카르의 재킷과 신발 외에는 모두 녹아내려 디카르로 감싸고 있어도 다소 민망한 차람의 여울이었다.
으득으득!
여울은 해룡을 내려다보며 손목을 풀었다. 몇 시간 동안 검을 쉬지 않고 휘둘렀더니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팠다.
전함과도 같은 크기의 놈을 보니 얼마나 어마어마한 괴물을 잡았는지 실감이 났다. 이제 조금 ‘그’라는 자에게 맞설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듯하다.
“음?”
몇 걸음 걸으며 이제 어떻게 프세하 대륙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참에, 놈의 뱃가죽 너머에 강렬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동시에, 채굴꾼 이세진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관찰 특성이 3이 되니까 몬스터 몸에 마석이 보이더라고요.”
여울은 그것이 마석임을 확신하며 그곳의 비늘을 손으로 뜯어내고는 디카르로 살을 파내었다.
푸욱!
손을 깊숙이 집어넣었지만 닿지 않는다. 어디에 있는지는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알 수 있다. 마나가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이상, 눈을 감고 있어도 모든 물질의 형태와 색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여울은 디카르의 형태를 변환시켜 길게 뻗어 내어 십여 미터 안에 있는 빛을 뿜어내는 마석을 감싸고 밖으로 꺼내었다.
드드드드드!
그 마석을 처음 보았을 때, 마석이 아닌 것만 같았다. 성인의 주먹만 한 그것은 단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크기였으며, 뿜어져 나오는 색은 눈을 멀게 할 것처럼 밝았고, 마치 생명이 들어 있는 것처럼 마구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울은 그것을 칼론의 주머니에 넣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그때 두 팔뚝이 용암에 담근 것처럼 미친 듯이 뜨거워지며 심장이 달린 것처럼 두근두근거렸다.
지금 이 감각, 매우 오랜만이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레벨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