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62
162
162. 라칸 왕 드비아드
여울은 날카로운 기운의 라칸을 따라 야광석이 은은한 빛을 발하는 동굴을 거닐었다. 그렇게 500미터쯤 들어가자 거대한 공동이 나왔다.
그 중앙에는 특이하게도 돌을 깎아서 만든 계단이 있었다. 그 스무 개의 계단 위에는 삼면이 검은 벽으로 막혀 있고, 가운데에는 돌로 된 거대한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는 다른 놈들보다 조금 더 색이 짙은 라칸이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라칸 왕 드비아드다.
저벅, 저벅, 저벅.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때마다 그에게서 나오는 기운이 묵직하게 온몸을 짓눌렀다. 위험하고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던 이그리트 왕과는 조금 다른 견고하고 무거운 느낌이다.
턱.
여울은 안내하는 라칸의 손짓에 따라 왕좌에서 10미터 앞에 멈춰 섰다. 드비아드는 고개를 살짝 들어 여울에게 시선을 주며 입을 열었다.
“마법사라고?”
여울은 계단을 오를 때 감각을 활성화시켜 주변에 라칸이 몇 마리나 있는지 체크했다.
그리고 드비아드 앞에 서자마자 바로 관찰을 시전했다.
―종족 : 라칸
―이름 : 드비아드
―레벨 : 13
―경험치 : 67%
―특성 :
*Lv10 염력(Max)
*Lv7 근력(Max)
*Lv12 지구력
그는 라칸 왕답게 특성이 세 개나 있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염력’이다. 여울이 알고 있는 유일한 염력 특성자 수언은 민첩 특성 없이도 자신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하늘을 누비며 엄청난 힘을 발휘했었다.
그런데 근력에 지구력까지 갖춘 염력 특성자라…….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드비아드의 레벨은 13, 주변에 있는 라칸은 열다섯 마리. 드비아드는 자신과 사대 천왕이 맡고 나머지는 검은 기사들을 전부 불러내 상대한다.
여울은 머릿속에서 계산을 끝내고 두 손에 디카르를 검 모양으로 형성시켰다.
“나는 당신에게 협력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비아느의 친구로서 찾아온 것이다.”
드비아드는 살기를 끌어 올리는 여울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의 친구라…… 용기 있군. 비아느에게 목숨을 구원받았어도 한 명도 찾아오지 않더니.”
스윽.
그가 두 손에 손톱을 길게 빼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우웅.
그러자 앉아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압도적인 기운이 장내를 감쌌다. 여울은 마나막을 치고는 검은 기사들을 소환할 준비를 했다.
그때, 그가 여울의 눈동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라는 건가? 정말 나를 칠 생각으로 왔나 보군. 그녀에게 이런 친구가 있던가?”
여울은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말을 끄는 그를 보고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답했다.
“그녀를 풀어 준다면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다.”
“하하, 협박 참 무섭군. 따라와라.”
드비아드는 예상과는 달리 다시 손톱을 집어넣고는 여울을 지나쳐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여울은 경계를 풀지 않고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다.
만약 수십, 수백 마리의 라칸이 모여 있는 곳으로 유인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감을 믿는 것은 금기 사항이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감이 왔다. 그리고 함정일지라도 어차피 처리할 자들을 미리 처리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어느새 새로운 공동에 도착했다.
“로스도 많이 다쳤네? 이틀간 이쪽 팔 쓰지 말고 사냥 나가지 마. 알았지?”
“으으…… 알겠어.”
익숙한 목소리, 낯선 톤.
여울은 고개를 휙 돌렸다. 그곳에는 묵빛의 팔찌를 양손에 차고 상처 입은 라칸을 돌보는 한 소녀가 있었다.
이 세계에 오면서부터 간절히 찾아 헤맸던 소녀, 비아느였다.
그녀는 라칸의 병원과도 같은 이 공동에서 그들을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여울은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 모습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익숙한 기운을 느낀 비아느가 먼저 그를 알아보고는 검지로 가리키며 입을 쩌억 벌렸다.
“히익! 다, 다, 당신이 여긴 어떻게?”
그녀가 그렇게 놀라는 모습을 보고는 라칸 왕 드비아드가 먼저 반응했다.
“그렇게 놀랄 만한 자인가? 그런 얼굴은 처음 보는군.”
여울은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등지고 서서 드비아드를 바라봤다.
“나를 비아느에게 안내했다는 것은, 데려가도 된다고 해석해도 되나?”
등 뒤에서 비아느가 여울의 옷깃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어떻게 내 이름을……? 아, 드디어 밤의 왕이 되었구나?!”
그녀의 말에 드비아드가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아…… 밤의 왕이라. 이자가 바로 네가 말한 이세계에서 건너온 자군…….”
그녀는 여울의 등 뒤에서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대답했다.
“맞아, 드비아드! 이제 내 말 믿겠어? 이자한테 심장 뽑히고 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라고.”
그녀의 말에 여울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자 위에 오랫동안 군림해 있던 존재는 그 자존심이 고목나무와도 같아서 부러질지언정 절대로 꺾이지 않는다.
싸우게 된다면 싸우겠으나 지금 자신과 사대 천왕 모두 불러내도 가능성을 점쳐 봐야 할 드비아드를 도발해서 좋을 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드비아드의 반응이 이상하다. 자신과 비아느를 번갈아 보며 턱을 매만지고 있다.
“흐음…… 이자가 밤의 왕이라.”
고민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를 향해 비아느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지금 당신에게 기회를 준 거라고! 이 사람이 여길 온 걸 보면 당신이 죽을 차례인 거야. 죽고 싶지 않으면 어서 선택해!”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러는지 모르겠다.
언제 갑자기 손톱을 뽑아 그녀의 목을 노릴지 몰라 여울은 온몸에 감각을 곤두세우고 그의 반응을 살폈다.
그때, 드비아드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자가 정말로 로디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자인지 자격을 직접 봐야겠다.”
“자격이라니…… 당연히…….”
여울은 비아느의 중얼거림을 흘려버리며 생각했다.
몇 마리나 있을지 모르는 이곳의 모든 라칸과 죽을힘을 다할 드비아드를 처치해야 했던 상황에서 적당한 대련으로 실력을 검증받고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은 좋은 기회다.
1레벨이 차이 나지만 자신에게는 수많은 특성과 마나가 있다. 절대로 쉽게 지지 않을 것이다.
여울은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좋다. 그 자격시험, 받아들이지.”
드비아드는 여울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가지.”
드비아드의 뒤를 따라 체감상 입구인 폭포의 반대쪽으로 훨씬 더 깊숙이 이동했다.
그곳은 반경 50미터 크기의 공동으로 삼면이 막혀 있었고 다른 라칸은 한 마리도 없었다.
공동에는 오로지 라칸 왕 드비아드와 여울, 비아느만이 있었다.
그 모습에 여울은 의문을 느꼈다. 염력의 가장 큰 장점은 변수 공격, 즉 여러 개의 검을 운용하여 사방에서 공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검 한 자루, 돌멩이 하나 없었다.
그는 손톱을 길게 빼고 뒤돌아서며 말했다.
“자, 이제 밤의 왕 실력 좀 볼까?”
그 살기 어린 모습에 여울은 비아느를 뒤로 물리며 디카르를 형성시켰다.
드비아드는 여울을 보며 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강자의 여유다. 그 정도의 레벨이라면 더 강한 자를 만나 본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방심하고 있는 가장 위험한 때이며, 자신에게는 기회였다.
여울은 바로 오른손의 디카르를 던졌다. 동시에 은신하며 그에게 달려 나갔다.
후웅!
힘껏 던진 디카르와 여울의 속도는 거의 비슷했다. 은신한 채로 그의 뒤로 가서 왼손의 검을 뻗을 계획이다.
그러나 계획은 처음부터 완전히 틀어졌다.
파득, 파드득!
드비아드는 날아오는 디카르를 향해 두 손을 뻗고는 양쪽으로 펼쳤다. 그러자 디카르가 공중에 멈춰 서더니 공중분해되었다.
그사이 뒤로 간 여울이 검을 뻗는 순간 그가 부서진 디카르의 잔해를 염력으로 들고는 한 바퀴 휘둘렀다.
은신한 자신을 찾기 위함이었다.
휘둘러 오는 조각은 열 개. 그의 염력이 10레벨이었으니 한 번에 전력을 다 쓴 것이다. 검은 조각들이 무서운 속도로 몸을 덮쳐 왔다.
여울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빠졌다. 그 공격을 무시하며 공격할까 했지만, 상처를 감수하며 공격하는 것은 도박성이 컸다.
빠지는 찰나, 조각 하나의 끄트머리가 옷자락을 스쳐 은신이 해제되었다.
여울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 한 손을 뻗었다.
후우웅.
드비아드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던 디카르 조각들이 빠르게 회수되었다. 아무리 근력 특성까지 있어 염력이 특별히 강하다고 해도 주인의 명령이 최상위에 있는 것이다.
타닥!
여울은 자신에게 날아오며 다시 합체되고 있는 디카르를 향해 달려 나갔다. 뛰어올라 디카르를 잡고는 바로 허공에서 두 검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휘두르며 검기를 날렸다. 그러고는 온몸에 마나막을 두르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타다닥!
드비아드도 여울을 향해 손톱을 앞세우며 달려왔다. 검기는 신경도 안 쓰고 오로지 여울에게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파앙! 팡!
검기가 그의 몸에 닿기도 전에 터져 나갔다. 마나의 파장을 보니 염력을 사물이 아닌 허공에 두고 방어막을 쳐 놓은 듯했다. 색다른 운용이다. 저런 것이 가능한 줄도 몰랐다.
그의 바로 앞에 다다른 여울은 검을 세로로 휘둘렀다.
채앵!
그의 손톱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손끝으로 그의 어마어마한 괴력이 전해져 온다.
챙! 챙! 채쟁!
몇 번의 합을 주고받을 때였다. 갑자기 아래쪽이 싸늘해 몸을 뒤로 물렸다.
퍼억!
묵직한 타격이 발끝을 스쳤다. 여울은 휘청거렸다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검기를 막을 때와 같은 염력 운용. 눈으로 볼 수가 없으니 훨씬 더 까다롭다.
드비아드는 바닥을 박차고 바로 따라붙으며 외쳤다.
“크하아! 오랜만에 재미있구나!”
여울은 감각의 범위를 더욱 좁혀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다크니스 버서커.’
간신히 그에게 인정받을 정도로는 안 된다. 힘으로 눌러야 한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비아느가 그를 같은 편이 되도록 거의 설득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13레벨에 염력 특성의 전력, 십만 대군보다 귀하다.
하지만 그만큼 다루기도 힘들 것이다. 초반에 제대로 꺾어 놔야 한다.
화르륵.
두 검에 검은 화염이 감쌌다.
자신을 향해 사방에서 날아오는 열 개의 무형의 기운이 느껴진다. 정면으로는 드비아드가 이빨을 드러내며 덮쳐 오고 있다.
콰아앙!!
여울은 바닥에 금세 응축시킨 바람의 마나를 터트렸다.
무형의 기운이 잠시 밀려난 사이 여울의 검과 드비아드의 손톱이 맞닿았다.
쩌어엉!!
부딪침과 동시에 둘의 신형이 뒤로 날아갔다. 여울은 날아가는 도중에 두 개의 디카르를 던지고는 뒤쪽에 마나막을 만들어 박차고 다시 달려 나갔다.
후웅!
드비아드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한 손을 휘저어 두 검을 날려 버리고는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고는 여울을 향해 독수리처럼 쏘아져 왔다.
여울은 두 검을 회수하며 하나의 검을 하나 더 만들고 그를 향해 뛰어올랐다. 검에는 검기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다.
둘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번 수가 승리를 결정지을 승부처라고.
끝에 새파란 빛이 서린 드비아드의 손톱과 검은 화염이 둘려 있는 여울의 검이 허공에서 닿았다.
아니, 만나려고 할 때였다.
“드비아드 님!”
그때, 어느새 나타난 한 라칸이 드비아드를 급히 불렀다. 그와 동시에 드비아드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염력을 앞으로 쏘아 냈고, 여울은 정면에 마나막을 다급히 세 겹을 만들어 냈다.
콰과아앙!!!
동굴 전체가 흔들리는 것만 같은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여울과 드비아드는 서로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외관상 둘 다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둘의 상태를 잠시 보던 라칸은 다시 말을 이었다.
“밖에 고다 님이 찾아왔습니다.”
그의 말에 비아느가 온몸을 떨었다.
“이그리트 왕이…… 벌써?”
이그리트 왕 고다.
그때 평야에서 보았던 놈이 고다가 맞는 듯하다. 놈의 목적지도 자신과 같았던 것이다.
라칸의 말에 드비아드는 가만히 여울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비아느를 양도받으러 온 모양이군.”
그 말에 비아느의 안색이 더욱 파래졌다. 몬스터 왕들은 정말로 ‘그’라는 자에 의해 이어져 있는 듯하다.
“뭐야, 어떻게 할 거야? 얼른 정해. 나 진짜 저 덩치 큰 괴물한테 보낼 거야?”
이제 진짜 선택의 시간이다. 드비아드는 피식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동맹 기념으로 먼저 밖의 저 덩치 괴물부터 처리해야겠군.”
라칸의 웃는 모양은 매우 거북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