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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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언데드 왕국 가브리아
본디 언데드의 왕국 가브리아는 인간들의 왕국이었다. 리치 여왕 베사린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프세하 대륙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왕국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한 마을을 먹어 치우고 그 시체를 일으켜 단시간에 왕국을 집어삼켰다.
오랜 평화로 인한 폐해였다.
그 이후로는 가브리아 왕국의 터는 죽음의 기운이 진하여 네크로맨서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연적으로 언데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에게 강제적으로 일어난 자들은 기존 마음보다 명령이 우선시되는 반면 죽음의 기운에 의해 자연적으로 일어난 자들은 뇌가 일부 부서졌어도 인간 때의 마음과 생각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변하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뿐이었다.
으득, 으득, 우드득, 쩝쩝.
폐허가 된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
수풀 한구석에 열 살 남짓의 한 소녀와 여인이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뜯어 먹고 있다.
여인은 정신없이 먹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는 눈앞에 소녀를 쳐다봤다. 그 눈빛을 느낀 소녀는 시선을 돌려 여인을 바라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여인은 묘한 눈빛을 하며 손을 뻗어 소녀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맛있니?”
소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진짜 맛있어. 어렸을 때 먹던 건 다 토하는데 이건 진짜 맛있다.”
“그래, 그렇구나……. 우리 이제 이거 그만 먹고 챙겨 갈까?”
“이잉…… 알았어. 아꼈다가 나중에 또 먹어야지.”
여인은 입맛을 다시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하네, 우리 네리.”
“히.”
여인은 붉은 살덩어리를 들어 가죽으로 된 가방 안에 넣었다. 그 살덩이의 뒤쪽 표면에는 인간의 살색이 보였다.
“마을로 돌아가자. 여기는 위험하…….”
그때였다. 여인의 머리 위로 그늘이 드리워졌다. 여인은 두 손을 뻗어 네리를 밀쳤다.
퍼억!
그와 동시에 회색 털로 뒤덮여 있는 거대한 앞발이 여인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강타당한 곳은 뼈와 살이 터져 나가며 줄 끊어진 연처럼 저 멀리 날아갔다.
촤아악.
여인의 검붉은 피가 앞으로 날아가 넘어진 소녀 네리의 얼굴에 튀었다. 그 피는 돌멩이처럼 네리의 얼굴에 맞고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어, 엄마!”
네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인에게 달려갔다.
여인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빨을 드러내며 손톱을 세웠다. 옆구리가 반쯤 사라져 상체가 점점 옆으로 기운다.
정면에는 4미터 크기의 거대한 회색곰, 불칸이 이빨을 번뜩이고 있었다.
“캬학! 네리! 어서 마을로 도망쳐! 어서!”
“싫어엉! 엄마아!”
네리가 여인에게 달려가자 불칸의 눈동자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러더니 들어 올렸던 두 앞발을 바닥에 내림과 동시에 뛰어올랐다.
여인은 다급하게 네리에게 달려가 옆구리에 손을 넣고는 저 멀리 던졌다.
후웅.
“빨리 가!”
“엄마아아!”
퍼석!!
네리를 덮치려던 불칸은 그 자리에 있던 여인을 두 앞발로 덮쳤다. 그녀는 그 육중한 몸에 짓눌려 상체가 완전히 터져 버렸다. 여인은 누운 채로 마지막까지 고개를 돌려 네리를 확인하고 있다.
불칸은 한쪽 앞발을 들어 올려 성질을 내듯이 그녀의 머리통을 찍었다.
파악!
그녀의 머리보다 더 큰 놈의 앞발에 의해 머리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충격적인 장면에 네리는 얼어붙은 듯이 입을 반쯤 벌린 채 가만히 있었다.
“엄…… 마?”
네리는 지금 이 비현실적인 사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평생 옆에 함께 있던 엄마의 사지가 눈앞에서 터져 나가는 것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때, 불칸이 앞발에 묻은 부산물들을 털어 내며 네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살기 가득한 야수의 눈을 마주하자 네리는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어, 엄마, 엄마아.”
네리는 넘어진 채로 뒷걸음질하다가 몸을 돌려 일어났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엄마의 흔적을 한 번 더 보고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크허어엉!”
불칸은 네 발로 네리에게 달려들었다. 몸길이 4미터 야수의 속도는 열 살 어린아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녀는 금세 자신의 앞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엄마의 머리통을 잔인하게 터뜨린 불칸의 앞발이 보였다.
“꺄아아악!”
그녀는 엄마처럼 터져 나갈 자신의 몸을 상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엄마를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퍼억! 쿠우웅!
그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울렸다. 생각했던 끔찍한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몇 달 전에 끔찍했던 고통 이후에는 아픔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이제 나는 죽는 건가. 엄마를 만날 수 있나?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가지?’
별별 생각이 들 때, 머리 위로 따뜻한 무언가가 툭 얹혔다. 그 크기가 엄마의 손과 비슷하다. 그녀는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앗, 차가워. 얘도 좀비인가 보네.”
그녀의 눈앞에는 눈부시도록 하얀 여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불칸이 바닥에 엎어져 있고 한 남자가 놈의 몸을 발로 밟고 있었다. 그 거대한 몬스터를 한 방에 해치운 그자의 표정은 매우 무덤덤했다.
어쨌든 사람이다. 자신과 같은…….
“어, 어, 엄마아! 흐아아아앙!”
그제야 안도감이 든 네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눈물은 전혀 흐르지 않았다.
퍽, 퍽, 퍼석.
여울은 한 발로 불칸의 대가리를 짓이겨 버리고는 고개를 돌려 울고 있는 네리를 쳐다보았다. 그 앞에는 비아느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얘, 얘, 왜 이래…….”
여울은 네리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원래 가족을 잃으면 슬픈 법이다.”
케라브의 기억 덕분에 비아느가 가족 한 명 없이 살아왔던 배경을 아는 여울은 그녀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눈을 위로 올려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탁 튕기며 말했다.
“아, 스승이 소멸했을 때처럼?”
“……그래.”
여울은 그녀의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
‘케라브를 가족처럼 생각했었군.’
비아느는 초롱초롱한 눈을 들어 여울과 마주하며 말했다.
“이 애는 어떡할 거야? 내가 처리할까?”
“처리?”
그녀는 엄지를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 표현에 여울은 시선을 돌려 아직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데 훌쩍거리며 어깨를 떠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놔두고 간다.”
“으응?”
그녀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놔두면 알아서 죽을 소녀다.
저레벨의 좀비, 그것도 자신이 죽었는지 인지도 하지 못하는 소녀가 살아가기에는 매우 척박한 땅이다.
그대로 두고 가려는데 여울의 옷깃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 소녀가 조막만 한 손으로 바지 끝을 붙잡고 있었다.
생존 본능이다.
여울은 다리를 털어 소녀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도 데려가 주세요!”
여울과 비아느는 그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걸었다.
그때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무서운 마녀가 전부 죽였어요! 저랑 엄마뿐인데……. 엄마는, 엄마는…….”
소녀의 말에 비아느가 발을 멈춰 섰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물었다.
“마녀? 어떻게 생겼는데?”
“그게…… 검은 머리에…… 막 이렇게 눈은 파랗고…….”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어떻게 생겼다고?”
비아느는 소녀를 일으켜 세워 함께 길을 걸으며 질문을 이었다.
소녀는 얼떨떨한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게 그러니까…….”
몇 시간 뒤, 여울 일행은 세 명이 되어 함께 길을 걷고 있다.
비아느의 말에 의하면 네리가 말한 마녀는 저레벨이지만 네임드로만 태어나는 네크로맨서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마녀가 부하로 부려야 할 자유 좀비들을 죽였다고 하니 무언가 이상함을 느껴 자세히 되물은 것이다.
“완전 변종인가 본데. 이렇게 보이는 족족 마을이 쓸려 있는 것을 보면 어마어마하게 강한 놈인가 봐.”
여울은 비아느의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검지로 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왜 같이 가는 거지?”
“응? 아저씨가 데려가고 싶어 했잖아. 내가 그 눈빛도 못 읽을 줄 알아?”
“내가?”
“응”
여울은 그녀의 단호한 눈을 마주하다가 시선을 피했다.
“알았다, 가지.”
앞장서는 여울의 뒤통수에 대고 비아느가 말을 이었다.
“시간 좀 지나고,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되면 알아서 결정할 거야. 그럼 그때 그 결정을 돕기만 하면 돼.”
여울은 엄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던 그녀가 네리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그런 깊은 생각까지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대답했다.
“좋군.”
* * *
그로부터 일주일 뒤.
가브리아 왕국 수도로 향하는 동안에 거친 마을은 열다섯 개. 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전부 동일한 형태로 죽어 있었다.
아직 건재한 마을의 좀비들에게 네리를 보내려고 했지만 두 마을 모두 네크로맨서에게 지배당한 좀비들뿐이었다. 오로지 명령과 공격성만 남아 있는 자들인 것이다.
가브리아 성 안에도 그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성벽, 내성 안, 심지어 알현실마저도 그 앞에 모든 좀비 전사가 찢어지고 말라비틀어져 있다.
끼이익.
비아느는 조심스럽게 거대한 알현실 문을 열었다.
“헤엑…….”
그녀는 안에 쓰러진 수많은 좀비 전사를 보고 놀란 것이 아니다. 왕좌에 앉아 있는 목 꺾인 시체를 보고는 놀란 것이다.
리치 여왕 베사린, 찬란했던 가브리아 왕국을 단 삼 년 만에 먹어 치운 괴물, 그녀가 입을 쩌억 벌린 채 미라처럼 바싹 말라 있는 것이다.
비아느는 물론이고 여울도 이곳까지 오면서 설마 베사린까지 당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벅, 저벅.
비아느는 왕좌 위로 올라가 검지로 베사린의 살갗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 빨아들였으면, 이거 뭐 마왕 탄생하는 거 아니야? 스올이 이랬을 리는 없는데……. 스올인가?”
그때, 알현실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좀비 전사들을 살피던 여울이 말을 이었다.
“이건…… 방패를 쓰는 자의 짓이다. 나의…… 친구가 방패를 쓰기에 그들의 공격 특징을 잘 알고 있다.”
“방패라……. 이봐 네리, 그 마녀 방패 들고 있었어?”
네리는 멍한 표정으로 시체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아니, 모르겠어요.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마녀가 방패라니, 되게 안 어울리네.”
빠직, 빠직, 뿌드득.
비아느는 블랙 미스릴로 만든 단검을 꺼내어 베사린의 가슴을 도려냈다.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후비적대더니 뒤돌아서 여울을 보며 말했다.
“없어, 카오스가 없어.”
그녀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여울은 그녀에게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그게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
“가지고 있다고 힘을 얻는 건 아니지만…… 스올에게 선택받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것도 단신으로 베사린의 왕국을 뒤엎을 자라면…….”
“베사린보다 더 골치 아픈 상대가 생겼다는 거군.”
“아직 아니길 빌어야지…….”
여울은 뒤돌아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가지, 그 마녀를 찾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