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67
167
불에 탄 도시, 무너진 건물, 아이를 안고 같이 타 죽은 여인,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시체들이 보이는 죽은 자들의 도시.
으득, 으드득.
도시 광장에는 방패를 어깨에 메고 있는 근육질의 덩치 큰 사내가 보인다. 그는 양손에 좀비 두 마리의 목을 틀어쥐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어깨 위에 검은 원피스를 입은 긴 머리의 소녀가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시리도록 새하얀 얼굴에 푸른 눈을 반짝이고 있는 그녀는 그의 어깨에 두 발을 올리고 머리를 두 손으로 안고 있었다.
―죽여.
그녀의 입이 벙긋거리니, 사내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붉은 기운이 흘러나와 좀비들의 몸을 감쌌고, 좀비들이 금세 말라비틀어졌다.
“흐으, 흐으.”
그는 두 시체를 집어 던지고는 짐승처럼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여울을 찾아야 해, 여울을…….’
사내, 김진후의 눈동자는 흰자와 동공 구분 없이 오로지 붉은 눈이었다.
그때, 그의 안주머니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후는 손을 넣어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것을 꺼냈다. 리치 여왕 베사린에게 얻었던 묵색의 돌이다.
“크흐으…….”
그것을 손에 쥐니 제삼자의 의식이 진후의 정신으로 들어왔다. 어마어마한 기운이다.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 온다. 그리고 그 통증은 고스란히 마녀, 디므린에게도 느껴졌다.
―꺄아아악!
진후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던 마녀 디므린은 귀청을 찢을 듯이 소리치며 한 손을 휘저었다. 그 손짓에 진후가 돌을 던져 버리려고 하는데 머리에 정체불명의 오묘한 목소리가 울렸다.
―힘을 원하는가, 힘을 주겠다. 그자보다 더 강대한 힘을.
마음의 소리인지 다른 자의 목소리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마녀 디므린은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쥔 채 소리쳤다.
―버려! 당장 버려!
“크, 크흐!”
진후는 그 돌이 부서질 듯이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붉은 눈은 깜빡이고 있었다.
스으으.
그의 오른손이 돌을 가슴팍으로 가까이 가져가기 시작했다. 디므린은 두 손을 미친 듯이 휘적거리며 소리쳤다. 손은 진후를 그대로 통과하여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안 돼! 안 돼애!
그녀의 외침에 따라 진후의 붉은 눈도 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휘적거리다가 말을 듣지 않으니 두 손을 진후의 눈에 박아 넣었다. 그러나 그 손마저 그대로 통과될 뿐이다.
지이이잉.
진후의 가슴팍에 묵색의 돌이 닿았다. 그러자 인두로 지지는 듯이 뜨거워졌다.
그때.
“진후!”
울림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진후는 그 목소리에 반응하고는 돌을 떼며 고개를 홱 돌렸다. 검은 옷에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그가 그토록 찾던 자다.
디므린의 통제하에 있어도 여울을 찾아야 한다는 강한 본능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히익.
그를 발견하고는 어깨 위에 올라가 있던 디므린은 화들짝 놀라며 진후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여우울!”
진후는 붉은 눈을 빛내며 어깨에 메여 있는 방패를 오른손으로 들고는 여울에게 달려 나갔다.
여울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으며 달려오는 진후의 눈동자를 살폈다. 동공은 위로 올라갔는지 아예 보이지 않고, 피를 흘리는 것처럼 온통 붉은 눈이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다. 진후가 마족을 죽이고 그 힘을 흡수하다가 정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주했었다.
시체를 되살리는 마기는 악한 기운. 그것을 갑자기 대량으로 흡수하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리치 여왕 베사린의 마기를 흡수하다가 이렇게 됐으리라.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하는 법은? 빈사 상태로 만들면 된다.
후우웅!
여울은 자신의 머리통을 깨트리기 위해 휘둘러지는 방패를 보고는 림보하듯이 허리를 뒤로 확 꺾었다. 자신의 머리가 있던 곳에 방패가 지나간다.
여울은 그 상태로 손을 뻗어 진후의 손목을 잡고는 몸을 뒤집으며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아앙!
머리부터 꽂혔음에도 불구하고 진후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듯이 바로 다시 덤벼들었다.
훙, 훙, 후웅.
여울은 그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틈을 노렸다.
진후는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방패가 공기를 찢는 소리에서 힘도 강력해진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강해진 만큼 진후도 그 이상으로 강해졌던 것이다.
“크하아!”
여울이 그의 공격에 한 대도 맞지 않자, 그는 화가 난 듯이 고개를 추켜올리고 포효했다. 사람이 아닌 사나운 맹수와의 싸움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가 옆구리에서 데가베르를 꺼내어 들었다. 그러자 그 기세가 배는 더 강렬해진 듯하다.
훙!
그의 날카로운 검 끝이 심장을 찔러 왔다. 그 속도가 방패를 휘두를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여울은 다급히 디카르로 검을 형성시키며 그의 검을 맞받아쳤다.
쩌정!
여울은 그 한 번의 부딪침으로 손목이 찌릿해졌다.
그렇다. 진후는 힘 특성을 지닌 자다. 그가 이런 속도를 지니게 됐다면 힘은 어마어마하게 강해졌을 것이다.
여울은 이를 악물었다.
‘다크니스 버서커.’
여울의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나가며 진후와 비슷하게 붉어졌다. 온몸의 힘줄이 굵어져 살 위로 불룩 튀어나오며 검게 변했다. 힘을 비정상적으로 단기간 증폭시키는 버서커의 특징이다.
전처럼 다치지 않고 쓰러트릴 생각이었는데 불가능할 것 같다.
여울은 두 검을 검은 화염으로 감싸며 진후에게 뻗었다.
쩡! 쩌엉 쩡!
둘의 검과 방패가 부딪칠 때마다 충격파가 터지며 집기가 날아가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비아느는 그 엄청난 전투에 감히 끼어들 생각을 못 했다.
쿠우웅!
그렇게 3분여 지났을 때, 커다란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그곳에는 바닥에 깔려 있는 여울과 그 위에 올라타 방패를 내리찍은 진후의 모습이 보였다.
“꺄악!”
비아느가 굳이 끼어들 노력을 하지 않은 이유는 예언에도 언급되는 여울이 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의 결과가 나오니,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어린아이 머리만 한 화염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쿵.
그때, 진후가 방패를 놓아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며 가려졌던 부분이 보였다.
바닥에 있는 여울의 얼굴에는 살짝 긁힌 흔적만 있고, 진후의 배에는 검이 깊게 박혀 있었다.
“끄, 끄흐, 흐.”
여울은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진후는 붉은 눈을 깜빡이며 당황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얼굴이 마치 환상처럼 마녀의 얼굴과 겹쳐 보인다.
그 모습에 진후를 막 발견했을 때 좀비 소녀 네리가 외쳤던 말이 떠올랐다.
‘앗! 저기 있다, 마녀!’
진후는 폭주가 아니라 다른 어떤 존재에게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여울은 신호등이 점멸하듯 깜빡거리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왼쪽 가슴에 검을 하나 더 꽂아 넣었다.
푸욱.
“꺼윽…….”
그는 입을 벌린 상태로 한 손을 여울에게 뻗었다. 전보다는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무시 못 할 힘이 들어가 있는 손이다. 여울은 검과 함께 그의 몸을 옆으로 팽개치고는 머리를 잡아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직!
“크흐…….”
그가 고개를 들자 여울은 다시금 반복해서 바닥에 찍었다.
콰직, 콱, 콰직!
머리 한쪽 부분이 깨지고 검은 피가 새어 나오자 그제야 붉은 눈을 감는 진후였다.
여울은 축 늘어진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
강하다.
진후는 만날 때마다 더욱더 강해진다. 아직은 처리할 수 있지만 성장 속도가 자신보다 빠르니 언제 추월당할지 모른다.
‘그 전에…… 그의 부탁대로 처리해야 하나?’
여울은 배와 가슴이 뚫리고 머리가 터진 사람치고는 평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진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인간의 생명을 버리고 언데드가 되어서도 인간들을 위하여 선두에 서서 살아가던 자다. 그 과정이 어땠을지는 모르겠으나 목표만큼은 다른 어떤 인간보다도 인간답고 의로운 자였다.
그가 지구의 다른 사람들을 버리고 이곳으로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음…….”
여울은 머리를 털었다. 어차피 깨어나면 알게 될 정보다. 그는 주변을 한번 쓰윽 둘러보고는 비아느와 네리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좀 쉬지.”
비아느는 주변에 몰려드는 좀비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알았다, 알았어. 고생했으니까 쟤네는 내가 처리하지.”
그녀는 화염을 부리며 초장거리에서 좀비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네리는 그 모습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여울 옆에 딱 달라붙었다.
여울은 한쪽 팔뚝을 끌어안고 있는 네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직도, 이자가 마녀로 보이나?”
네리는 그의 말에 좀비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진후를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니요. 갑자기 마녀가 남자로 변했어요.”
여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그래…… 그래야지.”
상대를 죽이지 않고 싸우는 것은 죽이는 것보다 몇 배는 더한 힘이 들어간다.
여울은 오랜만에 거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피곤해졌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 * *
여울은 꿈을 꾸었다.
6차선 도로, 드높은 빌딩, 신호등,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세련된 옷이 보인다.
이곳은 그리운 지구. 한국의 수원이다.
자신은 그곳에 새로 마련한 집의 쇼파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다.
은서는 곧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고, 보라가 수언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온다는 약속을 했다. 그날따라 서한도 연락이 와서 꽤 많은 인원이 저녁에 모일 듯하다.
북적북적한 것을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은 그 모습에서 이상하고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싫지는 않았다.
은서가 그들과 함께할 때 짓던 미소 때문인 듯하다. 그래, 그런 것을 ‘행복’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던 것 같다.
이제 우리는 곧 행복해진다.
쿠우우웅.
그때, 거대한 거인이 집을 잡고 흔드는 것처럼 거대한 진동이 일었다. 여울은 번뜩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챙겨 들며 베란다 문을 열었다.
화아아악.
그러자 살갗을 녹여 버릴 듯한 뜨거운 열기가 확 느껴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천 길 낭떠러지에, 그 끝에는 붉디붉은 용암이 흐르고 있다.
“꺄아아아악!”
비명 소리에 고개를 돌려 위를 보니, 어두운 곳에서 사람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용암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미친 듯이 괴로워했다. 살이 점점 녹아내려 새빨간 피부와 근육이 보이고 이내 뼈가 드러난다. 곧이어 뼈도 녹으며 완전히 사라졌다.
“끄아아악!”
점점 떨어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눈에 익은 사람들도 보인다. 신한, 대한 길드 대원들이다.
그때였다.
“아빠아!!”
은서의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그 순간 자신의 눈앞에 아래로 떨어지는 은서가 지나갔다. 동체 시력도 작동하지 않고, 디카르도 움직이지 않아 놓치고 말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건물 간판에 살짝 걸쳐 있다. 여울은 바로 베란다 밖으로 나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거리다.
“은서야, 은서야!!”
뿌득, 뿌드득.
간판의 나사가 점점 풀리더니 은서와 함께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여울은 베란다를 박차고 은서에게 날아갔다.
용암에 떨어짐과 동시에 은서를 잡아 끌어안고 눈을 감은 채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은서, 은서야, 괜찮아. 이제 괜찮…….”
여울은 뜨거움이 느껴지지 않아 눈을 뜨고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은서는 얼굴이 새하얗고 눈이 붉었다.
은서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똑바로 보며 입을 벌렸다. 그곳에서는 수백 마리의 검은 지네와 벌레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여울의 눈빛은 갑자기 차갑게 변하며 오른손에 디카르를 들어 괴물로 변한 은서의 심장에 서슴없이 꽂았다.
끼야아악!
동시에 어둠이 걷히며 바닥에 꽂힌 여인 형상의 유령이 보였다. 그녀의 심장 부분에는 검은 검, 디카르가 꽂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