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68
168
지붕이 반쯤 구멍이 뚫린 작은 민가, 그 안에 세 명의 남녀가 들어서 있다.
끼야아아.
여울은 자신의 검에 심장이 꿰뚫려 버둥거리고 있는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은신 직전의 모습처럼 반투명하고 손으로는 잡히지 않았다. 디카르의 검신에는 검은 화염이 둘러져 있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이 반유형의 존재에게 검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점점 더 흐릿해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벤시인가.”
이곳의 벤시는 악몽을 꾸게 하여 정신을 파괴하는 술수도 쓰는 듯하다. 그때였다.
앙.
여울은 이질감에 고개를 돌려 팔목을 보았다. 그곳에는 네리가 눈을 감은 채 자신의 팔목을 앙 물고 있었다. 고기를 씹듯이 잘근잘근 깨물었지만 그녀의 치악력으로 자신의 피부를 뚫을 리 만무하다. 가벼운 생채기조차 나지 않는다.
자면서도 본능적으로 인간을 물어뜯는 것. 이 소녀는 부정할 수 없는 언데드가 되었다.
“흠냐, 흠냐……. 어마, 고기가 너머 따따케요…….”
그녀는 자신의 팔목을 문 채로 중얼거렸다. 이 상태로 계속 놔두는 것은 그녀에게도, 일행에게도 좋지 않다.
여울은 이제 그녀에게 닥친 잔혹한 현실에 관하여 알려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으음.”
익숙하면서도 낯설어야 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진후가 인상을 한껏 찡그리며 상체를 일으키고 있다.
여울은 바로 일어나 그에게 바짝 붙어 검지 끝을 턱 아래에 대며 입을 열었다. 그 끝은 디카르로 인해 송곳처럼 날카롭게 세워져 있었다.
“김진후, 눈 떠.”
그 말에 진후는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정지된 채 눈을 떴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건조하고 검은 눈동자가 여울을 바라봤다.
“여울? 여울! 널 많이 찾았다. 지구가…….”
그는 말을 하다가 말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여울은 아무 대답 없이 검지를 내리고는 한 걸음 떨어져 바닥에 앉았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밖에 있던 비아느가 들어와 말했다.
“어, 일어났네, 폭주 대장. 케라브에 있을 때는 대장 노릇 하더니, 어쩌다가 겨우 네크로맨서의 영혼 따위에게 먹힌 거야?”
그녀의 말에 진후는 멍한 눈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또 정신을 잃은 건가…….”
그는 시선을 돌려 여울을 보며 물었다.
“왜,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나?”
그는 또 한 번 폭주한다면 죽여 달라고 했었다. 여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죽이지 않아도 될 거 같아서.”
그 대답에 비아느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엄청 힘들게 잡았으면서 여유 있는 척은…….”
여울은 그 말에 멈칫했다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후는 비아느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너는…… 케라브에서, 그 소녀?”
“기억력은 좋네.”
“아까 그건 무슨 말이지? 네크로맨서의 영혼에게 정신을 먹히다니, 내가 언데드인 것은 어떻게 바로 알아냈지?”
“아니, 나 말고 얘가 알려 줬지. 아저씨가 먹히면 마녀로 보이나 봐.”
네리는 자신의 얘기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아저씨에요. 그 마녀가 사라졌어요.”
둘의 말에 진후는 시선을 내리깔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언데드가 되던 날 나타났던 여자가 틀림없다. 디므린…… 내 몸속에 기생하고 있었구나.’
진후는 다시 고개를 들어 비아느를 바라보았다. 케라브의 관리자였던 그녀가 왜, 어쩌다가 여울과 함께 있게 된 걸까? 어쨌든, 그녀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 다시 그 마녀에게 정신을 지배당할지 몰라 두렵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글쎄…… 어떻게 마녀의 영혼이 당신한테 들어갔는지부터 들어 볼까?”
그녀의 물음에 진후는 살짝 등을 뒤로 물렸다.
‘그녀를 믿을 수 있을까? 그 수천, 수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인데……. 아니, 믿지 않아도 선택권은 없다. 그녀가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다.’
진후는 고개를 들고는 진중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케라브에 있을 때였다. 길드원들이 살해당하고, 오른팔이 잘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진후는 그녀에게 처음 힘을 얻었을 때부터 그 이후로 어떻게 힘을 얻었는지에 관해 자세히 말했다.
그녀의 뒤에 있는 네리라는 소녀도 토끼처럼 귀를 쫑긋하고는 열심히 들었다.
힘을 얻기 위해 악한 인간들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생명을 처단했던 것은 왠지 모르게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가만히 듣던 비아느는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 마녀도 엄청 처먹었겠네. 내가 아는 답은 하나야. 그 힘의 원천을 버리기 전에는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힘을 버려.”
진후는 힘을 버리라는 말에 허망한 눈빛으로 허공을 잠시 바라보았다.
‘힘을…… 버려야 한다고? 어떻게 모은 힘인데……. 어떤 고통을 인내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는 미묘한 눈빛으로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버려야 하지? 그리고, 그녀의 힘을 빌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그럼 나도 다시 죽지 않겠는가?”
비아느는 저 뒤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져 딴짓하는 네리를 가리키며 작게 말했다.
“저 아이도 당신과 같은 언데드야. 다만 네크로맨서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라 대지에 맴도는 진한 죽음의 기운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되살아난 거지. 그녀의 힘을 버리면 저 아이처럼 될 거야”
“자연적으로 되살아난 언데드라…….”
“그 마녀의 힘을 떨쳐 내는 방법은 당신이 알지, 나는 몰라. 아무도 모를걸?”
그때, 여울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가지.”
진후는 여울을 발견하고는 잊고 있던 것이 떠올라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두 개나 되는 커다란 구멍이 아직 덜 메워져 살짝 비틀거렸다.
“여, 여울! 우리는 바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널 찾아온 이유는 지구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 세계에 온 지도 두 달이 넘었다.”
그의 말에 여울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게이트가 닫혀 있으니 상황은 계속해서 호전만 될 줄 알았다. 어떻게 하다가 위태로워졌는지, 남아 있는 자들이 원망스러울 정도다.
“그곳이…… 어떤 상황이지?”
“중국은 몬스터들에게 완전히 먹혔고 일부만 한국으로 피신해 온 상태다. 최강국이라고 하는 미국도 반 이상이…….”
그때 둘의 대화에 비아느가 끼어들었다.
“돌아갈 방법은 있고?”
그녀의 말에 여울과 진후 둘 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 말을 되뇌었다.
“돌아갈 방법은…….”
비아느는 진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 사람들이 차원 이동을 무슨 동네 넘어 다니는 건 줄 아나. 내가 얘기해 주지. 현재 당신들은 137행성으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어. 스올이 게이트를 다시 열거나 균열이 생겨야만 갈 수 있지.”
“스올?”
처음 듣는 이름에 진후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녀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는 말을 이었다.
“스올이 직접 게이트를 활성화시키지 않아도 그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분명 균열이 일어날 거야, 그는 이곳과 저 세계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니까. 그때 돌아가면 돼, 내가 책임지고 돌려보내 주지.”
해야 할 일은 마무리 짓고 가라고 못을 박는 것이다.
여울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비아느의 지팡이를 떠올렸다.
1회에 한하여 균열을 만들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인가? 그게 아니더라도 그 소중한 1회를 자신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써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어차피 지금 넘어가도 스올을 막지 않으면 지구는 금방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여울은 은서를 떠올리며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어떤 말인지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표정의 진후를 보며 말했다.
“이곳에서 지구로 몬스터를 보내는 존재가 바로 스올이라는 자다. 지구는…… 그를 처치한 후에 넘어간다.”
여울의 말에 진후는 입을 살짝 벌렸다.
“아…… 결국 찾았군, 네가 이곳으로 넘어갔던 그 이유. 정말…… 대단하군, 너는…….”
진후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두 주먹을 바라보다가 방 한 구석에 세워져 있는 방패에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다시 여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한국은…… 강하다. 아시아의 마지막 보루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때까지는 너의 딸, 은서도 무사할 것이다.”
저벅, 저벅, 척.
진후는 걸음을 옮겨 방패를 집어 들었다.
“그때까지만 이 힘을 빌려야겠군. 가지,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으니.”
여울은 바닥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진후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서쪽의 항구로 가는 길.
어느 날 네리가 잠에서 깨어나 울먹이며 비아느를 찾아왔다.
“언니……. 나, 여기가 간지러워서 긁었는데…….”
비아느는 바로 고개를 돌려 네리를 보았다. 그녀는 얼굴 한쪽의 살 껍질이 뜯겨 나가 검붉은 근육이 드러나 있었다. 그곳에는 피 한 방울도 배어 나오지 않았다.
그녀를 보자 갑자기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거의 느껴 본 적이 없었던 감정이기에 살짝 당황했지만 금세 표정을 감추며 그녀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 네리.”
비아느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를 꼬옥 안았다. 차갑다. 그 조그마한 몸이 한없이 차가워 자신의 몸으로 한기가 옮겨 오는 듯했다.
진후를 일행으로 받아들인 그날 밤, 여울과 긴히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늦게 알리는 것이 그 아이에게 더 잔인한 일이다. 지금 바로 알리는 것이…….’
‘잠깐, 그 정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말하려고? 내가 적당한 때에 알아서 알려 줄게.’
‘……알았다.’
그의 말대로 늦게 알릴수록 더 힘들어질 뿐이다. 비아느는 네리의 두 어깨를 잡아 살짝 떨어트리고는 생기를 잃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리, 너도 조금 느끼고 있었을 거야. 분명히…….”
“……네? 뭐를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소녀의 표정에 비아느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네가…… 이미 한 번 죽은…… 언데드라는 것을.”
“언, 니…….”
그녀의 말꼬리가 길다. 당황하거나 놀라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쏟으려는 얼굴이다. 조금씩,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도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죽었는지도 알고 있을 거야. 바로 여기, 여기가 이렇게 됐을 때니까.”
비아느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의 옆구리를 검지로 눌렀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푹 들어갔다.
네리는 고개를 내려 그곳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비아느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한 번 얹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우린 그대로 해 줄 거야. 우리와 같이 지낸다고 해서 너한테 물려 죽을 사람은 여기 한 명도 없거든, 다른 사람들이면 몰라도……. 잘 생각해 봐.”
비아느는 그 말을 끝으로 휙 뒤돌아서 그 자리를 떴다.
털썩.
네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나오지 않는 마음의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