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7
17
17. 언데드
다크니스 수치를 해골들이 주는 것이라면 앞으로도 확인해 볼 날은 많을 것이다.
여울은 아직 사라지지 않는 불길을 보며 검 손잡이에서 손을 놓았다.
치이익-
그제야 피식 연기를 내고는 사그라지는 불길. 팔뚝을 태울 것만 같은 기운도 끊겼다.
여울은 손목을 몇 번 털고는 검을 챙겨 나무 위로 다시 올라갔다.
“후우우…….”
몸이 천근만근이다. 여울은 나무줄기에 허리를 묶곤 바로 눈꺼풀을 닫았다.
사아아아-
잠이 든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상한 기운에 눈을 떴는데 새로운 공간이다. 바닥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고 그 아래는 검고 깊었다.
사방은 안개로 휩싸여 있고, 눈앞에는 검은색 정사각형 모양의 돌이 하나 놓여 있다.
스으으-
기이한 기운과 함께 누군가가 생겨났다. 정말로 눈앞에서 안개가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갑자기 생겨났다.
그는 돌 위에 정 자세로 앉아서 여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검은 로브에 후드를 깊이 눌러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깊은 곳 너머로 푸른빛이 번뜩이고 있는 것이 눈이라는 것만 추측할 수 있다.
살짝 비치는 피부는 창백할 정도로 하얗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황하셨을 텐데, 역시나 침착하시군요. 나는 여울 님에게 좋은 제안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여울은 그를 조심스레 살펴보며 대답했다.
“당신은 뭐지?”
“여울 님은 나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짐작이 가는 바는 있다. 가장 처음 케라브에 왔을 때 들었던, ‘밤의 귀족’이라는 존재.
그는 잠시의 틈 후에 말을 이었다.
“나는 여울 님이 월등한 살인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절제하는 모습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케라브를 돌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여울은 ‘도움’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도움? 날 도와서 네가 얻는 것은?”
여울의 물음에 푸른 눈이 상체를 살짝 기울이며 대답했다.
“나는 여울 님이 밤의 왕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현되면 나는 존재의 연장과 명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성이다. 여울은 미간을 좁히며 그에게 물었다.
“밤의 왕은 뭐지? 네가 원하는 뭔가가 될 생각은 없는데.”
“케라브를 수료할 때, 가장 강한 어둠의 기운을 가진 존재가 밤의 왕이 됩니다. 그로 인해 여울 님에게 행동의 제약이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케라브 수료’. 가장 원하는 말이다.
여울은 몸을 조금 더 가까이하며 그에게 물었다.
“나를 이곳에서 꺼내 줄 수는 없나?”
“불가능합니다. 케라브의 능력은 나와 감히 견줄 수 없습니다.”
“케라브가 인간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지칭하는 자는 케라브를 창조한 존재라고 정의하겠습니다.”
푸른 눈, 이자의 정체는 불확실하지만 케라브에 관해서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많이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짧게 보았어도 제공 가능한 정보는 알려 주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자와 관계가 지속되면, 케라브를 탈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분명 ‘케라브 수료’라고 했다. 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듣고 나니 더욱 목마르다.
“케라브의 마지막 층은 몇 층이지?”
“해당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케라브의 룰에 어긋납니다. 그러면 내가 여울 님에게 관여할 수 없게 됩니다.”
제한된 것이 많다. 생각보다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그때 여울의 생각을 읽은 듯이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어둠의 기운을 통해서만 여울 님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나는 케라브 안에 실체화할 수 없지만, 나의 아이템은 케라브의 허락 하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마치 영업 사원처럼 ‘아이템’이라는 말로 여울을 흔들었다. 먼저 제안과 보상에 관하여 미리 알아볼 필요는 있다.
“제안을 먼저 들어 보지.”
“나와 조건부 계약을 하는 겁니다. 나와 계약을 하면 나는 왕의 길을 인도하기 위해 여울 님에게 의뢰를 주고, 완수할 때마다 케라브를 돌파하는 데 도움이 될 아이템을 제공할 것입니다.”
“의뢰를 거부하거나 실패한다면?”
“실패로 인한 페널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의 아이템을 제공하지 않을 뿐입니다.”
푸른 눈은 기울였던 상체를 뒤로 무르며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이었다.
“당신이 의뢰를 받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계약자를 찾아갈 뿐입니다.”
여울의 눈이 그의 눈과 마주쳤다.
살인으로 인해 찾아온 자, 그들의 왕, 의뢰.
그가 말하는 왕의 길은 피의 길이 분명하다.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의뢰를 완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가 붙어 있다.
이들은 케라브 안에서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험을 끼칠 수 없는 자다.
“계약하겠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와 여울 님 사이에 신뢰가 더욱 쌓인다면…… 나는 더 많은 방법으로 당신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푸른 눈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그럼 계약을 진행하겠습니다.”
로브 안으로 숨겨져 있던 그의 하얀 손이 모습을 드러내며 여울의 머리 위로 얹혀졌다.
신기하게도 무게감이나 감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때, 갑자기 머리를 해머로 강타한 것 같은 충격이 왔다.
“크흡.”
동시에 머릿속을 장악하는 환상이 펼쳐졌다.
노란색 짧은 머리에 하얀 얼굴, 광대가 툭 튀어나온 중년인 남성이 보인다.
그의 벌거벗은 상체에는 붉은 피가 잔뜩 묻어 있다.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의 손이 보인다. 손아귀에는 여인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허업! 허윽, 후우…….”
환상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잠들기 전에 있던 나무 위다.
어두침침하지만 주변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것을 보니 이른 아침이다.
저 멀리 빛이 찾아오기 시작했으며, 해골들은 보이지 않는다.
“으음.”
오른쪽 어깨가 따끔거려서 보니, 검은 글씨로 60이라고 적혀 있다.
손으로 문대도 지워질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불로 지진 것처럼 오돌토돌하게 튀어나와 있다.
그가 흔적을 남겼다.
흔적. 꿈이지만 꿈이 아니다.
자신은 푸른 눈과 모종의 계약을 했고, 환상을 통하여 자신에게 첫 번째 의뢰를 주었다.
환상으로 보여 준 그 중년인은 케라브에 와서 강간과 살인을 서슴없이 행하는 자다.
밤의 기운이라는 것은 자신을 그에게 인도할 것이다.
그 두 가지가 뜻하는 바는 하나다.
‘푸른 눈의 첫 의뢰는, 그를 죽이는 것이다.’
* * *
휘이이잉-
서른 명의 남녀는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세찬 바람에 모래가 실려 볼을 때린다. 진후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고 손가락으로 모래를 비벼보았다.
“밖…… 인가?”
어리둥절함 속에 얼른 확신을 받고 기쁨을 분출하고 싶다. 세 달 만에 햇볕을 맞이하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으아아아! 밖이다아!”
“헛!”
한 여인이 참지 못하고 두 손을 활짝 펴며 달려 나갔다. 그때.
으득!
돌연 모래를 뚫고 튀어나온 손이 여인의 발목을 잡아 꺾었다.
“꺄아악!”
여인의 발목이 징그럽게 으깨졌다.
엄청난 괴력을 보이며 모래를 뚫고 나타난 것은 움직이는 해골이었다. 그녀가 달려 나간 곳으로 대여섯 마리가 모래를 헤치고 튀어나왔다.
“민철!”
“예.”
언데드를 보고 놀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진후는 바로 방패를 앞세우며 뛰어나갔다. 민철은 두 손으로 도끼를 쥐고 그 뒤를 바짝 붙었다.
콰광, 쾅쾅!
진후는 방패를 들고 여인이 있는 곳까지 돌진하며 해골들을 깡그리 밀쳐 냈다. 그 뒤를 따라 민철을 선두로 대원들이 해골들을 상대했다.
터엉! 텅!
“젠장! 무지하게 딱딱해!”
대원들은 팔로 검을 튕겨 내는 해골들을 보며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민철은 인상을 팍 쓰며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와!”
콰직!
민철은 도끼 면으로 해골들을 강제 분해시켰다. 진후도 강력한 근력을 앞세워 방패로 으깨 버렸다.
피도, 살도 없는 해골들에게는 둔기가 효과적이었다.
딱, 딱, 딱, 딱.
사지가 절단 났는데도 이빨을 딱딱거리고 팔다리가 움직인다. 그 모습에 진후는 미간을 좁혔다.
그때 해골의 상체를 밟고 있던 민철이 놈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 여기 뭐가 붙어 있는데.”
진후는 그에게 다가가 그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작은 구가 갈비뼈에 붙어 있다.
민철은 진후가 고개를 들자마자 바로 그것을 짓이겼다.
푸슈욱-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그제야 움직임이 멈춘 해골이었다.
“그곳이 핵이었군요. 자, 부상자 돌봐 주시고 지연 씨는 관찰 부탁해요.”
“아, 넵!”
한지연은 발목을 덜렁거리며 넋이 나간 표정을 한 여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종족 : 언데드 오크
-레벨 : 2
-특이사항 : 미스릴에 약하다.
“2레벨에…… 미스릴에 약하다고 하는데요?”
“미스릴? 그게 뭐지?”
민철의 질문에 폐활량 특성을 지닌 기웅이라고 하는 청년이 나서서 대답했다.
“미스릴은…… 광석 이름이에요. 우유처럼 새하얗고 강철보다 가벼운데 튼튼한 전설의 광석, 가상의 광물인 줄 알았는데…….”
“그래? 그게 어디 있는데?”
기웅은 두 어깨를 들썩였다.
“저도 모르죠.”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진후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움직이죠, 언급된 것을 보면 이 사막 어딘가에 존재할 겁니다.”
“부상자도 있는데, 천천히 움직이자고요.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그래, 라브도 많이 챙겨 왔잖아요. 이런 놈들, 수백 마리가 덤벼도 끄떡없다고.”
무기도 없고 행동도 느릿하니 해골을 무시하는 경향이 드러났다.
사람들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잠시 동안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진후는 아무 말 없이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느낌이…… 별론데…….’
그 후로 조금씩 움직여 체력을 최대한 아끼며 나아갔다. 일단 라브를 찾는 것이 1차 목표였다.
“엇, 저기 라브다!”
진후는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막에 어울리지 않는 앙상한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라브가 피어 있었다.
“자, 라브는 전투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만 수거하고 움직입시다.”
“예에!”
“알겠습니다, 대장님.”
진후는 일행과 함께 라브를 수거하는 중에 주위가 어두워진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 보았다. 태양의 모습이 점점 옅어진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상했다.
태양은 전혀 움직이지도 않았고, 뜨겁지도 않았다.
이제는 밤이 되려고 하면 색만 서서히 변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기괴한 느낌이다.
진후는 일행들을 향해 외쳤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보내겠습니다.”
진후는 애써 찝찝함을 떨쳐 내며 라브를 한 입 베어 물었다.
* * *
푸슉- 푸슉- 퍽-
밤눈이 완전히 익숙해져도 수 미터 앞을 보지 못하는 깜깜한 밤,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후는 미간을 좁히며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해골이다. 같이 보초를 서던 자도 그들을 발견했는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 눈이 빨개요!”
그의 말대로 낮과는 달리 붉은 안광을 내고 있다. 진후는 바닥에 놓았던 방패를 들며 조용히 말했다.
“모두 깨워. 전투 준비다.”
“예…… 에?”
끼긱- 끼기긱-
붉은 점들이 하나둘씩 진후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낮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다.
“빨리!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진후의 외침과 함께 이제 막 잠을 청하려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무기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수십 마리의 해골들이 들이닥쳤다.
다다다다다닥-
사방에서 몰려와 진후 일행은 둥그렇게 등을 맞대고 해골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오크와 비슷했던 낮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괴력을 발휘하는 해골들이었다.
“크아아악!”
“아악! 살려 줘!”
무기가 잡히면 빼앗기고, 팔이 잡히면 그대로 끌려가 강제로 해체된다.
촤아악! 촤악!
여기저기서 끝부분이 지저분하게 찢긴 팔다리가 날아다닌다. 이를 악물고 도끼를 휘둘러 대던 민철이 소리쳤다.
“젠장! 다시 일어나잖아!”
검은 심장을 깨도 금세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그 말로 인해 사람들은 밀려오는 공포감을 못 이겨 혼란에 빠졌다.
지연 역시 동일한 생각을 하며 절망에 빠져 있었다. 헛손질만 해 댔다.
죽어도 죽지 않는 괴물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다는 것인가? 선두에 있는 진후도 아무 말 없이 방패로 놈들을 튕겨 내고만 있다.
낮에 미스릴이라는 것을 찾았어야 했다.
“크흡.”
해골들에게도 지성이 있는지, 갑자기 진후에게 네 마리가 붙었다.
진후가 힘에 밀려 뒷걸음질을 치자 진형이 금세 무너졌다. 급하게 지원한 지연의 검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제압해 줘야 검은 심장에 검을 꽂을 수 있는데, 그나마도 다시 일어나니 소용이 없었다.
오랜만에 다시 느껴 보는 무기력감이다.
사람들 계속해서 죽어 나가고 사막의 새하얀 모래는 붉게 물들었다.
진후는 이를 악물며 외쳤다.
“내가 시간을 벌 테니 모두 도망쳐! 리덕션!”
진후는 모두 들으라는 듯이 리덕션을 크게 외치고는 방패로 해골들을 밀쳐 내서 퇴로를 만들었다. 지연과 민철은 반사적으로 빠지다가 멈칫했다.
“진후 씨!”
“대장!”
진후의 방패를 든 손에 힘줄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다급히 외쳤다.
“빨리 가!”
그가 아껴왔던 리덕션까지 외치며 시간을 벌었으니, 일단 퇴각하는 것이 맞다.
지연은 주먹을 꽉 쥐며 민철을 데리고 뒤로 빠졌다. 만년 리더일 것 같던 그를 버리고 사람들은 미친 듯이 달렸다.
“허억! 허억! 헉!”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일단 달렸고 그 뒤를 해골들이 쫓아 왔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다른 곳에도 해골들이 넘쳐 났다.
이내 포위된 일행은 이제 죽는 일만 남았다. 몇 배는 더 불어난 수백 마리의 해골들이 사람들을 찢어발기기 위해 파도처럼 밀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