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74
174
대한민국 서울 지구, 거미줄 형태의 견고한 벽이 도시를 몇 겹으로 감싸고 있다. 초대형 게이트가 열린 뒤 살아남은 모든 헌터가 참여하여 1년 만에 건설한 나라의 최종 방어 기지다.
그곳으로부터 10킬로미터 떨어진 버려진 도시에 먼지가 뿌옇게 일고 있다.
쿠구구구구구궁.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침을 흘리며 몰려오고 있다. 그 앞에는 오십여 명의 난민들이 서울 방어 기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크하아!”
촤악!
가장 끄트머리에 있던 뚱보 중년인이 트롤의 기형도에 등판이 길게 베여 쓰러졌다. 이제 막 열다섯 살쯤 되었을 한 소년이 열한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의 손을 붙잡고 미친 듯이 달리고 있다.
“꺄아악!”
소년, 이안의 바로 옆에 달리고 있던 여인이 집채만 한 흑호에게 덮쳐졌다. 그리고 금세 여인의 하체로 보이는 것이 공중에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고 이랑은 여동생 이안의 손을 더욱 꼬옥 붙잡고 달렸다.
“안아! 조금만 더 참아! 곧 서울이야!”
“아아아! 무서워어! 꺄아악!”
그때 이안의 발이 꼬여 넘어지려 했다. 이랑은 그녀의 팔을 잡아끌며 다시 중심을 잡게 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바짝 뒤쫓아 오던 몬스터들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엄마아아!”
“뛰어, 뛰어!!”
퍼억!
그 순간에도 같이 달리던 사람 중 한 명이 오크의 도끼에 머리통이 깨졌다. 이랑은 여동생의 팔목을 더욱 강하게 잡아끌며 두 발이 끊어져라 힘을 주었다.
촤악!
그때, 등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어깨부터 반대편 골반까지 길게 이어졌다. 그 뜨거움 이후에는 힘이 쭉 빠져나가며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 찰나에 이안이 더 앞서 달리고 있었다.
그녀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뒤를 살짝 돌아보고는 눈이 빠질 듯이 커지며 소리쳤다.
“오빠아! 정신 차려!”
이안의 목소리에 이랑은 찬물 끼얹은 듯이 정신이 확 들었다. 머리를 세차게 털고 힘이 풀려 넘어지려던 다리에 힘을 다시 주었다. 등에서는 참기 힘든 통증이 전해져 왔지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크하악!”
아주 가까운 곳에서 몬스터들의 포효 소리가 들려온다. 이랑은 저 먼 곳에 어렴풋이 보이는 거대한 벽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제발, 제발! 방어 기지에만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때였다. 그의 기도가 먹혀들었는지 지평선에 누군가가 보였다. 이랑은 한 손을 높이 추켜들며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아아아악! 여기요! 살려 주세요!”
목소리가 들렸는지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 그들이 이곳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그런데…… 단둘뿐이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이랑은 절망했다. 이제 달릴 힘도 남아 있지 않다.
“크허어엉!”
머리 위로 그늘이 드리워졌다. 거대한 흑호의 뱃가죽이 보인다. 이랑은 죽음을 예감했다.
‘이안이라도, 이안이라도 살아야 하는데…….’
그때, 백여 미터쯤 멀리에 있던 두 사람 중에 남자의 신형이 급격히 커졌다. 이랑은 분명히 보았다.
그의 발이 바닥에 닿아 있지 않은 것을.
퍼억!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어둠이 걷혔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덮치던 흑호의 뱃가죽이 사라졌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화창한 하늘만이 청명함을 뽐내고 있을 뿐이다.
걸음이 멈췄는데 공기의 저항이 느껴진다.
이랑은 고개를 내려 이번에는 땅바닥을 보았다. 방금 전에 남자가 허공을 달리는 것이 잘못 본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이 자신의 발도 바닥에서 30센티미터는 떨어진 채로 빠르게 날아가고 있다.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앞에는 여자와 서울 방어 기지의 벽이 보인다. 남자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한 손은 뒤에 있는 자신에게 뻗어 있고, 나머지 한 손은 앞을 향하고 있다. 그의 발밑에는 몸통이 터져 나간 흑호가 쓰러져 있었다.
겁도 없이 무슨 자신감으로 저 많은 몬스터와 마주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이랑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청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스스스스스승.
그의 등에 메여 있는 작은 가죽 주머니에서 여덟 개의 검이 부채꼴로 솟아 나왔다. 검 하나하나가 명검이라고 불리기 손색이 없었다.
그의 뒷모습은 마치 공작새처럼 아름답고 기백이 넘친다.
서걱, 서걱, 스스스스슥.
그의 여덟 개의 검은 공중에 뜬 채로 스스로 움직이며 몬스터들의 심장을 꿰뚫기 시작했다. 몬스터 수백 마리의 진격이 그 한 명으로 인해 저지되고 있다.
이랑의 머릿속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랑의 눈에 그는 인간이 아닌 것만 같았다.
“오빠, 오빠, 괜찮아?”
“어, 어?”
이랑과 이안의 발은 어느새 바닥에 닿았다. 그가 저지하고는 있어도 아직 몬스터들은 많다. 이랑은 옆에 살기 위하여 달려가고 있는 다른 난민들을 보고는 정신을 차리며 발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오빤 괜찮아! 얼른 가자! 저기 저 서울만 가면 우린 안전해져!”
이랑은 이안을 데리고 죽을힘을 다하여 달렸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무장을 한 서른 명의 헌터를 발견했다. 짙은 남색 방어복에 어깨에 랭크가 붙어 있는 자들, 소문으로만 듣던 방어 기지의 구출대다.
먼저 만났던 두 명의 남녀는 선발대임이 분명했다.
이랑은 그들을 보자 살았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번에는 다시 힘을 주려고 해도 들어가지 않았다. 구출대 중 한 명이 빠르게 다가와 그를 부축하며 말했다.
“정신 붙들고 걷자. 저 벽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의무병! 외상약 가지고 와!”
이랑은 그 대원과 함께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방어 기지로 걸음을 옮겼다. 나머지 대원들은 난민들을 호위하듯이 둘러싸고는 같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여동생 이안이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오빠, 저기! 게이트 색이 변하고 있어!”
이안의 말에 이랑은 물론 다른 대원들도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방어 기지로부터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초대형 게이트.
일 년 반 동안 검게 되어 있던 그것이 가운데에서부터 점점 투명하게 변하고 있다.
구출대원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날의 악몽 같은 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랑의 등에 트롤의 피를 대충 뿌리며 달리던 구출대장은 그 약병을 던져 버리며 소리쳤다.
“이런 젠장! 게이트가 열린다아! 전속력으로 뛰어!”
“게이트가 열린다!”
“게이트가 열립니다!”
그들은 방어 기지 위에 경비대원들이 들리도록 크게 소리쳤다.
그것을 들었는지, 아니면 그들도 발견했는지 기지 안에서부터 커다란 경보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적색 경보 발령! 적색 경보 발령!
경보 방송이 이랑이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그사이 반쯤 열린 게이트에서 진녹색의 몬스터 한 마리가 툭 튀어나왔다.
크룩하!
튀어나온 몬스터는 양손에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있는 오크였다. 처음 초대형 게이트가 생기던 날 가장 먼저 나온 몬스터는 아파트 10층 높이에 버금가는 이그리트였다.
그에 비하면 수십 배는 작은 오크가 나왔으니 구출대원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 그 오크 한 마리가 난민과 구출대를 발견하고는 바닥을 박찼다.
크하아!
놈은 한 번의 도약에 10여 미터씩 움직이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들이닥쳤다. 구출대장은 자신이 보았던 가장 강한 네임드 오크도 이 정도로 빠르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반적인 오크가 아니다. 그는 부축하던 이랑의 등을 밀고는 뒤돌아서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어서 피해라!”
동시에 쌍검 오크가 구출대장에게 들이닥쳤다. 2미터 위에 있는 놈이 아래로 쌍검을 내려찍었다. 구출대장은 검을 들어 올려 두 손으로 받치며 놈의 공격을 대비했다.
콰직!
검과 검이 부딪친 것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놈의 검을 받아 내던 구출대장의 검은 닿는 즉시 깨지며 그 검신 조각들과 함께 그의 몸통이 11자로 그어졌다.
촤아악!
세로로 삼등분이 된 구출대장의 몸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쌍검 오크는 그의 몸이 쓰러지기도 전에 다음 목표를 향해 눈을 번뜩였다. 놈의 눈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수언과 함께 구출대 선발대로 나온 은서는 거의 다 열린 게이트를 보며 입을 쩌억 벌렸다.
‘아빠, 아빠는…….’
“끄아악!”
“으악!”
“사, 살려 줘!”
그녀는 구출대와 합류한 난민들의 비명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쌍검의 오크 한 마리가 그들 사이로 들어가 마구 휘젓고 있다. 난민들은 물론 구출대도 놈의 한 수를 버티지 못하고 목이 잘려 나가고 있다.
은서는 저 멀리서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는 수언을 향해 소리쳤다.
“오빠! 나 저기로 보내 줘! 빨리!”
오빠라는 말에 수언은 모든 일을 멈추고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고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한 번 보고는 바로 오른손을 그곳으로 휘둘렀다.
후웅!
그러자 은서의 몸이 살짝 떠오르더니 그쪽으로 가공할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쌍검 오크는 수언이 아슬아슬하게 구해준 소년의 배를 꿰뚫고 있었다. 놈은 그 상태로 밀며 그 뒤에 있는 작은 소녀도 꼬치처럼 꿰려고 했다.
이 정도 거리면 됐다. 은서는 한 손을 펼치며 중얼거렸다.
‘소환, 사와코.’
쌍검 오크 바로 뒤에 붉은 원피스에 자주색 코트를 입고 일본도를 한 손으로 든 여인이 생겨났다.
그녀는 바로 오크를 향해 일본도를 휘둘렀다. 쌍검 오크는 재빨리 이랑의 몸을 관통한 검을 뽑으며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서걱.
분명 타이밍 맞춰서 검을 들었는데 소리가 예상과는 다르다. 이내 오크의 정수리부터 옆구리까지 이어지는 혈선이 생겨났다. 두 검이 깔끔하게 잘려 나간 것은 그다음이었다.
촤아아악.
진녹색 피가 이랑에게 튀었다. 뒤늦게 도착한 은서는 아직 숨 쉬고 있는 이랑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안에게 말했다.
“살아 있어, 네임드 오크의 피를 뿌렸으니까 괜찮을 거야, 얼른 저쪽으로 가, 어서!”
“흡, 흐윽. 네, 네, 언니!”
게이트는 이제 검은색은 아예 찾아볼 수 없이 완전히 열렸다.
그러자 150미터 크기의 원이 꽉 찰 정도로 많은 몬스터가 한꺼번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은서는 아직 살아남은 구출대 대원들을 보며 다급히 외쳤다.
“저와 수언 오빠가 일단 시간을 끌고 있을 테니까, 사람들을 데리고 어서 가세요!”
“네, 넵!”
구출대가 난민들을 데리고 기지 안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최소 3분. 2분은 버텨야 그들이 안전하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과 수언은 벽의 문 따위는 이용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은서는 사와코와 함께 게이트를 나오고 있는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갔다.
척.
금세 몬스터들을 정리한 수언이 옆에 붙었다.
사와코의 말도 안 되는 능력으로 몬스터들을 휩쓸어 한계 레벨을 손쉽게 뚫어 버린 은서의 현재 레벨은 10. 더욱 강해진 사와코와 9레벨의 수언과 함께라면 2분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은 어느새 천 마리대가 넘어간 몬스터 떼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채앵! 챙! 서걱, 서걱!
검이 자연스럽게 휘둘러지지가 않는다. 막아서는 무기들이 너무 많다. 그만큼 레벨이 높은 몬스터가 많다는 뜻이다.
수언도 집중해서 검을 조종하고 있지만 방금 전 몬스터들을 쓸어 버릴 때와는 다르게 처리 속도가 느리다.
오직 사와코만이 제집처럼 동분서주하며 몬스터들을 일검에 썰고 있지만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의 수가 너무 많다.
크하아!
크허어어엉!
아직 30초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몬스터들에게 포위당한 형태가 되었다. 2분을 늦추기는커녕 30초도 늦추지 못한 것이다.
쓰나미처럼 쏟아지는 고레벨의 몬스터 떼에 수언도 땀을 삐질 흘리며 당황하고 있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그때 수언이 소리쳤다.
“여, 염력 쿨타임이야!”
그의 말에 은서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사와코! 퇴로를 뚫어 줘!”
사와코는 바로 뒤쪽으로 가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방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염력도 하나밖에 없는 수언과 은서가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다. 하나둘 상처가 생겨나 가고, 몬스터들에게 수십 겹 둘러싸여 도무지 빠져나갈 수 있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은서는 일 년 반 만에 처음으로 절망에 빠졌다. 10레벨이 되면 위험한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아빠, 아빠…….’
이때쯤 돌아온다고 약속한 아빠가 생각난다. 왠지 지금 당장 얼굴이 그려지지 않는다. 이대로 얼굴도 떠올리지 못한 채 죽고 싶지 않다.
그때, 하늘이 번쩍였다.
쿠과아아아앙!
하늘에서 무언가가 가공할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이 도착한 곳은 초대형 게이트 앞 수천 마리의 몬스터 가운데, 그곳에서 70미터 반경은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다. 수백 마리가 한 번에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