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76
176
드드드드드드.
거대한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완전히 닫혔던 남문 17번 구역의 문이 다시 올라간다. 절망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환희가 차올랐다.
채쟁, 챙, 챙!
대한민국의 두 기둥, 대한 길드와 신한 길드가 해일처럼 밀려오는 몬스터들을 정면으로 막아 내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막았어야 하는데 이미 많은 놈들이 몰려와 점점 헌터들을 포위했다.
지천욱은 덤벼드는 오크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고는 주변을 살폈다. 기세 좋게 내려왔지만 고레벨의 대원들도 놈들을 상대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놈들은 머릿수가 수십 배인데 레벨도 최소 4 이상……. 이대로는 무조건 전멸한다.’
이제 막 내려와 정신 장악으로 라칸 7마리를 친위대처럼 활용하며 전장 중앙으로 들어가고 있는 일권을 향해 지천욱이 소리쳤다.
“대한 길드장님! 빠져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에 일권은 시선을 돌려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몬스터들을 다시 상대하며 크게 외쳤다.
“대한!! 점진적 후퇴!”
“점진적 후퇴!”
“점진적 후퇴!”
그는 왜소한 몸과는 달리 사자의 포효 소리처럼 큰 소리로 외쳤다. 대한 길드의 대원들이 그의 명을 반사적으로 복명복창했고, 같이 이곳으로 떨어질 때부터 한 몸처럼 움직이기로 한 신한 길드의 대원들도 그들과 행동을 함께했다.
일반인들은 이제 대부분 2차 벽 안쪽으로 이동했다. 대한과 신한 길드는 등을 보이지 않고 뒷걸음치며 천천히 뒤로 빠졌다.
투두두두두두!
2차 벽 위에서 마력기관총으로 멀리 있는 몬스터들을 견제하고 있다. 마력 화기가 없었다면 이 강력한 몬스터들을 당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출입구로 저레벨의 헌터들부터 뒤로 빠졌다. 가장 앞에 원팀을 중심으로 최상위권 헌터들 위주로 남아 놈들을 막으며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문이 거대한 만큼 닫히는 것도 느리기 때문이다.
채앵, 챙!
“강철문이 내려오고 있다!!”
“조금만 버텨!”
폭이 40미터나 되는 출입구가 수만 마리의 몬스터에게는 한없이 좁았다. 게다가 선두에 있는 고레벨의 헌터들에게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자, 놈들은 성벽 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오우거, 이그리트, 베헤모스 등 초대형 몬스터가 성벽에 붙어 몸을 비스듬히 낮췄다. 그러자 다른 중소형 몬스터들이 그 등을 타고 거침없이 올라서고 있었다.
일권은 정신 장악 중인 라칸들만 앞장세워 싸우게 하고는 뒤에서 전장을 살피며 소리쳤다.
“대기 인원은 위로 가서 놈들을 견제해라! 대형 몬스터 위주로 처리해!”
“위로!”
“위로!”
벽에는 이미 많은 몬스터가 올라와 정부 헌터들과 전투 중이었다. 놈들도 지성이 있는지 마력 화기부터 박살 내기 위해 그쪽에 몰려 있었다.
“저놈들부터 떼어 내!”
“으악!”
“크흡!”
대한과 신한의 합류로 인해 사기가 올라가 정부 헌터들도 다시 합류했지만 전력 차가 너무 심했다. 아무리 몸을 아끼지 않고 몬스터들을 밀어내도 넘어오는 놈들의 수가 더 많다.
헌터들의 얼굴에 점점 절망과 두려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공포는 웃음보다 빠르게 전염된다. 공포에 빠지면 힘의 50퍼센트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백일권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쿠우웅!
17구역 문이 완전히 닫혔다. 수십 마리가 그 문에 그대로 깔려 죽었고, 넘어온 나머지 몬스터들은 금세 처리되었다. 지천욱은 바로 뒤돌아서 벽 위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외쳤다.
“바로 위를 지원한다!”
“벽 위 지원!”
최상위 헌터들이 벽 위로 올라섰을 때는 몬스터가 반, 사람이 반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몬스터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크하아아아!
양손에 도끼를 들고 덩치가 큰 사내가 짐승처럼 포효하며 벽 위에 몬스터들로만 꽉 찬 곳으로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두 손을 넓게 펼치고 빙글빙글 돌았다.
콰광, 쾅쾅쾅!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도끼에 부딪치면 바로 찢기고, 팔에 부딪치면 밖으로 날아갔다.
서한은 그 덩치 사내, 담덕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놈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원팀! 담덕 지원하러 가자!”
서한은 순식간에 그곳으로 뛰어올라 그의 뒤를 맡았다. 그와 함께 무영과 문솔, 이건수도 금세 따라붙었다.
키헥!
카르륵!
꾸웩!
담덕을 선두로 원팀은 성벽의 몬스터들을 쭈욱 밀어붙였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몬스터들이 우두두 쏟아져 내렸다. 그들의 활약은 이 전장에서 단연 돋보였다.
금세 벽 한쪽의 끝까지 도달한 원팀, 서한은 뒤돌아서고는 욕을 내뱉었다.
“젠장! 끝이 없어!”
담덕이 뛰어든 곳부터 끝부분까지, 17번 벽의 4분의 1 정도는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서니 딱 그만큼이 다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답은 아래로 내려가서 다리를 해 주고 있는 초대형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것이지만 그건 아무리 원팀이라고 해도 자살행위다.
이번에는 서한 자신이 앞장서서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이번엔 내가 간다! 끝부분까지 달리자! 하압!”
서한은 담덕과 다르게 힘보다는 속도로 몬스터들을 압도하며 처리하기 시작했다. 담덕보다는 느리지만 더 확실하게 놈들의 목숨을 끊었다.
콰광, 쾅, 쾅쾅!
벽을 넘어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몬스터들의 수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많아졌다.
푹!
보라는 옆구리에 검고 긴 것, 마녀의 손톱을 찔러 넣고는 상체가 반쯤 터진 사람의 몸을 치료하고 있다. 그녀는 북쪽을 힐끔 바라봤다가 다시 치료에 전념했다.
‘수언이하고 은서는……. 아! 북쪽에도 게이트가…… 우리,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분은…….’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보라도 눈빛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그만큼 지금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었다.
일권은 파도처럼 쏟아져 내리는 몬스터들을 보며 고민했다.
초대형 몬스터들도 가까이 붙어서 모든 정신력을 쏟아부으면 장악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한 마리로 다른 놈을 맡게 하여 두 마리를 치우는 격이 된다.
타다다닥.
그는 결단을 내리고는 벽 위로 몬스터들을 밀치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탈출하는 방법도 없지만 자신 한 명의 희생으로 이 수성전의 성공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간다면 망설일 수가 없다.
그는 아직 벽 위에서 싸우고 있는 대원들 사이로 들어가 목표로 할 초대형 몬스터를 탐색하기 위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쿠구구구구궁.
두 시간 전만 해도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던 17구역, 그곳에 한군데도 빠짐없이 몬스터들로 빼곡하게 차 있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저 뒤쪽에 초대형 몬스터 이그리트 두 마리가 더 달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 이대로 끝인가…….’
그때였다. 옆에서 대원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앗!”
“안 돼!”
“저 사람 뭐야?!”
일권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저쪽 끝부분이었다. 그곳에는 그 어마어마한 몬스터 떼들을 향해 한 남자가 시원하게 뛰어내리고 있었다.
그의 인상착의는 이러했다.
검은 머리를 찰랑이며 검은 옷을 입고 있다. 그의 양손에는 검은 검 두 개가 쥐어져 있다. 바람에 흩날려 그의 머리칼이 뒤로 젖혀졌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백일권은 온몸에서 소름이 자르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이 공중에 떠 있는 지금 이 시간은 주변의 그 어떤 소리도, 장면도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우주의 어딘가 극도로 조용한 곳에서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의 몸이 느릿하게 아래로 떨어진다. 그는 두 검을 역으로 쥐고 몬스터들을 향해 내려찍었다. 그의 검 끝이 처음 몬스터의 정수리에 닿았다.
그때,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귀청을 찢을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대폭발이 일어났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그를 중심으로 반경 70미터 범위는 초토화되었고, 100미터 이내에 있는 몬스터들은 무형의 바람에 그 밖으로 밀려났다.
그 어마어마한 광경에 전장이 순간 적막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일권만의 착각이었다. 몬스터들은 그 절대적인 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고 있었다.
그는 바로 바닥을 박차고 문 쪽으로 날아가 초대형 몬스터들을 향해 검을 양방향으로 넓게 휘둘렀다. 검으로 허공을 가르는 행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일권은 그의 힘을 알고 있다.
촤좌좌좌좌좍!
초대형 몬스터와 놈의 등을 밟으며 올라가고 있는 중소형 몬스터들이 함께 가로로 두 동강이 났다.
세 방, 네 방도 아닌 단 한 방에 두 마리의 초대형 몬스터가 반으로 쩍 갈라져 고깃덩어리가 아래로 쓰러져 내렸다.
“우와! 우와아아아!”
“으아아악!”
가까이 와서야 그를 알아본 신한, 대한 길드 헌터들이 악을 쓰듯이 함성을 질렀다. 지천욱도 그를 발견하고는 사람들 눈치도 보지 않고 크게 외쳤다.
“그, 그다! 그가 돌아왔다!”
1년 반 전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전 세계 1위 R랭크 헌터 여울.
게이트를 넘어갔다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게이트가 다시 열릴 때 막지 못할까 봐 숨었다, R랭크가 조작이었고 그것을 들키기 전에 잠적했다 등등 말이 많았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힘을 아는 한국 사람들은 지금 이 상황에서 그를 누구보다 간절히 찾았다. 그런데 그 바람대로 거짓말처럼 나타난 것이다.
서한은 여울을 보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고, 지연은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하…… 드디어 오셨네…….”
지연은 눈물을 훔쳐 내며 뒤쪽에서 다른 사람을 치료하고 있던 보라에게 고개를 돌렸다.
누구보다, 어쩌면 그의 딸 은서보다도 더 기다렸던 사람이 보라였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그녀가 지금은 사라졌다.
지연은 다시 고개를 돌려 여울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공중에 한 여인이 그가 등장할 때처럼 떠 있었다. 성벽에서 냅다 뛰어내린 것이다.
그녀는 여울을 향해 두 손을 펼치며 크게 소리쳤다.
“오빠아! 여울 오빠!”
그녀의 아래에는 아직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그녀가 아무리 8레벨이라고 해도 그곳에 떨어지면 1초도 되지 않아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울은 화들짝 놀라 바로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지상에서 8미터쯤 위에서 보라를 받았다. 그녀는 마치 코알라처럼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 다리론 허리를 꼬옥 감쌌다.
여울은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은 채 나머지 착지와 동시에 하나의 검을 한 바퀴 돌렸다.
검기와 바람의 마나를 담은 검풍이 주변의 몬스터들을 자르고 날려 보냈다.
보라는 지금 모든 상황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여울의 품에 안겨 어깨를 적시고 있었다.
“크흡, 흡, 크흐윽, 진짜 죽은 줄 알았단 말이야!”
여울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못 본 새에 말이 짧아졌군.”
“그게 지금 뭐가 중요해! ……요.”
“풋.”
“씨이…….”
여울은 그녀와 대화하는 중에도 바삐 움직이며 몬스터들을 처치했다. 보라는 지금 이 순간이 최근 3년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의 숨소리, 체온이 누구보다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밀착한 것이다.
행복감 역시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전염된다. 그녀의 마음을 느낀 여울은 살짝 미소 짓고는 벽 위로 다시금 올라갔다.
“내려라, 싸우게.”
“아, 응, 네…….”
보라는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는 얼굴이 빨개진 채 그에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그러나 주변에는 그녀를 신경 쓰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몬스터들과 생사를 오가는 중이다.
맞다. 아무리 아쉬워도 지금은 싸울 때다.
여울은 다시 몸을 돌리며 디카르를 길게 늘어트렸다. 이제 검기도, 충격파도 쓰지 못한다. 그에게도 그리 만만치 않은 상황인 것이다.
일권은 멀리서 그를 보며 코를 찡끗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장님은 같이 안 오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