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79
179
별장의 침실, 침대 위에 두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통역사 여인은 두 손을 여울의 가슴에 살포시 얹히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단단하네요.”
그녀는 그를 천천히 밀어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는 그의 다리 사이로 그녀의 허벅지를 밀어 넣었다. 그녀가 몸을 굽히니 치마가 말려 올라가 새하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났다. 그 부드러운 감촉이 다리에 느껴지니 더욱 아찔해졌다.
“언제나 여울 님 같은 영웅을 모셔 보고 싶었습니다.”
끈적이는 눈빛에 어색한 한국어 발음이 더욱 달콤하게 들려온다.
다리와 허리가 직각인데도 그녀의 가슴이 자신의 가슴에 닿았다. 그 감촉에 매우 물컹거린다. 단추 두 개는 언제 풀었는지 그 사이로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이 보였고, 그 안에는 속옷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흐물거리는 감촉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스윽.
그녀는 안경을 벗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고는 얼굴을 허벅지 사이에 파묻으려고 할 때, 여울은 검지를 그녀의 이마에 대어 멈추게 했다.
“그만.”
여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걸어갔다. 그녀가 자신의 허벅지에 얼굴을 파묻는 순간,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자신에게 달려와 안겼던 보라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동시에 죄책감이 느껴져 더 이상 그녀에게 몸을 맡길 수는(삭제) 없었다.
여울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쉬고 싶군, 가라.”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풀린 셔츠의 단추 두개를 간신히 잠그고는 재킷을 입었다. 그러곤 머리카락 한 올도 튀어나오지 않도록 머리를 다시 다듬어 묶고는 안경을 썼다. 그러고는 처음과 동일한 표정으로 허리를 45도 각도로 숙이며 말했다.
“가 보겠습니다.”
바로 뒤돌아서 가는 그녀의 눈동자는 차가움이 가득했다.
* * *
그날 밤, 여울은 눈을 감고 혼탁한 마나를 체외로 내뱉으며 정순한 마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곳 시간으로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거참, 잠깐이면 된다니까.”
“죄송합니다. 내일 새벽까지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각하의 명이…….”
“허, 이 고지식한 사람아, 나 몰라? 나야 나, 전 UST…….”
낯익은 목소리다. 여울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현관 밖으로 나왔다. 그를 본 경호원이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
“여울, 자네!”
그때, 금발에 수염이 수북한 중년인이 경호원의 말을 끊으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여울을 안았다.
여울은 손바닥을 보이며 그를 제지하려는 경호원을 말렸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자신을 안고 있는 중년인의 등을 두 번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소장님.”
“소장이라……. 그래그래, 정말 오랜만이야, 그 호칭. 그, 그런데 이건 무슨 냄새지?”
여울은 살짝 떨어져 자신의 몸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운동 중이었습니다.”
“아…… 땀냄새 한번 지독하군. 그래…… 자네는 여전히 열심히군.”
외국 지하철 노숙자와도 같은 차림새인 그는 전 UST 연구소 소장 데이빗이었다. 10레벨 헌터 리치언의 습격으로 연구원을 모두 잃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대형 게이트가 열려 연구소 자체가 아예 사라졌다.
그와 함께 데이빗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 역시 좁아지다 못해 공중분해되었다. 헌터의 정확한 능력치를 측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초대형 게이트가 생기고 난 후에는 등급 나누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국가의 모든 힘을 쏟아붓는 바람에 UST팀은 갈 곳을 잃은 것이다.
헌터로 살아가는 길밖에 없지만, 국빈급 대우를 받던 그는 연구원들을 잃고 나락에 떨어지니 다시 헌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정도 파탄 나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니기 일쑤였다.
“괜찮으십니까?”
데이빗은 여울의 말 한마디에 눈물을 살짝 글썽이며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괜찮지, 괜찮고 말고…….”
여울은 경호원을 물리고 그를 집 안으로 들였다.
거실의 식탁 의자에 앉은 그는 여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가고 난 후 많은 일이 있었어. 참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생애 가장 높은 랭크를 달았던 자네가 많이 생각났어. 그래서 이렇게 소식을 듣자마자 만사 제치고 달려왔지.”
“그렇습니까.”
여울은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 그에게 주었다. 차를 보니 로디스에서 만났던 인연, 세이프가 떠올랐지만 머리를 털며 그에 대한 기억을 지웠다.
“보니까 정말 반갑군그래. 그때로 돌아간 것 같고……. 아주 좋아. 허허, 자네는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군.”
“지금은 어디 계십니까?”
데이빗은 그의 질문에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 그저 국가가 주는 녹을 받아먹는 중이라네, 그것도 쏠쏠하지.”
여울은 벙커 내를 돌아다니면서 랭크 측정기로 보이는 기계가 있는 방을 몇 군데 보았다.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때의 자리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까?”
“돌아간다면야 그럴 수는 있지.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연구비를 지원해 주지 않아. 현재의 장치를 수리할 명목밖에 없지, 대몬스터전 무기를 만드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고 있어. 미국이 그렇게 됐어.”
그것은 미국만을 탓할 것은 아니다. 한국은 물론 웬만한 살아남은 나라는 모두 생존에만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 나라가 아닌 지금 세상의 상황 탓이다.
여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울의 어깨에 손을 얹히며 말을 이었다.
“미국이 뭘 해 줬다고 자네는 자신의 나라도 제치고 지원을 왔는가?”
“한국은 이미 안정기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무너진다면 세계가 무너진다고 판단했습니다.”
“허허, 그래도 자기 나라가 위험하면 돌아가야지.”
“그렇지 않아도 한국 상황이 변하면 이곳이 어떤 상황이든 바로 돌아간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래? 그게 쉽진 않을 텐데…….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튼 이렇게 와 줘서 정말 좋구먼.”
데이빗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자네……. 이런 퇴물 늙은이를 쫓아내지 않고 반겨줘서 고맙네. 내가 잘해 준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여울은 따라 일어서서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렇게 봤으니 됐네. 언제까지 영웅을 피곤하게 만들 순 없지. 자네와 독대했다는 안주거리가 생겨서 만족스럽군. 가겠네.”
여울은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르게 마치 다른 사람처럼 분위기가 내려앉은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살아 계십시오.”
여울의 특이한 작별 인사말에 데이빗은 멈칫하더니 반쯤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그래, 자네도.”
그는 파랗게 내리쬐는 가로등 사이를 터덜터덜 걸어가며 사라졌다.
* * *
세상이 파랗게 변한 새벽, 여울은 침상에서 일어나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의 동시에 벙커 안에 모든 가로등이 붉은 빛을 반짝이며 커다란 경보음을 내기 시작했다.
-삐이잉, 삐이잉.
-코드 제로 경보령 발동. 코드 제로 경보령 발동. 남서쪽 관문 몬스터 군단 출현.
경보 방송이 울리자마자 양옆 별장에 있던 사람들이 다급히 튀어나와 어디론가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그 속도나 차림새가 웬만한 헌터들보다 훨씬 뛰어난 자들 같았다.
그때, 다른 헌터들과는 반대로 달려오는 사내 한 명이 보인다. 그 방향을 보니 자신이 있는 별장이다. 여울은 그를 맞이하기 위해 현관으로 내려가 문을 열었다.
사내는 헌터외교부관 제이드였다. 그는 여울을 발견하고는 헉헉거리며 말을 이었다.
“헉, 헉 헌터님! 몬스터 군단이…….”
“알고 있습니다.”
여울은 아무런 준비 없이 바로 그를 지나쳐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는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분명 일반적인 속도로 걸어가는데 제이드가 달리는 속도와 비슷했다. 마치 바닥을 접는 축지법을 쓰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회의실이 아닌 바로 바깥으로 나가는 여울이었다. 제이드는 다급히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헛! 그, 헌터님! 그쪽이 아닌…….”
여울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는 벙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이드는 그의 뒤를 쫓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그래, 여울 님은 아직인가?
“아, 예! 아니요, 헌터님이 바로 문 쪽으로 가시는…….”
-자네는 그분 원하시는 대로 하도록 도와. 개념 없이 길 막는 애들 좀 미리미리 치워 주고.“
“예, 예! 알겠습니다!”
제이드는 회선 너머의 헌터장관에게 고개를 굽신대고는 안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여울 뒤를 빠르게 따라갔다.
그는 벙커 밖으로 나가 바로 벽으로 향했다. 벽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그곳에서 통제하는 군인이 그를 위아래로 살펴보고 양손에 아무런 무기도 없는 것을 보고는 총구를 들이댔다.
“뭐야?! 긴급 상황이니까 일반인은 꺼져!”
뒤늦게 달려가고 있던 제이드는 그 모습에 기겁하며 소리쳤다.
“어, 어이! 그분은…….”
그때, 여울이 살짝 고개를 돌려 제이드를 보았다가 앞에 벽을 다시 보았다. 그러고는 오른발을 무릎 높이만큼 살짝 들어 올렸다가 바닥을 박찼다.
파앙!
그가 바닥을 박차자 풍선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신형이 하늘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가 벽 중간 높이인 30미터 인근에서 허공에 다시 발을 구를 때쯤, 제이드와 군인이 있던 자리에서 후폭풍이 일어났다.
후우웅.
“어어!”
“허업!”
제이드는 물론 군인도 뒤로 몇 걸음 밀려나며 시선은 여울을 쫓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아파트 20층 높이를 단번에 올라서 벽 위에 가볍게 안착했다.
척.
그가 갑자기 나타나자 벽 위에서 긴장하며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과 헌터들이 화들짝 놀라며 무기를 들이댔다.
“뭐, 뭐야!”
“손 들어!”
“사람인가?!”
그 중에 여울을 알아보는 몇몇 헌터가 눈을 비비고는 다시금 그가 맞는지 확인했다.
그때, 여울은 그들의 무기와 시선을 무시하며 양손을 가슴께까지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내려쳤다.
슈우웅!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양손에서 무광의 묵색 검이 촤르륵 펼쳐졌다.
벽 아래는 까마득하게 멀고, 5킬로미터 거리에는 흙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달려오는 수많은 몬스터가 보였다.
타다다닥.
그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앞으로 달려갔다. 앞의 1.2미터 높이의 난간을 지나면 60미터 높이의 낭떠러지뿐이다.
“어어!”
“저 사람 뭐야?!”
“허억!”
타앙!!
그는 바로 난간을 박차고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두 검을 양쪽에 펼친 채 허공에 자유롭게 날아오른 그의 모습에 벽 위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쩌억 벌리며 놀라워했다.
슈우우우우웅!
그의 몸은 중력을 무시했다. 바람의 마나를 활용하여 마치 새가 활강하듯이 거의 직선으로 미끄러져 날아갔다.
60미터 위에서 뛰어올라 대략 80미터 높이에서 바닥에 내려오기까지, 2킬로미터는 활강으로 날아왔다. 거의 바닥에 닿을 즈음에 마주 달려오는 어마어마한 몬스터 군단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여울은 양손에 쥔 검을 안쪽으로 확 끌어당긴 채로 검기와 불 속성 마나를 한껏 담았다.
‘레벨 업하기 딱 좋은 날이다.’
여울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두 검을 바깥쪽으로 펼쳤다. 동시에 노란 불의 검기가 광범위하게 날아가 몬스터들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