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8
18
18 밤의 공포
그때.
끼긱- 기긱-
무섭게 달려오던 해골들이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시간이 멈춘 듯이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뭐, 뭐지…….”
해골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흔들거리면서 사람들을 쳐다보고만 있다. 지연은 그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일행의 중심에는 고고히 서 있는 하나의 라브가 구원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라…… 브.”
해골들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라브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붉은 안광이 점점 흐릿해지더니 터덜터덜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그 뒤에 있던 해골들도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렇게 수백 마리의 해골들은 마치 이곳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흩어져 버렸다.
“지, 진후, 진후 님을…….”
강민철은 중얼거리며 도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한 걸음 내딛자 해골들의 붉은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지연은 다급히 그의 목을 잡아채 뒤로 당겼다.
“미쳤어요? 진후 씨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마요.”
민철은 눈을 한껏 찡그리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지연은 더 이상 모진 말은 하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함께 했던 시간은 짧아도 김진후가 어떤 사람인지는 충분히 봐 왔으니까.
“진후…… 진후 님…… 크흑.”
무뚝뚝하던 민철이 이렇게 김진후를 좋아했는지 몰랐다. 다른 자들도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에게 진후 없는 케라브는 절망적이다. 그 짧은 기간, 그들은 진후라는 커다란 나무 아래 길들여진 것이다.
밤이 지나 하얀빛이 서서히 세상을 밝혔다. 그들은 대부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해골들은 하나둘씩 땅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무 근처에는 땅이 단단해서 그런지, 아니면 뿌리가 있어서인지 해골들이 오지 않았다.
터벅. 터벅.
그때 해골들과는 다른 발소리에 지연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지평선에서 태양을 등지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 * *
캄캄한 밤, 수십 마리의 해골들이 무언가를 몇 겹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마치 작은 언덕처럼 보일 정도다.
“크흡.”
진후는 튀어나오는 신음을 삼켰다. 팔다리에 해골들이 빼곡하게 엉겨 붙어 있다. 잡아당겨서 뜯어지지 않으니까 이빨로 무는 해골들이다.
리덕션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이 조금씩 파이기 시작했다. 강력한 치악력이다.
리덕션의 지속시간은 1분이고, 지금은 30초가 지났다. 남은 시간 안에 이 괴물들을 뿌리치고 빠져나갈 확률은?
‘제로…….’
이대로 죽어야 하는가…… 그동안 악착같이 살아왔는데, 보상받지도 못하고 이렇게 죽을 순 없다.
“하아압!”
진후는 크게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세차게 비틀었다. 엄청난 근력에 붙어 있던 해골들이 후두둑 나가 떨어졌다.
진후는 잽싸게 방패를 잡아당겨 어깨에 붙이고 앞으로 돌진했다.
투둑. 투둑. 투두두둑-
수십 마리의 해골들이 뒤로 밀려나고 터져 나갔다.
하지만 미는 속도보다 해골의 속도가 더 빨랐다. 뒤에 있던 해골 중 하나가 오른발에 달라붙어 허벅지를 잘근 물어뜯었다.
“크악!”
허벅지 살이 뭉텅이로 뜯겨져 나갔다. 리덕션이 끝난 것이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 달릴 수 없다.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진후는 죽음을 직감했다. 해골들이 점프하며 위에서도 달려들었다.
그때, 순간 시간이 느려졌다.
후우웅-
눈앞에서 검은 선이 하나 생겨나더니 물결처럼 그어졌다. 검게 빛나는 아름다운 선이다. 그것은 어디에 닿든지 멈추지 않고 해골들을 따라 쭉 그어졌다.
퍼석! 퍼서석!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원상 복구되었다. 앞에 있던 일곱 마리의 해골들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놈들에게 가려져 있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옷에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에 양손에는 검을 들고 있는 자다. 진후는 지금 그를 알고 있다는 것에 매우 감사했다.
“크로우…….”
여울은 그에게 눈을 잠시 맞추고는 바로 발을 놀렸다. 두 개의 검에 다크니스 블레이드를 시전한 채 해골들을 썰기 시작했다.
검은 불길로 절삭력이 몇 배나 되니 검은 심장에 정확히 검을 꽂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여울은 심장 높이로 검을 횡으로 휘둘러 몸통째로 검은 심장과 함께 갈라 버렸다.
진후는 힘겹게 방패를 든 채로 간간이 오는 해골들을 쳐 내면서 여울을 힐끔힐끔 보았다. 한 번의 휘두름에 두세 마리씩 무너져 내렸다.
마치 검은 폭풍에 휩쓸리는 잔해들 같다. 말 그대로 그는 해골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턱!
그때, 방패가 단단하게 잡혔다.
고개를 돌려보니 동료 사내가 방패를 한 손으로 잡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동료가 아니다. 한쪽 팔은 없고, 목은 반쯤 지저분하게 뜯겨져 덜렁거리고 있다.
눈은 붉게 빛나고 있다. 언데드가 된 것이다.
푹-
“키헤에엑.”
고민할 새도 없이 눈앞에서 그의 심장에 검은색 검이 박혔다. 여울의 검이다.
지독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난다. 언데드가 된 사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여울은 사내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입을 떼었다.
“놈들에게 죽으면 이렇게 되는 건가…….”
진후는 같이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몸을 급히 움직였다.
“다른, 다른 사람들을…… 크흑.”
허벅지에 통증이 저릿하다. 여울은 칼론의 주머니에서 라브를 꺼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고작 3개월 된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군.”
여울은 라브로 즙을 내어 그의 환부에 뿌렸다. 진후는 타는 듯한 고통에 이를 악문 채로 힘겹게 대답을 이어 갔다.
“큭, 그, 그들은…… 처음부터 나를 믿어 줬으니까요.”
여울은 그의 눈을 살짝 봤다가 환부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괜찮을 거요.”
“어떻게 아십니까?”
여울은 즙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라브를 바닥에 버리며 대답했다.
“내가 그곳을 지나왔으니까.”
“그러면…….”
“해가 뜨면 움직입시다.”
여울은 단정 짓듯이 말했다.
* * *
지연은 검지로 지평선을 가리키며 외쳤다.
“엇, 저기!”
우울감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이 보였다.
한 사람은 다리를 절뚝거려 다른 사람에게 부축을 받고 있었다.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진후, 진후 님이다!”
“진후 님!”
“여울 아저씨!”
“진후 니임!”
사람들이 뛰어가서 그들을 반겼다. 지연도 달려와서는 여울의 어깨를 붙잡으며 반가움을 표했다.
진후는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하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물기가 있었다.
“무사…… 하셨습니까.”
정예 멤버라고 했던 진후의 일행은 어느새 열여덟 명으로 줄어들었다. 진후는 주먹을 꽉 쥐며 자신의 부족함을 탓했다.
진후 일행은 둘러앉아 지난 밤 동안 얻은 정보들을 공유하고 정리했다.
1. 꺾지 않은 라브 근처(약 5미터)에 있으면 해골이 덤비지 않는다.
2. 놈들에게 죽은 사람들은 똑같이 언데드가 되어 좀비가 된다.
3. 밤에 해골을 죽이기 위해서는 미스릴 재질의 무기가 필요하다고 추측된다.
진후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라브는 일단 가지고 있는 것으로 버티며 낮에 미스릴을 찾기로 결정을 했다.
진후는 여울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울 님, 미스릴은 어디 있습니까?”
“모릅니다.”
준비한 듯이 바로 튀어나오는 대답에 진후는 약간 의아해 하며 되물었다.
“그 검은 미스릴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까?”
진후는 여울이 해골들을 그렇게 손쉽게 쓸어버리니 미스릴 검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의 착각을 읽은 여울은 검을 들어 까맣게 타 버린 검신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대답했다.
“특성 덕이라고 해 두죠.”
“아…….”
“특성?”
지연이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보였다.
여울은 그 말을 끝으로 구석에 가서 앉았다. 특성을 밝히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진후는 여울을 바라보다가 입을 굳게 다물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뒤돌아서 일행을 보며 외쳤다.
“자! 미스릴을 찾아 이동하겠습니다. 라브 위치는 기웅 군이 기록해 줘요.”
“아, 네. 알겠습니다, 진후 님.”
기웅이라는 청년은 안주머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진후가 여전히 가장 선두에서 일행들을 이끌었고, 여울은 가장 뒤에서 따라가며 검을 살펴보았다.
이가 다 상하고 불에 그슬려 검게 변했다. 대충 봐도 내구성이 떨어지는 검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러질 것이다.
‘다크니스.’
[현재 다크니스 수치는 36입니다.]속으로 말을 해도 반응을 한다는 것은 하루 전에 알았다.
다크니스 블레이드를 직접 외칠 때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오글거렸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36. 이틀 사이 5를 소모했다.
다크니스 블레이드는 한 시간에 1씩 소모하는 듯하다. 팔과 검의 뜨거움은 적응이 되어 이제 한 시간은 무리 없이 잡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한정으로 사용할 순 없다. 일부러 사람을 죽일 수도 없고.
지연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서 미스릴로 된 검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여울은 그들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나절을 돌아다녔지만 미스릴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마법진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해는 서서히 회색을 띄고 있었다. 진후는 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뒤돌아서 외쳤다.
“밤이 옵니다. 어서 아까 지나쳤던 라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죠.”
“예, 알겠습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기웅은 이때다 싶어 진후의 옆에 바짝 붙으며 길안내를 자청했다. 진후는 두터운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쓱 거칠게 쓰다듬어 주었다.
여울은 여전히 가장 뒤에서 그들의 후방을 자처하며 차라리 혼자 다녀야 하나 생각하던 그때, 배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뜨겁고도 시원한 기운이 온몸을 휘돈다. 아주 낯선 느낌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잡생각이 들던 머릿속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몸에서도 변화가 느껴졌다. 침침했던 눈이 밝아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때 앞서 가던 진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굴의 사람들도 올라왔나 보네요.”
진후가 걸음을 멈추자 사람들도 그 옆에 붙어 서서 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스무 명 남짓으로 진후 일행보다 조금 많은 수다.
가장 앞에 있는 사내는 한 손에 기형검, 한 손에는 밧줄을 쥐고 걸어오고 있다. 위에는 새까만 코트만 걸치고 하의는 가죽 바지를 입고 있다.
손에 쥔 밧줄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니 속옷만 입고 있는 젊은 여인 셋이 보였다.
그들의 목과 손이 밧줄에 묶여서 개처럼 끌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머리는, 노란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