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82
182
강철판으로 만들어진 복도, 한 중년인이 비틀거리며 그곳을 거닐고 있다.
그는 한때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최상위 입지에 있던 인물, 전 UST 연구소 소장 데이빗이었다.
데이빗은 여울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가 오면서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SS랭크 크레크가 전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대련에서 패배하여 미국의 위상이 추락하였고, 그에 대한 욕은 대련을 공식적으로 추진한 UST가 먹었다. 그중에 소장인 자신을 향한 욕이 가장 많았다.
가족을 향한 비난의 화살도 일상생활을 하기에 위험이 될 정도였다. 딸아이가 등교를 하는데 화염병을 던지는 이도 있었다. 그것이 이혼하게 된 주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이상한 것들이 모인 것도…….’
데이빗은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 정도로 꽉 쥐었다.
언젠가부터 연구소 주변에 의문의 살인 사건이 많이 터지기 시작했다. 후에 헌터경찰 인력이 충원되어 제대로 수사하기 시작했으나 살인 사건의 주범을 찾는 족족 모두 희생되었다.
말도 안 되게 강력한 인간들이 전 세계 각국에서 몰려왔던 것이다. 결국 자신의 남은 한 가지, UST 연구소와 연구원들마저 몰살당했다. 그 자리에는 여울도 있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울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망쳐 버린 자다.
‘나 데이빗은…… 그가 나락까지 떨어지고, 결국엔 나처럼 모든 것을 잃고 자살하는 모습을 꼭 보고 말 것이다.’
* * *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벙커의 대통령 집무실, 여울은 크레인과 단독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크레인은 여울에게 신뢰를 보이기 위해 만날 때 경호원을 들이지 않았다.
여울은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에게 물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모니터를 보며 업무하고 있던 크레인은 여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자네, 보기보다 애국자군그래. 폭죽도 터트리지 않았는데 한숨도 쉬지 않고 바로 온 걸 보니. 활약은 잘 봤네.”
여울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크레크는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모니터를 여울 쪽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정보원 두 명이 교대하며 실시간으로 항상 확인하고 있어. 일이 생기면 약속대로 붉은 폭죽을 터트릴 테니 걱정 말고 싸우게.”
화면에는 상황실 한구석에 앉아 모니터링하고 있는 사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보고 있는 모니터에는 한국의 방송들이 여러 개 켜져 있었다.
여울이 그 화면을 보고 있는 새에 크레크가 말을 이었다.
“한국 쪽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우리에게 연락을 주기로 했네.”
여울은 그제야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고맙네. 자네가 있어서 든든하군.”
여울은 그의 칭찬을 뒤로하고 집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울은 쉬기 위하여 별장으로 향했다. 사흘 정도 몸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피곤하거나 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 틈에 마나를 최대한 쌓아 둬야 한다. 마나를 쌓기에는 눈을 감고 몸 안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저벅, 저벅.
별장에 도착했는데 입구에 낯익은 여인이 문에 기대어 서 있다. 고혹적인 이목구비에 터질 듯한 하얀 셔츠와 타이트한 H라인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다시 봐도 아찔하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가슴을 받친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지?”
그녀는 팔짱을 풀고는 한 걸음 다가오며 입술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물을 게 있어서 왔습니다.”
“말해.”
“전에 거부하셨던 것은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건가요? 아니면 명으로 온 것이기 때문인가요?”
여울은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전자다. 알았으면 가라.”
여울은 바로 그녀를 지나쳤다. 그녀는 뒤돌아서 여울의 뒤통수를 보며 말했다.
“제 이름은 레이입니다. 또 뵐게요.”
레이는 그가 대답 없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것까지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기며 분홍색의 혓바닥으로 윗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이 매우 관능적으로 보였다.
“어쩌지? 나는 그 대답이 더 매력적인데.”
* * *
대충 둘러본 방만 해도 여덟 개.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이 큰 별장에서 여울은 홀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은서는 잘 있나?’
여울은 생각난 김에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들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고 나면서부터 기지국이 없어 전화가 되는 곳을 찾기가 어려워졌지만 이렇게 대형 도시에서는 가능하다. 아직 위성 중 일부는 잘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신호음은 가지만 받지를 않는다. 헌터 특성상 전화를 받을 때보다 받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자신도 몬스터들이 쳐들어오면 곧 다시 전화를 받지 못할 것이다.
여울은 평소처럼 문자 하나만을 남겼다.
―아빠는 별일 없다. 무슨 일 있으면 문자해라.
여울은 휴대폰을 닫고는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삐이이이이잉! 삐이이이잉!
시끄러운 경보음이 벙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여울은 상체를 일으켜 창문 밖을 보았다. 며칠 전처럼 가로등이 붉은빛으로 깜빡이고 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다다다닥.
헌터외교부관 제이드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여울은 저 멀리 보이는 제이드를 향해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가십시오.”
제이드는 중간에 멈춰 서 멍청한 얼굴로 여울을 바라보았다. 여울은 그를 지나치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는 뒤늦게 돌아서 여울을 보며 소리쳤다.
“고맙습니다! 끝나고 제가 밥 한번 사겠습니다!”
말 한번 제대로 섞지 않은 사람이 항상 경외 어린 시선으로 부담스럽게 만들더니 한국식 감사 인사까지 전했다. 기분이 묘하다. 여울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빨리빨리! 정신 차려라!”
“이번에는 또 어떤 놈들이 몰려올지 모른다! 정신 똑바로 차려!”
“다들 위치로! 더 긴 싸움이 될 수 있다!!”
벽 근처로 가자, 임시로 만든 천막 안에서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비몽사몽하며 걸어 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백인대장으로 보이는 자들이 빠르게 방어복과 무기를 챙기고는 자신의 대원들을 보채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전보다 자신감이 깃들어 있지만 긴장감은 여전하다. 몬스터는 그 수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아직 초대형 몬스터 중에 베헤모스보다 몇 단계는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이그리트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네 시간 전처럼 최소한의 희생으로 막아 낼 수 있을지는 여울도, 아무도 모른다.
우드득, 우득.
벽 바로 아래 천막에서 크레크가 두 도끼를 양손에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두 팔을 천천히 돌리며 근육을 풀고는 어딘지 모를 허공을 보며 크게 외쳤다.
“크하아아!! 또 한번 붙어 보자!”
맹수의 포효와도 같은 그의 외침에 사람들은 힐끗힐끗 보며 주먹을 쥐었다.
‘저 괴물 같은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이기지.’
‘사령관님과 함께라면, 이길 수 있다.’
‘죽지 않을 거야.’
전투 직전 몸 풀기와도 같은 크레크의 외침은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에게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는 벽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마다하고 계단으로 오르다가 여울을 발견하고는 다시 뛰어내렸다.
“친구! 친구!!”
여울은 곰처럼 달려오는 그를 보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뭐지?”
“그, 그분은 아직 쉬고 있나?”
여울은 잊고 있던 이 남자의 바보 같은 짝사랑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모른다. 괜찮다 싶으면 나오겠지.”
“그렇군……. 정말 그분이 어디계신지 알려 줄 수 없나?”
“응.”
여울은 짧게 대답하고는 그를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는 재빨리 달려와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이었다.
“딱, 딱 한 번만 얘기라도 좀 나누고 싶은데…….”
여울은 검지를 들어 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지금 이 상황에? 헌터사령관이 초비상사태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나?”
여울의 말에 크레크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죄책감이 가득한 얼굴이다.
“그래,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이번에도 잘 부탁하네.”
여울은 바로 뒤돌아서 벽으로 올라가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한번 말해 보지.”
여울의 말에 그가 고개를 홱 돌렸다. 방금 전 비장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기쁨만 가득하다.
“저, 정말인가? 정말이야?!”
여울은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바닥을 박찼다.
벽 위로 올라서니 크레크와 몇 마디 나누는 사이에 몬스터 군단이 매우 가까워졌다. 놈들은 그전에 왔던 몬스터 군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쿵, 쿵, 쿵, 쿵.
바닥에 울리는 진동도 일정하다. 발을 맞추어 걷는다는 것은 그만큼 훈련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투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감이 왔다.
벽 앞에는 아직도 몬스터들의 사체가 높이 쌓여 길을 만들고 있다. 대형 크레인으로 퍼날러 바닥으로 흩어 놓았지만 네 시간이라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쿠궁, 쿠궁, 쿠궁, 쿠궁!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마주 보고 있는 군인과 헌터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다.
조금 더 가까이 오자 흙먼지 사이로 놈들의 얼굴이 보였다. 오크와 트롤이 대부분이다. 앞에 대여섯 줄은 한 마리도 빠짐없이 로디스에서나 보았던 불칸이라는 집채만 한 불곰을 타고 있었다. 돌격 부대, 이놈들은 전과 다르게 전투 체계가 잡혀 있는 놈들이다.
여울은 바로 검을 뽑아 들고 난간 위로 올라서며 크레크에게 말했다.
“먼저 간다. 이따가 보지.”
“그래! 전투 끝내고 보자고!”
그의 목소리가 묘하게 흥분되어 있다.
파앙! 파앙!
여울은 바닥에 바람을 스프링처럼 압축시켜 그것을 밟고 쭉쭉 쏘아져 나가며 놈들에게 날아갔다. 검은 기사들은 예상대로 약한 기사들밖에 소환이 되지 않는다. 사와코는 물론 리치언, 왕치학도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이번 전투는 오로지 홀로 감당해야 한다. 여울은 두 검을 양쪽으로 넓게 펼쳐 화염 검기를 쏘아 보내며 몬스터 군단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크락, 디베!!
전장을 가득 채우는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위협적이었고, 두려움을 자아냈다. 여울은 그 소리의 주인공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크다. 이목구비가 돼지를 닮은 그 특유의 생김새가 아니면 오우거라고 착각할 만한 거대한 오크다. 덩치가 4미터는 넘는 듯하고 터질 것 같은 근육질에 아래쪽 어금니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다른 오크들과는 다르게 머리가 나 있는데 어깨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놈은 오른손에 3미터 길이의 대검을 한 손에 들고 달려오는데 그 모습이 낯설지 않다. 예전에 게이트 안에서 보았던 거대오크 갈락과 매우 흡사하다.
쿠하!
놈도 여울을 발견하고는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여울은 놈을 향해 바로 화염 검기를 발사했다. 놈은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대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가 아래로 강하게 내리쳤다.
콰아아앙!
검기가 정확한 타이밍에 휘두른 대검과 부딪쳐 폭발이 일어났다. 놈은 불길을 뚫고 여울을 씹어 먹을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달려왔다. 놈의 주변에 있던 다른 몬스터들은 몸통에 부딪쳐 날아갔다.
마치 장갑차와도 같은 느낌이다. 여울은 검을 다잡으며 놈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