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83
183
워싱턴 지구 남서쪽 벽 앞, 수많은 몬스터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고, 그 위로 또 다른 몬스터들이 해일처럼 닥쳐들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여울과 거대오크가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둘 사이에 있는 몬스터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마치 대지 위에 수풀처럼 발에 밟혀서, 또는 몸에 치여 길을 터 주고 있다.
눈 깜짝할 새에 거리가 좁혀지자 거대오크는 여울의 몸을 쪼갤 듯이 맹렬한 기세로 내려쳤다.
후웅!
놈의 검 끝이 여울의 정수리에 닿기 직전, 그는 몸을 살짝 틀어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러고는 눈앞에 지나가는 대검의 옆면을 손바닥으로 쳤다.
파앙!
짧은 폭음과 함께 대검이 바깥쪽으로 훅 젖혀졌다. 대검을 강하게 쥐고 있던 거대오크의 팔 역시 함께 젖혀져 가슴 한쪽 공간이 넓게 열렸다. 여울은 오른손의 검을 뻗어 놈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크흐!
놈은 왼손으로 여울의 검 끝을 잡았다. 검은 이미 깊이 들어갔는데도 손아귀에서 강한 힘이 느껴진다. 이 정도 정신력과 힘이면 적어도 10레벨 이상이다. 이런 힘을 지닌 오크가 게이트를 넘어온 것은 처음 본다. 좋지 않은 징조다. 여울은 두 손으로 검을 쥐고 더욱 깊이 찔러 넣었다.
푸슉!
검신을 쥐고 있던 놈의 손가락이 잘려 나가며 깊이 들어가 등가죽을 뚫고 나왔다. 분명 심장이 완벽하게 뚫려 숨이 끊기는 와중에도 놈은 자신을 잡기 위해 대검을 버리고 손을 휘둘렀다.
여울은 바로 심장을 꿰뚫은 검을 뽑아내어 그 손을 자르고는 다시 앞으로 휘둘러 목을 잘라 냈다.
슥, 서걱!
크르르…….
놈의 목이 스르르 떨어지고, 곧이어 몸이 무너졌다. 검 끝에서 느껴지는 가죽의 강도는 매우 질기다. 웬만한 마력총으로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하여 손을 휘두르는 그 악착스러움이 오크의 무서운 면이다.
크락, 디베!!
디베!
디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로디스어가 아닌 것으로 보아 오크어로 추측된다. 주변을 둘러보니 듬성듬성 그 거대오크들이 보였다. 대충 보아도 수십 마리는 넘어 보였다. 놈들을 보는 여울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놈들이 모두 목이 잘린 이놈처럼 강하다면 피해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놈은 크사카나 지금까지 봤던 오크와는 아예 종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여울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화염 검기를 한 방 쏘고는 거대오크의 시체에 관찰을 시도했다.
―종족: 디베오크
―레벨: 10
―이름: 베투루
―경험치: 77퍼센트
―특성: 근력
아예 종족이 다른 오크다. 게다가 네임드다. 다른 놈들은 네임드가 아니길 바라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가장 가까이 있던 놈이 여울의 기운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돌렸다. 여울은 놈에게 바로 검을 뻗었다. 놈은 다급히 대검을 비틀어 넙적한 면으로 막을 준비를 했다. 일반적인 반사 신경이 아니다.
파앙!
여울은 빠르게 검을 거두고는 손바닥으로 검면을 강하게 쳤다. 검면이 뒤로 훅 꺾이며 놈의 얼굴에 부딪쳤다.
놈은 대검을 쥔 손에 힘이 풀리고, 얼굴이 피범벅 됐다. 여울은 손가락으로 검을 치우고는 놈의 미간에 검을 다시 찔러 넣었다.
푹.
머리가 뚫리자 놈의 움직임은 완전히 멈추었다. 쓰러진 놈을 관찰해 보니 역시나 네임드다. 불안한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다른 디베오크들은 이미 절반이 넘게 성벽 위로 올라갔다. 성벽 앞에 있는 시체들을 대부분 치우지 못했으니 그 탓에 손쉽게 올라간 것이다.
다른 헌터들은 놈들의 힘도 모른 채 신나게 몰려들고 있다. 여울은 그쪽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피해!!”
디베오크는 그 거대한 검을 옆면으로 휘둘렀다. 놈의 대검은 공기 저항을 우습게 찢어 버리고는 강하게 휘둘러졌다.
콰과아앙!!
대검의 범위에 있던 자들은 모두 성벽 아래로 나가떨어지거나 그대로 맞아 터져 즉사했다. 벽 위에 올라가 있는 디베오크만 해도 스무 마리가 넘는다. 헌터들은 일방적으로 쓸리기 시작했다. 바로 전 공습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이다. 디베오크들은 마치 전차 군단과도 같았다.
여울은 그곳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챙! 채앵!
어마어마한 괴력에 소년 헌터의 검이 저 멀리 날아갔다. 그의 앞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디베오크는 거대한 대검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넙적한 면으로 내려쳤다. 짓이겨 죽이려는 것이다.
콰앙!
그때, 두 개의 도끼에 대검이 가로막혔다. 도끼의 주인공은 헌터 사령관 크레크였다.
“하압!”
그는 힘을 줘 대검을 위로 올려 치고는 가까이 다가가 배를 그었다. 놈의 배가 쩌억 벌어지며 내장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이제 다른 디베오크를 향해 가려는 찰나, 놈의 대검이 날아왔다.
차아앙!!
크레크는 다급히 막았으나 그 강한 힘에 옆으로 날아가 벽 아래로 떨어졌다.
“대장님!!”
소년 헌터는 떨어지는 크레크를 보며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쿠웅, 쿠웅.
그때 배가 뚫린 디베오크가 한 걸음 한 걸음 소년 헌터에게 다가왔다. 그는 이내 공포에 질려 뒷걸음쳤다.
쿠우웅.
그러나 디베오크는 더 이상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소년 헌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네발로 기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크레크는 공중에서 몸을 돌려 바닥에 완벽하게 착지했다. 동시에 다른 디베오크가 벽에서 뛰어내리며 대검을 크레크에게 내려찍었다. 그는 바로 도끼를 들어 공격을 막았다.
콰아앙!!
체중과 중력, 힘이 실린 공격에 크레크는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바닥을 몇 바퀴 구르고 멈췄을 때 또 다른 디베오크 두 마리가 뒤에 내려섰다. 그렇게 그는 총 세 마리에게 둘러싸였다.
크레크가 그들의 동료를 죽인 것을 포착하고 빠르게 몰려든 것이다. 크레크는 아직도 손목의 저릿함을 느끼며 두 개의 도끼를 강하게 쥐었다.
“이 자식들, 강자를 알아보는구먼. 다 덤벼!!”
그의 외침을 알아듣는 듯이 디베오크 세 마리가 동시에 덤벼들었다.
콰과광!!
세 개의 대검이 벼락처럼 내리쳤다. 크레크는 두 도끼를 위로 올려 그것을 한 번에 받아 내고는 조금 더 아래로 다리를 굽혔다가 펴며 위로 강하게 올려 쳤다.
그러고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디베오크에게 도끼 하나를 던지며 달려갔다. 놈이 올라간 대검을 미처 내리지 못하고 팔뚝을 들어 날아오는 도끼를 막았다. 놈의 팔뚝에 도끼가 박힌 그 순간 머리 위로 크레크가 날아올라 도끼를 내려쳤다.
콰직!
놈은 대검을 버리고 다른 손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손목과 함께 머리에 도끼날이 반쯤 박혔다.
“한 놈 잡았…… 응?”
크레크는 도끼를 뽑으며 바로 뒤돌아서려고 했다. 그런데 도끼가 빠지지가 않는다. 다시 보니 머리가 쪼개진 놈이 의식이 끊기기 전에 다른 손으로 도끼의 손잡이를 잡은 것이다.
이미 죽은 놈이기에 힘을 조금만 줘도 풀어낼 수 있었지만, 그 순간에 가만히 있을 디베오크들이 아니었다. 뒤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짓쳐 오고 있다. 크레크는 다급히 도끼 하나를 뽑아 들며 본능적으로 더 위험한 쪽으로 도끼를 들었다.
콰직! 쿠우웅!
도끼를 드는 것과 동시에 대검이 부딪쳤다.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했기에 뒤로 몸이 날아갔다. 그때 등 뒤에서 덤프트럭 같은 것이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다. 또 다른 디베오크의 대검 검면으로 추측된다. 순간 머리가 핑 돌고 내장이 뒤틀리는 듯했다.
눈앞에 다시 대검이 휘몰아쳤다. 크레크는 다급히 몸을 낮춰 대검을 피하며 놈의 다리를 베고는 뒤쪽으로 몸을 굴렸다. 지금 바로 한 놈을 잡지 못하면 무조건 패배하리라 직감한 크레크는 남은 한 마리의 위치를 파악할 새도 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푸욱!!
놈의 옆구리에 도끼가 깊게 박혔다. 동시에 그의 어깨에 대검이 내려쳐졌다.
콰직!
“크흡!”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깊게 박혔다. 한 번에 잘려 나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때 옆구리에 도끼가 박힌 놈이 뒤돌아서며 대검을 휘둘렀다. 막아야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퍼억!
놈의 대검이 옆구리를 파고들어 반대편 갈비뼈에서 멈춰 섰다. 폭이 5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대검이 크레크의 가슴에 완전히 들어간 상태다. 크레크는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움직임이 멈췄다.
그때.
차앙!
가슴 깊숙이 가로지른 대검의 검신이 눈앞에서 잘려 나갔다. 옆을 보니 익숙한 얼굴이 건조한 눈빛으로 크레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치, 친구…….”
그가 크레크의 어깨에 박힌 대검을 뽑은 뒤 위로 올려 치며 그것의 주인인 디베오크의 머리를 잘라 냈다.
크하아!!
마지막 한 마리가 잘린 검신을 크레크에게 다시 내려치고 있다. 여울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한 팔을 위로 올려 그것을 맨손으로 잡았다. 피가 흘러나오지만 여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구리로 검을 뻗어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여울의 뒤로 디베오크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크레크를 바라보았다. 그는 실질적으로 상하체가 분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울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가만있어라. 내가 살려 주마.”
“크흐…… 이, 이미 늦었어.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여울은 무표정하게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다가 주머니에서 네임드 오우거의 피를 꺼내었다.
그것을 보고는 크레크는 고개를 내저었다. 여울도 알고 있다. 지구엔 안쪽의 내장 기관도 재생시키는 성수가 없다.
성수를 로디스 세계에서 가져오더라도 신의 가호가 담겨 있지 않아 그냥 맹물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보라라도 있다면 치료할 수 있을 텐데. 같이 오지 않은 것이 지금서 후회가 되었다.
그때, 크레크가 피 묻은 손으로 여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친구…… 마지막 부, 부탁이 있다.”
여울은 마지막이라는 말에 살짝 미간을 좁혔다가 차갑게 대답했다.
“말해라.”
“그, 그 여인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여울은 의외의 말에 조금 당황했다. 크레크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니 진심이 가득 담겨 있다. 그의 마음을 읽은 여울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여울은 그들이 머물고 있는 밤의 세계를 떠올렸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의 세계다. 이곳으로 의식의 연결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여울은 무작정 사와코를 떠올렸다. 그러자 짙은 어둠의 안개가 천천히 걷히며 그녀가 걸어 나왔다. 아직 소환하지 못하는 시간에 여울의 염원으로 강제 소환에 응한 것이다.
지이이잉.
여울 바로 옆에 지름 50센티미터 크기의 블랙홀이 생겨났다. 그곳에서 머리부터 천천히 사와코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눈앞에서 본 크레크는 눈을 부릅뜨며 놀랐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풀어졌다. 어떤 존재인들 지금 뭐가 중요하리.
“아…….”
크레크는 그녀를 앞에 두고도 아무 말도 못했다. 그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변했다.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힘이 빠진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말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 그, 그대를…….”
척.
그때, 사와코가 두 손을 뻗어 크레크의 얼굴을 잡았다. 그 행동에 크레크는 물론 여울도 놀라워했다. 명령 이외의 행동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스윽.
그녀는 크레크에게 가까이 다가가 이마에 키스를 했다. 크레크는 자연스레 눈을 감았다. 그녀의 입술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한기와 한없는 부드러움을 느꼈다. 그녀는 입술을 떼고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안개처럼 흩어졌다. 소환이 해제된 것이다.
크레크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그의 입꼬리는 양쪽이 모두 올라가 있었다. 환한 미소다. 여울은 검지와 중지를 그의 턱 아래에 가져다 대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여울은 손을 떼고는 그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잘 가라, 친구.”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여울은 마음이 먹먹하다. 진후가 떠올라서 그러는 듯하다. 연이 닿은 사람들을 먼저 보내는 것은 적응할 수 없는 괴로운 일이다.
크락! 디베!
큰 소리에 여울은 바로 뒤돌아섰다. 위에는 아직도 디베오크들이 설치고 있다. 감상에 젖을 시간이 아니라는 것. 그는 바닥을 박차고 벽 위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