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84
184
서울 방어기지, 북문. 많은 사람이 몬스터와 사람의 시체를 분류하고, 한쪽에서는 그것을 태우고 있다. 몬스터의 시체는 바로, 사람의 시체는 신원 확인만 하고 태워 버렸다.
이렇게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땅에서는 좀비로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이 많은 양의 몬스터와 사람이 좀비가 되면 다시 막아 낼 수 없을 터이다.
지독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지만, 사람들은 인상만 찌푸릴 뿐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일반인, 군인, 헌터 할 것 없이 모두 그 일에 참여하고 있다. 몬스터를 처치하느라고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던 헌터들을 제외하고 전부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있다.
언제 또 몬스터가 쳐들어올지 모르니 후처리가 가장 급선무다.
그때, 방어기지 전체 곳곳에 달려 있는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다.
―상황실입니다. 현 시간부로 북쪽, 남쪽 초대형 게이트가 닫혔습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현시간부로 북쪽, 남쪽 초대형 게이트가 닫혔습니다.
“게, 게이트가…….”
“닫혔다고?”
일하던 사람들은 방송에서 말한 소리가 꿈인지 생시인지 알기 위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중얼거렸다. 옆에 일하던 사람도, 그 옆 사람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같은 내용을 들은 것이 확실했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만세에!!”
“게이트가 닫혔다!!”
“드디어 끝이 났어, 드디어!!”
“우오아아아아!”
이미 희생당한 사람들 앞에서도 만세를 외쳤다. 희생자의 유가족도 그 순간만큼은 기뻐했다. 그 이야기에 다들 얼굴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벽 위에 올라가 있는 은서와 보라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이 지긋지긋한 몬스터들과 끝이 났으면 좋겠는데…….”
보라는 은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자신보다 키가 큰 것을 느끼고는 어깨에 손을 올렸다.
“끝이겠지, 끝일 거야. 그나저나 너희 아빠는 언제 오시려나?”
은서는 고개를 돌려 보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보라는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살짝 당황했다.
“으응, 왜?”
“언니, 가만 보면 나보다 언니가 아빠를 더 기다리는 것 같아. 게이트 너머로 갔을 때도.”
보라는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돌연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대답했다.
“뭐, 몰랐어? 알면서 왜 그래?”
은서는 가자미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빠 딸이 나인 건 아는지 모르겠네. 나한테 잘해.”
보라는 놓쳤던 것을 깨달은 것처럼 표정이 확 바뀌며 저자세로 나왔다.
“우리 꼬맹이, 뭐 먹고 싶…….”
“잠깐.”
은서는 검지를 뻗어 보라의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벽 너머 저 멀리를 바라보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 진중한 모습에 보라도 조용히 시선을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두두두두두.
심상치 않은 울림에 은서와 보라는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그곳에 집중했다.
드드드드, 드드드.
미세한 떨림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 떨림이 지속될수록 더욱더. 아직 지평선 너머까지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냥 넘길 만한 떨림이 아니다.
“언니는 상황실 가 봐요. 나는 제대로 다시 확인해 볼게요.”
“그래, 이따 봐.”
은서는 보라와 헤어지고 바로 걸음을 옮겨 벽 중간에 최신식 정찰용 기계들이 설치되어 있는 탑으로 이동했다.
탑 입구에는 군인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은 은서를 보고는 입구를 막으며 말했다.
“아이야, 여기는 일반인…….”
은서는 군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품에서 전시헌터 천인대장 배지를 보여 주었다. 군인들은 바로 각을 잡고 충성을 외치며 길을 터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 굴절 망원경으로 밖을 살펴보았다. 저 멀리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 산 중턱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무언가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나뭇잎과 비슷한 색에 수가 많다면 하나밖에 없다.
‘몬스터.’
은서는 어린 상사의 돌발 행동에 난감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군인에게 말했다.
“지금 바로 상황실에 알려요. 북쪽에 몬스터 군단이 출현했다고, 빨리!”
“아, 네, 알겠습니다!”
그가 상황실에 호출을 막 하려고 할 때, 방어기지 전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삐이! 삐이! 삐이! 북문 몬스터 군단 출현, 북문 몬스터 군단 출현. 모든 군인과 헌터는 각자 전시 자리에서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북문 몬스터……
갑작스런 경보령에 밖에서 시체들을 처리하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며 장비를 내던졌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분명 게이트가 닫혔다면서?”
“난들 아나?! 일단 튀어!”
“같이 가!!”
사람들은 몬스터들에 의한 진동도 느껴지지 않는데도 온힘을 다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제 숙달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언제 갑자기 성난 파도처럼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것을.
만세를 외치던 군인과 휴식을 취하던 헌터들도 모두 민가에서 튀어나와 벽 위로 올라갔다. 신고와 동시에 동, 서, 남쪽도 드론까지 보내어 정밀하게 확인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집중 방어 태세로 서울 방어기지 내에 최소한의 정찰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 군인과 헌터가 북문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다른 문에 있는 병력을 제외하고 북문에 제대로 된 방어 태세가 갖춰지기까지는 대략 10분.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점점 더 속도가 빨라지는 사람들이었다.
은서는 북문 벽 위 중앙에서 저 멀리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녀의 양옆에는 보라와 수언이 있었다. 수언은 동문에 있었지만 염력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날아왔고, 대한길드나 원팀 등 다른 병력은 북문에서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꿀꺽.
수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말 한 마디 새어 나오지 않았다. 저 멀리 있는 사람이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바로 이틀 전 전투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갔으니 자연스레 극도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수언은 앞과 옆에 은서를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도착하고 나서도 은서와 한 마디도 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서야, 내가 먼저 나가 볼…….”
그때, 은서가 검지를 들어 수언의 입을 막았다.
“쉬…….”
수언은 그녀의 돌발 행동에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앞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두구두구두구구구구.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 진동은 점점 더 심해져 이제는 이곳의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을 휴대용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은서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이, 이럴 수가…….”
“왜?! 뭔데?”
옆에 있던 보라가 다급히 보챘다. 은서는 말없이 그녀에게 망원경을 건넸다. 그녀는 바로 받아 들어 앞을 보았다.
“헤엑…….”
수십 킬로미터 멀리서부터 시야를 꽉 채운 진녹색 무리가 보인다. 중간중간에 툭 튀어나와 있는 덩치 큰 놈들은 오우거인지 오크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멀리서도 시야를 꽉 채운다면 수십, 수백만은 될 것이다.
지금 북문과 남문 쪽의 게이트에서 나왔던 몬스터들이 총합 20만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서울 방어기지가 함락될 정도의 위기를 맞이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수십 배에 달하는 머릿수. 보라는 처음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절망감을 맛보았다.
보라는 바로 망원경을 내리고는 은서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으며 말했다.
“아빠, 너희 아빠 빨리 오라고 해!”
“아, 네!”
은서는 바로 뒤돌아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며 상황실로 향했다. 휴대폰을 받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상황실에 가서 미국 정부와 다이렉트로 연락을 취해야 한다.
미국의 급한 불을 끄면 어련히 알아서 바로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을 돌볼 때가 아니다. 그곳으로 가는 은서의 발걸음은 매우 다급해 보였다.
* * *
같은 시각, 미국 워싱턴 지구.
6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벽은 앞뒤로 시체가 쌓여 하나의 언덕이 만들어졌다. 본래의 형체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피비린내와 살덩이들만 가득하다.
벽 안쪽에는 생존자들이 두 팔을 축 늘어트린 채 가만히 서 있다.
후우우웅.
지독한 악취가 바람을 타고 코를 자극했지만 누구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그저 멍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벽 위에는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홀연히 서 있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로 그 너머에 물러나고 있는 몬스터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왜…….”
여울은 그들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끊임없이 몰아치던 몬스터 군단, 조금만 더 있었으면 놈들이 함락시켰을지도 모른다. 상황실에서 듣기로는 아직 일주일은 더 있어야 몬스터 행렬이 끝난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이 남아 있었다. 워싱턴 지구가 놈들의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버티니까 계획을 변경한 건가? 아니면 뒤에 다른 군단과 합류하여 사방에서 몰아치기 위한 후퇴인가?
여울은 놈들을 쫓을까 하다가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질퍽, 질퍽.
끈적거리는 피가 신발 밑창에 늘러 붙었다. 바닥은 사라진지 오래다. 물컹거리는 살덩이들을 밟으며 걸음을 옮기며 바라보니 좀비처럼 멍한 눈으로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리 신체와 정신이 기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헌터들이라고 해도 일주일 동안 잠도 자지 못하고, 한순간의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검을 휘두르며 피와 살을 가르다 보면 정신이 붕괴된다.
생존자들은 승리를 만끽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밟고 있는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몸과 정신이 멈춰 일시적인 패닉에 빠진 것이다.
이때 이겨 내서 정신을 제대로 차린다면 다시 살아갈 것이고, 이겨 내지 못하면 정신 이상자 같은 폐인이 될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벙커에 가까워 오자 맨땅이 드러났다. 이건 승리가 아니다. 패배다. 모든 것을 앗아 갔다. 이제 조그마한 몬스터 무리만 와도 필패할 것이다.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여울은 한국만 괜찮다면 이곳에 조금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이 다른 수많은 나라들을 대신하여 막은 것이다. 대표이기에 피해를 본 것이다. 이들을 위해 조금 더 일해야겠다.
* * *
워싱턴 벙커 상황실, 한국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대원이 다급히 헤드셋을 벗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대통령 집무실을 향해 달려갔다. 그때, 복도에서 여울 전담 통역사이자 헌터부장관의 비서 레이와 마주쳤다.
“엇,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대원은 항상 레이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기에 이렇게 중요한 상황에서도 그녀의 부름에 걸음을 멈춰 섰다.
“아, 네, 안녕하세요. 레이 씨, 여울 헌터님은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레이는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여울을 찾는다는 말에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알죠, 무슨 일이신지 저한테 말씀하시면 전달해 드릴게요.”
“그러실래요? 지금 한국 서울 방어기지 북문에 수십 만의 몬스터 군단이 출현했답니다. 여울 헌터님 소환 요청이 왔어요.”
레이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정말 큰일이군요. 어서 알려야겠어요.”
“역시 친절…….”
대원은 끝말을 흐렸다. 이미 레이가 뒤돌아서 매끈한 각선미를 자랑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