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87
187
“끄윽, 끄으으…….”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남자가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의 목을 잡아 들어 올리고 있다.
얼마나 강하게 쥐고 있는지는 여인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점점 거무튀튀해지는 얼굴, 뒤집어지는 눈, 튀어나온 핏줄이 그녀의 상황을 대변했다.
그녀는 몬스터도 아닌 멀쩡한 여인. 누가 봐도 말려야 할 상황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목을 잡고 있는 남자의 존재감 때문에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여인은 곧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때, 한 소녀가 그곳으로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아빠! 그만!”
아빠라는 단어에 여울의 힘이 반사적으로 풀렸다. 그는 고개를 돌려 은서를 발견하고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인지했다. 그는 레이의 목을 쥔 손을 천천히 풀었다.
“은서야.”
“그 여자가 누군데 그래?”
여울은 레이를 보았다가 다시 은서에게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내게 거짓말을 한 자다.”
어떤 거짓말을 했으면 저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데도 보자마자 죽이려고 했을까?
은서는 여울의 눈을 보다가 시선을 돌려 그 여인을 보았다. 여인은 눈물이 고인 채 여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은서는 그 눈빛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은서는 그 사이로 끼어들어 여울을 뒤쪽으로 밀며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가요. 가세요. 지금 눈앞에 보이지 마세요.”
“큽, 쿨럭, 흡…….”
그녀는 헛기침을 해 대며 뒷걸음쳤다. 딸이 있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장성한 딸인 줄 몰라 적잖이 놀란 레이였다.
은서의 행동에 여울은 못 이기는 척 레이를 보내 주었다. 은서는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느끼고는 여울의 손을 잡고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다시 물었다.
“아빠, 무슨 거짓말을 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죽이려고 해?”
“여길 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여자야. 그 여인 때문에 15분은 더 늦게 도착했지.”
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 나쁜 년이 맞네.”
“응?”
“아니야. 아빠, 가자.”
은서는 다시 여울을 데리고 서울 방어기지 보수 작업에 참여했다.
레이가 목을 쓰다듬으며 뒤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그시 보던 원팀의 이건수가 중얼거렸다.
“뭐야. 누군데 저렇게 몸매가 작품이야.”
탁.
문솔은 그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며 말했다.
“하여튼, 몸매만 보이냐?”
“뭐야, 천하에 문솔이 꿀려서 질투하는 거야? 걱정 마. 한국 사람 중에는 최고니까.”
문솔은 창끝을 들며 대답했다.
“이걸로 쳐 맞을래?”
“미안.”
이건수는 예전에 창으로 정말 엉덩이를 찔렸던 때를 떠올리며 머리를 숙였다.
레이는 건물 안에 들어가 벽에 몸을 기대고는 거친 숨을 헐떡였다.
“허업, 허어, 흐으……. 내가, 내가 그렇게 싫은가…….”
레이의 눈동자는 매우 슬퍼 보였다. 그녀는 좌우로 머리를 털며 눈을 부릅떴다.
“아냐. 이 정도는 예상하고 왔잖아?”
그녀는 입을 앙다물고 다시금 허리를 꼿꼿이 펴고는 걸음을 옮겼다.
* * *
서울 방어기지 거주인들은 사흘 동안 긴장을 놓지 않으며 시체들을 치우고 벽을 보수했다. 그러나 1주일, 2주일이 지나도 몬스터들의 습격은 더 이상 없었다.
사람들은 천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밤에 잠을 편안히 자기 시작했고, 정부와 헌터들은 가까운 지역부터 수색하며 한국에 남아 있는 몬스터들의 수를 먼저 파악했다.
여울도 스올을 찾는 것보다는 서울의 안정화가 우선이기 때문에 몬스터 파악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그 처절했던 전투가 끝난 지 한 달이 되었다.
* * *
마을 중앙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배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고, 그 끝에는 정체 모를 노란 죽을 떠 주고 있다.
철퍽, 철퍽.
한 중년 여인이 배식해 주는 군인을 보고는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아이, 조금만 더 줘.”
군인은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검지로 사람들을 가리켰다.
“저기 사람들 줄 서 있는 것 안 보입니까? 모자라서 다른 사람이 굶으면 책임지실 겁니까?”
중년 여인은 위협적으로 크게 소리치는 군인을 보고는 살짝 몸을 물리며 중얼거렸다.
“에잇, 거참, 되게 팍팍한 양반이네.”
중년 여인이 가고 난 후, 그 뒤로 이것저것 묻은 하얀 원피스에 검은색 낡은 점퍼를 걸친 여인의 차례가 왔다. 시원한 눈썹에 또렷한 이목구비가 대충 보아도 대단한 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푸욱.
배식하던 군인은 죽을 국자가 넘칠 듯이 퍼서 그녀의 배식판에 떠 주며 말했다.
“마, 맛있게 드십시오.”
그녀는 한쪽 눈을 찡그린 채 그를 힐끗 봤다가 시선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맛있기는 개뿔…….”
그녀는 휙 뒤돌아서 도도한 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배식 군인은 방금 한 말은 잊었는지 입을 반쯤 벌린 채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팍, 팍.
레이는 이제 굽이 나가려고 하는 하이힐 굽을 돌바닥에 몇 번 찍고는 짜증스런 얼굴로 근처 테이블에 앉았다.
“제길…….”
자신은 스마트한 두뇌와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든지 자신의 남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세계 랭킹 1위, R랭크 여울이라고 해도 계속 눈에 보이면 자신에게 넘어올 것이라고 생각하여 직장마저 버리고 무작정 한국으로 왔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 많이 좋지 않았다. 미국도 그렇겠지만 수십만 마리의 몬스터 군단이 몰려와 나라 전체가 초토화되었다. 간신히 막았지만 그 피해가 어마어마하여 갈 곳을 잃은 사람들, 부모나 자식을 잃은 사람들도 많았다.
이곳은 여전히 비상사태로 경계령이 선포되어 있는 상태다. 서울 방어기지 내에 거주하는 모든 시민은 경계령과 전시 체계에 따라 벽 보수 및 방어 시설 확충에 힘쓰고 순차적으로 경계 근무를 섰다.
한국에 연고지 하나 없는 레이는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는 상태에다가 여울은 매일 밖으로 나가 위험한 곳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얼굴도 보지 못하고 배식이나 받으며 생을 연장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나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배식을 받는다는 것에 위로를 받으며 그녀는 오늘도 텁텁한 맛의 죽을 떴다.
그때, 길거리 스피커로 젊은 여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서울 방어기지 블루 경계령 해제, 블루 경계령 해제합니다. 모든 예비 헌터와 예비군들은 각자 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블루 경계령…….
블루 경계령은 레드, 옐로우 다음 마지막으로 가장 경계 체계가 미약한 경계령이다. 그것이 해제된 것은 아예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방송을 들은 사람들은 배식을 받다 말고 하늘 높이 주먹을 추켜들며 소리쳤다.
“오, 오, 우와아아!!”
“드디어 안전해졌다!”
“이제, 이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아빠아…….”
사람들은 괴성을 지르며 경계령 해제에 기뻐했다. 레이는 이곳에서 일상생활을 해 본 적도 없으면서 괜히 기뻐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꽉 쥐었다.
‘나이스…….’
이제 작전 시작이다.
레이는 6레벨로 높은 것은 아니지만 들어가고자 하면 어느 길드든 들어갈 수 있는 레벨이었다. 어디 괜찮고 여자 밝히는 길드에 들어가서 계약금부터 받고 이 더러운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여울과 같이 한국으로 입국한 데이빗은 그의 추천으로 한국에서 지원을 받아 작은 연구소를 차렸다. UST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지원이었지만 데이빗은 티를 내지 않고, 겉으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한국 연구원을 지원해 준다고 해도 한사코 거부하며 필요할 때 외부 청탁을 하겠다고 말하고는 혼자 연구소를 사용했다.
“내가 감히 누군 줄 알고…….”
그는 홀로 연구소에 앉아 묽은 액체들을 실험용 컵에 담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힘이 아니더라도 제압할 방법은 많지……. 여울,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주겠다……. 크흐흐.”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여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 * *
저벅, 저벅, 저벅.
서울 북쪽 필드, 백여 명의 헌터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발을 옮기고 있다.
“이제 블루 경계령도 풀렸다고?”
“그렇다잖아. 이제 집 가서 따뜻한 물로 싹 한번 씻고 한 이틀쯤 푹 자야겠다.”
“캬…… 나도 잠 좀 푹 자고 싶다.”
“나는 물 좀 팍팍 쓰면서 씻고 싶어. 아으 찝찝해.”
그들은 수색을 마치고 돌아오는 헌터들이었다. 이제 수색 작업도 번갈아 가며 하니 순차가 한 달에 한 번 올 것이고, 전쟁을 대비한 물과 식량 관리도 자유롭게 풀렸으니 그들은 지금까지 했던 고생이 싹 날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가장 후방에서 은서와 함께 걷고 있는 여울에게 서한이 다가와 물었다.
“어이, 여울이, 오늘 블루 경계령도 풀렸다는데 그냥 해체할 겨?”
여울은 서한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며 그와 미국 헌터사령관이었던 크레크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죽음이 기억나 살짝 미간을 좁히자 서한이 말을 이었다.
“에이, 됐어, 됐어. 뭘 그렇게 인상을…….”
그때, 옆에서 듣던 은서가 여울의 팔을 감으며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와 대신 대답했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죠~ 오늘 파티해요 파티~!”
서한은 씨익 웃음 지으며 검지로 은서를 가리켰다.
“역시 센스 있어. 꼬마, 파티는 어디로?”
“씻고 나서 우리 집으로?”
그녀의 대답에 서한은 한 손을 들어 손뼉을 마주쳤다.
“좋아 완벽해. 이제 하산해.”
“넵, 스승님.”
여울은 정신없이 둘의 대화를 듣다가 마지막에 은서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가 어떻다고?”
“응, 아빠는 몰라도 돼. 그냥 나만 따라와.”
“그래, 그러지.”
여울은 오랜만에 기분이 들떠 보이는 은서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끼기기기기기기긱.
육중한 무게의 북문이 열리고 수색을 나갔던 헌터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뭐, 뭐야 이게?”
“오홋!”
문을 넘어서자 양쪽으로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길을 만들었고, 수색대를 보고는 박수와 환호를 하며 그들을 반겼다.
휘유우우우!
“우와아아아!!”
“고생하셨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헌터분들!”
“고맙습니다!”
사람들의 환대에 헌터들은 함박웃음을 지은 채 두 손을 높이 들고 흔들며 답례했다. 여울의 팔뚝을 붙잡고 딱 붙어 있는 은서는 사람들을 보며 코를 찡긋거렸다.
“남들 짓밟으며 튈 땐 언제고……. 고맙겠지, 앞에서 싸우는 건 다 우리니까. 환대 말고 딴 건 없…….”
여울은 은서의 머리 위에 두꺼운 손을 턱 올려 투덜거림을 멈춰 세웠다.
“보호받는 자와 보호하는 자는 언제나 존재해. 우리 은서가 지금 힘을 얻게 된 건 저런 사람들 지키라고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다.”
은서는 고개를 들어 여울을 보며 되물었다.
“마음 편해지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진심인 거야?”
여울은 은서의 맑은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젠…… 진심이다.”
은서는 입을 샐쭉 내밀며 고개를 돌렸다.
“으흥…… 그렇구나.”
저 멀리 사람들 사이로 한 소녀가 두 손으로 우유를 꼭 쥐고는 은서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