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90
190
연구소 안쪽 비밀 공간, 여덟 개의 커다란 모니터가 켜져 있는 방 안에 데이빗이 의자에 쪼그려 앉아 손톱을 뜯고 있다.
“왜…… 왜 죽지 않은 거야! 젠장, 다른 수가 필요해.”
데이빗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팍 치며 일어섰다. 그러고는 연구실로 향하는 길에 문이 열렸다.
끼이익.
자신이 연 것이 아닌 바깥쪽에서 열린 것이다. 빛이 새어 들어오며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데이빗은 그 얼굴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 남자, 여울은 데이빗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대체, 왜 그랬습니까?”
여울의 물음에 데이빗은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놈이 전부 망쳤잖아! 전부! 네가 와서 내 모든 것이 파괴되었어!”
데이빗은 그렇게 외치며 주변에 있던 약병을 집어 던졌다. 여울은 그중 액체가 들어 있는 것 하나를 손으로 낚아채고는 물었다.
“이것도 독입니까?”
데이빗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울은 그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그것을 단숨에 삼켜 버렸다. 그 돌발적인 행동에 데이빗은 화들짝 놀랐다. 그것은 다른 성분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독이기에 훨씬 더 독성이 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크, 크흐흐…… 스스로 자살을…….”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던 데이빗은 멀쩡한 얼굴로 유리병을 살피는 여울을 보고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이딴 걸로 내 딸을 해치려고 했습니까?”
여울은 어마어마한 살기를 내뿜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뒷걸음치며 중얼거렸다.
“다른 방법도 많지…….”
데이빗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신을 증오하고 경멸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다. 대체 무엇이 이자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여울은 그가 방금 전에 외친 말을 곱씹어 보았다.
여울로 인해 미국 내에서 그의 명예가 실추되고, 마족들이 모여들면서 연구소 연구원들이 학살당해 다시는 일어서기 힘든 위치까지 떨어졌다.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할 만도 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정말로 자신의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감입니다. 저만 건드렸으면 죽이지는 않았을 텐데.”
여울은 그렇게 말하면 오른손에 디카르를 생성시켰다. 데이빗은 품에서 총을 꺼내며 외쳤다.
“내가 네놈한테 당할 줄 알아?!”
여울은 그 모습에 고개를 떨어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총으로 자신을 해칠 생각을 한다는 것이 웃겼다. 그런 것도 계산하지 못하는 자가 아닌데,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정평이 나 있던 자였는데 이렇게 망가진 것이다.
타앙!
그때 방아쇠를 당기는 감각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소리는 닿았는데 총알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눈앞에는 머리 한쪽이 터져 나간 데이빗이 보였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에 총을 겨눈 채 쓰러져 있었다.
자신에게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뜻이었나? 확실히 그의 생각대로 끝나니 마음이 착잡하다.
여울은 한 손을 들어 그의 눈을 감겨 주려다가 멈추고는 뒤돌아섰다.
곧이어 그 비밀 공간으로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몇몇은 들어오자마자 흉측한 꼴을 보고는 놀랐다.
“허업.”
“괜찮으십니까?!”
신입 경찰 중 한 명이 여울에게 안위를 걱정하는 말을 했다가 금세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감히 누가 이 사람을 해칠 수 있단 말인가?
여울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마석이 존재하기 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가장 보존이 잘된 도시인 서울 방어기지, 중앙 3차 1구역.
51층 빌딩 위에 거대한 전광판에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R랭크 헌터 여울, 그의 딸을 암살 시도한 용의자는 전 UST 소장 데이빗이었습니다.
―여울 헌터가 데이빗 소장을 한국으로 망명시킨 것으로 밝혀져 더욱 충격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붉은 코트에 금발을 휘날리며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여인. 그녀는 얼굴이 가려져 있어도 지나가는 뭇 남성들의 시선을 무조건 빼앗을 정도의 이상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전광판을 보며 선글라스를 벗고는 중얼거렸다.
“저 늙은이, 눈빛이 어쩐지 음흉하더니……. 쯧쯧.”
그녀, 레이는 혀를 끌끌 차고는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떼었다.
레이는 현재 서울의 10대 길드 안에 드는 ‘붉은전갈’이라는 길드 부길드장의 눈에 들어 정보부로 들어갔다. 그 변태 같은 부길드장이 하루가 멀다 하고 귀찮게 들러붙지만 하는 일에 비해서 많은 월급을 주는 괜찮은 직장이다.
여울에게 다가가기에는 최적이다. 그는 지금 딸 암살사건으로 인해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 보통 이때는 그를 기피하겠지만 자신은 그 반대다. 지금이야말로 빈틈이 빈틈이 없었던 그의 가슴을 파고들 절호의 타이밍이다.
레이는 미리 파악해 둔 여울의 거처가 있는 구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같은 시각, 은서와 보라가 입원해 있는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거칠게 연 장본인은 바로 은서 아빠 여울이었다.
“은서야!”
“아빠!”
상체를 일으켜 병실 TV로 뉴스를 보고 있던 은서가 토끼처럼 귀를 쫑긋하며 머리를 내밀었다. 여울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 은서를 덥석 껴안았다.
“아악, 아파.”
여울은 은서의 말을 무시하며 그대로 가만히 안고 있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보라가 이죽거렸다.
“아이고, 부녀 상봉이 아주 눈물겹네. 누가 보면 몇 년 만에 만난 줄 알겠다.”
은서는 여울에게 안긴 채 보라를 째려보며 대답했다.
“죽다 살아났으니 그것보다 더하지.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언니.”
“부럽기는 무슨……. 눈꼴사나워서 그렇…….”
그때, 여울이 뒤돌아서 보라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뒤로 물렸다. 여울은 은서가 보고 있는데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에게 손을 뻗어 확 껴안았다. 그렇게 볼과 볼이 닿은 상태에서 여울이 속삭였다.
“고맙다. 네 덕분에 은서가 살 수 있었어. 진심으로 고맙다.”
보라는 볼에 홍조를 띤 채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 그래요. 내 덕이 맞지…….”
보라는 말과는 다르게 당황한 얼굴로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은서와 딱 마주쳤다. 보라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여울을 손으로 밀치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 은서도 일어났겠다. 몸이 괜찮은 건 누구보다 잘 알겠다. 이제 집에 가자. 지루한 병실에서 사흘이나 있었더니 엄청 몸이 배기네.”
그녀의 말에 은서가 손뼉을 치며 거들었다.
“맞아! 얼른 집 가서 파티하자! 그때 그 짜증 나는 우유 때문에 못 했잖아?”
여울은 뒤돌아 은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집에 가자.”
* * *
서울 방어기지 내에 가장 안전한 3차 벽 안쪽 4구역.
11층 빌딩의 가장 마지막 층으로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은서가 독이 든 우유를 먹고 난 후로 독단적으로 수사하던 수언이 가장 먼저 왔다.
“으, 은서야!”
멀리 있어서 은서가 깨어난 소식을 듣고 이제야 도착한 수언은 신발을 내팽개치듯이 벗어 버리고는 달려들어 왔다. 보라와 함께 요리하던 은서는 위생 장갑을 낀 채 수언을 맞이했다.
“오빠 왔어?”
수언은 고춧가루가 묻은 은서의 손을 덥석 잡으며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괜찮아? 이제 안 아파?”
은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혀 짧은 소리로 대답했다.
“웅, 이제 안 아파. 나 다 나았어.”
여울이 로디스에 가 있던 지난 1년 6개월 동안, 은서가 가장 의지하고 기댔던 사람은 지연도, 보라도 아닌 수언이었다.
지연은 알게 모르게 뒤에서, 보라는 수언 못지않게 은서를 챙겼지만, 수언은 거의 사명감을 가지고 그녀를 챙겼다. 여울에게 전에 문자를 받고 난 이후로 자신도 모르게 은서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이 피어오른 것이다.
“크흠.”
두 손을 맞잡고 있는 은서와 수언을 보며 여울이 헛기침했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혼자 놔둔 상태에서 은서를 제 몸같이 보살펴 준 인연.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 바라보고 있어도 무작정 화를 낼 수 없는 여울이었다.
그 소리에 수언은 화들짝 놀라 은서의 손을 놓았다.
그때,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딩동.
‘여기 집 맞아?’
‘주소는 맞는데.’
‘문부터 고급스런 분위기가 폴폴 풍긴다야.’
문 너머에서부터 시끌시끌하다. 서한을 비롯한 원팀의 팀원들인 담덕, 이건수, 문솔, 무영이 도착한 것이다.
은서는 다급히 위생 장갑을 벗고 문을 열어 줬다. 서한은 무언가가 가득 담긴 검은 비닐 봉투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꼬맹아! 퇴원 축하한다!”
“아저씨는 올 때마다 뭘 사오는구나. 좋네.”
“크크크, 그렇지.”
서한은 봉투를 수언에게 건네고는 현관문에 서서 집을 둘러보았다.
“이야, 이건 정부에서 준 거야, 직접 산거야? 집 진짜 좋다.”
서울에 새로 마련한 여울의 집은 복층 구조로 되어 있어, 천장이 높고 남쪽이 통유리이기 때문에 햇살이 그대로 들어와 집 전체에 따뜻한 기운이 넘쳤다. 집 중앙에는 빙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소파가 배치되어 있었다. 전에 수원에서 살던 곳보다 조금 더 넓고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은서와 보라가 함께 고른 집이다.
서한의 말에 건수가 거들었다.
“내 집도 이랬으면 좋겠다.”
“돈 많이 벌자.”
“아직도 돈이 모든 물건에 통용되는 시대라는 게 슬프군요. 대장.”
“우리가 그 돈을 쓸어 모으기 좋은 직업이라는 걸 잊지 마.”
“그렇긴 하죠.”
그들이 만담을 나누는 사이 길드 사무를 보고 있던 지연과 둥둥, 그의 연인 진사라가 도착했다.
여울을 제외하고도 대형 길드에 버금가는 전력이 한 집에 모인 것이다.
은서와 둥둥은 서로 이렇게 만난 지 반년이 넘은 듯하다. 진사라와 연인이 된 후로 개인적으로는 거의 마주칠 때가 없었던 것이다.
“은떠 이데 안 아픈 거냐?!”
은서는 팔짱을 끼고는 입을 삐죽 내밀며 대답했다.
“몰라. 내가 아픈데 얼굴도 안 비추고. 저 여자가 그렇게 잘해 줘?”
은서의 말에 사라가 살짝 턱을 든 오만한 표정으로 둥둥 대신 대답했다.
“얼굴을 보였어도 눈을 감고 있으니 보였을 리가…….”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듣지 못한 은서가 의문을 표하며 둥둥을 보았다. 그러자 그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은떠 이번해쓸 때 바로 차자가따. 이틀 저네.”
“그, 그랬구나……. 아무튼 진짜 오랜만이네.”
“은떠 갠차나서 다행이다. 사라 둥둥하테 잘해 준다.”
사라는 그것보라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은서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시끌시끌한 손님맞이가 끝나고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었다.
* * *
이단 생크림 케이크에 평화의 시대를 알리는 촛불이 점화되고, 서로 축하하며 그것을 함께 불었다. 여울은 그 행복한 때에 이들에게 스올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에 대해 알리지 못했다.
서한은 맥주 한 잔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머리 위로 털며 말했다.
“크하, 술맛 좋다. 이게 얼마 만이냐. 오늘은 진짜 마음 놓고 제대로 취해야지!”
은서는 한 손을 손바닥이 보이게 들어 올렸다.
“진상 사절.”
“흐흐…… 아, 근데 이거 모자랄 것 같은데, 나가서 좀 사와야겠다.”
서한의 말에 무영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사 오겠습니다. 대장, 몇 개 사올까요?”
“아냐, 아냐. 이럴 때 막내 시키면 나만 욕먹어. 앉아 있어. 바람 좀 쐴 겸 갔다 올게.”
서한은 무영을 억지로 앉히고는 집 밖으로 나왔다.
이제 집 근처에 항상 있었던 편의점은 아예 사라지고 구역 구역마다 그곳을 대표하는 마트 서너 개만이 존재했다. 몬스터 관련된 직업이 많아지니 유통 관련 사람들이 부족하고, 건물도 방어 위주로 짓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마트로 가는 길, 서한은 골목길 어귀에서 우뚝 멈춰 섰다.
“어라? 저건 또 뭐야.”
골목길 끝에는 붉은 코트를 입은 한 여인이 세 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