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91
191
또각, 또각, 또각.
물감으로 칠한 것처럼 붉은 코트에, 안에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여인이 도도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코트 중앙이 벌어지며 새하얀 각선미를 살짝살짝 드러내고 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남성들이 홀린 듯이 시선을 빼앗긴 채 서 있었다. 연인과 함께 걷다가 옆구리를 꼬집히는 남성들도 보였다.
금발의 미녀, 레이는 여울이 사는 곳으로 가는 중이다. 그곳 주변을 탐방하며 여울과 우연히 마주할 곳을 익혀 둘 생각이다.
‘하…….’
레이의 뒤로 다리를 훔쳐보며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사내 세 명이 따라붙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음흉함이 가득했다.
‘어딜 가든 머리 비고 음욕만 앞서는 놈들이 있구나.’
레이는 발끝을 돌려 음침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들은 옳다구나 싶어 더욱 빠르게 뒤를 쫓았다. 그녀는 일부러 더욱 사람이 적고 막다른 길로 들어갔다. 그들은 다 잡은 먹잇감을 보듯이 그녀의 뒤태를 감상했다.
“으흐흐…….”
“저 엉덩이 실룩거리는 거 봐라. 쓰러지겠네.”
“완벽한 몸매의 백마라니, 이게 웬 횡재냐.”
사내들은 레이가 들리게 대놓고 저마다 음담패설 하나씩 던지면서 윗입술을 핥았다.
스윽.
레이는 뒤돌아서 한쪽 다리를 작은 박스 위에 올려놓고는 치마 밑단을 잡았다. 그러고는 도발적인 미소를 흘리며 서서히 올리자 새하얀 허벅지와 그 깊은 곳이 보일 듯 말 듯했다.
“헙, 허억.”
“흐어…… 이 아가씨 왜 이러냐. 미치겠네.”
그들은 침까지 흘리며 눈이 돌아가고 있다. 레이는 그곳에서 은색의 조그마한 단검을 꺼내어 들었다. 그러자 사내들이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허헛, 참, 아가씨, 우리 헌터야. 괜히 설쳐서 그 예쁜 얼굴에 상처 내지 말자? 응?”
레이는 단검을 역수로 잡고 턱 아래까지 들어 올리고는 살쾡이처럼 말했다.
“발정 난 돼지 같은 놈들. 어디 한번 만지고 싶으면 이리 와서 만져 봐.”
사내들은 무기도 꺼내지 않고 펼쳐서 다가오며 말했다.
“이 아가씨가 야하게 생긴 만큼 도발도 참 섹시하게 하네. 그래 한번 맛 좀 보자!”
“나 먼저!”
그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성을 잃고 레이를 덮쳐 왔다. 레이는 먼저 다가가 단검을 반박자 빠르게 뻗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머리 위로 누군가가 떨어져 내렸다.
콰앙!!
하늘 위에서 뚝 떨어진 남자는 방금 전까지 레이를 덮치던 사내의 머리를 밟고 서 있었다. 그의 등장에 다른 두 사내가 한 걸음 뒤로 떨어지며 허리춤에서 검을 들었다.
남자, 서한은 검지로 사내들을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그거 아니야. 검 내리면 딱밤, 검 들면 주먹 나간다.”
“뭐래, 이 미친놈이!”
두 사내는 망설임 없이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한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마주 뻗었다. 분명 두 박자는 늦게 뻗었는데 어느새 주먹이 사내의 아래턱을 격타하고 있었다.
꽈앙!
사내의 아래턱이 옆으로 밀리는 것으로 모자라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서한의 등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는 사내는 아직 어떤 상황인지 파악도 하지 못한 찰나의 시간이었다.
서한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왼손 손바닥으로 반대쪽 사내의 턱을 올려 쳤다.
퍼억!
살짝 벌어진 사내의 입이 강제로 닫히며 몸이 붕 떠올랐다.
쿵! 쿠웅!
공중에 떠 있던 두 사내가 동시에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서한은 그들을 보며 손을 탁탁 털고는 뿌듯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방금 구해 준 여인은 예전에 여울이 목을 졸라 죽이려고 했던 여자였다.
금발의 외국인에 어디에서도 눈에 띄는 미모의 여인이기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어, 당신은?”
레이는 검지로 자신의 턱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를 알아?”
서한은 말실수를 깨닫고는 입을 벌린 채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모르지.”
레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를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수작은……. 고맙다는 말 들을 생각이면 그냥 꺼져. 저놈들이 운이 좋은 거니까.”
“아, 뭐 그러시겠지. 그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검에 걸렸으면 저놈들 거시기가 다 잘렸겠구먼.”
비꼬는 서한의 말에 레이는 검 끝을 그에게 돌렸다.
“잘라 줄까?”
서한은 두 손으로 그곳을 다급히 가리며 짐짓 무서운 척 뒷걸음질을 쳤다.
“어우, 어휴, 그럴 리가. 주인 잘못 만나서 아직 마음껏 꿈을 펼치지도 못한 불쌍한 놈인데……. 그럼 이만, 살벌한 아가씨.”
서한은 골목이 꺾이는 끝까지 그곳을 가린 채 뒷걸음질로 사라졌다. 정말로 그냥 갔다. 자의든 타의든 이렇게 자신에게 빚을 지우고는, 번호도 따지 않고 가는 사람은 처음 본다.
레이는 그가 사라진 곳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상한 놈이네…….’
* * *
딩동, 딩동, 딩동.
여울의 집, 초인종 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은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누구 귀먹은 줄 아나. 확 안 열어 줄까 보다.”
은서가 문을 열어 주자 서한이 양손 가득 맥주 캔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짜잔!! 아주 그냥 절대 안 모자라게 사왔지롱!”
“아이고, 잘하셨네요. 그런데 나는 미성년자라 좋아해 주질 못하겠네요. 얼른 들어오기나 해요.”
“으허허.”
서한은 총총걸음으로 들어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 위에 맥주를 놓았다. 그래도 팀장이라고 팀원인 담덕과 무영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대장, 수고 많으셨수!”
“대장,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요? 뭐 좋은 일 있었어요?”
서한은 눈동자를 위로 올려 레이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응? 좋은 일? 그런가? 아무 일도 아니야. 마시자~!”
“마셔, 마셔!”
건수는 그가 오자마자 바로 맥주부터 받아 꼴깍꼴깍 마셨다. 술을 마시지 않는 여울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바람을 쐬기 위해 베란다로 나왔다. 그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연도 따라 일어섰다.
“나 잠깐만…….”
“엇, 어딜 가요 지연 씨~ 지연 씨가 가면 나 외롭쥐~”
서한과 함께 부어라 마셔라 하던 건수가 지연을 붙잡았다. 그녀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하하, 저 잠시 화장실 좀……. 드시고 계세요.”
“아, 아아, 미안합니다. 내가 그렇게 또 매너 없는 사나이는 아니지. 다녀오쉽시오~!”
그때 맥주병이 건수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렸다.
쿵.
“아흑.”
“곱게 처마셔, 여자들한테 껄떡대지 말고.”
문솔이었다. 건수는 혹이 난 뒤통수를 말없이 만지작거리고는 다시금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지연은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와 살금살금 베란다로 향했다. 그곳에 여울이 가 있다는 것을 아는 보라는 미세하게 미간을 좁히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 모습에 은서가 보라의 어깨를 툭 밀치며 말했다.
“왜, 질투 나나?”
“질투는 개뿔.”
“내고 있는데 뭐. 둘은 그런 사이가 될 수 없으니까 걱정 마요.”
베란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보라는 고개를 돌려 은서를 보았다.
“뭐야, 뭔가 자기는 알고 있다는 말투는. 기분 나쁘게끔.”
“풋.”
“웃지 마라, 꼬맹아.”
은서는 손바닥을 자신의 머리 위에 댔다가 보라의 머리 위에 올리며 말했다.
“이제 키는 내가 더 큰데?”
“키만 크면 뭐 해? 꼬맹인데.”
보라는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은서의 가슴에 시선을 돌렸다. 은서는 얼굴을 붉히며 인상을 팍 쓰며 소리쳤다.
“뭐, 이 젖소야! 가슴만 크면 다냐!”
서한은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이구, 저 아가씨들 주제가 참 화끈하네. 어우, 취해라.”
그 시각, 베란다에서 밖을 보고 있는 여울에게 지연이 다가왔다.
“저…… 일권 아저씨한테 김진후 씨 이야기 들었어요.”
여울은 여전히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금 있다가 작게 대답했다.
“……응.”
지연은 고개를 숙인 채 반걸음 더 다가와 말을 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지연의 말에 여울의 고개가 돌아갔다. 여울은 그녀의 앙다문 입에서 꼭 듣고 싶다는 의지를 느꼈다. 그는 다시금 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가 언데드라는 것은 알고 있나?”
“네? 어, 언데드라니…….”
지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인 채 과거의 일들을 떠올렸다.
갑자기 시리도록 차가워진 몸, 다시 나은 팔, 냉기를 부리는 힘, 거의 먹지 않으면서도 지치지 않았던 진후.
조금 이상하지만 냉기라는 특성의 힘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런데 그것이 언데드라고 생각하니 모든 의문이 퍼즐처럼 착착 맞춰졌다.
지연은 한참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 었군요. 많이, 많이 괴로우셨겠네요.”
“그에게 원래의 생명을 빼앗고 언데드의 생명을 준 존재가 있다. 그 마녀로 인해 몇 번이나 몸을 빼앗겨 폭주했었지. 그러나 죽기 전에는 이 세상의 재앙을 막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마지막에는 언데드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 좋아했지.”
담담한 듯이 얘기하는 여울의 말에 지연은 손으로 입을 막고는 눈물을 흘렸다.
“흐읍, 흡…….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흐윽…….”
여울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가 부럽다. 자신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당신과 일권처럼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지연은 그의 말에 눈물을 그치고는 가만히 생각했다.
바로 몇 달 전만 해도, 여울의 말대로 자신의 마지막이 이때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죽은 사람이 수백만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진후의 마지막이 부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과연 이 세계 최강의 남자에게도 마지막을 선택할 수 없을 만큼 죽음이 갑자기 들이닥칠까? 아마 가능성은 거의 전무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눈물을 완전히 그친 지연은 뒤돌아서며 말했다.
“그만 들어가야겠네요. 보라 눈빛 때문에 뒤통수가 뚫어질 것 같으니까.”
“으음…….”
여울은 머쓱해하며 지연과 함께 베란다를 벗어났다.
“어엇, 드디어 왔다!”
“어이, 데이트 재미있었수?”
“야야, 말조심해. 보라 씨 눈에서 살기가 느껴졌어.”
거실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시끌시끌하게 놀고 있다. 수언과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은 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은서가 보인다. 그 옆에 자신을 고양이처럼 노려보고 있는 보라도 보이고, 두 손을 위로 추켜올리며 과장되게 표현하는 건수와 서한도 보인다.
케라브에서 만난 인연들, 그전에는 은서 이외에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았는데 참 신기하다. 지금은 없어선 안 될 사람들, 모두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다.
여울은 다시금 굳게 결심했다. 자신의 사명은, 이렇게 강한 힘을 얻게 된 이유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 마지막 위험 인자, 스올을 꼭 찾아 없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