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95
195
황량한 도시, 모래바람만이 처량하게 길가에 휘몰아치고 있다. 몬스터도 사람도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그곳에 한 남자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다른 자의 기운.’
남자, 여울은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발끝을 돌렸다.
척.
옆으로 꺾자마자 폐차들과 부서진 콘크리트들로 길이 막혀 있고, 열댓 명의 헌터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음? 뭐야, 망 안 봤어?”
턱수염이 가득한 사내가 여울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러자 다른 사내가 저 멀리서 망을 보고 있는 여인을 보며 대답했다.
“한 명이라서 못 봤나 봅니다.”
“한 놈이라…… 어쩔까.”
“어차피 이제 갈 거 아니었습니까? 데리고 가죠.”
여울은 가만히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한국말을 쓰고 있는데 자신을 몰라본다. 방어기지 밖 필드는 통신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그렇다면 필드로 나와 산 지 오래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턱수염 사내는 여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지 뭐. 근데 희한하네. 검도 없이 여기를 혼자 돌아다니고. 이봐, 당신, 먹을 거 필요하면 같이 가지. 우리 본부로.”
생김새나 풍기는 기운은 위협적인데 호의를 베푼다. 자기 기운을 숨길 수는 있어도, 거짓 기운을 풍길 수는 없다.
여울은 몸을 돌려 뒤돌아서며 대답했다.
“됐다.”
스릉, 스르릉.
그의 말에 바로 검 뽑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울은 고개를 느릿하게 돌려 그들을 보았다. 턱수염 사내는 서슬 파란 검 끝을 여울에게 가리키며 비릿하게 웃었다.
“됐으면, 그냥 여기서 뒤지시든가.”
한국에선 아직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몬스터보다도 더 두려워하는 도적들인 듯했다. 턱수염을 필두로 열댓 명의 도적이 검을 쥐고 달려들었다.
여울은 그 모습을 보며 디카르로 감싸여 있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휙!
여울은 가장 가까이 달려오는 놈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주먹이 놈의 왼쪽 턱에 닿자 턱뼈가 옆으로 밀려나며 몸이 한 바퀴 휙 돌았다.
놈의 몸이 아직 땅에 떨어지기 전에 오른쪽에서 검이 뻗어 왔다. 여울은 손을 펴서 마주 뻗었다.
우지직!
손바닥과 닿은 검은 종잇장처럼 구부러지며 놈의 얼굴까지 덮쳤다. 놈은 구부러진 검이 얼굴에 박힌 채 뒤로 날아갔다.
반대편으로도 검이 날아든다. 여울의 눈으로는 수십 배율의 슬로 모션과 마찬가지다. 그는 엄지와 검지로 검날을 잡아 안쪽으로 당겼다. 그러고는 검과 함께 딸려 오는 사내의 얼굴을 팔꿈치로 찍었다.
퍼석!
팔꿈치는 놈의 코뼈를 뭉개고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놈의 눈알을 빠져나오게 했다.
가장 뒤에서 돌격 지시를 내렸던 턱수염 사내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눈만 끔뻑이고 있다. 분명 피할 수 없는 검이었는데 어느새 그의 손에 잡히거나 뭉개졌다. 그의 움직임은 고장 난 비디오처럼 툭툭 끊겨 보였다. 그사이에 그는 항상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눈으로 좇을 수 없는 것이다.
투둑, 투두두둑!
그렇게 상황 파악도 할 새 없이, 덤벼들던 턱수염의 부하들은 채 30초도 되지 않아 쓰러져 내렸다. 공중에 떠 있던 세 명의 부하도 바닥에 떨어졌다. 맨손으로 검을 구부리는 자,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괴, 괴물이야…….’
턱수염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이미 여울이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걸음은 느려 보이면서도 한 걸음에 4, 5미터씩 쭉쭉 좁혀졌다.
턱수염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나, 날 죽이면 공포의 화신이 용서치 않을 것이야!”
그의 말에 여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포의 화신?”
놈은 협박이 먹혀들어 가는 줄 알고 어깨를 살짝 펴며 말을 이었다.
“그, 그래 우리는 공포의 화신 오큘러스님을 섬기는 신도들이다!”
“오큘러스?”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화신, 아무튼 신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니 스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턱수염은 여울이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자 더 겁주기 위해 으름장을 놓았다.
“공포가 쌓이면 이 세상에 현신하여 우리에게 천국을…….”
그때 여울이 주먹을 가볍게 뻗었다.
퍽!
“크헙!”
주먹에 밀려난 놈의 코뼈가 안쪽으로 함몰되었다. 놈은 코를 부여잡고 뒹굴며 고통을 호소했다. 여울은 놈의 머리채를 낚아챘다.
“재미있겠군.”
‘어, 이게 아닌데…….’
* * *
오큘러스 본진, 사형 집행인 사완은 민서를 검지로 가리켰다.
“나오라고. 꼬맹아.”
그 철창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벙 찐 표정으로 민서와 사완을 번갈아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안타까움보다는 다행이라는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투둑, 투두둑!
사완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자 사람들이 일제히 민서를 밀기 시작했다. 옆집 아저씨도, 엄마 친구인 아주머니도 은서를 가차 없이 밀어 버렸다. 그들의 자식보다도 어려 보이는 아이를 밀어 대는 것을 보며 사완이 이죽거렸다.
“크크크, 인간은 역시 재미있는 놈들이야.”
힘없이 떠밀린 민서는 철창 밖 사신과도 같은 사완 앞에 우뚝 섰다. 그는 민서에게 씨익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뒷머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악!”
“흐흥, 흐흐흥.”
사완은 콧노래를 부르며 민서를 강단 위로 질질 끌고 갔다. 그러고는 전날에 희생된 사내가 죽었던 철 십자가에 사지를 묶었다. 민서는 그 사내처럼 저항하지 않았다.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만은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됐어. 여기 계속 있느니, 죽는 게 나아……. 그런데 그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죽었더라…….’
어떻게 죽었는지 떠오르는 순간 민서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들이라고 편하게, 한 번에 죽은 것이 아니다. 사람이 느끼는 고통의 강도 중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화형, 산 채로 불에 태워지는 것이다.
그때 사완이 민서의 귓가에 사악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 재앙 전에 내가 어떤 일 했었는지 알아?”
민서는 두려움에 덜덜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모, 모르겠어요…….”
“소아과 의사. 크크…… 그래서 너 같은 어린 새끼들을 보면 얼른 죽여 버리고 싶어.”
차르릉, 차르릉.
그는 민서의 주변을 천천히 돌며 두 개의 단검을 부딪쳐 갈았다.
“내가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선물을 줄게. 살아 움직이는 본인의 내장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흐, 흐, 흐으…… 흐으윽, 제발, 그냥 죽여 주세요…….”
사완은 민서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우는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혈관만 피해 가면 피도 별로 안 나. 얼마나 신기한지……. 너도 기대되지?”
“흐읍, 흑…….”
민서는 고개를 떨군 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사완은 갑자기 인상을 팍 찡그리더니 단검을 그녀의 배에 깊이 찔러 넣었다.
푸욱!
“커헉!”
차가운 금속이 민서의 뱃가죽을 뚫고 몸 안 깊숙이 들어왔다. 사완은 누런 치아가 다 보일 정도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처울기만 하면 어떡해? 기대되는지 얘기를 해 줘야지?”
그는 고개를 숙여 단검이 깊게 박힌 민서의 배를 보며 말을 이었다.
“봐 봐. 피가 거의 안 나지? 여기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즈즈즈…….
그는 단검을 그 조그마한 아이의 배에서 옆으로 이동했다. 민서는 정신을 놓아 버릴 것 같은 끔찍한 고통에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호흡 곤란에 빠져 있었다.
“끄어어어…….”
그는 민서의 배를 15센티미터가량 찢고는 그 안에 엄지와 검지를 집어넣어 무언가를 살살 꺼내기 시작했다. 빨간 튜브와도 같은 것이 그의 이끌림에 따라 배 밖으로 나왔다. 민서는 이미 눈이 돌아가 그것을 볼 새도 없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사완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기절? 이런 쌍년이, 여기가 제일 중요한 건데!”
사완은 민서의 피가 잔뜩 묻은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촤아아악!
그런데 민서의 얼굴에 닿은 것은 그의 손바닥이 아닌 피였다. 새빨간 피가 민서의 얼굴에 흩뿌려진 것이다. 사완은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려 팔을 쳐다보았다.
팔뚝이 붙어 있어야 할 곳이 깔끔하게 잘려 피를 울컥울컥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팔은 바닥에 떨어진 채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다.
“으, 으, 으아아악!”
사완은 그 충격적인 장면에 비명을 내지르며 고개를 홱 돌렸다. 시야에 무언가 잡히려는 순간 검은 손이 자신의 얼굴을 덮쳐 왔다.
콰앙!!
그와 동시에 사완은 뒤통수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머리가 바닥에 박힌 것이다.
“커헉, 허억, 끄어어…….”
머리가 부서질 것 같은 고통에 신음을 흘리는 사완의 귓가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프냐?”
사완은 그 와중에도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나머지 한 손에 들린 단검을 휘둘렀다.
서걱.
싸늘한 느낌과 함께 멍해졌던 머리가 정신을 차리며 시야가 돌아왔다. 눈앞에는 왼손과 동일하게 잘려 나간 자신의 팔이 보였다.
“끄아아아…… 읍!”
비명을 지르던 사완은 정체불명 남자의 발에 의하여 입이 봉해졌다. 그는 검은색 일색으로 옷을 입고 있는 건조한 눈빛의 남자였다.
남자, 여울은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입을 열었다.
“살고 싶으냐?”
사완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이 밟혀 고개가 제대로 끄덕거려지지 않자 눈을 수십 번이나 깜빡이며 삶에 애착을 보였다.
여울은 눈이 돌아간 채 혼절해 있는 민서를 한번 보았다가 다시 그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아래쪽으로 디카르를 휘둘러 두 발목을 잘랐다.
서걱!
“으, 으읍!!”
여울은 그의 목덜미를 잡고 사람들이 잡혀 있는 철창 쪽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여자아이, 민서의 상처를 살폈다. 조금 끄집어냈을 뿐 잘리거나 흠집이 난 내장은 없다. 여울은 디카르를 거두고는 맨손으로 그것을 조심스럽게 집어넣고 죽 그어진 상처에 오우거 네임드의 피를 뿌렸다.
치이이이이.
썩은 고기가 타는 것 같은 역한 냄새와 함께 민서의 살이 천천히 붙었다. 여울은 그녀를 철 십자가 아래 강단에 내려놓고는 철창에 갇힌 사람들을 풀어 주었다.
“이자의 뒤처리는 당신들에게 맡기겠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구, 구조대가 온 겁니까?!”
“우리 이제 살 수 있는 건가요!”
여울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주머니에서 식량을 조금 내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남쪽으로 가라. 이틀 안에 구조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민서의 엄마 친구인 중년 여인이 사납게 소리쳤다.
“구해줬으면 구조대 만날 때까지 봐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아아…….
그녀의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뒤돌아가던 여울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가? 그럼 생각을 바꾸겠다. 방해가 되는 너희들을 모두 죽이겠다.”
여울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