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97
197
고층 빌딩이 반토막이 나서 옆 건물에 쓰러져 있다. 그에 따라서 도미노처럼 다른 건물들도 연달아 무너져 있다. 재앙 이후로는 이렇게 무너진 건물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름 모를 사람들의 시체가 흐트러져 있고, 몬스터들이 코를 벌름대며 어슬렁거리고 있다.
캬하…….
리자드맨이 검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머리 위에 그늘이 드리워지자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 빛을 가리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의 손에는 검은 대검이 잡혀 있었다.
꽈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리자드맨을 중심으로 주변에 있던 모든 몬스터가 무형의 기에 짓눌려 일제히 터져 버렸다.
키학!
캬하아!!
범위 밖에 있던 몬스터들이 그에게 창을 들이대며 달려왔다. 그는 대검을 갑자기 둘로 나누어 한손검으로 바꾸더니 양쪽으로 넓게 휘둘렀다. 아주 미세하게 검은 빛을 띠는 바람의 검기가 뻗어 나가 달려오던 몬스터들의 몸을 관통했다.
촤좌좌좌좍!
놈들은 창 한 번 던져 보지 못하고 허리가 두 동강이 나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
휘이이잉.
이제 그곳에는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잠깐 사이에 바닥에 피를 뿌리며 죽어 나간 몬스터의 수는 수백 마리가 넘었다.
스윽.
그 남자, 여울은 디카르를 몸 안으로 회수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때 의식 한구석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삑!
여울은 그 소리가 들려오는 즉시 우뚝 멈춰 서고는 바로 안주머니에서 새하얀 무언가를 꺼내어 들었다. 손톱만 한 조그마한 새, 시이다.
삐이잉!
시이는 기지개를 펴듯이 날개를 양쪽으로 쭉 펴며 노란 부리를 쩍 벌렸다. 그래 봤자 날개 크기가 손가락 한 마디밖에 안 된다.
“시이, 잘 잤나?”
“삑, 삐익, 삑.”
고분고분해진 느낌이다. 이렇게 차원을 이동할 때마다 오래 잠들어야 하는 시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또 쉴 수 없음에 더 미안해진다.
“시이, 이번 일만 끝나면 같이 쉬자꾸나. 푸른 눈을 찾아라. 호첸이나 사와코처럼 빛나지 않는 푸른 눈도 무조건 나에게 알려라.”
“삐이…… 삑!”
시이는 여울의 손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부리로 이마를 콕 찍었다. 그러고는 새침한 눈으로 한 번 흘겨보고는 그대로 날아올랐다.
여울은 한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피식 웃음 지었다.
***
오큘러스 본거지에서 벗어나 서쪽으로 이동한 지 이틀, 저 멀리 모래바람이 휘날리는 건물 사이에 트롤 다섯 마리가 젊은 두 여인을 둘러싸고 있다. 검을 가지고 있지만 차림새는 전혀 싸우기 위해 나온 자들이 아니었다.
단발머리 여인은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붉은 원피스를 입고 있는데 한쪽 허벅지가 아슬아슬한 부분까지 갈라져 있고, 긴 생머리의 여인은 걷기도 힘들 정도로 모아져 있는 검은 스커트에 하얀 셔츠를 입고 있다.
둘 다 맞춘 듯이 10센티미터가 넘는 하이힐까지 신고 있다. 저런 차림새를 하고 이 필드에 검을 들고 나와 있는 것을 보면 그만한 실력이 있겠지 싶어 지나가던 참이었다.
그때 여인 한 명이 여울을 발견하고는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악! 도와주세요!”
그 소리에 다시 돌아보니 트롤의 검이 긴 생머리 여인의 어깨를 베려는 중이었다. 여인의 표정에는 그다지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연기 같았지만, 여울은 일단 그곳으로 달려가 트롤의 검을 맨손으로 올려 쳤다.
챙, 퍽!
여울이 올려친 검은 역으로 꺾여 트롤의 얼굴에 박혔다. 다른 트롤들이 여울을 발견하고는 검 끝을 돌렸다. 네 마리 중 두 마리가 네임드지만 6레벨 이하다. 그는 디카르를 검으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차앙!
트롤의 검면에 여울의 주먹이 꽂히자 산산조각 나며 그 조각이 놈의 전신에 박혔다. 다른 트롤의 검은 살짝 피하며 주먹을 뻗어 머리를 강타했다.
퍼석!
놈의 머리통이 터져 나가며 뒤에 있던 여인들의 얼굴에 진녹색 피가 잔뜩 튀었다.
“으앗!”
“끄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뻔했던 상황이었는데 트롤 피가 묻었다고 불쾌감을 드러내는 여인들. 역시 위기가 아니었으면서 일부러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여울은 긴 생머리 여인에게 한 손을 뻗었다.
쓱.
“어멋.”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손에 들린 검을 여울에게 빼앗겼다. 여울은 그 검을 도망가는 마지막 트롤에게 던졌다.
푹!
검은 정확히 트롤의 뒤통수에 박혀 오른쪽 눈으로 뚫고 나왔다.
총 다섯 마리의 트롤이 모두 죽자, 진녹색 피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닦아 내던 두 여인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와아! 정말 강하신데요?”
“나 반한 것 같아…….”
두 여인은 비음 섞인 목소리로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상체를 살짝 기울여 가슴 사이의 골이 보이게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이 정도면 대놓고 유혹하는 것이다.
여울은 그들에게 바로 시선을 거두고는 발끝을 돌렸다. 그러자 뒤에서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엇!”
“앗, 저희를 이런 곳에 버려두고 가실 건가요?”
“구해 주셨으면 책임을 지셔야죠!”
얼마 전에 비슷한 말을 들었던 듯하다. 묘하게 끓어오르는 살인 본능을 짓누르고는 뒤돌아서 성큼성큼 다가가 바로 코앞에서 말했다.
“뭐.”
여울의 위협적인 기운에 긴 생머리 여인은 더듬으며 입을 떼었다.
“그, 그게…… 도, 도와주세요.”
그 말에 살짝 표정을 풀자 옆에 있던 단발머리의 붉은 원피스 여인이 말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기지가 있어요. 거기까지만 데려다줄 수 있을까요?”
긴 생머리 여인은 두려움을 금세 떨쳐 냈는지 손가락을 여울의 가슴에 올리고는 끈적하게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원한다면…… 같이 있어도 되는데.”
그녀의 노골적인 눈빛은 사창가 여인의 그것과 같았다. 이들은 이렇게 사내들을 유혹해서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자신의 기지에 힘을 보태는 것? 도적? 아니면 전에 만난 오큘러스 본진에 갇혀 있던 사람들처럼 납치? 이들의 노력에 흥미가 생겼다.
여울은 그녀들 사이를 고갯짓하며 대답했다.
“가지.”
긴 생머리 여인은 여울에게 팔짱을 끼고 가슴 사이로 바짝 잡아당기며 눈웃음쳤다.
“역시, 멋있는 헌터님. 고마워요.”
단발머리 여인도 반대쪽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쪽이에요. 잘생긴 헌터님.”
여울은 두 팔뚝에서 느껴지는 푹신함에 팔을 탁 털어 내고는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두 여인이 인도한 곳은 6층으로 이루어진 대형 백화점이었다. 창문 대부분을 자동차 갑판으로 막아 요새화시켰다. 위에서 망보는 사람들이 여인들을 확인했는지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렸다.
끼이익.
안으로 들어서니 가운데는 마지막 층의 천장이 보이게 뻥 뚫려 있고, 위층 난간에 수십 명의 사람이 총구를 아래로 들이밀고 있다. 웬만한 헌터들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벌집이 될 만한 수비진이다.
정면 2층으로 가는 계단 중간에는 총 대신 창을 어깨에 메고 있는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 사내의 오른쪽 뺨에는 긴 흉터가 있었다.
“뭐야. 한 명이야? 둘이서 한 명밖에 못 건졌어?”
그 말에 긴 생머리 여인은 뒤돌아서 여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요.”
여울이 그 자리에 멈춰 서니, 두 여인은 그와 거리를 벌렸다. 어느 정도 안전거리가 확보되자 긴 생머리 여인이 검지로 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센 놈이에요. 맨손으로 트롤 다섯 마리를 순식간에 처치해 버렸어요.”
“풋, 트롤 다섯 마리 따위…….”
“어맛!”
흉터 사내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확 끌어당겨 한 손으로 가슴을 터트릴 듯이 주물렀다.
“아, 아악, 아파요오…….”
“그래, 난 네가 아파할 때 제일 섹시하더라…….”
사내는 혀를 길게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쓱 핥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디 얼마나 잘난 놈인지 한번 볼까?”
여울은 위에서 난간에 기대어 총을 들이대고 있는 사내들을 둘러보다가 흉터 사내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내가 시간이 많은 편이 아니다. 간단하게 말해라. 여기는 뭐 하는 곳이지?”
여울의 질문에 흉터 사내는 한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끅끅대며 웃기 시작했다.
“크흡, 크흐, 크하하하하, 아, 이거 재미있는 놈이네.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나 본데…….”
그때 여울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흉터 사내는 그 순간 세상이 까맣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콱!
여울은 약 20미터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좁혀 한 손으로 사내의 얼굴을 잡았다. 그러고는 아래로 짓눌러 강제로 앉혔다. 사내는 머리가 깨질 듯한 압박과 아래로 짓누르는 힘에 정신이 없었다. 다리도 부러질 것처럼 아파 왔다.
“끄, 끄으으으으.”
“이제 상황 파악이 되나?”
그 바로 뒤에 있던 여인들은 화들짝 놀라며 계단 위로 걸음을 옮겼다.
찰칵! 찰칵! 차차차차착!
그와 동시에 난간에 붙어 여울을 조준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여울의 무위에 깜짝 놀란 흉터 사내는 그 소리에 다시 정신 차리고는 머리가 붙잡힌 채 말을 이었다.
“이, 이, 이거 놓지 않으면 당신은 벌집이 될 거야. 만약 놓으면 아무 일…….”
그때 여울이 그의 말을 끊었다.
“아직 안 됐군.”
여울은 사내의 머리를 살짝 들었다가 계단에 내리찍었다.
콰직!!
“크허억!”
“꺄악!”
“꺄아앗!”
사내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충격에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 뒤에 있던 여인들도 입을 가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여울은 끝나지 않았는지 다시 사내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박았다.
콰앙! 쾅!
“커허어어…….”
그 잠깐 사이에 계단에 머리가 세 번이나 박힌 사내는 얼굴 전체가 피투성이에 정신도 혼미해져 해롱거렸다.
위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은 쏘려는 자세만 취할 뿐이지 아무도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했다.
여울은 사내의 머리채를 잡아 피투성이 얼굴을 들어 올리고 다시 물었다.
“이제 내 질문에 답할 수 있겠지?”
흉터 사내는 눈이 돌아가고 입도 반쯤 벌린 상태로 그의 목소리에 번뜩 정신이 들어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거렸다.
“사, 사…… 살려, 살려 줘…….”
여울이 아무 대답 없이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혼미한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려 다시 말을 이었다.
“우, 우리는 피난민이나 헌터들을 납치해서…….”
그때였다. 저 위쪽에서 호랑이와 같이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고 있어 이 새끼들아! 둘 다 쏴 죽여!!”
그 목소리에 흉터 사내는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안 돼애! 기태, 이 개새끼야!!”
타당! 타다다다다당!
발포 소리가 들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수십 발의 총알이 여울과 흉터 사내를 향해 쏘아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직 마기를 머금고 있는 파란 총알이 비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한 순간에 벌집이 될 수 있는 상황, 그때 여울은 총알을 향해 한 손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