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2
2
02. 정체불명의 괴물
휙!
여울은 반사적으로 단검을 뒤로 휘둘렀다. 어떤 것도 걸리지 않는다. 예상한 결과다.
방금 귓가에 들렸던…… 아니, 머리에 울렸던 여성의 목소리는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전파를 타고 온 음성이다.
킁킁.
축축하고 서늘한 공기, 코를 스치는 이끼의 비린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서 있는 장소가 달라진 것은 분명했다. 여울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단검을 앞으로 내민 채로 눈이 적응되기를 기다렸다.
꿈뻑, 꿈뻑.
첫 번째 깜빡일 때만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두 번째 깜빡이자, 전혀 다른 세상이 열렸다.
“이게 무슨…….”
여울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에 거대한 동굴이 펼쳐진 것이다.
천장까지 높이가 10미터는 되어 보이고 폭도 그와 비슷했다. 신기하게도 동굴 자체가 은은한 빛을 머금고 있어서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다. 드문드문 푸르게 발광하는 버섯도 보였다.
여울은 주변을 둘러보며 바닥을 더듬거렸다. 지하실에 무슨 특별한 장치로 인해 어딘가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어서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좁은 지하실에서 이 넓은 곳으로 떨어질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같이 있던 두 사내도 없었다.
단검에 묻어 있는 핏자국만이 방금 전의 일이 꿈이 아님을 증명했다.
“은서, 은서야!”
눈앞에 그 위험한 상황에서 은서가 사라졌다. 아니, 자신이 사랑하는 딸을 놔두고 어디론가 와 버렸다.
“은서…….”
여울은 불이 나올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꽈악 쥔 주먹에서는 피가 새어 나왔고 이가 갈리는 소리는 동굴을 울렸다.
아무리 찾아봐도 딸은 보이지 않는다.
여울은 지금,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쿵! 쿵!
정체불명의 소리가 상념을 차단했다. 여울은 습관처럼 단검을 허공에 휘둘러 피를 털어 내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몸을 사리는 것이 철칙이다.
‘은서가 없었을 때는 그랬지.’
다다다다닥!
여울은 이윽고 소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쿵! 스르륵. 쿵! 스르륵.
소리가 가까워지니 중간에 무언가가 끌리는 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발소리의 중압감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곰? 사자?’
그게 무엇이든 여울의 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동굴이 꺾이는 부분에 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과는 다른 진녹색 피부에 번들거리는 근육이 돋보이는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쿠웅!
한 발이 더 움직이며 괴물체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옆모습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220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레슬링 선수처럼 터질 듯 보이는 근육을 지니고, 아래턱 어금니가 입 밖으로 삐져나와 있다.
한 손으로는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다른 손으로는 무언가를 잡아끌고 있는데, 그 모양새가 낯익었다.
스르륵.
‘사람?’
괴물체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은 누군가의 다리였다.
놈이 한 발자국 더 나아가니 얼굴과 가슴 부분이 완전히 함몰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의 시체가 드러났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피가 계속해서 새어 나오고 있다.
“크릉, 크흥.”
괴물체가 코를 벌름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놈과 달려가는 여울이 마주쳤다.
놈은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그에게 화가 난 듯이 입을 쩌억 벌렸다.
“크하아아아!”
고막을 찢을 것만 같은 포효. 동시에 여울은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콰직!
여울의 무릎이 놈의 콧등을 정확히 강타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여울은 공중에서 놈의 가슴을 밟고 뒤로 넘어가 목에 왼팔을 두르고 체중을 가했다.
마치 고목에 매달린 듯이 굳건했다. 정신을 차린 놈의 손이 뻗어 온다.
저 정도 근육이면 맨손으로 자신을 찢어발길 수 있을 것이다. 한 치의 실수도 해서는 안 된다. 먼저 가장 큰 위험 요소인 오른팔부터.
스윽.
피부의 질김이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하마터면 단검을 놓칠 뻔했다.
마치 말린 육포를 꽁꽁 얼린 것 같은 강도.
하지만.
치직.
“크하아!”
힘줄로 추측되는 곳은 잘라 냈다. 놈의 손목에서 피부보다 더 짙은 녹색 피가 뿜어져 나온다. 여울이 허리를 숙이자 그 위로 고목처럼 두꺼운 팔이 간발의 차이로 지나갔다.
여울은 낮은 자세 그대로 지나가며 놈의 발목을 베어 냈다. 근육덩어리였기에 가능하지 힘줄이 살에 파묻혀 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크헝!”
놈이 고통을 호소하며 덜렁거리는 오른팔도 같이 휘둘렀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도끼가 여울의 머리를 쪼개기 위해 짓쳐 왔다.
관절이 인간과 같은 방향으로 꺾이는 이상 공격 범위는 예상 안에 있다. 여울은 상체만 뒤로 살짝 물렸다.
후웅.
도끼날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후폭풍이 여울의 앞머리를 건드려 이마가 드러났다.
위험을 무릅쓰고 아슬아슬하게 피한 이유는 단 하나다. 큰 동작 다음에는 빈틈이 생긴다.
팟!
뒤로 물렸던 여울의 몸이 용수철처럼 다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여울은 힘껏 단검을 놈의 목에 쑤셔 넣었다.
푸욱!
검신은 만족할 만큼 깊이 파고들어 갔다. 하지만 돌덩이에 꽂아 넣은 것처럼 꽉 잡혔다.
이 괴물체도 경동맥이 이곳에 있을까? 제대로 잘랐을까?
이대로는 역습을 당하고 말 터.
여울은 단검을 놓으며 몸을 뒤로 물렀다. 놈이 아무렇게나 휘두른 손끝이 갈비뼈에 스쳤다. 찌릿한 통증이 일었지만, 뒷걸음질을 멈추지 않았다.
“큽, 크흑, 크하.”
놈은 단검이 꽂힌 부분을 잡고는 자신에게 다가왔다. 비틀거리는 걸음과 목에서 삐죽삐죽 뿜어져 나오는 피가 여울의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은서는 어디 있지? 여긴 어디지?”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괴물이지만 물어볼 놈도 이놈밖에 없었다.
하나, 실망스럽게도 놈은 그저 고통에 몸부림치며 손을 뻗을 뿐이었다.
쿠우웅!
드디어 그 거대한 덩치가 넘어갔다. 여울은 다가가 단검을 뽑아냈다가 다시금 놈의 목에 찔러 넣었다.
놈의 몸이 움찔거렸다가 금세 잠잠해졌다.
여울은 건조한 눈을 들어 천천히 놈을 둘러보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외관, 진녹색 피, 공격적인 성향, 도끼를 들고 가죽떼기를 걸친 것을 보면 도구도 사용할 줄 안다는 뜻이다.
‘사람을 능가하는 힘에 도구까지 사용한다면…… 다른 인류인가?’
죽은 놈을 뚫어져라 보고 있어 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힌트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위치 추적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고, 휴대폰도 전원이 나갔다.
‘한 놈은 아직 못 죽였는데, 기절했다지만 은서보다 일찍 일어나면 어떡하지?’
아니, 함정에 빠트려 나를 이곳으로 보냈으니 다른 놈들도 있을 수 있다.
‘은서, 은서를 구해야 하는데…….’
뚝.
손에서 물이 떨어졌다. 습기가 맺혀 물방울이 떨어진 건가 싶어 고개를 들어 보니 그런 형태의 천장이 아니었다.
여울은 손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
물이 묻어난다. 자신의 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쳐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 분함의 눈물이다.
자신이 살아가면서 눈물이란 것을 흘려 본 적이 있던가?
여울은 머리를 세차게 털었다. 멍청하게 가만히 눈물만 보이고 있어 봐야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서 이 이상한 동굴을 빠져나가야 한다.
한순간에 이동되었으니 보기보다 동굴이 좁을 수도 있다. 일단 돌아다니며 이 정체불명의 지역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여울은 단검을 놈의 몸에 걸친 가죽에 문대어 피를 깔끔하게 닦았다.
그리고 자세를 낮추고 빠르게 걸었다. 이곳은 놈들의 본거지일까?
여울은 처음 들렸던 메시지를 곱씹었다.
[케라브에 오신 것을…….]분명 멀리서 들린 것은 아니었다. 머릿속에 스피커가 직접적으로 울린 느낌이었다.
케라브, 머더러, 밤의 귀족, 레벨…… 알 수 없는 메시지들뿐이다. 갑자기 떨어진 동굴, 정체불명의 괴물과 살해당한 인간, 그리고…….
두근. 두근. 두근.
여울은 고개를 내려 팔뚝을 바라보았다. 옷 너머로 팔뚝이 심장처럼 두근거리는 것이 보인다.
괴물을 죽인 직후부터? 아니, 그 전부터인 것 같다. 종아리 역시 은밀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펄떡이고 있었다. 찌릿한 통증마저 전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현상일까?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괴물까지는 괜찮지만, 자신의 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면 침착해질 수 없다.
‘그 잠깐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놈들에게 당해서 기절했고, 이곳으로 옮겨졌다면 말이 된다. 하지만 그때 그 감촉과 칼에 묻어 있던 피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건 마치…… 그놈을 죽이려는 순간,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 느낌이었다.
“꺄아아아악!”
초고음의 비명 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여자, 하지만 은서는 아니었다. 여울은 팔뚝을 주무르며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더 걸어가니 키가 큰 수풀들이 보였다.
“크허엉!”
수풀 너머로 그 괴물체가 한 여인의 허리와 발목을 잡고는 번쩍 들어 올리더니 양쪽으로 쭉 잡아당기는 모습이 보였다.
배 부분이 지저분하게 찢어지며 척추뼈가 하체 쪽으로 딸려 나왔다. 장기들은 아래로 그대로 쏟아졌다.
한쪽에는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남성도 보였다. 괴물체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사내는 공포에 질려 다리를 후들거렸다.
저렇게 징그러운 장면을 봤으니 일반인이라면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이다.
이 잔인한 장면을 보며 떠오르는 의문은 몇 가지였다.
‘이 사람들은 뭐지? 나처럼 납치되어 이 동굴에 풀어진 사람들인가? 그들의 조직이 이렇게 컸던가?’
여울은 품 안에 단검의 손잡이를 꽈악 쥐었다. 아직 팔뚝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종아리는 잠잠해졌다. 상황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남들에게 섣불리 모습을 드러낼 순 없다.
타다다닥!
사람의 발소리.
여울은 자세를 더 낮춰 수풀에 몸을 숨기며 그곳을 주시했다. 곧이어 수풀을 가르며 열댓 명 가까운 무리가 몸을 드러냈다.
“이럴 수가!”
“뒤로, 뒤로 물러나요!”
선두에 군용 소총을 든 사내가 공포에 몸이 얼어붙은 사내에게 소리쳤다.
괴물체가 여인의 사체를 집어던지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사이 근육질의 어떤 사내가 그 사내에게 달려들어 몸을 강제로 낮췄다.
타앙!
거의 동시에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녹색 피가 허공에 뿌려지고 괴물체의 고개가 돌아갔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이 모두의 행동이 멈춰지고 적막이 맴돌았다. 그렇게 수초 후, 다시금 놈의 고개가 홱 돌아가며 함몰된 한쪽 얼굴이 보였다.
놈은 성이 난 듯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덤벼들었다.
“크하아!”
타앙! 탕! 탕!
군인으로 보이는 그 사내는 지체하지 않고 연달아 총을 쐈다.
“크르르…….”
지척에서 총을 연달아 맞은 괴물체의 얼굴은 완전히 터져 나가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놈은 사내를 향해 한 손을 뻗은 상태로 그 큰 몸집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쿠웅!
군인 사내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총구로 놈을 겨눈 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 거친 호흡과 동그랗게 뜬 눈, 흔들리는 동공을 보아하니 진짜로 생명체를 잡은 경험은 적은 듯했다.
괴물이 처리되자 다른 사람들이 사내 둘을 챙겼다. 군인 사내는 머리를 살짝 흔들고는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후…… 살, 살아 있는 사람들 더 있나 봐주세요.”
근육질 사내가 그의 어깨를 살짝 붙잡았다.
“알겠으니, 거기는 숨 좀 돌리고 있어요.”
“네에…… 감사합니다.”
군인 사내는 그의 말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직 그도 정신이 없어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의무적으로 주변을 둘러보기는 하지만 대부분 멍한 표정이었다.
‘연기가 아니야.’
그들도 마치 자신처럼 방금 전 이 동굴로 떨어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이었다.
남자 9명에, 여자 5명, 그중 전투력으로 칠만한 건장한 남자는 6명뿐이다.
어쨌든 수색 범위는 좁혀 들었고 이들을 피해 지나갈 길은 없다.
여울은 단검을 앞세우며 튀어 나갔다. 목표는 총을 든 군인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