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200
200
우거진 깊은 숲속, 초록색으로 가득한 수풀 위에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사람의 피와 살덩이들이 수풀 위에 뿌려져 햇빛에 반사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앙에는 2미터가 넘는 거구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고, 그 앞에 평범한 외모의 사내가 그에게 한 손을 뻗고 있었다.
스으으으.
사내, 스올의 검지가 우황의 머리에 닿기 바로 직전, 으스스한 소리와 함께 스올의 몸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것은 그림자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검은 안개였다.
인간의 형체를 한 검은 안개가 완전히 빠져나오자 스올이 차지하고 있던 평범한 외모의 사내는 눈을 감으며 쓰러져 내렸다.
츠으으.
그러자 사내의 얼굴과 온몸의 피부가 급격히 부패되더니 이내 붉은 고깃덩어리가 몇 점 붙어 있지 않은 해골로 변하였다. 그사이 검은 안개는 우황의 몸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검은 안개의 형상이 아예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기가 느껴지지 않던 우황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의 눈동자에는 광기 어린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크흐…… 전보다 훨씬 낫군.”
우황의 몸을 차지한 스올은 두 손을 들고 손바닥과 몸 이곳저곳을 보며 감탄했다. 6레벨에 평균적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던 그전의 몸은 자신의 영체를 감당하지 못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이번 몸은 천천히 동기화시키면 꽤 오랫동안 쓸 수 있을 것 같다.
스올은 그렇게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감탄하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오큘러스……? 바로 사라졌어?”
분명 오큘러스의 기운이었다. 직접 지구에 현신한 것이 아니면 이 정도의 기운이 느껴질 리가 없다. 그런데 금세 사라졌다. 아무리 나약한 놈의 몸을 차지했어도 오큘러스라면 이곳의 인간들에게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사라진다? 놈이 몸을 숨겼거나 특별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스올은 오큘러스의 기운이 느껴졌던 방향으로 발끝을 돌리고는 바닥을 박찼다.
콰아앙!!
그가 바닥을 디딘 곳을 중심으로 반경 10미터 터져 나갔다. 땅이 뒤집히고 시체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크레모아를 터트린 것 같은 폭발력이었다. 그의 신형이 미사일을 쏴 올린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
6층으로 이루어진 거대 백화점, 그 입구 앞에 여울과 한 소녀가 나란히 서 있다. 여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고 겉에 하얀 코트만 걸친 아슬아슬한 복장의 소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여울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백화점 입구에 그 많은 오큘러스 단원이 모두 토막 난 것을 본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소녀는 이 사람이 만약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절대로 도망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는 아직 여울과 오큘러스 단원 모두 무서운 사람들일 뿐이다.
그때, 결국 휴대폰으로 나침반 어플을 켜고 나서야 방향을 잡은 여울이 뒤돌아서 소녀에게 손을 뻗었다.
“꺄읍!”
소녀는 지레 겁먹고 비명이 나오는 것을 급히 삼켰다. 수백 명의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잔혹한 사람. 밉보이다가는 자신의 목숨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여울은 그녀의 반응에 멈칫했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를 안아 들었다. 한 손으로는 등을, 한 손은 허벅지를 받쳐 들은 것이다. 그녀가 움찔하는 바람에 한 손이 코트 안쪽으로 들어가 맨살의 허벅지가 잡혔다.
그러나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만 숙일 뿐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하던지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같다. 그 체념한 모습이 오히려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여울은 손을 빼내어 코트 바깥쪽으로 다시 잡았다. 안고 있으니 손으로 그녀의 떨림이 전달되었다. 평소라면 그러든 말든 버리고 갔을 텐데, 무엇이 그리 마음에 걸리는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조금이라도 안심시키기 위해 입을 열고 있었다.
“이름이 뭐지?”
소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여울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네, 네? 저요?”
여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 저는 승희요. 우승희.”
여울은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질문했다.
“재앙 전에는 어디서 살았지?”
“아, 재앙 전에는…….”
일정한 진동과 낮은 목소리.
승희는 기억을 더듬으며 얼굴이 점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것인지 그녀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개성이요. 엄마랑 남동생이랑 셋이서 밀가루 반죽 공장을 다녔어요. 생각해 보면 그때가 제일 행복했는데……. 내가 돈 좀 벌어 보겠다고 브로커 통해서 중국으로 밀입국하고 그때부터 일이 꼬였죠. 그 브로커 변태 자식…….”
승희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하며 옛이야기를 쏟아 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1차 재앙이 시작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데 그 소식을 접했죠, 우리 가족이 있는 개성이 몬스터들에 의해 초토화되었다고…….”
그녀의 얼굴은 금세 슬픔으로 가득 찼다. 직접 사망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단정 지을 수 없지만 그들도 승희와 같은 일반인이라면 대부분 죽었을 것이다.
여울은 한없이 우울해지는 그녀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남겨진 사람이…… 그들을 대신하여 더욱 잘 살아가야한다.”
“아…… 남겨진 사람은…….”
그녀는 더욱 고개를 숙이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여울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이, 동쪽에 토벌대를 보면 알려 줘.’
그사이 입을 오물거리는 여울의 모습에 승희는 자신에게 말하는 줄 알고 물었다.
“뭐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너한테 하는 말 아니다.”
“아…… 네.”
승희는 여기에 자신밖에 없는데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지만 가만히 고개를 내렸다. 그러고는 그 후부터는 다시 기가 죽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여울이 승희를 안은 채로 바닥을 박찼다.
파앙!!
바닥에 작은 홈이 파이며 그들의 몸이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끄아아아아아!”
그녀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울의 귀청이 떨어져라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적응했는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러고는 어느새 차분해진 어투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그 지옥에서 탈출한 거네요.”
그 백화점에서 멀어져 몇 개월 만에 바깥세상을 보니 그제야 실감이 나는 승희였다. 여울은 아무 말 없이 전방을 바라보며 다시 바닥을 박찼다. 바람의 마나가 쿠션 역할을 하여 착지의 충격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여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저씨는 정말 착한 사람 맞죠? 나…… 어디 내다 파는 거 아니죠?”
그녀는 믿음이라기보다는 그렇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말했다. 그 말에 마음에 쓰이는 여울은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딸과 비슷한 나이에 곱상한 외모의 일반인. 지금과 같은 시대에 이런 아이가 필드에 있었으니 별별 험악한 일은 다 겪었을 것이다. 자신이 찾았을 때 산 채로 껍데기가 벗겨지고 있었으니 들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자신도 모르게 측은지심이 생긴다. 여울은 조용히 갈 길만 가다가 한참 후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럴 일 없다. 앞으로도.”
“앞으로도…….”
승희는 그 뒷말을 곱씹으며 여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지만, 그녀는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
채앵! 챙! 챙!!
무너진 도시에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13미터, 5~7미터인 일반적인 미노타우로스보다 두 배는 더 거대한 놈이 백여 명의 헌터와 맞붙고 있다. 보라가 소속되어 있는 제31토벌대다.
대원들은 놈의 도끼를 피하며 열심히 검으로 베고 있지만 돌을 친 듯이 단단했다.
콰앙!
“꺄앗!”
“으헉!”
놈의 발 구르기로 인해 발목을 노리던 대원들이 뒤로 날아갔다. 한 대원은 그 자리에서 하체가 완전히 짓눌렸다.
“끄아아아악!!”
그 모습에 다른 대원들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선뜻 그를 구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 보라는 다른 대원을 치료하다가 비명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주춤대고 있는 대원들을 밀치며 소리쳤다.
“아, 비켜! 이 답답이들아!”
“조장님!”
“조장님! 위험…….”
조장으로서, 또는 여인으로서 뭇 남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보라이기에 그녀가 튀어나가자마자 소리치며 말리는 대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보라는 이미 홀로 네임드 미노타우로스에게 달려 나간 상태였다.
보라를 발견한 놈이 거대한 도끼를 추켜들며 포효했다.
“크하아아아아!”
그 외침에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그러고는 보라를 향해 그 도끼를 아래로 거세게 내려찍었다.
“조장니임!!”
오랫동안 보라를 마음에 품고 있는 조원 한 명이 그녀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때 보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치며 몸을 굴렸다.
“아, 닥치고 너도 빠져 있어!”
콰앙!
그와 동시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라의 몸이 있던 곳에 거대한 도끼가 내려찍혔다. 보라는 미끄러지듯이 안으로 파고들어 가 품에서 검은 무언가를 꺼내었다. 여울이 준 마녀 손톱이다. 그녀는 그것을 눈앞에 보이는 미노타우로스의 발목을 향해 던지고는 허우적거리고 있는 대원의 두 손을 잡았다.
푸푹!
두 개의 마녀 손톱이 놈의 발목에 꽂혔다. 그것이 전부지만 저 거대한 놈에게는 두 개 모두 박혀야 효과가 있을 것만 같다.
보라는 대원을 붙잡고 온 힘을 다하여 뒤로 잡아당겼다. 그사이 놈이 발을 옮겨 보라를 쫓아오려고 했다. 그때 놈이 삐끗하며 옆으로 살짝 기울어져 시간을 벌었다.
“크허!!”
놈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발목을 보며 성질을 냈다. 놈과 어느 정도 안전거리가 확보되자 다른 대원들이 보라에게 다급히 달라붙어 도왔다.
“조장님, 괜찮으십니까!”
“조장님! 큰일 나면 저는 어떡…….”
그때 보라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다 닥쳐어어!! 빨리 저놈이나 막고 있어!”
“예, 옙 알겠습니다!”
보라는 뒤쪽으로 빠져 대원의 하체에 손을 대고 괴사하지 않도록 응급 처치만 해 놓고는 옆에 의무대원에게 말했다.
“뒤로 빠져서 치료하고 있어요. 나 내 거 찾아올게.”
“아, 네 알겠습니다!”
보라는 검을 뽑아 들고는 다른 대원들이 고역을 겪게 만드는 네임드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레벨 11, 특성 근력, 리덕션 두 개를 가지고 있는 강력한 놈. 오늘 이놈을 잡고 치료만 할 줄 아는 예쁜 헌터님에서 벗어난다.’
보라는 검을 강하게 쥐고는 바닥을 강하게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