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204
204
타악!
여울이 날아가는 방향은 서울 방어기지가 있는 남쪽이 아니라 북동쪽이었다. 은신했다곤 해도 기운만으로 자신을 찾아왔던 스올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유인하여 시간을 벌어 놔야 한다.
“도망?”
여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스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귀어진의 수를 쓰면서 곧 죽어도 상처라도 남기고 죽겠다는 각오로 싸우던 자가 갑자기 도주하니 빠르게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것이다.
본체에 한참 미치지 않는다고는 하나 인간이 감히 맞먹을 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 공포의 화신 오큘러스를 처치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팔을 손쉽게 자르고, 위험한 순간까지 몰아쳤다.
인간의 몸으로 용에 버금가는 힘을 지닌 자. 괜히 예언에 언급된 것이 아니었다. 만약 지금 이 몸이 아닌 그의 몸을 차지한다면…….
‘본체에 가까운 힘을…… 가질 수 있다.’
스올은 그의 신형이 사라진 곳으로 발끝을 옮겼다.
***
“허억, 허억…….”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죽음의 도시. 무너진 집들과 찌그러진 차들로 이루어진 길거리에 가쁜 숨소리가 들려온다.
“하악, 후우…….”
은신 상태인 여울은 벽에 기댄 채 옆구리를 부여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옆구리는 어린아이 머리만 한 크기가 뻥 뚫려 있는 상태로, 걷고 있는 것조차 신기할 정도다.
마족들과 암살 전투를 하던 당시, 다크니스의 기운으로 자신의 위치를 찾아내기에 사용을 최대한 자제했던 적이 있다. 밤의 용들과 관여하는 곳은 다르지만, 스올도 다크니스의 기운을 읽기 때문에 자신을 이렇게 찾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초반에 출혈만 잡고는 다크니스 큐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상태다. 스올의 움직임을 보면 아무리 은신을 했어도 금세 잡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북동쪽으로 이동한 지 이틀, 하루 전부터 스올의 기운이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은 것을 보면 추적을 떨친 듯하다. 위험하기에 시이도 따로 보내지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 추적을 떨쳤지만 다크니스를 쓰지 않아도 금방 또 찾아올 터이다. 두 개의 행성을 홀로 뒤흔들었던 자. 스올의 무궁무진한 능력은 자신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윽, 스윽.
여울은 길거리에 널브러진 시체의 겉옷을 벗겨 붕대처럼 옆구리에 감고는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 그를 대비할 때다.
***
한국, 서울 방어기지 북문.
띠디, 띠디.
토벌대 덕분에 주변 몬스터가 완전히 사라져 정찰 레이더가 반경 20킬로미터까지 증가되었다. 레이더망에 생명체가 걸리자 상황실에 신호음이 울렸다. 안에서 휴대폰을 만지던 대원은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음?”
흙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선두에는 특수 차량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토벌대가 귀환하는 모습은 상황실 대원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모든 토벌대는 아시아권 토벌 작전이 끝나기 전까지 귀환이 보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수 차량만이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는 지부를 오가며 식량을 보충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토벌대가 귀환한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대원은 화면을 확대하여 토벌대원들의 얼굴과 특수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는 파란 버튼을 눌렀다.
지이이이잉.
북문의 강철문이 그들을 맞이하며 천천히 올라갔다. 대원은 왼쪽에 배치된 마이크의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대장님, 17토벌대가 귀환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겼나 본데요?”
그의 말에 곧바로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7토벌대……?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나가 볼게요.
“예, 알겠습니다.”
대원은 대답과 함께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당직 중인 수비대장이 직접 나가 보는 것만큼 깔끔한 마무리는 없다.
북문 3구역 성벽 위.
하얀 셔츠에 검은 넥타이, 붉은 바탕에 노란 체크무늬 주름치마를 입은 소녀가 벽 위 복도를 거닐고 있다. 그 뒷모습에 한 정찰대원이 중얼거렸다.
“교복? 히야…… 요즘 애들은 성장이 정말…… 읍.”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다른 대원이 그의 입을 다급히 막았기 때문이다.
“쉬이이, 딱 보면 누군지 모르냐? 어떤 여고생이 여기를 지네 집 안방처럼 걷고 있겠냐. 6팀의 이 씨 혓바닥 자른 분이잖아. 너도 평생 불구되기 싫으면 아가리 조심히 놀려.”
“아, 저 아이, 아니 저분이 그 은서…….”
그때, 은서가 몸을 휙 돌렸다. 두 대원은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서로 입을 틀어막았다.
저벅, 저벅, 저벅.
은서는 대원들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사색이 되어 뒷걸음쳤다. 그녀는 검지를 들어 음담을 하려던 대원을 가리키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 행동에 대원은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두 손을 들고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저는 절대로…….”
어느새 코앞에 다다른 은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어깨를 붙잡고 겉옷을 확 뒤로 젖혀 반쯤 벗겼다.
“이것 좀 빌려줘요. 얼른.”
“앗, 아아, 네, 알겠습니다!”
그는 다급히 자신의 방어복을 벗어 그녀에게 건넸다. 2천만 원이 넘는 것이지만 아까워할 겨를이 없었다.
꾸욱, 지직.
은서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방어복의 팔 부분을 자신의 허리에 꽉 묶고는 말했다.
“나중에 줄게요. 아, 혓바닥 조심하고.”
“네…… 엡?! 헙.”
대원은 자신도 모르게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때에 은서는 벽 난간 위로 올라서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은서의 모습에 대원들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후웅! 타닥, 탁, 탁!
은서는 가까운 건물 옥상으로 뛰어내려 다른 건물로 빠르게 넘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였다. 음담을 나누려던 대원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 오늘부터 저분 팬 할래.”
“너 혓바닥 긴가 보다.”
***
타다다닥!
빠르게 북문에 도착한 은서는 귀환하고 있는 토벌대를 향해 달려갔다. 달려오고 있는 대원 중에 아무리 찾아봐도 보여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특수 차량이 마음에 걸린다.
은서는 옆으로 몸을 틀어 특수 차량이 지나가도록 길을 내줬다. 그러고는 뒤에서 달려오는 대원 중 한 명에게 다가가 같이 달리며 물었다.
“수비대 1대장 여은서입니다. 무슨 일이죠?”
“후웁, 훕, 강력한 놈이 나타났습니다. R랭크 헌터님, 아, 은서 씨 아버님이 나서서 막아 주셔서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3조장님과 어떤 아이가 많이 다쳤습니다.”
“아빠가? 그리고 3조장님이면…….”
은서는 눈을 번뜩 뜨고는 앞서 가는 차량을 향해 달려갔다.
끼이익.
특수 차량은 서울 방어기지 내부로 진입하고 나서야 질주를 멈췄다. 뒷문이 바로 열리며 들것에 실려 있는 두 여인이 나왔다. 그중 한 여인의 얼굴을 확인한 은서는 소리치며 달라붙었다.
“언니이!!”
보라의 배가 주먹만 한 크기로 꿰뚫려 있었다. 찢어진 옷의 크기와 새살이 재생된 것을 비교해 보면, 원래는 자신의 머리 크기만큼 뚫렸던 것이다. 그 옆에 같이 실려 온 여고생으로 보이는 여인은 재생력이 없는 듯 그 상처 그대로 갖고 있었다. 입술은 물론 얼굴에도 핏기가 전혀 없었고, 맥박 역시 희미했다.
‘대체 어떤 놈을 만났기에…… 아빠가 있는데도 언니가 이렇게 다치다니…….’
은서는 걱정스런 눈으로 보라를 바라보다가 문득 여울이 가기 전에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빨리 또 곁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7토벌대와 겹치는 일 없이 더 먼 곳을 돌고 있어야 할 여울이 그 자리에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봤다. 자신이 찾으러 갔던 위험 요소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설명이 된다.
보라가 지금 이렇게 되었는데도 오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 싸워야 할 만큼, 또는 서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도망쳐야 할 만큼 강한 놈이라는 뜻이다.
‘지원해야 할까? 아니, 아빠가 도망쳐야 한다면 머릿수는 의미가 없어. 희생만 늘 뿐……. 내가 아빠라면, 내가 아빠라면…….’
은서는 응급실로 들어가는 보라를 한 번 더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진태 아저씨, 저 은서예요.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헌터분들 모두 신속히 귀환시켜 주세요.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저 믿고 무조건 당장이요. 백일권, 한지연, 서한, 담덕…….”
서울 방어기지 본부에서 지부로, 지부에서 예상 수색 위치 근처로 가서 전달한다면 최소 두 시간 안에 긴급 귀환 명령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은서는 전화를 끊고 바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북문으로.
짧고 굵은 문자다. 수신인은 언제든지 자신이 문자만 보내도 바로 확인하고 달려오는, 아니 날아오는 든든한 보호자다. 은서는 3초도 되지 않아 ‘읽음’으로 바뀐 걸 확인하고는 중앙의 상황실로 걸음을 옮겼다.
선수들을 준비시켰다. 이제 튼튼한 링을 세울 차례다.
***
척, 저벅, 척, 저벅.
서울 방어기지 북문 앞, 검은 옷의 한 사내가 불안정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옆구리에 어마어마한 통증이 있음에도 온 힘을 다하여 여기까지 달려온 여울이었다.
북문이 보이자 꽉 잡혀 있던 긴장이 살짝 풀리며 통증이 다시금 몰려왔다.
“끄으으…….”
상처 부위를 중심으로 경련이 일어났다. 다크니스 특성을 지니게 되면서 생긴 치명적인 단점은 다른 치료가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아무리 오우거의 피를 뿌려도 회복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저 초록색 물을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직은 다크니스 큐어를 사용할 때가 아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야 된다. 여울은 멈춰 서서 가만히 통증을 참아 냈다.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아아!”
여울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북문 꼭대기에서 겁도 없이 뛰어내리는 한 소녀가 보였다. 그 뒤로 다급히 같이 뛰어내리는 소년, 아니 청년도 보인다.
후우우웅.
은서와 수언은 염력으로 신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도 금세 여울 앞으로 다가왔다. 은서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두 손과 발을 활짝 펼치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퍼억!
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여울의 신형이 뒤로 젖혀졌다. 아무리 반갑다고 한들 시속 15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안겨 드는 것은 공격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울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딸 은서를 받았다.
“내 딸, 잘 있었어?”
은서는 금방 얼굴을 떼고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빠, 어디 아파? 아빠 다쳤어?”
초등학생처럼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묻는 은서의 모습에 수언은 몰래 미소를 지었다. 여울이 곁에 없는 그녀는 서릿발처럼 차갑고 날카로우며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울은 고개를 저으며 은서를 내려놓고는 수언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냐, 괜찮아. 수언아, 보라한테 가자.”
“옙, 아저씨!”
수언은 바로 은서와 여울을 공중에 띄우고는 북문으로 날아갔다. 가는 동안 여울이 수언에게 말을 이었다.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접했던 그 무엇보다 강력한 존재와의 전쟁을, 지금 나간 헌터 중에 백일권 씨, 서한 그리고…….”
그때 여울의 팔에 매달려 있는 은서가 말을 끊었다.
“아빠, 걱정 마. 내가 다 준비해 놨어. 다 북문에 대기하고 있고, 일권 아저씨는 곧 도착한대.”
여울은 고개를 돌려 은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고 준비했을까? 보라의 토벌대가 귀환하는 모습을 보고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큰일을 추진하는 것은 또 별개다.
여울은 은서의 행동에 감탄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잘했어,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