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209
209
은서는 그것의 손을 마주잡으며 중얼거렸다.
“이럴 리 없어. 이럴 리가…… 절대…… 아빠는…….”
터벅, 터벅, 터벅.
그때, 그 뒤로 힘없는 걸음으로 다가오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 보라는 은서 옆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을 뻗어 여울의 팔을 잡았다.
“이, 이거 뭐야……. 팔만 놓고…… 어디 갔지? 어딨어…….”
그녀는 충격이 큰지 얼빠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막 거동이 가능해진 서한도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여울…… 여울이…… 크흑!”
서한은 걸음을 마저 떼지 못하고 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얼굴을 박고는 오열했다.
“큽, 흐윽, 흐으윽!”
수언도 그곳을 바라보며 일어선 채로 눈물을 흘렸다.
묘한 장면이었다. 여울의 팔을 끌어안고 있는 은서를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은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렸고, 그 외에 서울 방어기지의 모든 사람들은 만세를 외치며 승리의, 생존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게이트가 생기며 약자와 강자로 나뉜 사람들, 상대적으로 약자들이 이런 큰 전쟁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지인의 죽음보다도 자신이 살아남은 것에 대한 기쁨이 더욱 커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상반된 감정 속에서 그 강렬했던 전쟁은 마무리되었다.
***
스올이 재앙이라고 불리는 대전쟁이 끝난 뒤.
가장 먼저 변한 것은 몬스터다. 몬스터들은 스올의 최면에서 벗어나 로디스 자유의 땅의 몬스터들처럼 일반 동물들과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였다.
먼저 필요 이상의 무리를 짓는 몬스터가 사라졌고 사람을 선공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드물게 사람을 보면 반사적으로 공격하는 몬스터들도 있으나 그들도 육식동물처럼 배부르면 공격하지 않았다.
비로소 전세계가 안정기에 들어간 것이다.
안정기에 들어간 지 6개월. 미국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전보다 10분의 1로 줄어들어, 현재 6억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땅덩어리에 비하여 인구가 훨씬 적어 번식력이 강한 몬스터가 인간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몬스터의 레벨이 거의 높아지지 않아 사람들은 몬스터를 마석 자원으로 사냥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
숲이 우거진 정글, 백여 마리의 몬스터들과 검은 방어복의 헌터들이 대치하고 있다.
“3, 4조 뒤로 빠지고! 5조 지금 들어가!!”
명랑한 목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진다. 대원들을 지휘하고 있는 여인은 바로 한지연이었다. 그녀는 신한길드를 나와 백일권의 오른팔을 자처하여 대한길드의 돌격대장을 맡게 된 것이다.
그녀의 명에 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몬스터들을 제압해 나간다. 가장 앞장서 가는 거대한 덩치의 사내는 그보다 더 큰 대검을 들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 나갔다. 그 뒤로 사냥에 어울리지 않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뒤쫓아 갔다.
“자, 자기야 같이 가! 나 지켜 줘야지!”
그들은 둥둥과 진사라였다. 은서의 부탁으로 지연을 따라 대한길드로 이적한 것이다.
전장 뒤쪽에서 뒷짐을 지고 지켜보던 백일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진후 대장이 아까워할 만한 여인이야.’
진후가 지연을 이성적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아니면 지금과 같은 지휘 능력 때문인지 이제는 알 수 없었다.
***
서울 방어기지 신한백화점 1층, 구석에 아담한 빵집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곳 주방에서 두 사내가 열심히 빵을 굽고 있다.
또각, 또각, 또각.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새빨간 오프숄더 원피스에 호피 구두를 신은 여인이 모델과도 같은 포스를 풍기며 백화점 복도를 거닐고 있다.
지나가던 커플이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기며 중얼거렸다.
“뭐, 뭐야 모델인가.”
“겁나 예쁘네…….”
남자의 말에 여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선글라스 썼는데 어떻게 알아?”
“딱 보면 각이……. 아, 미, 미안 자기가 제일 예쁘지~”
“됐어, 저 여자나 따라가.”
여자는 입을 삐죽 내밀며 휙 돌아가고, 남자는 그 뒤를 낮은 자세로 바짝 뒤쫓았다.
그사이 금발머리 여인은 도도한 걸음으로 빵집에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선글라스를 벗어 한 곳에 내던졌다.
휘익, 척!
아무렇게나 던졌는데 빵을 굽던 한 사내가 가공할 속도로 달려 나와 선글라스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여인에게 바짝 붙으며 볼을 비볐다.
“자기 왔어? 어디 갔다 왔어?”
사내, 서한의 말에 레이는 어깨를 툭 털어 그를 밀치며 쏘아 댔다.
“어디 남자가 바깥일을 궁금해해?! 빵은 얼마나 구웠어?”
“으, 응 아직 120개 못 채웠는데…….”
“아직도? 그러게 쟤 자르라니까. 손이 느려 손이.”
그 소리에 안에서 빵을 굽던 또 다른 사내, 무영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형수님, 빨리 하겠습…….”
그때 서한이 말을 끼어들었다.
“자기! 나 무영이 없으면 빵집 안 해. 나 헌터일 그만두라고 하면서 했던 약속 잊었어?”
레이는 이 말이 나올 때만 자존심을 세우는 서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휙 고개를 돌렸다.
“칫, 맘대로 해. 대신 자기가 더 열심히 해.”
“당연하지~”
서한은 금세 저자세로 돌아오며 레이에게 볼을 비볐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우~ 여기는 아침부터 후끈하네. 빵집이라 그런가.”
“냅 둬. 한두 번도 아니고. 형수가 여우잖아.”
“큼, 크험, 흠.”
시끄럽게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건수와 문솔, 담덕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헌터 일을 하지만 서한이 은퇴한 후 원팀도 해체시키고 각자 백 명의 대원을 책임지는 대대장을 맡는 바람에 이렇게 서로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이구, 이게 누구야~ 어서와, 어서와. 애들아, 바게트 줄게 바게트.”
“어후, 바게트 질려.”
“그러게, 맨날 바게트야. 그게 제일 싸나?”
“크하하, 그래? 그럼 피자빵? 응?”
“근데 오늘 은서 입학식 아닌가?”
“아, 맞네. 가야 하나.”
“보라 있잖아. 우리가 다 가면 민폐야 민폐.”
“그렇지? 맞지? 크하하하.”
“어휴, 주책…….”
레이는 그렇게 작은 빵집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웃음 짓는 원팀을 바라보며 몰래 미소 지었다.
‘그래, 지금이 좋아…….’
***
3구역 고등학교, 천여 명의 학생들이 운동장에 서 있다. 맞은편에는 각 반의 담임 선생이 서 있고, 강단 위에는 교장 선생이 훈화 말씀을 하고 있다.
한 여학생이 살짝 몸을 기울여 다른 여학생에게 속삭였다.
“은서야, 너랑 이렇게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니 꿈만 같아.”
은서는 고개를 돌려 예서를 보며 눈웃음을 쳤다.
“나도. 다시 학교생활을 한다니……. 예전에는 학교를 그렇게 가기 싫었는데 이제 이런 평범한 게 평범한 것이 아니니까…….”
말을 하던 은서의 눈동자가 살짝 물기가 차올랐다. 그것을 눈치챈 예서는 금세 말을 돌렸다.
“아, 그런데 수언 오빠도 같이 다닌다는 거 맞아? 어디 있어?”
은서는 코를 훌쩍이고는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오빠? 3학년이니까 뒤쪽에 있겠지……. 아, 저기 있네.”
예서는 은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뒤에는 이미 동서남북 팔방에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수언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볼을 발갛게 붉힌 채 바짝 얼어 있었다.
그 모습에 예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저 여우같은 년들……. 은서야, 너 조심해야겠다. 오빠 은근히 즐기는 거 같은데?”
은서는 두 손을 들어 부끄러운 듯이 볼을 매만졌다.
“응 뭐가? 에이…….”
그러고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말을 이었다.
“꼬리 치면 눈알을 파 버려야지…….”
예서는 그 말에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네가 내 친구인 게 정말 다행이야…….’
그때, 옆줄의 남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저 선생. 나한테 인사하는 건가?”
“양호 선생 이랬나? 진짜 예쁘긴 예쁘다.”
“너 말고 나한테 흔드는 거잖아. 여기에요, 선생님! 흐흐.”
그들의 시선 끝에는 강단 옆에서 홀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한 여인이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하늘색 스커트를 입고 긴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묶은 그녀는 바로 진보라였다.
보라는 헌터 일을 그만두고 은서가 들어가는 이번에 설립된 고등학교의 양호 선생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녀가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는 이유로 서울기지는 동서남북의 문에서 이곳까지 직통으로 중환자를 옮길 수 있도록 길까지 뚫었다.
예서는 은서의 어깨를 툭툭 치며 물었다.
“은서야, 저기, 저 언니…… 너한테 흔드는 것 같은데…….”
은서는 보라를 발견하고는 창피함에 확 얼굴이 붉어져서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아욱, 아잇, 증말 쪽팔리게……. 내려, 내려 좀.”
은서는 창피하지만 싫어하지는 않는 얼굴이었다.
“아, 그러니 여러분은 그동안 배우지 못했던 교육의 장을 우리 학교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길었던 교장선생의 훈화가 끝나고 모두가 교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보라는 은서를 보고 가기 위해 강단 옆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은서는 그 마음을 알고는 예서의 어깨를 톡톡 치고는 말했다.
“먼저 들어가 예서야.”
“아, 응 얼른 와~!”
예서는 밝게 웃고는 그 뒤를 따르는 수언을 보았다가 다급히 시선을 거두고 뛰어 들어갔다.
가장 뒤쪽에 있던 수언은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채 걸음을 옮기다가 은서와 보라 앞에서 멈춰 섰다. 보라는 수언을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야, 우리 수언이 다 컸네? 인기가 많아 아주. 장가가도 되겠어.”
수언은 아저씨 같은 멘트를 치는 보라를 보며 부끄러워했다. 수언을 둘러싸고 있던 한 여학생이 째려보고 있는 은서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검지와 중지로 자신과 은서의 눈을 왔다 갔다 하며 말을 내뱉었다.
“뭐야 넌? 야, 너 1학년이지? 눈깔을…….”
그 순간 은서가 한 걸음 옮겼다.
확.
그때 수언이 다급히 여학생의 손을 낚아채어 내리고는 등을 밀었다.
“그, 가, 가, 다들 가, 얼른. 수업 시작하잖아.”
“왜, 왜 이래 수언아……. 으, 응 네가 그러라면 그럴게.”
수언은 수줍음을 타며 가는 여학생들의 뒷모습에 대고 작게 말을 이었다.
“살고 싶으면…….”
보라는 살기가 잔뜩 벼려져 있는 은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은서! 여기서는 누구 죽이면 안 돼. 여긴 학교야. 알았지?”
은서는 어깨에 올라가 있는 보라의 손을 한번 보고는 시선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알아요, 알아. 안 죽여. 걱정…….”
그때, 은서는 갑자기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운동장 저 끝에 나무 사이를 눈을 좁히며 바라보았다. 그 반응에 보라가 은서의 얼굴을 한번 보았다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 운동장 끝을 보았다.
“응? 왜 그…….”
보라 역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후우우웅.
세찬 바람이 운동장을 한 바퀴 휘감는다. 그 바람을 따라 모래가 일어나 뿌옇게 흩날렸다. 학생들이 모두 빠진 그 텅 빈 운동장, 그곳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다. 그는 등에 검은 보자기를 짊어지고 있었다.
터벅, 터벅.
그의 걸음은 무겁고 진중했다. 그의 몸 주변으로는 모래도 피해갔다. 마치 모래바람이 그가 가는 길을 인도해 주는 것 같은 모양새다.
“아, 아…….”
은서는 목이 메어 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보라는 눈을 비비고는 다시 한 번 앞을 보았다. 조용히 그 남자를 바라보는 수언의 눈은 붉어지고 있었다.
턱.
그 남자는 은서에게서 열 걸음도 채 남기지 않고 멈춰 서더니 두 손을 쫙 펼쳤다.
“이리와, 우리 딸.”
다시 한 번만 들으면 소원이 없었던 그 중저음의 목소리. 그는 은서의 아빠, 여울이 맞았다.
은서는 눈물을 흩뿌리며 달려 나갔다.
“아빠아!!”
“오빠아!!”
“아저씨!!”
이에 질세라 보라가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 여울에게 확 안겼다. 여울은 피식 웃음 지으며 보라를 한 팔로 안았다. 그것을 본 수언이 염력으로 보라를 강제로 떨어트리고는 은서를 앞으로 보냈다. 그제야 여울과 상봉한 은서는 매미처럼 다리로 허리를 감싸고 확 껴안았다.
“아빠!! 아빠아앙…… 흐아아앙!”
“나두, 나두 보고 싶었어!! 이 나쁜 놈아! 어디 갔다 온 거야!!”
여울은 그 뒤에 주춤거리며 서 있는 수언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기, 멀리 다녀왔지…….”
여울은 고개를 들어 그때를 떠올렸다.
파아아아앙!!
스올의 자폭으로 인해 새하얀 빛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자신의 몸이 그 빛으로 인해 녹아들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잉.
갑자기 빛과 공기, 마나, 모든 것이 멈추더니 눈앞에 지퍼가 열리듯이 나무 지팡이 하나가 살짝 튀어나와 슥 줄을 그었다. 그러고는 새하얀 얼굴의 소녀가 얼굴을 빼꼼 내밀며 중얼거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그녀의 입술이 달싹거리는 모습을 보고 추측할 수 있었다.
‘내 지팡이를 이렇게 쓸 줄이야.’
그녀, 비아느는 여울의 한 손을 잡고는 끌어당겼다. 그러나 그 특수한 상황에서도 스올이 잡고 있는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악력은 어마어마했다. 마치 그의 모든 힘을 그곳에 쏟아부은 듯했다. 여울은 그 팔을 다른 손으로 아예 떼어 내고는 비아느의 손에 이끌려 로디스로 넘어갔다.
그 뒤로 팔을 다시 재생시키고 진후의 유골을 챙긴 후, 다시 돌아오기 위해 스올이 남긴 게이트 중 하나를 작동시키기 위해 마나를 모았던 것이다.
여울의 품에 안긴 은서는 얼굴을 마구 비비다가 눈물 가득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 아빠 진짜 죽은 줄 알았잖아……. 아빠 또 어디 가야 해?”
그 말에 여울의 옷에 눈물 콧물을 모두 묻히고 있던 보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가지 마, 가지 마. 이제 절대 아무 데도 안 보내.”
여울은 그 두 여인을 내려다보며 스윽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안 가. 곁에 있을 거야.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