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21
21
21. 미스릴
그것은 바닥에 쭉 뻗어 나가 매끈한 검의 형태로 변하여 굳어졌다. 그 시간은 채 1초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양날이 서 있는데, 끝 부분은 한쪽으로 올라가 있다. 뒤쪽 날은 은색 줄이 얇게 그어져 있어 앞뒤를 구별할 수 있다. 검이지만 도와 비슷한 형태다.
가드 부분은 거의 튀어나와 있지 않고 검신과 손잡이가 모두 검은색이어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여울은 그것을 살포시 감아쥐었다. 자석이라도 붙인 듯이 손에 착 감긴다. 가드가 없어도 검신 쪽으로 갈 일이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이 바로 ‘밤의 귀족’ 푸른 눈의 의뢰 보상이다. 그는 그때 분명히 기뻐하고 있었다.
여울은 매끈하게 뻗어 있는 검은 검신을 바라보았다. 생김새는 마음에 든다.
손에 제 살처럼 붙어 있던 놈인데 떨어질까? 여울은 의문이 들어 손을 펴 보았다.
탁.
검이 중력의 힘에 따라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음…….”
무언가 낯설고 묘한 감각이 느껴진다. 그 방향은 분명 바닥에 떨어진 검을 향한 감각이다. 손가락 하나가 잘려 나가면 이런 느낌일까 싶다.
눈을 감아도 그곳에 검이 있다는 것이 의식이 된다. 여울은 손바닥을 펼치며 그 낯선 감각을 자극했다.
후웅-
그러자 검이 자석처럼 빠르게 손으로 딸려 왔다. 마치 염력을 쓰는 것처럼.
여울은 뒤늦게 사람들이 의식되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웅이 이쪽을 힐끗힐끗 보고 있지만 제대로 눈치를 채지는 않은 듯하다.
거리 실험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자리에 누웠다.
보상이 기대 이상이다. 그렇게 힘들게 10층 보스를 잡았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흡족하다. 죽이기를 잘 했다는 위험한 마음이 올라와 억지로 가라앉혔다.
어깨를 보니 숫자는 사라져 있다. 그는 다음 의뢰를 주지 않았다. 이런 보상이라면 다음 의뢰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여울은 검을 다시 장갑으로 만들고는 눈을 감았다.
* * *
김진후의 베이스.
해가 밝아져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웅과 교대를 하고 불침번을 선 민철은 저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어엇? 저기 저 여자?”
“저분은!”
허연 맨살을 드러내며 너덜너덜한 속옷만 입은 여인이 달려온다. 그 뒤에는 해골들 세 마리가 따라오고 있다. 민철과 지연이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무기를 추켜들고 여인에게 달려갔다.
“살려 주세요!”
그녀는 민철과 지연의 지척에 다다르자 다리가 풀리며 바닥에 엎어졌다. 민철은 바로 뒤에 따라붙은 해골들을 처치했고, 지연은 그녀를 일으켜 뒤로 뺐다.
뒤늦게 합류한 진후와 해골들을 모두 처치하고 그 여인을 맞이했다.
그녀는 서 있는 것도 힘든지 부축을 받은 상태에서도 연신 다리를 떨며 입을 열었다.
“모, 모두 제가 죽였어요…… 그 나쁜 놈들을…….”
유라라고 소개한 그 여인은 자신이 한진 일행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을 자세하게 실토했다.
중간에 여울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가 눈짓하자 그와 만난 부분은 쏙 빼놓고 얘기했다.
한진은 진후 일행의 추측대로 질이 좋지 않은 자였다.
그런데 그 정도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는 여자들을 장난감처럼 여기며 서로 싸워서 죽게도 하고, 심심하면 관계 후에 죽였다.
그의 굴에 잘못 들어온 자들은 노예 아니면 죽음밖에 없었다고 한다.
스무 명이 넘던 여인들이 이곳에 올라올 때는 셋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잔악무도한 자인지 알 수 있었다.
“흠…… 그랬군요. 라브를 나눠 드려서 체력 보충 먼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지연 씨, 관찰 한 번 부탁해요.”
“아, 네.”
지연은 유라의 손목을 잡고 입을 벙긋거렸다. 그녀도 굳이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아도 특성을 발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머더러, 아니네요. 역시 그놈의 말은 거짓이었어…….”
진후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모래에 몸을 숨겨서 산 게 사실이라면, 혹시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한 번 가 보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진후의 의견을 따라 일행은 한진 일행이 머물렀던 곳으로 이동했다.
평소대로 두 줄로 가는 중, 지연은 속옷 바람이었던 유라가 생각나 뒤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새 커다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옆에 민철은 웃통을 벗고 있는 상태였다.
지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친절해요? 마음에 안 들면 유라 씨도 때리게?”
“아니! 그건 그 여자가…… 아우, 말을 말지 내가.”
지연은 민철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웃음 지었다.
“됐어요. 설명 안 해 줘도.”
지연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민철은 벙찐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여자를 때렸어요?”
민철은 화들짝 놀라 옆에 유라를 바라보았다.
“아, 그…… 사실이긴 한데 그건 그 여자가…… 갑자기 사람들 몰려드니까 연기를 해서…… 나만 죽일 놈이 되고, 아무튼 그때는 제 정신도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구나…… 괜찮아요. 전, 때려도.”
민철은 그녀의 말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손사래를 쳤다.
“네!? 아, 아닙니다. 안 때려요. 아하하.”
유라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민철은 어색하여 앞만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얼마 가지 않아 한진 일행이 머물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흐음…….”
“허…….”
“이럴수가…….”
그들은 모두 서서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대신 팔다리가 하나씩 없는 상태다. 얼굴이 반쯤 뜯긴 한진도 보인다. 유라와 함께 묶여 있던 여인도 두 팔이 없는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다.
유라의 말대로 라브는 무참히 꺾여 있다. 진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을 보며 말했다.
“자, 이대로 두고 싶지만 무고한 분도 있고, 레벨이 높은 자들의 좀비화는 위험하니까 미리 처리하고 갑시다. 이번에는 여울씨도 도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 인간의 존엄성을 버린 놈들…….”
해골들은 낮에는 시야가 매우 좁아진다. 밤에는 체감 상 200미터인데 낮에는 기껏해야 50미터 안팎인 듯하다.
진후 일행은 천천히 전진하여 그들을 조금씩 끌어들여 처리했다.
좀비들을 처리한 후 다시 미스릴을 찾아 이동하던 진후 일행은 앙상한 나무가 빼곡하고 굳은 땅에서 멈춰 섰다.
이곳은 바닥이 딱딱해서인지 해골들이 숨어 있지 않아 갑자기 기습을 당할 일이 없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느라 지칠 대로 지친 기웅은 바닥에 쓰러지듯이 앉으며 나무에 등을 세게 기대었다.
우직-
“음?”
기웅은 잘못 들었나 싶어 뒤를 돌아서 나무를 주먹으로 툭툭 쳤다.
우드드득-
“어어…….”
나무가 기웅이 주먹으로 친 부분부터 금이 가더니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기웅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앗 쓰러진다! 피하세요!”
“어헛!”
“이런!”
콰과아앙!
다행히 나무에 깔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무가 자신에게 쓰러지더라도 그걸 그대로 맞고 부상을 당할 만한 사람도 이곳에는 없었다. 기웅은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연신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소리가 나길래…… 응?”
기웅은 고개를 숙이다가 나무가 부러진 부분을 보았다. 그 안에는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기웅은 나무껍질을 떼 내어 그것을 꺼내 보았다.
“이건…….”
성인 팔뚝만 한 크기의 새하얗게 반짝이는 돌이다. 어느새 가까이 온 진후가 기웅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기웅이가…… 큰일을 했구나.”
그것은 자신이 미스릴이라는 것을 광고라도 하듯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진후는 허리를 펴고 이쪽에 시선이 집중된 사람들에게 외쳤다.
“자, 다들 무기로 나무를 베어 봅시다! 다치지 않게 거리를 벌려서!”
미스릴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무 한 그루에 하나씩 들어 있었다. 여울도 미스릴 원석을 두 덩어리 캐내어 칼론의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미스릴은 지금 상황에선 가공이 힘들었다. 불을 낼 방법은 많지만 녹일 만한 온도가 불가능하고 강철로 된 검으로 깎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진후 일행은 두꺼운 나뭇가지에 밧줄을 엮어서 망치처럼 만들었다.
민철처럼 주무기가 도끼인 사람들은 도끼날을 제거하고 미스릴을 달았다. 양쪽으로 끝 부분은 뾰족했다.
민철은 견고하게 묶어 만든 미스릴 망치를 둘러보며 흡족하게 웃음 지었다.
“흐…… 빛깔 봐라, 밤이 기대되는데?”
“무기 잘 만들어진 게 그렇게 좋아요?”
유라가 그의 옆에 바짝 붙어서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바지까지 벗어 주는 자들은 없었기에 여전히 하의 실종 패션이다. 그녀의 아찔한 각선미에 민철은 눈을 질끈 감아 피했다.
“아, 아…… 그렇죠 뭐, 강해지는 건 좋으니까…….”
“그렇구나…….”
끝말에 힘이 한없이 빠진다. 민철은 힐끔힐끔 유라를 보다가 멈춰 서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가끔 이렇게 눈이 초점 없이 멍할 때가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자신의 일처럼 가슴이 아파 온다.
다른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수군 대며 그녀를 청소 도구로 칭하지만, 민철의 눈에는 그냥 상처받은 가녀린 새처럼 보였다.
민철은 한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머리에 가져가려다가 이내 포기하고 내렸다.
진후의 일행이 라브를 중심으로 선을 따라 빙 둘러서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다. 진후의 한 손에는 방패, 한 손에는 미스릴 망치가 들려 있다.
푸슉- 푹-
어둠이 내려앉자 해골들이 모래를 뚫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놈들은 시야가 넓은 만큼 최소 50마리씩 달려든다. 여기저기서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턱-
진후가 먼저 혼자서 발을 한 발 내디뎠다.
타다다다다다닥-
붉은 안광의 해골들이 소름 끼치는 발소리를 내며 개미떼처럼 몰려왔다. 진후는 손아귀에 힘을 꽉 쥐었다.
끼아아악!
가장 가까이 다가온 놈이 바닥을 박차고 날아왔다. 진후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미스릴 망치를 휘둘렀다.
빠악!
그의 미스릴 망치가 정확히 놈의 심장을 강타했다. 놈은 가슴팍에 뼈가 으깨지며 날아오는 속도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놈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와아아아!”
그동안 쌓여 있던 울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진후 일행은 바로 진을 치고 라브에서부터 천천히 영역을 넓혀갔다.
낮보다 강하다고 해도 불사신이 아닌 이상 트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2레벨 두 명이면 충분히 한 마리를 상대할 수 있었다. 일행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조악하게 엮어서 망치 끝이 자주 빠지지만 밤에도 활동이 가능해졌다. 여울은 ‘디카르’를 소환하여 놈들의 심장을 찔렀다.
다시 부활한다. 미스릴과 같은 기능이 있지는 않은 듯하다. 별 상관은 없다. 미스릴도 있고 다크니스도 많다.
“엇, 저기요!”
지연이 어느 부분을 검지로 가리켰다. 저 멀리서 빛이 새어 나온다. 캄캄한 밤이라서 더욱 눈에 띈다. 그동안 왜 못 봤나 싶을 정도로 빛나고 있다.
진후 일행은 그 빛으로 다가갔다.
빛의 정체는 마법진이었다.
문양은 세모 두 개가 그려져 있다. 올라가는 마법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