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22
22
22 평안
마법진을 가만히 바라보던 진후가 입을 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건 없네요. 사람들에게 이곳의 법칙을 꼭 알려야 하는데…… 안 그러면 수많은 희생자가 나올 겁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마법진을 더 찾아보죠.”
“으흠…….”
“알겠습니다.”
“옙.”
그때, 다들 라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여울 혼자서 마법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후는 그의 마음을 읽고는 먼저 말을 걸었다.
“먼저…… 올라가시려고 합니까?”
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대답에 지연이 다가와 말렸다.
“아, 저희랑 같이 다니시면 안 되나요…… 아저씨?”
“뭐 그리 급히 간다고, 안 그래도 사람도 부족한데…….”
민철이 옆에서 투덜거렸다. 기웅도 쭈뼛쭈뼛하며 아쉬움을 몸으로 표했다. 다른 사람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크로우 님 가시면…… 무서운데.”
“그러게,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는데…….”
무섭긴 하지만 남아 있기를 바랬다. 정신적 지주인 진후와 달리 여울은 절대 무력으로 각인된 것이다.
눈앞에서 수십 마리의 해골들을 썰어 버리는 것을 봤기에 생겨난 의지다. 여울은 냉정하게 입을 떼었다.
“미스릴을 구했으니, 전 가겠습니다.”
진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을 내밀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또 뵙죠.”
진후는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그를 의지했다. 하지만 그가 사람들을 위해 며칠을 희생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보내 주려 했다.
여울은 진후의 손을 잠시 바라보다가 맞잡았다. 그러고는 마법진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중에 한 걸음 다가오는 유라와 눈이 마주쳤다.
여울은 미세하게 고개를 젓고는 마법진 위로 발을 올렸다.
[케라브, 12층입니다.]여울은 어둠에 적응을 빨리 하기 위해 감았던 눈을 떴다. 주변 환경은 11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무와 라브는 조금 더 많이 보인다.
시야에 꽉 찬 해골들이 사방에서 달려들고 있다. 여울은 한 손을 뻗어 ‘디카르’를 소환했다.
‘다크니스 블레이드.’
디카르에 검은 화염이 미끄러지듯이 뻗어 나가 깔끔하게 검신을 휘감았다. 물 만난 고기처럼 제짝을 찾은 모습이다.
다크니스도 많고 라브의 회복력을 아득히 초월하는 회복 스킬도 있다. 라브도 주머니에 가득하니 자신의 앞을 막아설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울은 디카르를 들어 올리며 수백 개의 붉은 점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 * *
12층에서 머무른 지 3일째, 여울은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마법진 앞에 서 있었다.
마법진은 아래층을 상징하는 별 문양, 위층을 상징하는 세모 문양의 마법진 두 개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다른 층도 같다면 11층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내려가서 알려 줘야 할까?
아니, 지도를 그리면서 체크를 해 보니 이곳은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어느 기점에서부터는 반대편 땅으로 이동되는 희한한 마법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략적인 직선 길이는 약 40킬로미터, 레벨이 올라가며 체력이 상당해졌으니 그들도 아래로 가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며칠 사이에 깨닫고 올라올 것이다.
여울은 마치 새 검처럼 피 한 방울 묻지 않고 빛을 내는 디카르를 바라보았다.
목표는 5레벨 진입, 그리고 감정이다.
지금 15층에 올라가면 아무도 없을 것이니, 감정의 돌을 통하여 자세한 감정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그곳이 휴식층이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여울은 망설임 없이 세모 문양 위로 걸음을 옮겼다.
후우웅-
* * *
“어? 어음…….”
서한은 고개를 갸우뚱한 채 입을 삐죽거렸다. 그의 앞에는 시야를 전부 가려 버릴 정도로 거대한 괴물의 등이 보였다.
방금 막 마법진으로 이동된 무영이 말했다.
“어라,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뭐긴 뭐야, 보스는 한 달이 리젠인 거지.”
그 뒤로 허스키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긴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묶고 건강미 넘치는 몸매를 지닌 여인이 창대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쌍꺼풀 없이 옆으로 긴 눈에 높은 콧대는 시원스런 느낌을 준다. 그녀는 서한 파티의 유일한 홍일점, 문솔이었다.
“어떡할 거유, 대장?”
구수한 말투의 주인공은 큰 덩치에 오크처럼 두꺼운 근육을 지닌 민머리 남성, 담덕이다. 그는 무거운 오크도끼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다.
“어떡하긴…… 잡을 거지, 대장?”
잔 근육이 발달되어 날렵해 보이는 사내가 중검 하나만 들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는 담덕과 현대에서부터 친구인 이건수다.
9층에서 레벨 업을 마치고 온 서한의 팀이다.
서한은 이쪽으로 몸을 돌리는 오우거를 보며 뒤에 팀원들이 보이게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겁먹은 사람.”
그의 말에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나, 나, 무서워.”
“저, 저도요.”
“아유, 오줌 매려라.”
“전 괜찮아요, 대장.”
서한은 한 걸음 앞으로 옮겼다. 그의 입꼬리는 말려 있었다.
“그래? 잡자, 그럼. 간다!”
서한은 오우거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 나갔다. 다른 팀원들은 반사적으로 따라 움직였다.
“아우, 씨.”
“이런 게 어디 있어!”
“나는 옆구리 맡을게.”
팀원들은 모두 무기를 추켜세우고 서한을 따라 달려 나갔다. 그들의 얼굴에 두려움은 없었다.
“크하아아아!”
오우거는 고작 다섯 명이 덤벼들자 화가 난 듯이 크게 포효했다.
“하앗!”
서한은 아래로 찍어 내리는 오우거의 주먹을 피하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놈의 팔을 타고 올라가 어깨에 상처를 내고 내려왔다. 놈은 움찔하며 서한을 따라 움직였다.
문솔은 달려가며 창을 강하게 던졌다. 창은 오우거의 옆구리에 깊숙이 꽂혔다. 4미터 정도의 높이다.
그녀는 앞에 뒤뚱거리며 달려가고 있는 담덕의 어깨를 밟고 날아올랐다. 어느새 4미터 높이에 다다른 문솔은 창대를 잡고 오우거의 옆구리를 발로 차서 빼내었다.
이건수는 오우거의 등을 타고 올라가 뒷목을 찌르고 내려왔다. 놈의 시선이 정신없이 분산된다.
담덕은 오우거의 발아래에 자리를 잡고 발목을 쌍도끼로 무자비하게 베어 냈다.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바로 따라붙어서 미친 듯이 베어 내고 있다. 벌써부터 진녹색 피가 콸콸 흐른다.
‘역시, 다들 대단해.’
무영은 팀원들을 보며 짧은 감탄 후에 달려 나가 오우거의 발목을 베어 냈다.
쿠우우웅!
건수는 초록색 바위 위에 철퍼덕 앉았다. 바위가 아닌 오우거의 이마다.
“후우, 휘유우우…….”
서한은 검으로 쓰러진 오우거의 팔을 툭툭 치며 투덜거렸다.
“후…… 징했다, 요놈.”
담덕은 구석에 엎어져 있다. 문솔은 그에게 다가가 창대로 옆구리를 툭툭 쳤다.
“일어나. 시체들 틈에 버리고 가기 전에.”
담덕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는 짧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어, 어.”
무영은 쪼그려 앉아 오우거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보며 말했다.
“이거, 이거 챙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회복력에 좋다고 했잖아요.”
서한은 손가락을 튕기며 그에게 총을 쏘는 포즈를 취했다.
“아아…… 그러네. 굿잡, 무영. 다들 피 챙기자. 일들 해, 일들. 담덕아!”
담덕은 일어나서 어딘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어어. 잠깐만.”
그때, 강렬한 빛이 담덕의 앞에 생겨났다. 그러고는 금세 빛이 사그라지고 가죽 주머니가 그의 손에 떨어졌다.
팀원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무영이 순간의 정적을 깼다.
“엇, 저거 그거다! 기여도 보상, 맞죠?”
담덕은 주머니 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응, 그려. 이게 그건가 보네. 잘됐다. 우리 팀, 이제 귀찮은 일 없겠다.”
건수가 오우거의 머리에서 내려오며 히죽 웃었다.
“진짜 잘 됐다~ 라브 수급 진짜 귀찮았는데.”
서한은 예상했다는 듯이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케이, 거기에 일단 피부터 담자고.”
서한은 옷으로 피를 흡수해서 담덕이 벌리고 있는 주머니에 피를 짜내며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바로 올라가지 말고 사람들한테 좀 알리자. 보니까 위층으로 가면 못 내려오는 것 같으니까 우리 굴 사람들에게라도.”
“예썰, 대장~!”
“까라면 까야지~!”
“그래야겠어요. 지금 보니까 최초로 잡은 거 아니라고 시스템 음성도 안 뜨네요. 은근 서운하네.”
팀원 전부 3레벨을 달성한 서한의 파티는 다섯 명으로 10층 보스 오우거를 잡으며 화려하게 신고식을 치렀다.
* * *
여울의 시야에 하얗게 빛나는 마법진이 보였다. 마법진은 낮에는 사라지고 밤에 생겨난다. 자신의 시력으로 2킬로미터 거리쯤이면 보인다.
올라가면 바로 다음 마법진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음 층에 가려면 마법진을 다시 찾아야 한다.
해골들을 무시하며 마법진만 찾았으면 금세 찾았겠지만, 레벨 업 목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해골들을 잡으며 여기까지 올라오니 2주가 걸렸다.
여울은 세모 마법진 위에 발을 옮겼다.
[케라브, 15층입니다.]해가 서서히 빛을 내고 있는 새벽녘,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 여울의 입이 자연스럽게 열렸다.
아래층과 비슷한 사막 한가운데에 깊고 맑아 보이는 호수가 있다. 면적도 시야에 한 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크다.
그 시작과 끝 부분에 작은 줄기가 이어져 있다. 호수가 아닌 강인 것이다. 그 주변은 물로 인해 수풀과 나무들이 자라나 있다.
강 주위만 숲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초록빛 세상이다.
“하아아…….”
여울은 아주 잠시 모든 걸 잊고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는 느낄 수 없었던 상쾌한 공기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몸 안을 순환했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이 마음이 평안해졌다. 여울은 팔다리를 사방으로 쭉 뻗고 수풀 위에 누웠다. 그리고 눈꺼풀을 천천히 닫았다.
‘잠이 들면 안 되는데. 아직 위험한 생물체가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고, 감정도 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올라오면…….’
여울의 끈끈한 정신력도 긴장이 풀려 버린 몸과 수마를 이겨 낼 수는 없었다.
케라브에 온 지 네 달, 항상 사람들과 함께 자거나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자기 때문에 감각을 곤두세우고 선잠을 잤었다.
사람도, 몬스터도 없고 상쾌한 공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여울의 문신처럼 굳어져 있던 얼굴이 미세하게 풀어졌다.
“…….”
타닥, 타닥, 타닥.
‘아빠, 아빠! 빨리 와!’
푸르른 잔디와 잎이 울창한 나무들이 보인다. 나뭇잎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비춰지고 사람들은 웃음 지으며 산책을 즐기고 있다.
고사리 같은 손이 자신의 손가락 두 개를 잡고 잡아끈다. 뽀얀 얼굴로 세상을 가득 채우는 미소를 짓는다. 가슴 한편에 온기가 차오른다.
‘은서, 내 딸 은서야. 아빠가 갈게. 아빠가 지켜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