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24
24
24 관념
기웅은 나무줄기를 엮고 있는 유라를 가만히 바라봤다. 자연스레 민철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만 믿고 두고 간다. 저 사내새끼 둘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 하면 손가락을 잘라 버려. 알았지?’
사내 둘은 유라를 가끔 보기는 하지만 별 관심 없어 보였다. 성질이 불같은 민철이 끔찍하게 챙기는 여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섣불리 치근덕대지도 않는다.
유라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엮은 나무줄기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만 있었다.
그때, 인기척을 느꼈는지 유라가 뒤를 돌아봤다. 기웅은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헙!”
기웅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은 옷에 검은 자켓, 한 손에는 검은 장갑을 끼고 건조한 눈빛으로 걸어오는 남자.
절대무력의 상징, 여울이다.
그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금이 저리고 숨이 가빠왔다.
지척에 다가온 여울과 눈이 마주쳤다. 기웅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굽혔다.
“크로우 님 오셨습니까!”
여울은 기웅 일행을 지나쳐 가다가 눈길을 주며 입을 열었다.
“올라왔군.”
기웅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당연히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아, 예! 덕분에 안전하게 올라왔습니…….”
말이 이상하여 끝을 흐렸다. 따로따로 올라왔으니 덕분이라는 말은 너무 겉치레다.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쳐갔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 사내들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과 마음이 비슷한지 목이 꺾어져라 여울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유라는 한숨을 돌리며 자리에 앉는 기웅에게 얼굴을 살짝 들이댔다. 기웅은 놀라며 뒤로 몸을 뺐다.
“저 사람이 그렇게 무서워요?”
“아, 아니에요~ 무섭긴, 하하…….”
그렇게 얘기하며 뒤돌아서 여울의 위치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여울은 레벨 업을 위해 15층으로 내려왔다.
한 달 만에 방문이라서 그런지 바뀐 부분이 많았다. 통나무와 나뭇가지로 바닥과 지붕을 만든 집이 세 채 보였고, 진후 일행 네 명이 보였다.
여울은 그들을 지나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숲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나무가 많고 아직 사람이 적으니 레벨 업을 안전하게 할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들과 거의 반대편에서 크고 높은 나무를 찾았다. 여울은 바로 맨손으로 나무껍질을 찍어 가며 성큼성큼 올라가기 시작했다.
레벨이 올라가며 살갗도 질겨지고 뼈도 단단해져서 맨손으로 나무껍질을 찍을 때마다 파일 정도다.
디카르를 낀 오른손은 손가락 한마디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찍을 수 있었다.
지상과 20미터 높이쯤에 가지가 뻗어 나가는 기점에 올라섰다.
꽤 넓다. 사람 한 명이 누울 수 있을 정도의 자리다. 전의 5층 동굴에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아늑함이다.
매우 마음에 든 여울은 오늘 잠도 이곳에서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16층부터는 스콜피온 때문에 라브 주변에서 잔다고 해도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여울은 그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케라브, 레벨 업.”
후우웅!
[5레벨에 진입합니다.] [특성 : 다크니스가 강화됩니다.] [특성 : 독 내성이 강화됩니다.] [특성 : 민첩이 강화됩니다.] [특성 : 동체 시력이 강화됩니다.] [레벨 동기화를 진행합니다.]으득, 으드득!
“크흡.”
마치 뼈를 강제로 꺾는 듯한 소리와 고통이 느껴졌다. 여울은 새어 나오는 신음을 밀어 넣으며 온 신경을 몸속에 집중했다.
5레벨이라는 숫자의 중압감에 어울리는 거대한 기운이 온몸을 강타했다.
단번에 몸속의 모든 세포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니, 각오는 했지만 고통이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정신만은 또렷하다. 레벨이 오르면서 신체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력까지 강화된 듯하다.
“후우…….”
수 시간 후, 여울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몸 상태를 체크했다. 확연히 높아진 신체 능력이 느껴진다.
전에는 느껴 보지 못했던 힘이 차오른다.
이제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초인적인 능력치를 지닌 것이다.
항상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수치가 정확히 나오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있다.
체감상 레벨 업을 할 때마다 현재 상태에서 1.3배 정도 올라가는 것 같다.
4레벨의 1.3배니까 레벨이 생성되기 전에 일반적인 사람일 때의 신체 능력보다 3.7배 정도 높은 것이다.
많이 사용하는 부위와 사용하지 않는 부위는 또 다른 듯하지만, 특성인 민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무호흡으로 단거리는 스포츠카와 비슷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다크니스 스킬이 개화하지 않았다. 짝수 레벨 때마다 개화하는 듯하다.
레벨 업을 하니 몸과 정신이 티 없이 개운해졌다. 따로 숙면 같은 건 필요치 않다.
‘낮이 되어 마법진이 사라지기 전에 이동한다.’
여울은 바로 나무에서 내려와 걸음을 옮겼다.
기웅은 그를 발견하고는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어, 어디로 가십니까?”
여울은 그를 힐끗 쳐다봤다가 금세 눈길을 거두며 대답했다.
“20층.”
혼자서 간다고 말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층수다. 하지만 그가 말하니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기웅이었다.
“아……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여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성큼성큼 발을 놀렸다. 기웅은 그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기웅에게 여울은 경외의 대상이다.
* * *
머물 곳을 만든 진후 일행은 올라오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아래층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때 13층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진후의 일행들은 반가움에 검째로 들어 손을 흔들었다. 반대편에서도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음, 좀 적은데요?”
진후도 정예로만 꾸며서 올라간다고 한 게 서른 명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파티는 고작 네 명이다.
진후는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다가 가까워지자 미간을 좁혔다.
“아, 아하.”
그들을 알아본 지연이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진후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지척에 다가온 그들의 리더가 진후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여어, 오랜만이네~.”
그들은 토벌대로 9층에서 마주쳤던 서한 일행이었다. 능력이 있음에도 합류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라 반가운 표정이 나오지 않는 진후였다.
“예, 오랜만입니다.”
서한은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건넸다.
“왜, 많이 힘들었나? 아. 그 쪽지, 고마웠어. 덕분에 밤은 편히 보냈네.”
진후는 고개를 묵직하게 끄덕이고는 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올라오신 분들은 여러분이 다입니까?”
“아니, 우리가 먼저 올라오기는 했는데, 앞으로 더 올라오겠지.”
그때 서한의 옆에 있던 이건수가 중간에 껴들었다.
“우리가 오우거를 다시 처치했거든.”
어깨를 널찍하게 펴고 자랑하듯이 말하는 폼에 지연이 한 걸음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오우거를? 다시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녀의 반응에 서한이 건수를 한 번 노려보고는 설명했다.
“몬스터들이 리젠되는 건 알 거야, 보스도 그런 것 같아.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있었어, 너희가 공략하고 한 달하고 일주일쯤 뒤였을 거야.”
말하는 걸 보면 지금 보이는 네 명이서 오우거를 잡았다는 것이다.
쉽게 믿기지가 않는다. 자신의 굴 사람들과 같이 잡고 저렇게 얘기하는 건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 대략 한 달, 11층으로 올라온 지 두 달이 되었으니 지금쯤 다시 리젠되었거나 곧 될 것이다.
지연과 같은 생각을 한 진후가 그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정보를 알고 있습니까?”
“글쎄, 우리 굴 사람들한테는 말했지.”
진후는 미간을 좁히며 그를 다그쳤다.
“왜…… 왜 그렇게 했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멋모르고 올라와서 리젠된 오우거에게 죽기를 바라는 겁니까?”
서한은 눈살을 확 찌푸리며 그에게 반 발자국 다가갔다.
“내가…… 어디까지 사람들을 돌봐줘야 하지?”
그의 행동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양쪽의 공기가 얼어붙으며 긴장감이 생성되었다.
담덕은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고, 건수는 재미있다는 듯이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문솔은 관심이 없는지 다른 곳을 보며 창을 돌리고 있었고, 무영은 은신한 채로 진후의 뒤에서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우리가 남긴 쪽지에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까? 이곳에 온 이상, 서로를 도와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서한은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그건 네 선택이고, 이건 내 선택이고. 네 생각이 진리인 양 강요하지 마라. 가자.”
서한은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듯이 뒤돌아섰다. 그의 동료들도 같이 뒤돌아서 그의 뒤를 따랐다.
서한은 몇 걸음 못 가 멈춰 서서 반쯤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아, 그리고 착각하지 마. 네가 살아남았듯이, 쪽지가 없다 해도 우리도 살아남았을 거야.”
서한은 그 말을 남기고는 걸음을 옮겼다. 진후는 인상을 찌푸린 채 그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도움을 받고도 역정을 내는 그가 괘씸하지만, 그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문솔은 뒤를 힐끔 보고 진후 일행과 꽤 많이 떨어진 것을 보고 서한에게 물었다.
“대장, 정말 그렇게 생각해?”
“뭘.”
“쪽지.”
“몰라, 짜증 나서 한 말이야. 저 샌님, 나랑 안 맞아.”
서한은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그런 대장의 모습은 처음 본다. 항상 서른여섯 인생 풍파 다 겪은 아재 같던 그가 이번에는 중학생 같았다.
그도 긴장했던 것이다.
그도 진후라는 인물을 깊게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가 자신의 신념과 부딪치니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고, 이기고 싶었던 것이다.
문솔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으며 뒤를 따랐다.
김진후는 그들의 모습이 점처럼 변할 때까지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지연은 그의 옆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다섯 명이네요. 저 사람들.”
“음?”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진후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연은 그들에게 눈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제 눈에만 보이는 것 같아요. 반투명하게 외곽선만. 한 명이 그들과 함께 걷고 있네요. 외형을 보니 저번에는 보였던 젊은 청년 같아요.”
“투명화라…… 정말 별별 특성이 다 있군, 내 옆에 지연 씨가 있어서 다행이야.”
최근에는 가끔씩 반말을 섞는 진후였다. 지연은 그의 말에 뜻을 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연은 어쩌면 최근에 자신이 3레벨이 되어서 보이는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추측으로는 그들은 모두 3레벨 이상이니, 이곳의 법칙상 저레벨이 고레벨의 특성을 통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강한 파티야.”
“그렇죠.”
진후는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들도 함께하면 훨씬 든든했을 것이 상상된다. 20층에 있을 미지의 보스를 잡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너무나도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없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미련을 털어야 한다.
이번 달이 휴식층이 사라지는 달이니, 사람들이 많이 올라왔을 것이다. 그들을 챙겨서 15층까지 에스코트하며 괜찮은 특성자들을 찾아 레벨 업에 집중을 해야 했다.
20층 보스를 공략하기 위해.
진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크로우 님은 어디 계신 건지…… 20층 보스 공략 때…… 같이할 수 있을까?’
그때 진후의 귓가에 시스템 음성이 울렸다.
“뭐,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