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25
25
25. 마녀
[케라브, 20층입니다.]여울은 마법진 이동에 한층 더 빠르게 적응하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휘이이잉-
나무도, 라브도, 심지어 몬스터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붉은 안광을 빛내는 해골도 없다. 19층에도 있던 스콜피온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몬스터가 없으니 오히려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여울은 일단 사막을 걸어 보았다.
끼긱- 끼긱-
귓가에 미세한 마찰음이 들렸다. 두 달 동안 지겹게 들었던 소리다. 바로 뼈가 부딪치는 소리다.
여울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래 언덕을 하나 넘어서니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흡!’
말이 헛 나올 뻔했다. 여울은 숨을 집어삼키고 조심스레 엎드렸다.
수천 마리의 트롤 해골과 오크 해골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들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음…….’
그 징그러운 무리의 중심에 지름 5미터 정도가 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창백한 피부의 여인이 느릿하게 걷고 있었다.
긴 머리로 눈까지 가려져 있어 얼굴을 제대로 식별할 수는 없었다. 그 주변에는 스콜피온들 약 30여 마리가 둥그렇게 둘러싸서 호위를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스콜피온은 전에 보았던 개체와는 다르게 눈이 붉게 빛나고 껍질 안쪽에 살이 없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언데드가 된 스콜피온들이었다.
풍겨 오는 분위기나 기운이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여인이 돌연 멈춰 섰다. 그러자 모두 정신이 이어진 듯이 거의 동시에 행군이 멈추었다.
기이하면서 소름 끼치는 장면이다.
여인의 고개가 느릿하게 돌아갔다. 머리카락 사이로 파란빛을 내는 눈과 마주쳤다.
그녀가 한 손을 들어 자신을 정확하게 가리켰다.
동시에 수천 마리의 해골들이 고삐가 풀린 듯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기기기기기기기긱!
무시무시한 속도로 모래 언덕 위로 달려온다. 가까이서 보니 놈들에게는 검은 심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죽이지?’
여인이 있어서인지 확실히 더 빠른 해골들이었다. 여울은 순간 고민했다.
혼자서 이 많은 해골들을 죽일 순 없다. 심장이 없으니 죽지 않을 수도 있다.
둘 중 하나다. 사지가 찢겨져 죽거나, 지쳐서 쓰러지거나.
어차피 선택권은 없다. 여울은 일어나서 디카르를 들어 올렸다.
화르륵-
검은 화염이 디카르를 매끈하게 감쌌다. 불길이 전보다 더 진해진 느낌이다. 여울은 디카르를 그대로 앞으로 던졌다.
퍼버버버벅!
디카르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며 해골들의 심장 부위를 관통했다. 직선상에 있는 스무 마리에 가까운 해골들이 쓰러져 내렸다.
하지만 놈들은 금세 다시 일어났다.
아예 죽이지 못하는 것이다. 죽일 방법이 없다. 이 세계에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심장이 존재하는 건 한 명밖에 없다.
여울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언덕 위에서 뛰어오르니 그들보다 한참 높게 몸이 떠올랐다.
마치 날아오른 것처럼 보인다. 여울은 공중에서 한 손을 뻗었다.
한 트롤 해골의 가슴팍에 박혀 있던 디카르가 빨려 들어와 손에 착 감겼다.
여울은 공중에서 사람도, 몬스터도 아닌 마녀와도 같은 여인을 향해 검을 던졌다.
후웅-
끼긱-
동시에 언데드 스콜피온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한 마리가 꼬리로 디카르를 쳐 내려고 했다.
디카르는 놈의 꼬리를 관통하고 그 뒤에 있던 스콜피온의 몸통에 박혔다.
여울은 지상에 착지하여 해골들의 머리와 어깨를 밟으며 그곳으로 무작정 달려 나갔다. 디카르는 손으로 다시 회수되는 동시에 바닥을 박찼다.
우득-
발바닥에 걸린 트롤 해골의 목뼈가 꺾였다. 여울은 점프하여 언데드 스콜피온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수십 개의 꼬리와 집게가 달려든다.
여울은 동체 시력 특성을 최고조로 활용하며 그것들을 교묘하게 쳐 내었다. 잘라 내기에는 촉박한 시간이다.
놈들에게도 감정이 있는지, 한 놈이 더 깊숙이 집게를 뻗었다. 여울의 눈이 빛났다. 놈의 집게발을 밟고 뛰어올랐다.
중간에 공중에서 찔러 오는 독침이 보였다.
그 끝을 손으로 잡고 도움닫기 삼아 넘어갔다.
드디어 대각선 아래에 여인이 보인다.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디카르를 뻗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살짝 걸린다.
채앵!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나며 여인의 고개가 돌아갔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보석처럼 파랗게 빛나는 눈과 마주쳤다.
온몸에 있는 털들이 쭈뼛 서는 기분이다.
여울은 서슴없이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
푸욱-
그녀의 입이 벌어진다. 입 안이 검다. 소리는 나지 않는다.
여울의 움직임이 그 자세 그대로 멈칫했다. 그의 뱃가죽을 뚫고 뾰족한 것이 툭 나온다. 스콜피온의 독침이다.
푸북! 퍼버벅, 푹!
수십 개의 독침이 여울의 몸에 꽂혔다. 한 스콜피온은 화가 난 듯이 꼬리를 추켜세웠다.
놈에게 등이 찍힌 여울은 그대로 들어 올려졌다. 여울은 하늘을 향해 허리가 꺾인 상태로 있었다.
디카르가 아직 심장에 박혀 있는 여인은 입을 벌린 채로 여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신비로운 눈동자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녀의 가녀린 손이 자신을 향해 들어 올려졌다.
그때.
츠으으-
그녀의 신체가 머리카락부터 시작해서 순식간에 검은 재로 화했다.
드르르르르르륵-
그와 함께 여울을 들고 있던 스콜피온이 무너져 내렸다.
다른 해골들도 동시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대지가 순간 평평해졌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는 여울의 귓가로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특성 : 독 내성이 강화됩니다.] [20층 보스를 최초로 공략했습니다.] [21층이 개방됩니다.]여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지금 이 상황이 웃기다.
죽을 지경으로 독침을 맞았는데, 뜨는 소리가 독 내성이 강화된단다. 시스템으로 인해 구사일생하는 것이 웃기고, 그것을 이용한 자신도 웃기다.
“크흑, 크흡, 크흐흐…… 다크니스…… 큐어.”
스으으-
그의 시동어에 검은 안개들이 새어 나와 여울의 몸을 감싸고 돌기 시작했다. 출혈이 순식간에 멎고, 벌어진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했다.
시스템 음성이 이어서 들려왔다.
[케라브 B구역이 개방됩니다.] [기여도 보상, ‘실리아의 반지’를 수령하시겠습니까? 24시간 이내에만 수령 가능합니다.]‘B…… 구역?’
* * *
[20층 보스를 최초로 공략했습니다.] [21층이 개방됩니다.] [케라브 B구역이 개방됩니다.]서슬 퍼런 검이 트롤 해골의 손아귀를 지나쳐 심장을 정확히 찌른다. 놈의 몸을 발로 차낸 이건수는 고개를 쳐 올리며 크게 말했다.
“헤에엑, 벌써?”
문솔은 가장 먼저 서한의 반응을 확인했다.
“잘못 들은 거지? 대장도 들었어?”
담덕은 머리를 한 번 긁적였다.
“B구역 개방? 저게 뭔 소리유?”
서한은 잡던 해골을 마무리하고는 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글쎄, 그나저나 20층 클리어라니. 진후 저 사람은 방금 봤고…… 대체 누구네 파티가?”
털썩-
이건수는 모래 바닥에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우리가…… 나름 잘나가는 줄 알았는데, 우물 안 개구리였어…….”
문솔은 말없이 그의 어깨를 기계적으로 토닥였다. 영혼은 전혀 없어 보인다.
무영은 혼자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다.
‘아까 진후 님 일행에 보이지 않았는데…… 혹시?’
퍼석!
미스릴 망치로 해골의 가슴팍을 깨부순 민철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쳤다.
“뭐, 뭐?”
“갑자기 20층 보스가 잡혔다니? 누가?”
“우리가 가장 먼저 올라온 거 아니었나?”
진후의 일행은 하나같이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최초 입장에다가 10층의 보스를 토벌한 장본인들이니, 그 놀라움은 더했다.
“게다가 B구역 개방이라는 건 또 뭐야?”
이곳에서는 새로운 것이 생기면 더 불안해진다. 케라브에서 낯선 것은 언제나 희생이 따랐다.
진후의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여울이 홀로 사막 한가운데에 고고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설마…… 혼자서? 아니, 우리가 놓친 어떤 파티가 있을 것이다. 이곳은 넓고 사람들은 많으니까. 우리가 올라올 준비를 하는 3일 동안 다른 파티가 올라갔을 수도 있다.’
그때 지연의 목소리가 상념을 깨웠다.
“어떻게 할까요?”
최종 목표가 깨졌으니, 경로를 묻는 것이다. 진후는 사람들을 보며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바뀐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도우러 아래층으로 내려갑니다. 이동합시다.”
흔들림 없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 * *
“하아…….”
정신력이 높아지니 배가 관통되고 살이 찢기는 고통에도 찬물을 끼얹은 듯이 멀쩡하다.
덕분에 어둠의 기운이 상처를 치료하는 시간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살과 피를 다져서, 얇게 펴서 치료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끔찍한 시간이었다.
탁탁-
여울은 일어서서 옷을 털었다. 주변에는 모두 뼛조각밖에 보이지 않는다.
옆에는 잿더미와 여인이 입었던 검은 원피스가 남아 있었다. 이곳은 옷이 귀중하다.
그 마녀 같은 여인이 입었던 것이면 특별할 것이다.
여울은 원피스를 일단 챙겨 넣었다.
“보상 수령.”
말과 동시에 눈앞에서 빛이 나더니 조그마한 것이 손에 떨어졌다.
은색의 무광 반지다. 이 여인을 지칭하는 것 같은 이름의 반지였는데, 상당히 크다. 엄지손가락만 하다.
일단 그것을 오른손 엄지에 끼워 넣었다. 조금 남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사이즈에 맞게 줄어들었다.
빼기도 힘들 정도로 딱 달라붙었다. 엄지면 검을 집을 때 불편하다.
지잉-
그런데 반지를 잡으니 다시 늘어났다. 반지를 빼서 왼쪽 검지에 끼니 3초 정도 후에 다시 줄어들었다.
무슨 기능이 있는지는 나중에 지연에게 확인해 봐야겠다.
기여도 보상에 볼일이 끝난 여울은 새롭게 생긴 마법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녀가 소멸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음…….”
가까이 와서 보니 마법진이 세 개다. 별 문양, 세모 문양, 그리고 작은 별 열 개가 동그랗게 둘러져 있는 문양에 파란빛을 내는 마법진이었다.
B구역으로 가는 마법진인가?
‘디카르.’
오른손에 디카르가 검의 형태로 변환되었다. 여울은 고민 없이 파란빛을 내는 마법진 위로 발을 올렸다.
* * *
마른 중년인이 창을 지팡이삼아 지면을 찍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뒤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진후의 제안으로 굴 사람들을 챙기게 된 백일권이다.
일권은 5층이 사라지는 날까지 사람들을 올려 보내다가 마지막으로 레벨 동기화 부작용으로 인한 부상자들을 챙겨서 올라는 중이었다.
인원은 60명이지만 사지가 멀쩡한 사람은 20명에 불과했다.
3레벨은 백일권과 나중에 합류한 윤진섭이라는 청년까지 둘 뿐이었다.
윤진섭은 창을 잘 다루는 청년이다. 짧은 시간 같이 있었지만 일권이 많이 의지하는 청년이었다.
일권은 자신보다 더 앞장서서 가는 진섭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후각 특성인 그는 적들의 출현과 기습을 잘 알아챘다. 그와 사냥을 나가면 마음이 든든했다.
그때, 진섭이 다급히 뒤돌아섰다.
“뒤에!”
일권은 고개를 홱 돌렸다. 가장 뒤의 열에 한쪽 다리가 터져 나간 부상자를 향해 달려드는 트롤 두 마리가 보인다. 일권은 눈을 부릅뜨며 집중했다.
그러자 트롤 한 마리가 갑자기 검로를 틀어 옆에 트롤의 목을 잘랐다.
그러고는 검을 역으로 들어 자신의 목에 찌르고 쓰러졌다.
상황이 종료되자, 진섭이 옆에 다가와서 말했다.
“후…… 언제 봐도 신기하네요. 정신 장악은.”
“3레벨이 돼서 그나마 나은 거지, 2레벨 때는 정말 쓸모없었어.”
“하핫, 나중에는 아저씨가 최고가 될 거예요.”
“빈말은…… 가자.”
일권은 그의 말이 듣기 싫지는 않았는지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드디어 10층으로 올라가는 마법진에 도착했다. 일권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자, 다른 굴 사람들이 보스를 최근에 잡았다니까, 얼른 올라갑시다. 진섭이 먼저 올라가고.”
“예에~!”
“무섭다…… 11층에는 뭐가 있으려나.”
“올라가야지, 5층도 곧 사라지니까.”
일권은 씁쓸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보냈다. 진후와 여울, 지연을 마지막으로 본 지가 두 달째다.
그들이 살아 있을지 궁금하다. 이제 짐을 좀 내려놓고 싶다. 자신은 리더 체질이 아닌가 보다.
일권은 짐을 벗어던질 기대를 하며 마지막으로 마법진을 타고 올라갔다.
후우웅-
“아…….”
일권은 고개를 들고 입을 벌렸다.
자신의 눈앞에는 진섭을 한 손으로 쥐어 잡고 벽으로 던지는 오우거가 보였다.
수십 명의 사람들 걸레짝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한 사내가 일권을 발견하고 크게 외쳤다.
“이, 이동하는데 갑자기 생겨났어요! 어, 어떻게 해요!”
저 멀리 빛나고 있는 마법진이 보였다. 올라가는 마법진도 보였다. 최초로 공략한 후에는 보스가 떠도 마법진이 항상 활성화되어 있는 듯했다.
일권은 그곳을 검지로 가리키며 입이 찢어져라 외쳤다.
“세모 마법진 위로! 다들 도망쳐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뛰었다.
오우거는 두 손을 휘적거리며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사람들은 오우거의 팔에 부딪혀 날아가 벽에 부딪혀 터져 나간다.
퍼석! 퍼억!
그렇게 움직인 오우거는 마법진 위에 자리를 잡았다.
지성이 있는 것이다. 단 한 명도 살려서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절망했다.
“아, 아…….”
“여기서 죽는 건가…….”
일권도 절망을 금치 못했다. 오우거는 그 큰 손바닥을 펼쳐 아래로 내리쳤다. 두 다리가 부상을 입어 절뚝거리는 여인과 그녀를 부축하는 여인이 있는 곳이다.
그대로 짓눌러 죽일 심산이다.
“꺄아아악!”
그때.
백일권의 시야에 공중에서 하얀빛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검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촤아아악!
그 절체절명의 순간, 여인 둘을 덮친 것은 오우거의 무지막지한 손바닥이 아니라 진녹색의 피였다.
오우거의 손은 깔끔하게 절단되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일권은 본능에 이끌려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옷에 검은 머리칼, 검은 검을 한 손에 쥐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비쳤다.
“아…….”
일권의 눈에서 물기가 차올랐다.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일권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분이……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