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27
27
27 대장장이
여울은 자신을 향해 창끝을 겨눈 이도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저자에게 죽을 만한 짓을 했던가?’
그는 케라브에서 처음 만났던 무리 중 한 명이었다. 총을 가지고 있는 군인 사내와 같이 있었는데 기습을 가하기에 손등에 단검을 박았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많아서 기선 제압을 위한 과장 행동이었다.
손등의 흉터를 보니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때는 특히 마음이 급하여 눈이 돌아가 있었다.
휴식층은 사람들끼리도 평화를 유지하자는 규칙을 만들었다는데, 그것을 깰 정도로 자신에게 원한이 깊은가 싶었다.
“손은…….”
“죽어라!”
그때, 도원의 창이 허공을 갈랐다.
여울은 그 순간 그들을 다크니스로 환산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생각을 털어 내고 몸을 왼쪽으로 기울였다. 원래 여울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창끝이 꽂힌다.
그의 부하들도 검을 빼 들고 달려든다. 여울은 손을 뻗어 도원의 창대를 잡고 안쪽으로 당겼다. 운동 방향이 같으니 손쉽게 끌려오는 도원이었다.
여울은 한 발자국 마중을 나가며 주먹으로 그의 배를 짧게 끊어 쳤다. 순간 그의 몸이 3센티미터쯤 떠올랐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도원을 뒤로하고 옆으로 걸음을 옮기며 자신에게 휘둘러지는 검면을 손바닥으로 쳐 냈다. 검신은 마치 고무처럼 옆으로 휘어지며 다른 자들의 검신과 부딪혔다.
그러고는 자신의 검이 크게 흔들려 중심을 못 잡는 사내의 발목을 올려치며 손바닥으로 뒷목을 내려쳤다. 사내는 곡예를 하듯이 공중에서 한 바퀴 휙 돌고는 바닥에 엎어졌다.
여울은 그들의 공격을 마치 미리 본 듯이 절묘한 타이밍에 피하고 끌어들여 반격을 가했다.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맨손으로 상대하는데 그들은 마취 주사라도 맞은 듯이 픽픽 쓰러졌다.
“크핫!”
마지막 일곱 번째 사내가 쓰러질 때, 배를 맞고 쓰러져 있던 이도원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을 뻗었다. 아까와는 달리 힘도 속도도 배 이상 죽어 있다.
여울은 몸을 숙이며 안으로 파고들어 손으로 그의 얼굴을 잡아 바닥에 찍었다.
쿠웅!
여울은 바닥에 엎어진 그의 위에 올라타 손목을 잡고 바닥에 붙였다. 그러고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어 그의 손등에 내려찍었다.
푸욱!
“아아아악!”
여울은 도원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시간이 지났다고 상황이 바뀔 거란 착각은 명을 재촉하지. 손바닥에 깊이 새겨라.”
여울은 그의 손바닥에 박혀 있던 단검을 가차 없이 뽑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흑!”
“흐으으…….”
“크흡.”
여울을 중심으로 일곱 명의 사내들이 쓰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다. 그 주변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여울은 단검에 묻은 피를 옷에 대충 문지르고는 대장장이 여인에게 다가갔다.
“길드, 없어도 됩니까?”
여인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어, 없어도 됩니다, 당신은…….”
여인의 망치를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 *
“후우.”
20미터 높이, 사방을 둘러싼 잎사귀, 새까만 하늘, 사람들과 완전히 단절된 자신만의 공간에 오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곳은 5레벨 진입 때 찾았던 커다란 나무 위다.
미스릴 검은 내일이면 만들어진다고 한다. 하룻밤만 이곳에서 머물고 다시 올라갈 생각이다.
21층부터는 또 새로운 환경, 새로운 몬스터가 목숨을 위협할 것이다. 케라브는 목숨이 여러 개라도 위험한 곳이다.
몇 층이 끝인지도 모르는데 너무 성급하게 가다가 감당하지 못할 위험을 겪으면?
아니, 겪어도 돌파해야 한다. 지금처럼, 멈출 수 없다.
여울은 다음 날이 되어 대장장이 여인을 찾아갔다. 그녀는 여울을 발견하고는 뒤에 모포로 덮어 뒀던 검을 꺼내어 모포와 함께 건네주었다.
“음…….”
검의 생김새가 대장간 앞에 쌓여 있는 여타 미스릴 검과는 전혀 다르다. 날도 웬만한 몬스터를 벨 만큼 날카롭게 벼려져 있고 색도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다.
검을 둘러보는 여울의 얼굴을 살펴보던 여인이 칭찬을 바라는 듯이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 좀 썼어요. 얼른 숨겨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말 많아져요.”
여울은 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검을 모포에 감싸서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군요. 그럼.”
“이, 이름!”
여울은 그녀의 다급한 말에 고개를 내려 시선을 마주했다.
“길드가 없으니 이름이라도 말해 줘야 나중에 찾죠.”
“여울입니다.”
여인은 혹여나 까먹기라도 할까 바로 이름을 되뇌었다.
“여울, 여…… 울.”
여울은 양손에 망치와 미스릴을 든 채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여인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 올라갈 때다.
* * *
“음…….”
16층, 여울 앞에는 수십 명의 사내들이 무기를 들고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다. 그 중심에는 창대와 손을 붕대로 둘둘 감은 이도원이 있었다.
“내 손을…… 두 번이나 이렇게 만들고, 살아 돌아갈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여울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대체 얼마나 안목이 없으면 겨우 서른 명으로 이렇게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들까? 안 하던 행동을 했던 것이 문제다.
이도원은 말문을 잃은 여울의 모습에 더욱 이죽거렸다.
“늦었어, 이제 네놈의 죗값은 그 머리에 달린 것을 주는 수밖에 없…….”
주르륵.
그때, 여울의 오른손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 검 모양으로 형성되었다. 여울은 사내들을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5초 준다. 무기를 버리고 엎드려라.”
여울의 말에 말문이 막힌 이도원은 멍하니 있다가 큭큭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크흡, 미친놈……. 쳐라!”
“죽어!”
“뒈져라!”
이도원의 부하들은 창검을 앞세우며 여울에게 달려들었다. 여울은 가만히 검을 늘어트린 채로 입을 벌렸다.
“5초, 끝.”
여울의 발이 지면을 박찼다. 수십 개의 창검이 그의 몸을 꿰뚫기 위해 쏘아져 왔다. 창날의 끝부분이 그의 미간에 닿을 때쯤, 그의 허리가 주욱 꺾였다.
목표를 잃은 무기들은 공기를 갈랐고, 그사이 안쪽으로 거리를 좁힌 여울의 디카르가 그들의 발목을 잘랐다.
촤아아악!
디카르가 크게 휘둘러지자 한 번에 다섯 명의 발목이 잘려 나갔다. 열이 무너지고 초근접전이 되는 순간, 그때부터 여울의 타임이 시작되었다.
후웅, 후웅.
5레벨에 민첩 특성까지 지닌 그를 보고 있자면 마치 검은 선과도 같았다. 그 선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도원의 부하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 따위는 단 한 번도 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팔다리가 솟아오르며 붉은 핏줄기를 뿜어 댔다.
턱.
이도원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몇 발자국 못 갔을 때, 검은 사신이 앞으로 다가왔다. 도원은 얼어붙은 채 그를 보다가 재빨리 창대와 자신의 손을 묶은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아, 아, 아이 씨.”
붕대가 잘 풀리지 않자 도원은 신경질적으로 팔을 털어 내어 창을 내던지고는 다급히 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터덕.
도원의 시선에 여울의 두 발이 보였다. 그리고 귓가로 그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예외다.”
서걱.
여울의 디카르가 도원의 목을 깔끔하게 잘라 냈다. 도원의 목에서 울컥울컥 흘러나오는 피가 사막의 모래를 붉게 적셨다.
한지연이 복수하게 놔두려고 했는데, 명을 재촉하는 놈이다.
서른한 명, 다크니스는 이제 400이 넘어간다. 다크니스는 당분간 걱정이 없을 듯하다.
촤악!
여울은 디카르를 휘둘러 피를 털어 내고는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휘이이잉.
적막한 사막, 바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어디 하나 모난 곳이 없이 평평하다.
“뭐지……? 뭐야, 이게 대체……? 이 많은 해골들을 어떻게…….”
이건수는 바닥에 널브러진 뼛조각을 걷어차며 중얼댔다. 문솔은 창대로 검은 가루를 휘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 보스가 잡힌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그런데 20층이 이렇게 생긴 줄은 몰랐네.”
서한은 세 개의 마법진 앞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며 말했다.
“이건 올라가는 거, 이건 내려가는 거, 이건 대체 뭘까?”
담덕은 생각하기 싫다는 듯이 손을 휘적거리며 대답했다.
“됐고, 빨리 위층이나 가지.”
그때, 무영이 한 손을 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잠깐, 저기 누가 있어요!”
서한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모래언덕 너머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이건수는 그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우와, 우리보다 깡다구가 더 센데?”
남자는 자신의 팀을 보고도 아무런 동요 없이 같은 보폭으로 차분하게 걸어왔다. 서한과 그의 팀원들은 그가 보통 실력자가 아님을 직감했다.
서로의 공간에 차가운 적막이 흐르던 그때, 무영이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걸음을 옮기며 외쳤다.
“형, 형님!”
무영의 반응에 보이지 않던 막이 깨졌다. 건수는 긴장을 풀며 여울의 위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저 시꺼먼 사람이 무영이 얘기했던 그 사람?”
“그런가 보군…….”
서한은 그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토벌대를 만났을 때는 그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무영에게도 후에 들었기에 생김새를 기억하지 못했다.
서한은 여울에게 다가가 한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무영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여울은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무영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서한의 손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와 악수를 해 본 적이 있던가? 손에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여울에게 이런 인사치레는 매우 어색하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담덕에게는 그저 자신의 대장이 생판 모르는 남에게 무시를 당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솥뚜껑만 한 손을 뻗어 여울의 어깨를 잡았다.
“이봐, 사람 무안하게 뭐 하는…….”
그의 어깨를 잡는 순간, 세상이 돌았다.
여울은 반사적으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아 팔을 꺾으며 발목을 올려쳤다. 담덕의 몸이 홱 돌아 바닥에 엎어졌다.
그의 팔은 여전히 여울의 손에 들려 있다. 여울의 발이 그의 어깨로 향한다. 팔을 부러트릴 심산이다.
“잠깐!”
그때, 서한의 발이 여울의 발끝을 막았다. 어느새 문솔의 창과 건수의 검이 여울을 향해 있다. 여울은 그 자세로 멈춰 서서 서한을 한 번 보고는 바닥에 엎어진 담덕을 보았다.
“크흐…….”
“그만 놔주는 건 어때? 팔이 부러질 정도로 잘못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여울은 다시 고개를 들어 서한을 바라보았다. 별다른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공격을 제삼자가 막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케라브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빠른 움직임이다. 아직 4레벨을 만나 보지 못한 것이 크다. 그도 민첩 특성인 듯하다.
여울은 담덕의 손을 놓아주고는 발을 떼었다. 그러자 서한이 문솔과 건수에게 손짓을 해 무기를 내리게 했다.
여울은 일어나서 팔을 돌리고 있는 담덕을 보며 입을 열었다.
“습관이다.”
여울의 말에 싸늘한 공기가 깨지며 문솔이 힘 빠진 목소리로 따라서 말했다.
“습관…….”
“푸흡! 습관이라니 크큭, 습관 한 번 더 나오면 애 죽이겠네, 크흡.”
건수는 배를 부여잡고 웃고 있다. 담덕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린 채 여울을 노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영은 서한과 여울을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무서운 습관이구먼……. 자네도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혼자?”
“그렇다.”
그때, 무영이 이때다 싶어 둘 사이에 껴들었다.
“형님! 혼자 올라가면 위험해요. 형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21층은 처음이잖아요. 우리랑 같이 올라가요.”
여울은 무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들이라면, 미지의 위험성을 조금은 떨어트려 주지 않을까?
무영은 주변의 다른 팀원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형누나들도 좋아할 거예요! 그렇죠?”
“으, 음.”
“난 찬성, 담덕이 저렇게 꿀 먹은 곰처럼 있는 거 재밌어서.”
그때 서한이 무영의 편을 들어 줬다.
“혼자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올라가서 초반에 웬만한 정보를 습득할 때까지만 같이 있어도 되고.”
“좋네, 나도 찬성.”
문솔도 창을 들어 올리며 서한의 말에 동의했다. 여울은 마법진을 한번 바라보았다가 서한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