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29
29
29 서한의 과거
쿠웅!
문솔의 앞에 거대한 덩치가 내려섰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노란 꽃 뭉치를 확인하고는 그녀의 다리가 완전히 풀려 버렸다.
“아이 씨…… 왜 이제 와…….”
담덕은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대답했다.
“미안하다, 쉬어라.”
마통은 곰 같은 덩치의 담덕을 보고는 순간 얼어붙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뭐 하냐! 한 놈이잖아? 쑤셔 버려!”
“예, 예!”
부하들은 바로 검을 번갈아 가며 찔러 댔다. 담덕은 그것들을 도끼로 강하게 쳐 내며 문솔과 무영을 굳건히 지켰다.
챙, 채앵!
여섯 명을 상대로 그가 오랫동안 버티자, 비슷한 덩치의 마통이 나서서 그에게 검을 휘둘렀다.
쩌엉!
담덕은 급작스러운 기습을 다급히 막는 바람에 손목이 찌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다른 창이 날카롭게 들어왔다.
푸욱, 푹!
담덕의 옆구리에 세 개의 검이 박혔다. 그는 도끼로 검신을 강하게 쳐 내며 포효했다.
“더 들어와!”
뒤에서 지켜보던 수린은 그를 보며 눈빛을 빛냈다. 마통처럼 리덕션이 특성도 아닌 것 같은데 2레벨 놈들의 공격을 깊게 허용하지 않는 단단한 근육, 오크의 도끼를 한 손으로 드는 괴력, 절대 물러서지 않는 패기, 어딜 봐도 마통보다 나은 자다.
“재미있네.”
부하로 거두고 싶지만 저런 자는 죽어도 회유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느니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것이 낫다. 수린은 등 뒤에 꽂혀 있는 쌍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담덕은 본능적으로 저 멀리서 달려오는 수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쌍검을 휘두르는 것이 보인다. 담덕은 쌍도끼를 횡으로 마주 휘둘렀다.
후웅.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수린은 어느새 하늘 위로 붕 떠서 담덕의 어깨를 베었다.
“크흡.”
“아직 멀었어.”
수린은 다시 휘둘러 오는 담덕의 도끼를 몸을 낮춰 피하며 허리를 베었다. 담덕은 옆구리를 잡으며 몸을 숙였다. 그 모습에 살짝 물러나 있던 부하들이 다시금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그때, 뒤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개새끼들아!”
“이 잡놈들이 감히 빈집을 털어?”
서한과 건수가 눈을 까뒤집고 달려왔다. 그 뒤로 여울도 보인다. 담덕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이죽거렸다.
“너넨…… 뒈졌다.”
서한은 두 손 가득 쥐고 있던 풀들을 놓고는 검을 뽑으며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그 모습에 여울은 움찔하더니 디카르를 형성시키며 그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서한은 서슴없이 그들 사이로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다. 수 개의 검들이 정신없이 날아오는데도 모두 쳐 내며 상대방에게 상처까지 남겼다.
마통은 그가 대장이라고 여겨 리덕션을 활성화시키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민첩 특성은 무기를 빼앗으면 끝이다. 마통은 검을 놓고 그의 검을 잡기 위해 두 손을 뻗었다.
후웅.
손에 잡히기 직전, 그의 검이 희한한 각도로 꺾이더니 마통의 팔뚝에 박혔다. 팔뚝에는 검신이 반 이상 파고들어 있었다.
“이게 왜…….”
푹!
그때, 낯선 감각에 고개를 내렸다. 이번에는 검게 이글거리는 검이 배에 깊숙이 박혀 있다. 마통의 눈에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건조한 눈빛의 남자가 보인다.
“무슨…….”
마통은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져 내렸다. 그가 쓰러졌을 때, 주변은 모두 정리가 된 상태였다. 그사이 건수와 여울에게 당한 것이다. 놈들은 공통적으로 발목 한쪽이 잘려 있었다.
그들이 나타나면서부터 관찰을 위해 살짝 뒤로 빠져 있던 수린은 아예 뒤돌아섰다. 서한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담덕에게 다가가 상처를 살폈다.
“괜찮아?!”
“대장…… 괜찮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전신이 피범벅이다. 과다 출혈로 온몸이 차갑다. 서한은 다급히 그의 몸을 뒤적거려 주머니를 꺼냈다.
이건수는 수린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여울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더 앞서 달려 나갔다.
건수는 자신이 안 따라가도 되겠다 싶어서 멈추고 팀원들에게 다가갔다.
* * *
“후욱, 훅.”
수린은 오랜만에 숨이 찰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리고 있다. 일부러 눈에 보이는 오우거의 다리 사이로 지나가며 그들의 추적을 방해했다.
자신의 부하들은 3레벨이 세 명, 2레벨 4명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적수가 없을 정도로 꽤 싸움을 잘하던 놈들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1분도 되지 않아 금세 당한 것이다. 엄청난 실력자들이다.
마통은 그 타이밍에 리덕션이 풀린 건지 아니면 그자의 힘이 마통보다 더 강력한 건지 모르겠다. 그자의 움직임은 유일하게 제대로 보지 못했다. 가장 먼저 뛰어나온 사내도 강하지만 그자에게는 위험한 냄새가 났다. 부하들의 발목 한쪽을 잘라 낸 것도 모두 그의 수작일 것이다.
수린은 4레벨로 지금까지 케라브에서 아무도 당해 낼 자가 없었다. 거슬릴 것이 하나도 없이 모두 마음대로 행동하며 왕처럼 지내 왔다. 강한 만큼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1층에 오자마자 부하들을 싹 다 잃었다.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을 혼자서 다 상대할 수는 없다. 기습으로 한 명씩 처리할 것이다. 그들에게 공포를 맛보여 줄 것이다.
달리면서 뒤돌아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수린은 나무 뒤에 숨었다. 기습을 가할 때를 대비하여 미리 숨을 골라 놓아야 한다.
“후우웁.”
그렇게 숨을 들이마셨을 때,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수린은 검을 재빨리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채앵!
나무 위에서 검을 찍어 내리는 그자가 보였다. 검신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는 중에 그가 갑자기 힘을 빼더니 검을 돌렸다. 그리고 무언가 이상하여 내려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손목이 사라져 있었다.
푸욱!
“끄으으으.”
자신의 왼쪽 가슴에 검신이 쑤욱 들어와 있다. 헛바람이 집어삼켜진다. 그의 눈은 사신의 눈빛이었다. 수린은 죽을힘을 다하여 입을 열었다.
“나, 날 살려 주면…….”
스윽.
수린의 목에 반듯한 혈선이 그어졌다.
* * *
여울은 수린을 베고 서한 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혼절한 담덕의 몸에는 진녹색 피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고, 문솔은 창백한 얼굴로 무영의 이마에 손을 대며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무영의 혈색은 전보다 나아졌다. 이건수는 라브를 입에 문 채로 나무에 등을 대고 앉아 있다. 모두 상당히 지쳐 보인다. 서한만이 일어서서 주변을 경계 중이다.
여울이 다가가니 기척을 느끼고 그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여울임을 확인하고는 무서운 표정을 풀었다.
“아, 처리했나?”
여울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 사람들 B구역 사람들인가 봐. 다른 구역 사람들 어쩌구 하더래.”
“그런 것 같더군.”
여울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수린의 손가락에 자신과 똑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여울의 양손에 반지가 끼워져 있다.
서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지쳐 있고 주변에는 사람들의 지저분한 시체가 흩날려 있다.
“좀 도와주겠나? 피 냄새를 맡고 몬스터들이 오기 전에 자리를 조금이라도 이동해야겠어.”
여울은 말없이 담덕을 안아 올렸다. 몸집은 두 배인 덩치를 손쉽게 안아 올리는 모습이 뭔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서한이었다.
서한은 무영을 안고, 건수는 아직 의식이 있는 문솔을 부축하며 이동했다.
시체들이 있는 곳에서 약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밤을 보내기 위해 준비를 했다. 팀원들의 상태가 좋지 않아 나무에 올라갈 수는 없어 수풀을 모아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밤이 되자 자연스럽게 서한과 여울이 지켜 서게 되었다. 11층은 밤과 낮이 확연히 달랐으니 이곳도 혹시 모르니 밤을 대비하여 근처에 라브가 있는 곳을 알아 두었다.
라브가 빛을 내니 잘 보이게 하는 역효과도 있기 때문에 아주 가까이서 자리를 만들지는 않았다. 이곳은 사막보다 라브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B구역 사람들과 통합돼서 그런 듯하다.
여울은 나무뿌리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B구역은 다른 사람들이 시작된 다른 장소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들도 한국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포함된 A구역만 해도 죽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최소 8000명 이상은 된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동된 걸까? 몇 구역까지 존재할까?
이런저런 생각 중에 서한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울 너…… 레벨이 대체 몇이야? 그리고 그 무기는 또 어디서 얻었고.”
단순하지만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직설적인 성격의 서한인데도 오래 참아 온 것이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질문했지만 목소리 끝이 살짝 어색하다.
“당신은.”
여울의 말에 서한이 손사래를 치며 대꾸했다.
“당신 말고 서한, 그냥 한이라고 불러, 한. 아마 네 짐작대로? 4레벨에 특성은 민첩이랑 청각.”
약점이 될 수 있는 특성까지 둘 다 밝힌다. 동일하게 듣고 싶다는 표현이다.
“5레벨, 검은…… 지나가다 주웠다.”
“으, 응?”
서한은 순간 당황했다. 여울이 농담을 할 스타일은 절대로 아니어서 뒷말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한데 여울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다. 서한은 그가 검의 출처는 밝히고 싶지 않은 걸로 결론을 내렸다.
서한은 고개를 돌려 자고 있는 팀원들을 한번 보고는 말을 이었다.
“5레벨이라……. 대단하네, 나도 진짜 쉬지 않고 레벨을 올렸는데.”
여울은 딱히 할 말 없어서 조용히 있었다. 그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금세 말을 이었다.
“아마…… 지금쯤이 그놈들 기일일 거야. 같이 파병 나가서 적들의 기습에 부하 열두 명을 잃었거든. 끔찍한 날이었지.”
뜬금없이 옛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서한은 그에게 레벨과 특성을 밝히고 나니 무언가 후련한 기분이 든 것이다. 게다가 여울은 어떤 말을 해도 가만히 듣고만 있을 것 같은 자이니 팀원들에게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도 쉽게 꺼내게 되었다.
서한은 엄지로 자기의 턱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군인 장교 출신이거든. 흐…… 돌아와서 부모들에게 그 젊은 놈들이 죽었다고 유품 보내는데…… 죽을 맛이더라고. 그 후로 전쟁터라면 치를 떨어. 파병이고 뭐고 뉴스에서만 나와도 TV를 꺼 버리지.”
서한은 다시 뒤돌아 그들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전쟁터에 왔어, 빌어먹을. 저놈들도 참 불쌍하지, 이게 뭔 고생이야. 무영이는 이제 막 친구들이랑 뛰어놀 나이에…….”
여울은 움찔했다. 무영은 열여덟은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 아이가 몇 살이지?”
“무영이? 이제 막 중학생, 열넷이지, 열넷.”
“열넷……!”
여울은 그의 나이를 곱씹었다. 충격을 받은 것이다.
지금까지 케라브는 고등학생부터 50세 이하의 신체적으로 성장한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다. 대충 보아도 모두 건장한 자들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무영의 나이가 14세란다. 은서와 같은 나이다. 그 말인즉슨, 은서도 이곳에 와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울은 심장이 심하게 뛰는 것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머리를 회전시켰다.
1층에서 한 달을 보냈고, 그 후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은서를 본 적은 당연히 없었다. 은서를 죽이려고 했던 덩치도 본 적이 없다.
그사이에 몬스터에게 당했다면? 나쁜 사람들을 만났다면?
마음이 괴롭다.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전에 깨달았더라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있다.
여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한이 깜짝 놀라서 여울을 바라보았다. 여울은 수풀에 덮여 자고 있는 그의 팀원들을 보았다. 담덕은 코까지 살짝 골면서 자고 있다. 담덕과 서한 둘만 멀쩡하면 별문제 없을 것이다.
“다음에 보지.”
“응? 갑자기?”
서한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울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날이 밝을 것이다. 여울은 서한과 눈을 마주하고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러고는 망설임없이 지면을 박찼다.
터엉!
그가 박찬 지면의 땅거죽이 뒤집혔다. 여울은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서한은 그의 뒷모습 보며 중얼거렸다.
“더럽게 빠르네…….”
* * *
정면에 오우거가 보인다. 마주 보는 방향이기에 바로 눈이 마주쳤다. 놈은 두 손을 깍지를 끼고 주먹을 내리꽂았다.
여울은 바로 뛰어올라 놈의 팔을 타고 올라가며 한 손에 디카르를 생성시켰다. 금세 머리까지 올라온 여울은 놈의 목을 베며 어깨를 박차고 더 높이 뛰어올랐다.
나무의 굵은 가지에 올라선 여울은 다른 나무로 넘어가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울의 걸음은 무엇을 만나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B구역, B구역을 수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