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3
3
03. 사람들
총을 몸에 기대고 앉아 있던 군인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총을 들어 앞으로 기울이기 직전, 여울의 손이 총의 옆구리를 밀쳤다.
퍽!
총구가 뒤로 젖혀지며 사내의 콧등을 강타했다. 여울은 정신을 못 차리는 사내의 총을 빼앗고 한 팔을 그의 목에 둘러 벽으로 끌고 갔다.
불과 5초도 되지 않는 시간, 사람들은 표범처럼 달려든 그를 아무도 제지하지 못했다. 여울은 총을 어깨에 메고 단검을 군인 사내의 목에 들이댄 채로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라.”
여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내에 적막이 흘렀다. 사람들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몸짓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혼란스러운 눈, 황당한 눈, 두려운 눈…… 여울은 그들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출구는 어디 있지?”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하게 안도와 함께 허탈함이 보였다. 여울과 가까이 있는 빼빼 마른 중년인이 두 손을 들어 공격 의사가 없음을 표하며 반 발자국 다가왔다.
“형씨, 우리도 이 동굴의 출구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형씨와 마찬가지로…… 어엇!”
여울은 뒷말은 들을 필요 없다는 듯이 단검을 더욱 끌어당겼다. 군인 사내의 목에 살짝 피가 새어 나왔다.
“꺄읍.”
“헙!”
여울은 살기를 머금은 눈빛으로 중년인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출구는?”
“모, 모릅니다! 우리 모두 모릅니다! 진짜입니다!”
여울은 천천히 그와 그의 주변 사람들의 눈을 둘러보았다. 흔들리는 동공, 올라간 미간, 모든 징후가 그의 대답이 진실이라 말해 주고 있었다.
실망스러운 답변에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어쩌면 예상했던 답변일지 모른다.
딸을 납치한 놈들의 소행이 아니라, 상식을 벗어나는 기현상으로 인해 다른 어딘가로 이동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스슥.
다시 시선을 들어 올릴 때 구석에서 근육질 사내가 다가오려는 것이 보였다.
다른 한쪽에선 날쌔 보이는 사내 둘도 다가왔다.
모두 맨손, 헛웃음이 나왔다.
여울은 단검을 거두고는 군인 사내를 앞으로 밀치며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그의 뒷목을 후려쳤다. 그는 개구리처럼 바닥에 쭉 뻗었다.
왼쪽에 두 손을 뻗으며 달려오는 사내가 보인다. 그에게 오히려 한 걸음 다가가며 개머리판으로 턱을 올려 쳤다.
그의 타이밍보다 반 박자 빠른 공격이다.
뻐억!
달려오는 속도와 맞물려 턱이 거세게 다물어지고 하얀 공깃돌 같은 것 서너 개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울은 바로 허리를 숙이며 뒤에 보이는 발등에 총구를 휘둘렀다.
등 위로 발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자의 손이 허공을 가르며 바람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총구가 그의 발등에 찍혔다.
퍽!
“아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 사내가 허리를 확 숙였다. 여울은 한 손으로 소총을 세운 채 주먹으로 그의 턱을 짧게 끊어 쳤다.
빡!
그의 턱이 필요 이상으로 밀려난다. 여울은 줄 끊어진 연처럼 쓰러져 내리는 그에게 시선을 거두고 돌연 소총을 뒤로 힘껏 던졌다.
달려오던 근육질의 사내가 당황하며 재빨리 두 손을 교차시켰다. 여울은 날아가는 소총과 함께 그에게 튀어 나갔다.
퍽!
소총이 그의 팔뚝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두꺼운 만큼 별다른 타격도 없어 보인다. 여울은 본능적으로 가드를 푸는 그의 팔 사이에 주먹을 뻗었다.
퍼석!
그의 코뼈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여울은 재빨리 주먹을 회수하고 그의 검지와 중지를 잡아채 돌리며 발목을 올려 쳤다.
그 큰 덩치가 휙 하며 한 바퀴 돌아 바닥에 쿵 찍혔다.
여울은 허리춤에 꽂아둔 단검을 꺼내어 서슴없이 그의 손바닥에 찍었다.
푸욱!
“크아아아악!”
그의 비명 소리와 함께 같이 덤벼들려던 몇 명의 사내들이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여울은 칼날을 비틀며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크흐으읍…….”
근육질 사내는 극심한 고통에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반쯤 가리는 여인들, 놀람과 두려움에 뒷걸음치는 사내들이 보였다.
여울은 바닥에 누워 있는 네 명의 사내들을 둘러보고는 가운데에 우물쭈물하며 서 있는 중년인에게 다시 물었다.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 때까지 이들의 손목을 하나씩 자를 것이다. 출구가 어디라고?”
극한으로 몰아세운 상황에서 진실의 함량은 더욱 높아지기 마련이었다. 중년인은 주먹을 콱 쥐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입을 천천히 열었다.
“저, 정말, 정말로 모릅니다. 아무도…… 당신처럼 우리도 갑자기 이 이상한 동굴에 떨어진 것이란 말입니다……. 나는 세 시간쯤 전, 저 청년은 두 시간, 이 청년은 방금…….”
중년인은 거의 울먹거리듯이 말을 이었다. 시간 이야기가 나오자 여울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인간의 체감 시간은 꽤 부정확했다. 특히 지금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는 10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여울이 생각하기엔 30분 정도 지난 듯하다. 한데 각자 이곳에 온 시간이 다르다니? 의문을 느낀 여울은 그에게 물었다.
“세 시간?”
처음으로 대화가 통하는 듯하자 중년인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며 손목을 보였다. 한 번에 질문의 의도를 눈치챈 것이다.
꽤 영리한 자였다.
“이, 이 시계, 태엽 시계는 이곳에서도 작동합니다.”
그의 손목을 자세히 보니 정말로 초바늘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절망감이 여울을 강타했다. 세 시간이나 있었던 자도 이곳을 맴돌고 있다는 건 그만큼 이 동굴이 크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여울은 근육질 사내의 손바닥을 꿰뚫고 바닥에 깊숙이 박혀 있는 단검을 뽑아 들며 소총을 어깨에 걸쳤다.
시계도 가져갈까? 아니다. 태엽 시계의 바늘 소리는 자신의 날 선 감각을 무디게 만들 것이다. 여울은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그러자 뒤에서 중년인의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 총을 가져가면 여기 남은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겁니다…… 그 잔인한 오크에게…….”
오크, 괴물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외관이 영화에 나오는 괴물들과 닮아서 그렇게 부르는 듯했다.
여울은 걸음을 멈추고 반쯤 고개를 돌려 한 곳에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거두었다.
오크가 들고 있던 도끼가 있는 곳이다. 어차피 총알은 한정된 것, 도끼로 그들이 살아남지 못하면 죽음은 예정된 일이다.
여울은 다시금 걸음을 재촉했다.
“제발, 제발…… 우리 모두를 죽이지 마십시오…….”
“흑, 흐윽.”
“어, 어떡해…… 우리…….”
간절한 중년인의 목소리도, 두려움에 울음을 터트리는 여인들의 목소리도 여울의 발걸음을 멈추지는 못했다.
‘다른 자들의 사정을 봐줄 시간 따위는 없다.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 은서에게 가야 한다.’
* * *
두근. 두근.
오크를 상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온몸의 근육이 눈에 보일 정도로 펄떡댔다.
그러지 않은 곳은 처음에 이 기현상이 발생했던 종아리와 한쪽 팔뚝뿐.
심장마저도 부피가 늘어날 듯이 두근거리며 찌릿한 통증이 일었다.
이 기현상에는 ‘힘의 변화’가 의심됐다.
오크를 상대할 때, 그리고 사내 셋을 상대할 때 미세하지만 몸이 변화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하는 힘을 보다 빨리 끌어내고, 몸도 더 가벼워졌다. 이 기현상은 힘을 쓴 대가인가?
이렇게 전신에 거슬림이 의식되면 전투에 영향을 끼치겠지만 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여울은 더욱 발에 힘을 주며 걸음을 옮겼다.
탄알을 확인해 보니 세 발밖에 남아 있지 않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쓰지 말아야겠다.
구보로 걸음을 옮긴 지 대략 한 시간, 그동안 세 개의 갈림길을 지났고 네 마리의 오크를 더 죽였다.
지나가면서 발견한 시체의 수도 서른을 넘겼다.
대체 이 동굴은 얼마나 넓고 사람들은 몇 명이나 이동된 거지?
턱.
여울은 급히 걸음을 멈췄다. 황소만 한 늑대에 올라탄 오크가 보였다.
조잡한 철판으로 어깨와 복부, 다리까지 감싸고 도끼가 아닌 장검을 들고 있는 그 오크는 다른 놈들에게는 볼 수 없었던 하얀 턱수염이 돋보였다.
게다가 옆에 두 마리의 오크가 더 있었다.
스윽.
늑대 위에 올라탄 대장 오크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룩, 크, 게르하!”
놈이 사자처럼 울부짖으며 발을 놀렸다. 동시에 다른 오크들도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돌진하기 시작했다. 세 마리, 아직 총은 한 발도 사용하지 않았다. 상대할 수 있을까?
쿠궁, 쿠궁, 쿵쿵!
물소 떼가 덤벼드는 것 같은 발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머릿속의 위험 경보도 정신없이 울렸다. 여울은 지체 없이 발끝을 돌려 반대쪽으로 달렸다.
“크허어엉!”
두두둑! 두두둑!
오금이 저릴 것만 같은 포효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빠른 박자의 늑대 발소리도 들려온다.
두 발의 영장류가 네발짐승의 속도를 능가할 리 만무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쯤이다.’
여울은 바로 뒤돌아 소총을 겨눴다.
거리는 15미터 남짓, 목표는 늑대.
탕!
“캐앵!”
총알이 늑대의 살짝 벌어진 입으로 들어가며 몸뚱이가 뒤집혔다. 동시에 위에 올라타 있던 대장 오크의 몸도 붕 떠올랐다.
기동력을 없앴으니 후퇴? 아니, 지금 막히면 영영 막힌다. 여울은 아직 공중에 떠 있는 놈의 얼굴을 조준했다.
호흡을 멈추고.
탕!
총알이 귀를 스쳤다. 떨어져 내리는 놈의 표정이 더욱 흉악해졌다.
이제 남은 총알은 한 발, 놈이 공중에서 중심을 잡으며 검을 내려찍는 자세를 취한다.
놈의 턱수염을 셀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검 끝의 예기가 느껴진다.
이때다.
타앙!
총알이 놈의 한쪽 눈알을 짓누르며 파고들었다. 뒤통수에서 진녹색의 피가 터져 나온다. 여울은 바로 총을 위로 들어 올렸다.
카앙!
놈의 의식이 없어도 중력에 의해 내리찍힌 검은 충분히 위험했다. 육중한 무게감에 손목이 저릿했다.
“흡.”
후웅!
검을 밀쳐 내자마자 눈앞에 횡으로 휘둘러지는 도끼날이 보였다. 여울은 허리를 깊이 숙이며 총을 놓고 단검을 들었다.
여울은 한 바퀴 굴러 거리를 두며 주변을 둘러봤다. 또 한 마리의 공격을 대비해야 한다. 지척에 도끼를 번쩍 들고 있는 놈이 보였다.
두 마리는 변수가 크니 빠르게 한 마리를 처리해야 한다.
여울은 도끼를 내리찍는 오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운동 에너지는 근접할수록 줄어든다.
놈은 도끼날이 아닌 팔뚝으로 나의 등을 내려찍을 것이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강해진 힘을 믿으며 단검을 뻗었다.
푸욱!
단검이 정확히 놈의 목에 박혔다. 손잡이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박혔다. 마치 전성기 때의 몸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퍽!
“크흡.”
온몸을 조이는 힘이 느껴졌다. 공격 실패에 안주하지 않고 두 팔로 움직임을 봉쇄한 것이다. 여울은 재빨리 칼날을 비틀며 단검을 빼냈다.
위험하다.
푸슈우욱!
놈은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뿜어내면서도 팔에 힘을 주고 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지막 오크가 이쪽으로 도끼를 휘두르는 것이 보인다.
‘이대로라면 동료의 몸도 날려 버릴 텐데?’
여울은 몸을 있는 힘껏 비틀어 간신히 벌려진 공간 사이로 몸을 구겨 넣었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로 바람이 불어닥쳤다.
콰직!
진득한 피가 쏟아져 내렸다.
‘빨리 이 오크에게서 벗어나야 하는데…….’
퍼억!
그 순간, 옆구리에서 어마어마한 충격이 강타했다. 동료의 몸통을 날려 버리는 공격이 실패하자 바로 발길질을 가한 것이다. 여울은 이미 죽은 오크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큽, 크흑!”
죽은 오크의 손아귀에서는 완전히 벗어났지만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갈비뼈가 네 개 이상은 부러진듯했고, 숨이 쉬어지지 않고 정신이 몽롱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은서에게 가야만 했다.
여울은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콱!
바람이 볼을 스친다. 여울은 두 손을 뻗어 오크의 팔에 단검을 꽂고 둘러 잡았다.
“크릉!”
괴성과 함께 몸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오크는 팔에 매달린 자신을 바닥에 내려치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여울은 단검을 뽑아 놈의 눈에 쑤셔 넣었다.
“크하아!”
귀청을 찢을 것 같은 울음소리와 함께 몸을 휘청거렸다.
마지막 기회다.
여울은 놈의 어깨를 두 발로 강하게 움켜쥐고는 오크의 얼굴과 목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단검을 미친 듯이 쑤셔 넣었다.
오크가 주먹으로 자신의 등과 옆구리를 때렸지만,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크흐…….”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오크의 움직임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쿠웅!
오크의 몸이 차가운 돌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그 위로 여울의 몸도 포개어졌다. 정신을 부여잡아야 한다.
‘정신을…….’
띠링!
[1레벨의 숙련도가 완성되었습니다. 2레벨로 진입하시겠습니까?] [2레벨부터 특성이 개화됩니다.] [진입 명령어는 ‘케라브 레벨 업’입니다.]무슨 말인지 이해할 만한 정신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다. 여울은 꺼져 가는 생명줄을 붙잡고 힘겹게 목소리를 내었다.
“케라브…… 레벨…… 업.”
[2레벨에 진입합니다.] [특성 : 다크니스가 개화됩니다.] [특성 : 독 내성이 개화됩니다.] [특성 : 민첩이 개화됩니다.] [특성 : 동체시력이 개화됩니다.]‘이게…… 무슨?’
[레벨 동기화를 진행합니다.]“크흐읍!”
시스템 음성과 함께 거대한 고통이 엄습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