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30
30
30. 두 번째 의뢰
휙, 휙.
수풀과 나무들이 줄 그어지듯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여울은 21층 정글을 제 집처럼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다크니스’
[현재 다크니스 수치는 507입니다.]이도원 무리를 처리했을 때가 427다크니스였으니 발목만 자른 자들도 모두 10다크니스를 준 것이다.
마지막 숨을 직접 끊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관여만 해도 10을 주는 것이다. 후에 관여하고 나서 몬스터에게 죽을 때는 어떻게 되는지도 확인해 봐야겠다.
후웅.
여울은 달리는 도중에 몸을 확 낮추며 바닥을 굴렀다. 그 위로 검은 무언가가 무서운 속도로 지나갔다. 뒤돌아서니 그것이 몸을 돌려 금세 닥쳐오고 있다.
노란 눈, 쩍 벌린 입, 수십 개의 날카로운 이빨, 몸통 지름 1.5미터에 길이는 가늠이 되지 않는 거대한 검은색 뱀이다. 방향을 전환하고 쏘아져 오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는 놈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밤에는.
여울은 벌어진 길이가 자신의 키를 훨씬 넘어서는 섬뜩한 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지척에 다다랐을 때 몸을 바짝 숙이며 동시에 디카르를 두 손으로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츠즈즈즈즈즈즈증!
마치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다시 방향을 틀어 덤벼드는 놈은 아래턱 부분만 살짝 생채기가 났고 나머지는 멀쩡하다. 뱀 가죽치고 어마어마한 방어력이다.
놈은 더욱 기세등등한 눈빛으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입의 크기는 대략 3.5미터, 안의 공간은 최소 1미터. 여울은 서슴없이 놈에게 마주 달려 나갔다.
“캬하아!”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여울의 몸이 놈의 입 안으로 쑤욱 들어갔다. 그의 검 끝에는 검은화염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부우우욱욱!
검은뱀의 머리 위로 검신이 툭 튀어나왔다. 그것은 서로 마주 오는 속도에 더하여 뱀의 입 속 깊은 곳까지 잘라 내었다. 검신은 뱀의 몸통 10미터쯤에서 멈춰 섰다.
촤아아악!
붉고 진득한 피가 뿜어져 나오며 뱀의 윗대가리부터 몸통까지 쩌억 벌어졌다. 그 끝에는 여울이 서 있었다.
여울은 코를 찡긋하며 윗옷을 털어 냈다. 피와 섞여 뜨겁고 끈적거리는 액체가 몸 이곳저곳에서 묻어났다. 산성이 강한 액체인지, 질긴 소재의 옷인데도 금세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독의 내성은 머리칼도 포함되는지 여울의 몸에 있는 털들은 영향이 없었다.
여울은 놈의 겉가죽을 손으로 쓸어 보았다. 상당히 매끈하고 부드럽다. 어떻게 이런 가죽이 그만한 내구성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겠다. 케라브의 이론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어찌 됐든 이곳에서 새로운 옷을 만든다면 이만큼 좋은 소재도 없어 보였다. 여울은 다크니스 블레이드를 활성화시킨 상태로 검은뱀의 가죽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먼저 자신의 체형에 맞게 잘라 내어 머리 부분만 동그랗게 오려 내고 우의를 쓰듯이 썼다. 그리고 휑하니 열려 있는 옆구리를 수풀을 엮은 밧줄로 단단히 돌려 묶었다.
나머지는 최대한 많이 잘라 내어 칼론의 주머니에 우겨 넣었다. 이제 주머니도 꽉 찬 듯하다.
검은뱀에게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다. 여울은 다시 걸음을 재촉하며 정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시 낮이 되었지만 사람은커녕 마법진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레벨이 오르면서 외적인 신체 능력뿐만 아니라 내적인 부분도 향상되었다. 체감상 느낄 수 있는 것은 순간판단력과 기억력이다.
마치 사진을 찍듯이 장면 장면을 정확히 뇌에 새기며 돌아다니는데 계속해서 새로운 곳이 나온다. 이곳은 아래층보다 훨씬 넓은 모양이다. 이곳부터 B구역과 통합이 되기 때문에 필드가 더 커진 듯하다.
어서 빨리 B구역의 사람을 만나서 딸의 행방을 묻고 싶다.
* * *
21층에 올라선 지 사흘째, 여울은 세모 문양의 마법진 앞에 서 있다. 이곳은 낮에만 마법진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더욱 찾기가 힘들다. 나무와 수풀들로 가려지는 탓에 빛으로도 찾을 수가 없으니.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서한의 팀과도 마주친 적이 없다.
너무 빨리 올라온 것인가? 차라리 20층 미만이었으면 A구역을 샅샅이 뒤지기라도 해서 지금보다는 덜 답답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이미 올라온 이상 효율적인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울은 머리를 차갑게 가라앉혔다. 이성적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은 빨리 올라가서 30층 보스를 처치하고 B구역 아래층을 갈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 또 하나는 21층의 B구역 스타팅 포인트를 찾아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일단 만나서 물어보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21층의 일반 몬스터인 검은뱀도 상당한 난이도를 요했었다. 30층의 보스, 아니, 26층만 가도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서한의 팀과 함께 올라간다면…….
일단 B구역 사람을 한 번이라도 만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린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죽인 것이 후회가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피로감이 확 몰려든다. 나흘간 잠을 자지 않았다. 먼저 수면을 취하고 맑은 정신으로 다시 수색을 시작해야겠다.
나무가 아무리 높아도 오우거의 손에 닿고, 검은뱀은 쉽게 올라온다. 여울은 고민 끝에 나무뿌리 아래쪽을 파서 수풀을 깔고 그곳에 쏙 들어갔다. 그러고는 파내었던 입구를 흙으로 막고 미세하게 숨구멍만 남겨 놓고는 자리에 누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바닥은 푹신하니 수마가 금세 몰려들었다. 여울은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눈꺼풀을 닫았다.
사아아.
오랜만에 느끼는 섬뜩한 기운이다. 피부 속으로 차가움이 침투한다. 눈을 떠 보니 푸른눈이 맞은편에서 정자세로 앉아 있다. 마치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것 같은 분위기다.
그가 여울을 바라보며 창백한 입술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여울 님.”
“그렇군.”
첫 번째 의뢰 보상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그동안 은근히 그가 찾아오기를 바랐던 여울이다.
“그런 마음 좋습니다. 나도 자주 오고 싶지만 우리의 만남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약들을 뚫어야 합니다. 이 기간 정도에 한 번이 적당합니다.”
그의 말을 들은 여울은 살짝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생각도 읽나?”
푸른눈은 상체를 뒤로 살짝 젖히며 대답했다.
“표정을 읽었습니다. 나를 반가워하시는군요. 사실 우리는 조금 더 빨리 만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잠을 잘 안 주무시더라고요?”
“의뢰나 진행하지.”
푸른눈은 두 손을 모으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 의뢰는 이미 완수하셨습니다. 며칠 전에 마주쳤던 수린 외 7명, 그들을 처리하는 것이 두 번째 의뢰였습니다.”
여울은 속으로 살짝 놀랐다. 의외의 의뢰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의뢰의 결과를 보고는 다크니스 특성을 보유한 자들을 처리하는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다크니스가 상속되지 않았으니 해당 특성 보유자가 아니었다.
여울의 침묵을 읽은 푸른눈이 대답을 이었다.
“의뢰는 다양합니다. 머더러 암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군.”
왠지 공짜로 의뢰를 완수한 기분이다. 여울은 보상을 은근히 기대했다. 그리고 이번 보상으로 30층으로 바로 경로를 틀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럼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푸른눈은 허리를 숙이고는 한 손으로 바닥을 훑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없던 것이 생겨나 들려 있었다. 소재가 불분명한 검은 신발이다. 군화처럼 발목까지 감싸고 버클을 채우는 형식이다.
푸른눈은 그 신발을 여울 앞에 내려놓았다.
“다음 의뢰부터는 1회에 한하여 상대를 ‘탐색’해 드리겠습니다. 상대의 가장 최근 모습과 환경을 환상으로 보여 드리는 겁니다. 임무 수행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겠지요?”
신발에 손을 가져가던 여울은 그의 말에 눈을 번뜩 뜨고는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러고는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탐색?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 다른 사람도 확인할 수 있나?”
“가능합니다. 나와 나의 동족들은 케라브의 밤을 자유롭게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본 장면을 서로 공유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찾고자 하는 자를 표현하면 알려 주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울은 푸른눈의 어깨를 붙잡으며 으르렁거렸다. 그의 어깨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지금 당장…… 탐색을 하고 싶다.”
푸른눈은 여울이 어깨를 잡는 순간 입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그 공간을 살얼음판 같은 기운이 휘감았다.
여울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봤다. 푸른눈의 실체가 있는 곳에서는 모르지만 이곳 케라브 안에서는 그가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잠시 동안의 침묵 후에 다시금 같은 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쉽게도 불가능합니다. 나의 동족들과는 룰이 있습니다. 세 번째 의뢰를 수락할 때부터 해당 능력을 보일 수 있습니다. 동족들의 힘을 빌리는 능력이기에 불가능합니다.”
“그게 대체 언제지? 세 번째 의뢰도 바로 수락하겠다.”
여울은 심장이 빨리 뛰고 침이 말라 감을 느꼈다. 그때, 푸른눈의 몸체가 서서히 안개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사라지며 작게 대답했다.
“56일 후입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그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절망에 빠져 머리칼을 쥐어 잡을 찰나, 여울의 눈이 뜨였다.
미세한 틈으로 빛이 스며 들어온다. 어느새 아침이 된 것이다. 가슴 위에는 깃털만큼이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신발이 놓여 있다.
56일,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는 이번처럼 그날이 오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은서가 케라브에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날을 준비하기에 가장 최적의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만약 B구역에 있다고 해도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21층에서 머물면서 은서가 직접 올라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희박한 확률이다. 메뚜기 하나 잡지 못하는 여중생에게 이곳은 지옥과도 같은 난이도일 것이다.
답은 정해졌다. 56일 동안 레벨을 최대한 올려서 30층의 보스에게 도전할 준비를 마치는 것.
여울은 세모 마법진 위에 발을 디뎠다.
* * *
끼릭, 끼릭.
기괴한 소리가 어둡고 조용한 동굴 안에 넓게 울려 퍼진다. 동굴 구석진 곳에서 덩치가 황소만 한 사내가 이미 죽은 트롤의 목을 검으로 잘라 내고 있다.
그 사내 위에는 교복을 입은 앳된 소녀가 목말을 탄 채로 트롤의 머리를 붙들고 있다.
끼릭, 끼릭, 툭.
“앗, 잘렸다! 잘했어, 둥둥.”
“흐흐, 고마따.”
덩치 사내는 피 묻은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수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