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33
33
33 희망의 무게
진동은 저 멀리서부터 파도처럼 밀려왔다. 정말로 지진인 건가?
쿠우우우우웅!
이번에는 명확한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 지각변동이 아니라 무언가가 만들어 낸 인공적인 떨림이다. 여울은 디카르에 검은화염을 두르고는 작은 언덕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였다.
그때.
콰아아아앙!
여울의 몸이 거대한 충격과 함께 붕 떠올랐다. 저 멀리에 자신이 몸을 숨겼던 작은 언덕이 터져 나가는 것이 보인다. 흙더미가 완전히 해체되어 가라앉자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그르르르르르.”
아파트 20층 높이의 거대한 몸집, 공격적으로 솟아나 있는 뿔, 온몸을 두른 강철 같은 진청색 껍질, 기형적으로 긴 앞발은 갑옷을 씌운 것처럼 각지고 두꺼웠으며, 뒷발은 상당히 굵어 견고하게 온몸을 지탱하고 있다. 마치 뿔 달린 고릴라와 같은 모양새다.
이 괴물은…… 하나의 산이다.
여울은 공중에서 균형을 잡아서 한 나무의 끄트머리를 바로 박차고는 괴물에게 튀어 나갔다. 뭐가 됐든, 얼마나 크고 무시무시하든 잡아야 한다.
날카로운 노란색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몸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두려움까지 통째로 끄집어내는 눈이다.
여울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날아가는 도중에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돌탑 같은 놈의 앞발이 들어 올려졌다. 머리 위에 있는 앞발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단언컨대 저 발에 눌리면 다크니스 큐어고 뭐고 온몸이 터져 죽을 것이다.
“크허엉!”
옆구리에 뼈가 허옇게 드러난 언데드 티거가 앞발을 향해 달려든다. 여울은 티거의 몸을 차며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시에 괴물의 앞발이 바닥에 찍혔다.
쿠와아아아앙!
발에 깔린 티거의 꼬리가 보인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반지의 빛이 사그라진 것을 보면 그 한 방에 검은 심장마저도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탁!
여울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괴물에게 다시 달려들어 갔다. 일단 눈을 마주치지 말자.
콰아아앙!
놈은 한쪽 발을 들어 올려 여울을 향해 휘둘렀다. 앞발을 피하고 아슬아슬하게 놈의 아래로 들어간 여울은 주변의 나무를 발판 삼아 뛰어오르며 놈의 배에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놈의 아랫배에 검상이 길게 그어졌다. 껍질이 없는 아랫배 가죽의 강도는 블랙다콘 정도다. 피가 쏟아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검의 깊이가 놈의 살껍질을 넘어서지 못한 듯하다.
다시 놈의 뒷발을 밟고 뛰어올라 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놈이 이족 보행이라도 하려는 듯이 두 앞발을 들어 올리더니 강하게 바닥에 내려찍었다.
파아아앙!
그때, 그곳을 기점으로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갔다. 흙바람과 함께 유형적으로까지 보이는 충격파다. 불길한 느낌에 디카르를 거두어 팔에 두르고는 두 팔을 교차시켜 몸을 보호했다. 그와 동시에 충격파가 여울의 몸을 강타했다.
콰아앙!
여울의 몸이 괴물의 뒤쪽으로 총알처럼 날아가며 그 두꺼운 나무 세 그루를 관통하고 작은 언덕에 몸이 깊숙이 박혔다.
“쿨럭!”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울컥 올라와 입으로 토해 내졌다. 몸속 장기가 이미 모두 파열된 듯하다.
“끼힉, 히익.”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바람 빠지는 소리만 들려온다. 눈, 코, 입,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여울은 점점 검게 변하는 시야를 보며 입을 오물거렸다.
‘다…… 다크니스…… 큐어.’
츠즈즈즈.
전신의 구멍에서 이번에는 검은안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몸이 다시 붕 떠올랐다.
퍼어어엉!
괴물의 박치기에 흙더미가 터져 나가며 여울도 같이 날아갔다. 놈의 뿔이 여울의 몸을 꿰기 위해 휘둘러졌다. 그 끝은 매우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손은커녕 손가락 하나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반지 두 개가 모두 빛을 잃은 것을 보면 남은 하나도 충격파에 해제된 듯하다. 이번에 저 뿔에 꿰이면 필시 티거들을 따라가게 될 것만 같다. 이 반지로 시전자의 영혼도 속박할 수 있을까? 희한한 생각도 든다.
눈앞에 익숙한 얼굴이 떠오른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죽기 전 주마등처럼 스친다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은서가 아니라 시커먼 사내놈인지 불만스럽다.
타악.
그 순간, 몸의 방향이 틀어졌다. 거대한 뿔이 신발을 스치고 지나간다. 주변 배경은 점점 내려와 나무들이 보였다. 눈앞에는 그 사내가 계속 떠 있다. 그가 돌연 고개를 반쯤 돌리더니 입을 크게 벌린다.
“출구는!”
그의 외침에 저 멀리서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이쪽이야, 대장!”
“오케이! 다들 튄다!”
여울은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을 잃었다.
* * *
검은 장막이 드리워진 사막,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해골들이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 사내가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외쳤다.
“유인 1조! 2조! 복귀합니다!”
사내의 말에 김진후는 방패를 챙겨 들고 낮게 말했다.
“공격 1, 2조 준비.”
“준비!”
“준비!”
진후의 양옆으로 스무 명의 사람들이 미스릴 무기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그들 중에는 강민철과 유라도 포함되어 있다.
두 명의 사내가 서로 다른 쪽에서 수십 마리의 해골들을 데리고 달려온다. 그들은 진후의 앞에서 멈춰 섰고, 해골들은 파도처럼 덤벼들었다.
“공격!”
“공격!”
“공격!”
진후를 중심으로 공격조들은 굳건히 버티고 서서 해골들을 처리했다. 유라의 손속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뒤늦게 특성을 개화한 그녀는 동체시력이라는 고급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건조했다.
모두 처리되자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던 다른 두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밤을 가로질러 달려 나갔다.
여울이 20층을 돌파하고 떠난 지 두 달째, 15층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길드를 만들고 사냥과 생활이 체계적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10층 보스를 토벌하고 먼저 11층을 선점한 진후는 ‘대한’이라는 가장 크고 권력 있는 길드의 길드장이 되었다.
길드원들은 물론, 다른 길드의 사람들도 진후를 우러러보았고, 그의 행보는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진후는 사냥 방식부터 식량의 보관과 분배까지 관여하여 법규를 만들었고 그것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도록 만들었다.
길드원들에게는 등급이 매겨졌다.
미등급은 1레벨, C등급은 특성이 개화하는 2레벨 중 레벨 동기화 부작용으로 신체장애가 있는 자들, B등급은 근력, 민첩, 동체시력이나 지구력 같은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특성, A등급은 리덕션, 관찰, 정신장악 등의 액티브형 특별한 특성, 두 개의 특성을 가진 자는 구분 없이 S등급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B등급 이상만 레벨을 올리고 C등급은 이렇게 전투에 도움을 주도록 효율적으로 방식을 바꾼 것이다.
저 멀리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한지연은 백일권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 그림이에요. 모두 목숨을 거는 건데 왜 레벨을 올리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거죠?”
일권은 진후가 있는 쪽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을 이었다.
“허허, 처음에 길드장님이 얘기했던 이유 그대로지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요.”
“그럼 일권 아저씨는 진후 님의 방식이 좋다는 거예요?”
일권은 눈에 힘을 빼고 지연을 마주 보며 대답했다.
“좋은 게 아니라,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연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 말을 읊조렸다.
“옳다라…….”
일권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연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정 불편하면 길드장님에게 한번 건의해 보시지요. 불만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지연은 그대로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네, 그래야겠네요.”
그날 밤 사냥을 끝내고 복귀한 후, 지연은 진후의 막사를 찾아가서 지금까지 쌓여 있던 불만을 토로했다.
“저는 그 회의 때 진후 님이 추구하는 것이 뭔지 정확하게 잡히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모두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뛰어드는데 누구는 레벨을 올리고 누구는 항상 그 자리고, 먹을 것도 적게 분배되고. 사냥 방식을 바꿔야 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진후는 가죽에 미스릴을 녹여서 덧댄 갑옷을 풀며 대답했다.
“그래서, 어떻게 바꿨으면 하는데?”
지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말을 내뱉었다.
“모두 평등하게 조를 짜서 1층 대 동굴에서 때처럼 파티 형식으로 사냥을 하는 거죠. 식량은 신체 활동이 적은 미등급을 제외하고는 균등하게 배분하고요.”
철컹.
모든 갑옷을 내려놓은 진후는 땀에 흠뻑 젖은 셔츠를 망설임 없이 벗었다. 지연은 시선을 살짝 내렸다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평등, 균등……. 좋지, 아무도 불만을 터뜨리지 않을 테고. 좋지, 평등.”
진후는 통나무로 된 책상 위에 두 손을 올리고 지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런 기분 아나? 3000명의 사람들이 나를 신처럼 우러러보는 기분 말이야. 아주 죽여줘. 이 사람이라면 깊은 생각이 있겠지, 이 사람이라면 우리를 인도해 주겠지, 이 사람이라면 우리 모두를 살아서 나가게 해 주겠지!”
타앙!
진후는 이를 악물며 주먹으로 나무판을 내려쳤다. 지연은 처음으로 격한 감정을 보이는 진후의 모습에 당황하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와 가까이 마주한 진후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작은 마음의 작은 사정 따위, 이 지옥 같은 케라브를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수백 번이고 짓밟을 수 있어, 이 김진후는, 너희들이 세운 길드장은! 이 케라브를 나가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은 배제해야 한다……!”
“그, 그런…….”
지연은 불타오르는 듯한 진후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후는 그렇게 잠시 있다가 시선을 거두고 뒤돌아섰다.
“할 말 더 없으면 나가지.”
지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어깨를 축 떨구었다.
“네…… 나가죠.”
지연은 진후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그는 대한길드뿐만 아니라, 이곳 케라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정신적인 리더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것은 곧 지연이 어떤 말로도 설득할 수 없는 수준임을 말한다.
‘이곳을…… 떠나야겠다.’
11층 대는 어떤 길드든 간에 이미 진후의 영향권에 있다. 대한길드가 20층 보스를 잡은 지 3주째, 아직 리젠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21층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