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37
37
37. 베아
후우우웅.
마법진으로 이동됨과 동시에 눈앞에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언데드 무리에게 살해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앞에는 긴 생머리에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녀가 여울의 기운을 느끼고는 바로 뒤돌아섰다.
십여 마리의 언데드 스콜피온도 같이 방향을 틀며 여울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맞서 언데드 티거가 앞발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스콜피온들을 날려 보냈다.
저들 중에 은서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시라도 빨리 마녀를 처리해야 한다. 여울은 바로 디카르를 소환하여 마녀를 향해 찔러 넣었다.
채앵!
푸르른 무언가가 반짝이며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검 끝이 마녀의 심장을 꿰뚫었다.
푸욱!
“흐으…….”
마녀는 애절한 표정을 지으며 여울에게 한 손을 뻗었다. 여울은 그녀의 눈동자를 흔들림 없이 똑바로 바라보며 검신을 비틀었다.
“가각…….”
희괴한 소리와 함께 마녀의 몸이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그와 함께 사람들을 압박하던 언데드 무리도 와르르 쓰러져 내렸다.
“커헉, 허억, 헉…….”
가장 선두에서 스콜피온들을 상대하던 사내가 두 무릎을 꿇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여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울은 그의 눈빛을 무시하며 사람들 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때 귓가에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기여도 보상 ‘디라엔의 반지’를 수령하시겠습니까? 24시간 이내에만 수령 가능합니다.] [2건의 보상 수령이 가능합니다.]2건? 1건은 베헤모스의 것인 듯하다. 여울은 음성을 무시하고 사람들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 다니며 주변을 살폈다. 양쪽에는 집채만 한 언데드 티거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사람들이 그 압도적인 기운에 뒷걸음질을 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길이 트였다. 보스가 죽었음에도 기쁨의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저 새롭게 등장하여 충격적인 무위를 선보인 여울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조심스레 수군거릴 뿐이다.
“대체 뭐야…… 사람이야, 새로운 보스야……?”
“눈 마주치지 마…….”
“저 호랑이는 뭐지…….”
여울은 죽어 나간 시체들까지 들어 올려 꼼꼼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은서와 비슷한 나이의 여아도, 교복도 보이지 않았다.
끝까지 살펴본 여울은 바로 뒤돌아서 다시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아직도 무릎을 꿇고 멍한 표정으로 있는 사내가 있었다. 여울은 사내를 지나쳤다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뒤돌아서서 그를 보았다.
‘보상 수령.’
[2건의 보상 모두 수령하시겠습니까?]‘아니, 디라엔의 반지만 수령.’
따로따로 수령할 수 있다면 괜한 오해는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눈앞에서 푸른빛이 생성되었다. 그러고는 이내 굵직한 반지가 손 위에 떨어졌다. 여울은 그것을 바로 사내에게 툭 던졌다.
“엇.”
사내의 초점이 돌아오며 다급히 그것을 받아 들었다. 여울은 살짝 상체를 숙여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고 입을 열었다.
“이름은 여은서, 14세 여중생, 마른 체형에 교복을 입고 긴 생머리입니다. 본 적이 있습니까?”
사내는 반지를 소중하게 두 손으로 받아 든 채 그것을 바라보다가 갑작스러운 여울의 질문에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러고는 눈동자를 오른쪽 위로 올리고는 우뇌를 최대한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도 그런 여아를 본 적이 없다. 사내는 큰 잘못을 저지른 듯이 인상을 쓰고 고개를 수그린 채로 작게 대답했다.
“그렇게 어린 여자아이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대답에 여울은 바로 상체를 들어 올리더니 미련 없이 티거의 등 위로 올라탔다. 그러고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아이를 본다면 아빠가 찾아갈 테니 25층에서 기다리라고 해 주십시오.”
사내는 눈을 크게 뜨고 허리를 깊이 숙이며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여울은 고개를 들어 두려움과 신기함이 공존하는 표정의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티거의 머리를 돌렸다. 일단 환상에서 보았던 10층으로 가는 것이 먼저다.
후우웅.
빛무리에 휩싸여 흑호 두 마리와 여울이 사라졌다. 사내는 마법진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입으로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여은서, 여은서의 아빠, 25층…….”
인간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압도적인 무위를 가진, 딸을 찾는 아빠, 사내는 그가 빛과 함께 등장하던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 * *
킁킁.
오랜만에 맡아 보는 동굴의 텁텁한 냄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우거의 시체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피비린내가 나는 것을 보니 방금 전에 죽은 듯하다.
동굴 구석에 부패된 시체들이 깔려 있는 것을 보면 B구역에서는 오우거에게 상당히 많은 인원이 희생된 것 같다.
환상 속에서 은서는 이곳 10층에서 오우거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가슴 아랫부분이 갑자기 뜨거워지며 울컥 헛구역질이 나왔다. 이런 차갑고 잔혹한 곳에 자신도 없이 어린 딸 혼자 있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강하게 쓰라리다.
여울은 주먹을 한 번 꽉 쥐고는 시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제발 은서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10층 보스 방에서는 다행히 교복은커녕 은서와 비슷한 체형도 발견할 수 없었다. 여울은 바로 세모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어차피 이제 8층까지 사라져 9층이 최하층이다. 아래부터 수색해 가며 올라갈 계획이었다.
[케라브, 9층입니다.]9층으로 내려오니 처음 9층에 올라왔을 때처럼 싸늘한 느낌이 휘돌았다.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먹이를 노리는 암살 트롤들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여울은 언데드 티거를 이끌고 9층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울이 암살 트롤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면 두 티거가 그 뒤를 따르며 암살 트롤에게 앞발을 휘둘렀다. 그들은 그 한 방에 상반신이 터져 나갔다. 새삼 티거들의 강함을 다시 느끼는 순간이다.
9층을 샅샅이 뒤지는 중에 귓가로 시스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기여도 보상 ‘베아’를 수령하시겠습니까? 18시간 이내에만 수령 가능합니다.]베아, 처음에는 제대로 못 들어서 이런 이름인 줄 몰랐다. 베헤모스의 기여도 보상 아이템인 것이다. 6시간이 지나서 다시 알림이 뜨는 듯하다. 여울은 잠시 멈춰 서서 보상 수령을 외쳤다.
후우웅.
눈앞에 푸르른 빛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반지나 주머니와는 다르게 세로로 길고 크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빛은 서서히 수그러들며 끝부분부터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 보이는 것은 하얗고 뭉툭한 손잡이다. 그 아래로 빛을 품은 듯이 새하얗고 가느다란 것이 주욱 뻗어 나왔다. 그 한쪽 끝은 매끄러운 곡선으로 반대쪽 끝의 직선과 만났다.
새하얀 도다. 여울은 천천히 떨어지는 그것의 손잡이를 잡아들었다.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거칠고 강력한 기운이 밀려 들어왔다. 어떤 기운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베헤모스…….’
그의 기운은 몸을 한 바퀴 휘감고는 배꼽 아래쪽으로 모여들었다. 공명, 디카르를 끌어당기는 감각과는 묘하게 다른 무언가가 자신의 몸과 이어졌다.
여울은 자신의 배꼽 아래에 모여든 그 낯선 기운을 두드렸다. 그러자 번개처럼 치솟아 팔을 넘어서 ‘베아’로 전해졌다.
기운을 품은 베아는 마치 반투명해진 것처럼 신비로운 빛을 꾸물꾸물 뿜어내기 시작했다. 위험한 기운이다. 마치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 같은 느낌이다.
일단 9층은 모두 둘러봤으니 10층에 올라가서 시험해 보려 마음먹었다. 알지 못하는 힘은 없으니만 못하다. 여울은 베아를 허리띠에 수풀 밧줄로 단단히 엮었다.
10층 마법진으로 돌아가는 길, 여울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으, 은서…….”
검은색 긴 머리, 검은 배경에 노란 꽃무늬가 들어간 롱 원피스에 단화를 신은 소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뒷짐을 지고 몸을 살짝 기울여 마법진을 바라보고 있다. 그 체형이나 머리 길이가 은서와 동일하다.
그 뒤로 두 마리의 암살 트롤이 슬금슬금 다가가고 있다.
퍼엉!
여울이 바닥을 박차자 가죽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앙!
여울의 몸은 총알처럼 쏘아져 나가 두 트롤의 목을 쥐어 잡아 바닥에 강하게 내리꽂았다. 소녀는 화들짝 놀라며 뒤돌아섰다.
황당한 표정의 소녀와 눈시울이 붉어진 여울의 눈이 마주쳤다. 은서, 은서가…… 아니다.
“으잉,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소녀는 습관인 듯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여울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갔다. 마주 보고 있는 소녀가 뒷걸음질을 칠 정도였다. 그녀는 림보하듯이 상체를 뒤로 기울이며 말했다.
“왜, 왜? 나 뭐 잘못했어요?”
케라브에 어울리지 않게 위기감 없는 행동과 표정에 여울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흔한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왜 여기 남아 있지?”
소녀는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대고 허공을 보다가 이내 그 조그마한 입술을 열었다.
“웅…… 늦었어요. 다들 빨리 가는데 나는 다리가 짧아서.”
여울은 마법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빨리 가라.”
소녀는 여울을 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뭐야, 믿는 거야? 내 다리 이렇게 긴데?”
소녀는 원피스 한쪽을 높이 들어 올리며 새하얀 다리를 훤히 내보였다. 여울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마법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올라가.”
“히잉, 알겠어요. 근데 11층까지만 같이 올라가 주면 안 돼요? 11층에 올라갔는데 사람들 없으면 어떡해.”
이 소녀가 어떤 특성자이든 간에 케라브 내에 혼자 둘 수는 없다. 여울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가 풀며 소녀에게 말했다.
“여기 잠깐 있어라.”
소녀는 그 대답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펄쩍펄쩍 뛰며 그사이 다가온 티거의 앞발에 다가갔다. 처음 봤을 텐데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웅웅, 좋아요! 여기 얘네들이랑 같이 있으면 되죠?”
여울은 그녀와 티거를 한 번 바라보고는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후우웅.
10층은 당연하게도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오우거의 시체만이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을 뿐이다.
여울은 스타트 포인트와 마법진에서 가장 떨어진 구석으로 가서 베아를 끌렀다. 아직도 신비로운 빛이 꾸물꾸물 흐르고 있다. 하얀 바다의 한 부분을 떼 온 듯하다.
이곳 동굴 벽은 특이하여 어떤 충격에도 크게 부서지지 않는다. 조그마한 돌가루만 떨어질 뿐이다. 한 달에 한 번 닫히는 그 힘으로만 물리적 변형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이론은 통할 것이라고 본다. 여울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베아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콰아아아앙!
베아가 바닥에 닿는 순간 새하얀 파동이 넓게 퍼져 나가며 어마어마한 굉음이 동굴을 가득 채웠다. 저 멀리 있던 오우거의 사체가 그 파동에 휩쓸려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이 보인다. 얼마나 먼 곳까지 퍼지는 걸까?
여울은 베아를 들어 검신을 바라보았다. 그 꾸물거리던 빛이 사라졌다. 일종의 장전 형식인 것이다. 베헤모스의 충격파 스킬 미니 버전 느낌이 물씬 난다.
검신의 무게나 밀도를 보면 놈의 뿔 그대로를 깎아 내기만 한 것이 아닌, 꽤 큰 크기를 압축시킨 것 같다. 그래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데도 이만한 힘을 내는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아이템은 어디서 어떻게 만드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검에 감탄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위험 요소도 제거했으니 은서를 찾는 일을 속행한다. 여울은 바로 아래로 내려갔다.
소녀는 언데드 티거의 등 위에 올라타서 뒹굴거리고 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아는 걸까? 케라브에 방금 떨어졌나?
“앗! 와따!”
여울은 그녀의 반응을 무시하며 티거에게 명령했다.
“가자.”
두 마리의 티거가 먼저 마법진 위에 오르고, 여울이 그 뒤를 따랐다.
* * *
[케라브, 11층입니다.]11층으로 올라서자 두 무리가 저 멀리서 사냥을 하는 모습이 잡혔다. 여울은 그들을 가리키며 소녀에게 말했다.
“가라.”
소녀는 입을 삐쭉 내밀더니 티거의 등 위에 바짝 엎드려 그 짧은 털을 작은 손으로 쥐어 잡았다.
“나 아저씨 따라다니면 안 돼요?”
“안 돼.”
“왜요?”
“바쁘다.”
“뭐 찾아요?”
사람들을 둘러보며 대강 대답하던 여울은 순간 고개를 홱 돌려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무겁게 대답했다.
“너 같은 여자아이.”
“딸이구나?”
틈도 없이 바로 묻는 소녀를 여울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첫째 둘째 질문 모두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도 아니고 이 작은 아이가 날카롭게 추측하니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든다.
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녀는 그렇게 확정을 짓고는 질문을 이었다.
“딸이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같이 있다가 헤어졌어요?”
그녀의 말투가 마치 추궁하는 것만 같은 질문이다. 왠지 그걸 알면 안 된다는 듯이.
여울은 다시 검지로 사람들을 가리켰다.
“가라.”
“이잉…… 다른 아저씨들은 나 막 만진단 말이야.”
여울은 소녀의 말에 멈칫했다. 그 의미는 하나밖에 없다. 딸과 동년배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녀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다는 말이다. 여울의 눈치를 살피는 그녀는 말을 이었다.
“딱 일주일만…… 아니, 15층까지만 같이 가요. 이거 타고 다니면 되잖아.”
소녀는 티거의 등을 탕탕 두드렸다.
여울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티 없이 맑게 반짝였다. 거짓이다. 왜 이렇게 자신에게 붙어 있으려고 할까? 그녀의 눈동자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와 같다.
흔한 무기 하나 없이 10층의 마법진을 내려다보고 있던 소녀, 언데드 티거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행동,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결여된 눈빛, 이 소녀는 인간 외의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이곳의 시스템상 적아는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럼 이 아이는 무엇일까? 가까이 두면 득이 될까, 실이 될까? 그녀가 인간도 몬스터도 아닌 케라브에 관련된 그 ‘무엇’이라면 은서를 찾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케라브의 목적에 따라 다를 것이다.
여울은 그녀에게 시선을 거두고는 사냥하고 있는 무리에게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자아내는 티거는 거리를 두고 따라오도록 했다.
소녀는 저 멀리서 딸을 수소문하고 있는 여울을 보며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재밌잖아, 조금만 더 지켜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