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38
38
38 소녀의 존재
여울은 11층부터 구석구석 뒤지고 다녔다. B구역은 A구역 사막과는 구조부터 마법진 위치까지 모두 달랐다.
소녀는 여울의 옆에 붙어 다니면서 사람들을 발견하면 먼저 쪼르르 달려가 말을 전했다.
“이 아저씨가 저같이 생긴 딸을 찾는데요. 이름은 여은서고요. 보면 아빠가 찾는다고 25층에 있으라고 전해 달래요.”
여울은 소녀를 잠시 바라봤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자신보다는 그 소녀가 사람들에게 경계감이 덜할 것이니 그대로 두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얼떨떨한 얼굴로 여울을 바라보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만 내뱉었다.
“사실입니다.”
그렇게 샅샅이 뒤지는 데는 한 층에 꼬박 하루씩 시간이 걸렸다.
13층에서 맞이하는 사막의 밤, 밤낮없이 사람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몸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아 잠시 휴식하기로 결정했다. 베헤모스를 잡을 때부터 지금까지 잠을 한 번도 자지 않아 컨디션이 최악에 다다른 것이다.
여울은 라브를 찾아 티거 두 마리와 소녀를 앉히고 걸음을 옮겼다.
“아저씨, 어디 가요?”
여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있어라.”
여울은 그 말과 함께 모랫바닥을 박차고는 저 멀리 튀어 나갔다. 인적이 드물고 티거와 소녀의 위치가 베헤모스의 충격파 범위보다 더 먼 곳을 찾아야 한다.
여울은 그와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베아를 꺼내 들었다. 21층대는 주변에 나무가 많아 제대로 측정이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도 방해물도 없는 이곳에서 베아의 정확한 범위를 확인해 볼 것이다.
뒤늦게 여울의 존재를 확인한 해골들이 붉은 안광을 빛내며 불나방처럼 모여든다. 여울은 베아에 베헤모스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우웅, 우웅.
그러자 베아의 검신이 어둠 속에서 새하얀 빛을 발하며 낮게 울었다. 여울은 그것을 바로 바닥에 내려찍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모래가 화악 일어나 드넓게 퍼졌다. 해골들은 그 충격파에 그대로 뒤로 쓸려 나갔다.
여울을 중심으로 50미터 부근까지 충격파가 영향을 미쳤다. 해골 무리는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잘하게 부서졌다.
까각, 따닥.
뼛조각들이 꿈틀대는 것을 보니 미스릴이나 다크니스 블레이드 같은 항언데드 능력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모두 멀리 흩어져 재결합하는 시간도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베헤모스의 충격파를 연상케 하는 대단한 힘이었다. 하지만 범위가 워낙 넓고 강하여 그렇게 자주 쓸 일은 없을 듯하다.
소녀는 여울이 범위 실험을 하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짐짓 놀란 척 말했다.
“베아 주인이 맞았네? 저 아저씨가 30층 최초 공략한 거구나.”
소녀는 티거의 등에 엎드려 털을 쓰다듬었다.
“기대된다. 잘 커야 할 텐데…… 그치?”
여울은 베아 실험을 마치고 돌아와서 한 마리의 티거만 이끌고 40미터 떨어진 라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모습에 소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으잉, 왜 붙어서 안 자요?”
“……이놈들 덩치가 크니까.”
“에이, 거짓말, 무서워서 그러면서.”
여울은 그녀의 말에 대답을 잇지 않았다.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로는 정답이다. 어떤 목적을 가졌을지 모르는데 잘 때마저도 가까이 두기에는 심적 소모가 크다.
지금과 같이 피로가 쌓여 있을 때는 더더욱.
소녀는 티거 위에 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에 언데드 티거는 외상이 없기 때문에 입만 다물면 거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하……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혼잣말하듯이 작게 속삭였지만 여울의 귀에는 정확히 들려왔다. 정상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말은 아니다. 무슨 뜻일까? 그녀가 존재를 감추어야 한다면 지금까지 보여 준 행동들은 상당히 허점투성이다. 아니면 감출 생각이 없거나.
여울은 티거에게 소녀가 다가오면 알리라는 명을 내리고는 눈을 감았다. 몸이 천근같이 무겁다.
여울은 푸른눈을 통해 보았던 환상을 꿈에서 다시 보았다. 은서와 은서를 목말 태운 어떤 사내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 맞은편에는 10층의 네임드 오우거가 보인다. 오우거의 손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을 죽인 것이다.
“후읍.”
여울은 눈을 번쩍 뜨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아직 주변이 어두운 것을 보니 밤이 지나가지는 않았다. 맞은편 라브에 있는 소녀는 입까지 벌리고 자고 있다. 인간인 건가?
“티거, 움직이자.”
여울은 바로 티거를 불러들였다. 등이 꿀렁꿀렁 움직이자 소녀가 잠에서 깨어나 침을 닦으며 웅얼거렸다. 두 눈은 아직도 반쯤 감겨 있다. 그녀는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잤는데도 잠이 부족한가 보다.
“으, 음…… 왜, 아직 어두운데…….”
“올라가야 하니까.”
여울은 티거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꿈에서 본 그 10층 동굴의 구조를 다시 떠올렸다. 모두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다.
그곳은 A구역도 B구역도 아니었다.
* * *
여울은 14층은 대강 뒤지고 15층으로 들어섰다. 사람 사는 곳은 모두 똑같은지 A구역 15층과 비슷한 모습으로 하나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수십여 채의 잠자리가 만들어져 있고 물가에서는 빨래를 하고 씻기도 하는 평화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A구역처럼 대장간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는 않지만 미스릴을 녹이는 곳으로 추정되는 화로는 보인다.
각각 통나무를 세워서 길드 이름을 칼로 파낸 패도 보인다. 그중 일부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것으로 추측되는 곳도 있다.
소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다가가 말했다.
“이 아저씨가 저같이 생긴 딸을 찾는데요. 이름은…….”
여울은 소녀의 어깨를 잡아 만류시켰다.
“되었다.”
소녀는 뒤돌아서 여울을 바라보았다. 이제 헤어질 때라는 것은 인지한 것이다. 그녀와의 약속은 애초에 15층이었으니…….
티 없이 맑은 눈이 깜빡인다. 은서의 눈동자도 이러했다.
“내가 도울 수 있어요. 돌아다니면서 다 물어볼게요.”
이런 치기를 보면 겉모습처럼 어린아이가 맞는 듯하다. 여울은 그녀의 두 어깨를 잡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뭐지? 사람인가?”
소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녀는 손을 들어 볼을 주욱 늘어트리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저도 인간이에요.”
소녀는 몸을 돌려 여울의 손을 벗어나며 말을 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나도 기대되는 유망주의 시간을 오래 뺏을 생각은 없었다고요.”
여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예상은 했었지만 그녀가 정말로 범상치 않은 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소녀는 뒷짐을 지고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나 여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중에 또 봐요. 죽지 마요. 응원할게요.”
“여기는 대체…….”
그때, 소녀는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대고 눈 한쪽을 찡긋했다.
“쉿,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예요. 지금은 방해만 돼, 안녕!”
소녀는 몸을 왼쪽으로 살짝 기울인 채 손을 발랄하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총총 뛰어갔다. 그녀는 꽤 빠른 속도로 숲속 깊은 곳으로 모습을 감췄다.
저 소녀의 존재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아직 그녀에 대한 정보는 희박하다. 그저 자신이나 다른 사람처럼 이곳에 강제로 이동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밖에.
여울은 소녀가 사라진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풀리지 않는 의문에 목을 매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은서는 A구역도 B구역에도 없는 것으로 추측되지만 확신하려면 다시 한번 탐색을 해 봐야 한다.
스윽.
옷을 걷어 올려 어깨를 보았다. 검은 글씨로 23이라고 적혀 있다. 약 3주의 기간이 남은 것이다. 그사이 의뢰를 완수하고 탐색을 요청해야 한다.
이한진처럼 의뢰 대상은 그 부근에 가면 검은 기운이 반응하는 편의성이 있다. 이곳부터 빠릿하게 돌아다닌다면 3주 안에 29층까지 모두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여울은 15층 사람들을 대충 훑고는 위로 올라갔다. 그때 환상에서 봤던 의뢰 대상은 특이한 행색에 무리로 다녔다. 눈에 쉽게 뛸 것이다.
* * *
A구역과 B구역이 통합되고 처음으로 만나는 휴식층 25층, 현재는 8층까지 닫혔으니 이곳이 강제로 닫히려면 17개월이라는 기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15층보다 더 견고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고 있다. 아직은 고층에 해당하는지 25층에 만들어져 있는 잠자리는 30채를 넘지 않는다.
21층부터 대형 몬스터가 등장하여 길드 간의 결속력은 더욱 강해졌다.
한 달 전, 진후는 자신의 길드 B등급 이상의 길드원들 90퍼센트를 3레벨로 끌어올린 후, 15층에 남아 있는 다른 길드들에게 20층 보스 공략법을 모두 전수하고는 21층 대로 올라섰다.
소수의 정예 길드들보다 다소 늦게 올라왔지만 그의 길드가 주도적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타 길드들은 여전히 진후를 의지하고 우러러보며 중요 사안이 있으면 항상 그를 찾았다.
휴식층의 계곡에서 50미터 떨어진 곳, 나무와 나무 사이에 밧줄이 연결되어 있고 그것을 기준 삼아 검은 천막들이 견고하게 쳐져 있다.
블랙다콘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대한길드의 막사다. 놈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한 마리에 3개의 천막은 만들 수 있었다.
천막 앞에는 방금 사냥을 다녀온 길드원들 수십여 명이 갑옷을 벗어 손질하고 있다.
그 가운데의 끝부분에는 나무를 등지고 만든 커다란 천막이 있다. 입구가 열린 그 천막 안에는 진후가 통나무로 된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다.
그때, 키가 175센티미터는 될 법한 여인이 쭉 나열되어 있는 천막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아찔하게 파인 셔츠에,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골반이 흔들리는 모습은 사내들의 눈동자를 돌리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진후의 막사로 바로 들어가 한 손을 책상에 대고 비스듬하게 상체를 숙였다.
“어이 진후 씨, 내일인가?”
진후는 고개를 들어 여인을 잠시 보았다가 바로 시선을 거뒀다. 내일 합동 사냥을 가기로 한 리안길드의 길드장 리안이다.
“오늘 사냥이 끝났나 보군요.”
“응, 26층 올라가려면 하루는 푹 쉬어 줘야지. 그 블랙티거란 놈들 만만치 않아. 단단히 준비했지?”
진후는 책상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열 명은 정했습니까?”
“응, 날랜 놈들로 예~전부터 뽑아 놨지. 다른 놈들이 불만이 좀 있었지만 그만큼 위험한 곳이니까.”
진후는 고개를 숙인 채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직 가 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말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위험한 곳을 ‘그들’은 밥 먹듯이 올라가 사냥을 하고 있다.
자신의 친위대가 그들에 비해 밀릴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래요. 그럼 내일 봅시다.”
진후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인사를 고했다. 그때, 웅성거리던 밖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진후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밖을 보았다.
철컹, 철컹, 철컥!
적막해진 장내에 금속이 부대끼는 소리가 맴돈다. 저 멀리서부터 한 무리가 진후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그들의 수는 서른 명이 넘었다.
모두 머리를 밀고 그곳에 붉은 물감으로 두 줄을 칠했다. 상의는 하나같이 탈의하였고 허리춤에는 기본 두세 개의 무기들을 달고 있다.
그들의 선두에는 유독 피부가 검고 키가 큰 사내가 있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검은색 검이 달려 있었다.
그들이 풍기는 기운에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선두의 사내가 진후의 천막 부근까지 다가오자 친위대 중 네 명의 대원이 그를 가로막았다.
사내는 멈춰 서서 친위대원 중 한 명을 노려보며 검의 손잡이를 매만졌다. 진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열어 주십시오.”
진후의 명에 친위대원들은 양쪽으로 거리를 벌렸다. 사내는 재미있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진후에게 두 걸음 더 다가왔다.
그는 상체를 기울여 진후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아주 낮은 저음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곳의 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