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4
4
04. 2층
허리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러질 듯이 꺾였다. 전신에 기름을 들이붓고 불을 붙인 것처럼 온몸이 뜨거워졌다.
튀어나올 듯이 크게 뜬 눈의 실핏줄이 터져 나가 점점 붉어졌다.
붉게 물든 눈으로 팔을 바라보았다. 팔뚝이 미친 듯이 불끈거렸고, 힘줄이 손가락만큼 부풀어 올랐다.
“크하아악!”
발가락 끝부터 정수리까지 풍선 터지듯이 펑 터질 것만 같았다.
바닥을 짚은 손가락의 손톱이 뜯겨져 나갔음에도 몸 전체에 도는 고통이 그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했다.
“아윽!”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정신이 희미해졌다. 저 구석에서 악마의 속삭임처럼 포기하면 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울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 정신을 놓으면 죽는다.
온몸이 부글거렸다.
마치 라면 냄비 안에 물이 끓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대로 고통이 가라앉기까지 버텨야만 하나?
여울의 단련된 감각은 아니라고 말했다.
여울은 가느다란 정신을 붙잡고 손가락 끝부터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반응을 하나 집어서 내려 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자리를 잡아 안정되었다. 마치 팔 안에 아주 조그마한 팔이 하나 더 있어 내 명령에 따라 혼란스럽게 움직이는 불안정한 물방울을 하나씩 잡아 제자리에 박아 넣은 느낌이다.
방법이 통했다.
이번에는 엄지손가락이다.
‘급하게 마음먹지 말자, 죽으면 모두 소용없다.’
여울은 마음을 편히 먹고 하나하나씩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그 전에 정신이 붕괴되지 않기를 바라며…….
* * *
“……은 건가?”
“……자서 세 마리나…….”
꿈뻑, 꿈뻑.
오랜 시간 후에 여울은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 안에 검은 구름이 맴돌다가 안으로 스며들었다.
옅게 푸른빛을 내는 천장이 보였다. 작은 공간과 공간 사이에 맺혀 있는 이슬이 눈에 띄었다. 가느다란 손과 붉은 입술 끝도 보였다.
‘붉은 입술?’
턱!
“꺄악!”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인지했을 때, 자신의 무릎 아래에는 한 여인이 손목이 꺾인 채로 깔려 있었다. 주변을 살피니 서너 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채 내려다보고 있다.
처음에 마주쳤던 무리 중 일부였다. 여울은 단검을 빠르게 여인의 목에 들이댔다.
“자, 잠깐! 진정하세요!”
낯익은 중년인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와 날쌔 보이는 청년 한 명, 그리고 여인 둘이었다.
위치를 보면 방금 도착한 건 아니었다.
‘복수하려고 했으면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텐데…….’
여울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뭐지?”
“흡, 흐읍…….”
바닥에 깔려 있는 여인의 입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픔보다는 공포에 질린 소리. 누가 목에 칼을 들이댄 적이 있었겠는가?
중년인은 그녀를 한번 바라보고는 여울을 향해 두 손을 펼쳐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 여인을 놔주면 안 되겠습니까? 보다시피 우리는 그쪽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남자 둘에 여자 둘, 게다가 무기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중년인의 손목에 있던 시계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이런 무리는 언제 어느 때든 제압할 수 있지만 지금은 몸 상태가…….
‘음?’
생각보다 숨쉬기가 편했다. 옆구리에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몸은 전에 없이 가볍고, 머리는 청량했다.
‘2레벨이 돼서? 그 끔찍한 고통의 대가인가?’
아무튼 이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울은 여인에게서 단검을 거두며 뒤로 두 발자국 물러났다.
“그럼, 왜 날 따라왔지?”
중년인은 여울이 겨누고 있는 검 끝을 바라보며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우린 살고 싶습니다. 어쩌다 이런 저주스러운 곳에 떨어졌는지는 몰라도, 정체 모를 괴물에게 개죽음당하기는 싫습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당신을 따라가야 한다는 게 우리들의 결론이었습니다.”
여울은 얼굴을 확 찌푸렸다. 그 무리에서도 반대와 찬성의견이 나왔을 것이다. 그중에 이렇게 소수가 떨어져 나온 것일 테고, 그러나 내 몸 챙기기도 어려운 마당에 짐을 끌어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제발요……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요.”
방금 전까지 깔려 있던 여인은 자존심도 없이 앞섬에 단추 하나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 행동이 주는 사인은 충분히 읽었다.
반반한 얼굴에 굴곡진 몸, 웬만한 남자들은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할 테지만 여울에게 그런 여유 따위는 없었다.
“나는 너희의 목숨을 책임질 의무도, 생각도 없다.”
여울의 차가운 대답에 중년인과 여인들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그도 방금 죽었다 깨어난 것을 본 만큼 이해는 하지만 아쉬운 대답이었다. 한 청년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봤다.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도 살려 줬는데 이럴 거냐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고개가 일제히 올라왔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내가 가는 쪽을 표시해 놓지, 속도까지 맞춰 줄 거라 생각하진 않겠지?”
금세 그들의 얼굴이 환해진다. 한 여인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중년인도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더 이상의 대화는 사치였다. 여울은 그들의 얼굴을 한 번씩 둘러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총알이 떨어진 총은 버리고, 대장 오크가 들고 있던 조잡한 장검을 챙겼다.
타다다다다닥!
몸이 더할 나위 없이 가볍다. 전성기를 넘어서서 인간이 낼 수 있는 한계를 돌파한 느낌.
한데, 기쁘기는커녕 찝찝하고 불길했다. 미지의 시스템에 의해 이렇게 확실하게 신체 변화까지 겪고 나니, 그가 원래 알고 있던 현실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하다.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언젠가는 출구가 나올 것이다.
“크하아!”
저 앞에 오크가 자신을 발견하고 포효한다. 한 손에 단검, 다른 한 손에는 장검을 들고 망설임 없이 놈에게 달려갔다.
오크의 팽창하는 근육, 힘이 전달되는 힘줄의 진행까지도 눈에 잡혔다.
놈이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은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펼쳐졌다.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놈의 도끼날을 밟고 뒤로 넘어가며 장검을 뻗었다가 거뒀다.
촤아아악!
살결을 따라 아가미처럼 쩌억 벌어진 목에서 진녹색 피가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
뒤늦게 바닥에 착지한 여울은 놈의 생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걸음을 옮겼다. 이곳을 벗어나 은서를 만날 때까지, 그 누구도 그 걸음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 * *
진섭은 사람들과 우연히 오크를 잡았고, 레벨이 생성되어 그 힘을 느꼈다. 하루아침에 배는 강해지니 초인이 된 기분이었다. 맨손으로 사람들을 찢어 버리는 오크라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진섭과 그 일행은 오크의 도끼를 무기 삼고, 수풀을 엮어 함정을 만들어 오크들을 사냥했다. 30여 명 중에 레벨이 생성된 이들은 8명, 전에는 느끼지 못한 우월감을 만끽하며 기고만장해 있었다.
저놈을 만나기 전까지.
“크허엉!”
집채만 한 늑대를 타고 돌진해 오는 오크 전사.
놈의 창에는 방금 전까지 함께 싸우던 동료의 머리가 꿰여 있었다. 저놈에게 7명의 동료들이 모두 죽고 자신마저 곧 죽을 위기였다.
“크라!”
가까운 곳에서 포효가 들려왔다. 진섭은 본능적으로 뒤돌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쩌엉!
동시에 묵직한 충격이 도끼를 강타했다. 진섭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숨이 턱 막혀 오고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자신을 창으로 찌르며 지나갔던 오크 전사가 늑대를 몰아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꼼짝없이 죽은 목숨.
저 무시무시한 창에 자신의 심장도 꿰일 것이다.
창을 번쩍 들고 달려오는 모습이 사신과도 같이 보였다. 죽기 싫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아아악!”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검은 인영이 자신을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움직임은 사람 같지 않지만, 외형은 사람이 분명했다. 그가 창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갔다.
분명 그렇게 보였다.
서걱.
그런데, 창에 꿰뚫리긴커녕 오히려 오크 전사의 팔목이 잘렸다. 늑대의 뒷다리도 잘려서 오크 전사는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그 후부터 그는 요리하듯이 오크 전사의 반대쪽 팔목, 다리, 마지막으로 머리를 잘라 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움직임.
피하는 거리는 아슬아슬했지만,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은 느낌이라, 전투를 넘어서 예술을 보는 듯했다.
오크 전사를 마무리한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하자, 진섭은 온 힘을 다하여 그를 불렀다.
“저, 저기요! 저 좀 도와주세요!”
그는 진섭의 말을 무시하고 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진섭은 그가 더 멀어지기 전에 다시 소리쳤다.
“머, 먹을 것이 있어요!”
걸음이 멈추었다.
* * *
이 동굴에 떨어진 지 이틀째, 허기지고 목이 말랐다. 오크의 피는 끈적거리고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발광하는 푸른 버섯은 도처에 깔려 있지만 먹기가 꺼려졌다. 독 내성이라는 음성을 들었지만 그것만 믿고 무턱대고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그때, 한 청년이 도와 달라며 자신에게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타원형의 보라색 열매를 내밀었다. 안이 살짝 비치는데 그 중심의 씨로 보이는 곳에서 노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표피에서 빛을 내는 푸른 버섯과는 다른 오묘한 느낌이다.
“이게 먹을 것인가?”
“그럼요! 맛도 있어요!”
청년, 진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하나를 더 꺼내어 자신의 입에 집어넣었다. 몇 번 오물거리다가 입을 벌려 안까지 보여 줬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금세 녹은 듯하다.
“어디서 구했지?”
대충 봐도 이 동굴에서 구한 열매로 추정된다. 자신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진섭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나게 설명했다.
“2층이요! 2층에 가면 이 열매가 많이 있어요! 제가 길을 알아요. 아저씨도 같이 가시면 정말 좋을 거예요.”
“2층이라니…….”
먹을 것이 있다는 건 다행이지만 다른 의미로 여울은 절망했다. 이 큰 동굴이 끝이 아니라, 2층도 있다는 정보는 그가 가야 할 길이 두 배로 늘어났다는 뜻이었다.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일단, 가 보지.”
“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섭은 여울의 눈치를 보다가 오크 전사가 가지고 있던 창을 챙겨 들고 앞장섰다.
진섭은 처음 떨어진 곳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가까운 곳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무리 지어 행동하다가 2층에서 의견이 엇갈려 흩어졌다고 한다.
진섭을 따라가니 정말로 어두운 어딘가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타났다. 여울은 진섭을 앞장세우며 계단을 올라갔다.
서른 개 정도의 계단을 오르니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다. 완전히 올라서니 이제는 낯익은 시스템 음성이 머릿속을 울렸다.
[케라브, 2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