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40
40
40 도시락
후웅, 후웅.
무서운 속도에 주변 배경이 줄처럼 그어진다. 소녀와 헤어진 여울은 빠른 속도로 한 층 한 층 뒤지며 올라가는 중이다.
다크니스 버서커를 두 번 연달아 쓴 대가로 힘줄과 혈관이 끊어졌다. 큐어로 다시 붙었지만 곧바로 정상적인 움직임은 불가능했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따끔거리며 후에는 욱신욱신 저려 왔다.
앞으로 버서커는 권장 쿨타임대로 12시간 이후에 한 번씩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여울이었다.
언데드 티거는 부패가 심해져 영혼 구속을 해체시켰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한 달 이상 데리고 다닐 수는 없는 듯하다.
[케라브, 24층입니다.]이제 약속 날짜는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그사이에 29층까지 살필 수 있을까? 대충 살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A구역의 20층 이하에 있다면 의뢰는 실패할 것이다.
달리는 중에 인기척이 느껴져 그쪽을 보았다.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헉, 허억, 조금만 더 힘내세요!”
“젠장, 젠장…….”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진후와 지연이다. 진후의 팔이 팔꿈치까지 잘려 나가 피를 쏟고 있다. 그들은 25층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급히 이동했다.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것이다.
김진후라는 인물이 저런 상태로 쫓기는 것은 꽤 어울리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과 동시에 이상한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때, 갑자기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후끈해져서는 온몸에서 피가 빠르게 돌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리는 더욱 차가워져 자신의 행동이 제삼자로 느껴질 정도였다. 싸우기에 최적화인 몸 상태다.
여울은 이 상태를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 여울은 그들을 쫓지 않고 그 자리에서 대기하였다. 곧이어 상의는 벗고 머리 위에 붉은 피를 칠한 사내들이 진득한 살기를 품고 대거 나타났다. 모두 옷과 얼굴, 검신에 피가 묻어 있었다.
환상에서 봤던 자들이 분명하다. 여울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순간 충격파를 사람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주저 없이 베아를 뽑아 들며 바닥을 박찼다.
후웅.
베아가 장전이 되며 새하얗게 빛을 냈다. 여울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입을 쩌억 벌린 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내의 입안에 베아를 꽂아 넣었다.
콰아아앙!
그의 얼굴이 터져 나가며 거대한 굉음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충격파가 쫙 펼쳐져 그 주변을 모두 날려 버렸다. 나무와 수풀에, 사람까지도 찢겨 나갔다.
그들이 모두 범위 안에 있었는지 장내에는 적막만이 맴돌았다. 여울은 간절히 찾아다닌 이번 의뢰 대상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는 데 살짝 허무감이 들었다.
충격파를 쓰고 나니 단전에 머물고 있는 베헤모스의 기운이 허한 느낌이 들었다. 이 상태로 다시 장전을 하려고 해도 최소 5분은 있어야 가능하다. 최대 몇 번이나 연속으로 가능한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한 방만 쏴도 이렇게 허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다섯 방 이내일 듯하다.
그때, 진정되기는커녕 심장이 더욱 심하게 떨려 왔다. 여울은 자신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흑인처럼 피부가 까맣고 조각 같은 근육을 지닌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당황한 표정이었고 그의 오른손에는 디카르처럼 검은색의 검이 들려 있었다.
“너는…… 느껴지지 않는가?”
그가 여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검신에 얇게 검은화염이 감싸이는 것이 보인다. 그도 다크니스 특성자인 것이다. 그 모습에 여울은 베아에 검은화염을 둘렀다.
라타는 검은화염이 자신의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굵게 타오르는 것을 보고는 부하들이 죽은 것을 발견했을 때보다 더욱 크게 놀라워했다.
그는 이를 바득 갈며 여울에게 덤벼들었다. 여울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그에게 검을 뻗었다. 여울의 새하얀 검신이 그의 검은 검신을 긁으며 검로를 틀고는 그의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
푸욱!
“커흑.”
곧게 뻗은 라타의 검 끝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목에 선 핏대가 유독 튀어 보였다. 여울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검을 비틀었다.
으드득.
“어헉!”
라타는 울컥 피를 토해 내고는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여울은 검을 뽑아 검신을 살펴보았다. 그의 검과 부딪친 부분에 검은 생채기가 생기기는 했지만 전혀 파이지 않았다.
여울은 점점 생기가 빠져나가는 그의 눈동자를 보며 생각했다. 최소 4레벨 이상, 다크니스 특성, 그를 언데드화시키면 어떨까?
그때, 그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검은 검이 엿가락처럼 주욱 늘어지더니 완전히 액체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고는 마치 의식을 지닌 듯이 스멀스멀 움직이더니 여울의 신발을 타고 위로 올라와 오른팔에 붙었다.
상의를 벗어 보니 팔뚝 끝부분까지 감싸고 있던 검은 물체가 이제는 어깨를 완전히 감싸고 한쪽 가슴까지 덮었다. 서로 당기는 성질인가?
두 개만 더 흡수하면 상체를 완전히 덮어 갑옷처럼 될 수 있을 것 같다. 여울은 그것을 바라보며 이한진이 검은 검이 없었던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번째 머더러를 처치했습니다. 다크니스가 일부 상속됩니다.] [‘밤의 귀족’의 의뢰를 완수했습니다.]여울은 그 음성에 바로 다크니스를 확인했다. 무려 927이다. 전에 확인했을 때보다 650 정도 올랐다. 부하들을 제외하고는 그에게만 400이 넘게 들어온 것이다. 이전의 이한진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이자는 아예 학살을 저지른 듯하다.
진후의 분노와 무기력감에 찬 눈빛, 이자의 넘치는 다크니스, 피를 뒤집어쓴 부하들……. 그를 언데드화시키는 것은 보류해야겠다.
* * *
25층 숲 깊숙한 곳, 피투성이의 한 무리가 숨을 죽인 채 앉아 있다.
한지연은 몇 시간 전에 휴식층에 왔다가 대한길드의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는 사람들에게 진후의 행보를 전해 들어 다급히 그들을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서 진후의 팔이 잘리는 것을 목격했다.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강하고 강직한 진후였다.
지연은 라브로 진후의 팔을 지혈했다. 진후는 이를 악물며 씹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복수…… 그들의 복수를 해야 하는데…….”
진후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동자를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의 흐트러지고 추한 모습은 처음 보는 지연이었다. 그녀는 진후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다독였다.
“지금만 기회가 아니에요. 일단 위층으로 피해 있으면 제가 일권 아저씨를…….”
그때, 갑자기 무언가가 지연의 앞에 훅 들어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다.
“허업.”
지연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빼며 고개를 쳐들었다. 앞에는 지금 마음속으로 그토록 찾았던 남자가 서 있었다. 여전히 건조한 눈빛으로…….
“여울 아저씨!”
“크로우님!”
“크, 크로우님이다!”
“우, 우린 이제…….”
“하아…….”
그를 발견한 친위대원들이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을 터트렸다.
그가 지연에게 들이민 것은 진후의 팔로 추정된다. 지연은 순간 울컥하여 눈물을 왈칵 쏟았다. 진후는 여울을 발견하고는 피 묻은 한 손을 뻗어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크, 크로우님…….”
지연은 진후를 진정시키고는 그의 팔을 받아들여 절단면에 가져다 대고 오우거의 피를 부었다. 일반적인 오우거의 피도 아니고 10층에서 구한 네임드 오우거의 피였다.
하지만 그 피로 말려 들어간 힘줄과 혈관도 이어질까? 기대감도 들지만 진후가 더 이상은 오른손을 못 쓸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것은 치료 과정을 지켜보는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때, 그들의 생각을 읽은 여울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살만 붙을 겁니다.”
여기저기서 작게 탄식의 소리가 들려왔다. 진후는 순간 절망의 표정을 지었다가 바로 표정을 바꾸고는 여울을 바라보았다.
“크로우님, 그들은…….”
진후는 물어보면서도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아직 처리되지 않았더라도 절대 무력을 지닌 여울이 있다면 시간문제일 뿐이다.
여울은 그의 눈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돌려 다른 길드원들과도 눈을 마주하고는 마지막에 다시 진후를 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진후는 알 수 없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여울의 존재에 대한 고마움, 자신이 직접 복수하지 못했다는 무기력감, 그에 의해 살해된 많은 길드원들에 대한 미안함,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서서히 올라왔다.
“흡…… 으흑! 크흐윽…….”
진후는 지금까지 꾹꾹 눌러 놓았던 감정들이 울컥울컥 솟아 올라와 터져 버렸다. 그는 여울의 바짓가랑이를 쥔 채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 냈다. 다른 길드원들도 그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 * *
대한길드의 막사, 뒤늦게 소식을 들은 일권은 헐레벌떡 뛰어와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는 사람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안아 가며 눈물을 쏟아 냈다.
비전투 인원들, 그들 중 대부분은 일권과 함께 10층 이하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함께 지냈던 자들이었다.
사냥에서 복귀한 전투조들과 함께 시체들은 조심스레 수습되었다. 그들을 보며 여울은 생각에 빠졌다.
지금 저렇게 잔인하게 목을 잘린 사람들 중에는 자신과 말을 섞었던 이들도 많다. 일방적이었지만. 자신이 의뢰를 빨리 마쳤다면 이들이 희생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마음이 자꾸 들었다.
그러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까? 고민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최우선 목표를 등한시하고 의뢰 대상을 먼저 찾아다닐 수도 없고, 그를 먼저 찾아다닌다고 해서 이런 일이 또다시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여울은 생각을 접고 고개를 돌렸다.
진후는 자신의 처소에 앉아 있다. 책상은 반으로 부서져 있고 그 앞마당에는 머리로 탑이 쌓여 있었기에 피가 낭자하다. 진후는 움직이지 않는 팔을 잡은 채 멍한 눈으로 그 피를 바라보고 있다.
여울은 그를 가만히 보다가 자리를 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일어서는 것은 진후 본인의 몫이다.
여울은 자신이 예전에 만들었던 잠자리로 갔다. 거미줄 하나 쳐져 있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는 바로 블랙다콘의 가죽으로 된 침상 위에 누웠다. 빨리 그를 만나야 한다.
여울은 눈꺼풀을 내렸다.
사아아아.
차가운 바람이 살결을 스쳤다. 여울은 감았던 눈을 떴다. 사방이 안개로 막혀 있는 그 공간이 자신을 맞이했다. 맞은편에는 푸른눈이 정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두 손을 들어 올려 정확하게 박수를 세 번 치고는 말했다.
“아슬아슬했네요. 대단합니다, 여울님. 디카르도 더 커졌네요. 축하합니다.”
여울은 어깨를 슬쩍 봤다가 다시 그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빨리 탐색이나 하지.”
푸른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하루 남았지만…… 이 정도는 이해해 주겠죠. 먼저, 이건 보상입니다.”
그가 주먹을 쥔 한 손을 뻗어 여울 앞에서 폈다. 손바닥에는 손톱만 한 하얀색 구슬이 있었다. 여울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가 폈다. 알약인가? 먹으면 일부 능력이 상승하는?
“시이라는 새입니다. 처음 마주한 자와 눈을 공유하죠.”
마음을 읽은 듯한 그의 설명에 여울은 그것을 집어 한 번 대충 보고는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푸른눈이 말을 이었다.
“음…… 그럼, 탐색을 하기 전에 새로운 의뢰를 받아 볼까요?”
여울은 대답 대신 한 손을 바로 내밀었다. 푸른눈은 씨익 웃음을 흘리고는 악수하듯이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순간, 여울의 눈앞이 검게 변하며 환상이 펼쳐졌다.
화아악.
눈동자가 보인다. 보석처럼 빛나는 붉은 눈동자에 흰자부분은 검다. 화면이 조금 멀어지자 생김새가 제대로 잡힌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이빨, 숨을 내쉴 때마다 흘러나오는 푸른 불길, 견고해 보이는 검은 가죽, 등골을 타고는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다. 놈은 네 발로 땅을 짚고, 머리는…… 두 개다.
‘케르베로스?’
환상이 끝난 여울은 푸른눈을 보며 물었다.
“이번에는 몬스터인가?”
“네, 찾기는 쉬울 겁니다.”
아마 놈이 40층 보스일 확률이 크다. 전설 속의 지옥견을 직접 만날 줄은 몰랐다. 여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수락한다. 이제 탐색을 하지.”
푸른눈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그러죠. 탐색 대상은 전과 같습니까?”
“그렇다.”
“알겠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푸른눈은 손을 잡은 채로 눈을 감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바로 되지 않고 5분 정도 기다리자 갑자기 장면이 들이닥쳤다.
화아아악.
햇빛이 쨍쨍한 사막, 저번에 봤던 그 모습 그대로의 뒷모습이 보인다. 덩치가 큰 사내의 어깨 위에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올라타 있다. 여울은 이번에는 배경을 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주변에 집중했다.
‘라브, 나무, 모래언덕…….’
사내는 오크 도끼를 들고 해골들을 정신없이 쳐부수고 있다. 그의 뒤에 살금살금 다가오는 스콜피온이 보인다. 소녀가 고개를 홱 돌려 스콜피온을 검지로 가리키며 소리친다.
처음으로 보는 옆모습이다. 새하얀 얼굴에 오뚝한 코, 긴 속눈썹에 연분홍의 조그마한 입술을 보자 시간이 멈춰 버렸다.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 얼굴만이 여울의 마음에 꽉 찼다. 여울은 그곳으로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은……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