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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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재정비
“둥둥! 이거 봐! 올라탈 수도 있어!”
“이허마다! 은떠 이허매! 그만 내뎌와라.”
케라브 14층, 사막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오우거가 떡하니 서 있다. 8미터 높이의 어깨 위에는 교복을 입은 한 소녀가 앉아 있다.
“와아! 진짜 높아! 아빠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녀의 말에 아래에 있는 둥둥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아빠…… 은떠아빠 무더워…….”
소녀, 은서는 한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린 채 주변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내가 아빠 만나면 둥둥이 못 해치게 한다니까. 걱정 마!”
은서는 그렇게 말하며 오우거의 손을 타고 내려왔다. 오우거는 사막 바닥에 은서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은서는 무릎을 모은 채 가만히 둥둥을 올려다보았다.
둥둥은 그녀에게 눈높이를 맞춰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은떠 약또케따, 약똑 까먹으면 안 대.”
둥둥은 목에 가죽을 대고는 은서를 번쩍 안아 올려 목말을 태웠다. 그러고는 수풀로 된 밧줄을 가슴에 감아 은서의 다리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은서는 두 팔을 팔딱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역시 둥둥 어깨가 제일 편하다.”
“헤헤.”
둥둥은 한 손에 도끼를 강하게 말아 쥐고는 걸음을 옮겼다. 은서는 한 손을 뻗어 손가락을 딱 부딪쳤다. 그러자 오우거는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 * *
여울은 은서의 옆모습에서 환상이 끝나고 눈을 떴을 때, 이번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현실이 아닌 푸른눈의 공간에 있었다. 푸른눈은 여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영상은 일주일 이내의 눈입니다.”
“일주일…… 그런데, AB구역 말고도 또 구역이 있나? 이것도 룰에 어긋나는 질문인가?”
“그…… 렇습니다.”
푸른눈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히 되었다. 그때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혹시…… 존재가 불분명한 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여울은 그가 언제나 자신을 지켜본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질문은 확인으로 들렸다.
“문제가 있나?”
“맞군요. 최근에 나의 시야가 가려지는 일이 있어서 물었습니다…….”
그는 보기 드물게 끝말을 늘어트리며 머뭇거리는 듯싶었다.
“여울 님, 탐색 대상을 찾고 싶다면 그를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여울 님의 수준은 난이도 조정이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요.”
여울은 딸에 관한 말에 인상을 쓰며 귀를 기울였다.
“그게 무슨 말이지?”
푸른눈은 고개를 살짝 들어 위를 보고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내 말 명심하십시오. 다음에는 이 내용을 꺼내지 마십시오. 그럼.”
푸른눈은 말을 끝내며 바로 눈을 감았다. 동시에 여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나뭇가지, 밝은 빛,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급해 보였다. 단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그가 마치 누군가에 쫓기듯이 행동했다.
난이도 조정……. 지금보다 더 어렵게 조정이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바뀐다면 은서를 찾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푸른눈의 말대로라면 그 소녀가 케라브의 난이도를 관여할 정도의 인물이라는 것. 그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 소녀와 더 이상은 엮여서 좋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지금 능력으로 그녀를 피할 수 있을까?
* * *
대한길드 막사.
밤을 보낸 후에 지연이 진후의 막사로 찾아갔다. 진후는 어제 보았던 모습 그대로 가만히 멍한 눈을 하고 있다. 지연은 그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낮추고는 입을 열었다.
“진후 씨…….”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괜찮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잠이 올 심리 상태가 아님을 알기에 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이름을 부르고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때, 한참을 멍하니 있던 진후의 초점이 돌아왔다.
“지연, 왜 아직 여기 있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돌아가라.”
지연은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아니요. 저 어디 가지 않아요. 여기 있을 겁니다.”
그녀의 말에 진후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혀지더니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를…… 동정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
지연은 따라서 일어나며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도 지금 이 감정이 동정인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후는 그녀를 한 번 보았다가 시선을 거두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진후의 처소 밖에는 백일권을 비롯하여 수십여 명의 대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후는 우뚝 서서 그들을 넓게 둘러보고는 전에 없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 간, 이 김진후는! 여러분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이렇게 기다리고 계실 필요도 없고요. 오늘부로 대한길드 길드장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갑자기…….”
“지, 진후 님…….”
“길드장님,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이러십니까?”
“손 때문에 이러시는 건가…….”
진후의 충격 발언에 많은 사람들이 입을 쩌억 벌리며 놀라워했다. 일권은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말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 사태는 길드장님이 아니라 누구라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길드장님이었기에 이 정도에서 끝이 난 것입니다.”
진후는 힘없는 눈빛으로 일권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요, 내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진후는 일권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저는…… 저는 더 이상 사람들 앞에 서지 못하겠습니다…….”
일권의 눈에 비치는 진후의 눈빛에는 애원이 담겨 있었다. 그의 어깨에서 손이 떨어지고 걸어 나가는 진후를 일권은 붙잡을 수가 없었다.
턱.
진후는 반이 잘려 나간 방패를 왼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오른손과 방패를 번갈아 보다가 방패를 바닥에 던졌다.
터엉!
그 소리가 장내에 유독 크게 울렸다. 별것 아닌 행동이지만 그 주체가 지금의 진후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큰 의미를 부여하며 바라보았다.
진후는 바닥에 널브러진 검을 하나 집어 들고는 터벅터벅 대한길드의 막사를 떠났다.
* * *
“음…….”
여울은 나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곳에는 낯익은 얼굴이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고 있다. 혼자 있는 그림이 어색한 사내, 진후다.
오른팔은 덜렁거리며 왼손으로 검을 놓칠 듯 말 듯 약하게 잡고는 무기력하게 지나가는 모습을 보니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바위 같고 열정이 넘쳤던 사내, 자신의 행보에는 꽤 도움을 줬고 케라브 전체에 영향력이 컸던 자라서 그런지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여울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머지않아 다시 잘 일어서기를 바랄 뿐이다.
여울은 그가 저 멀리 지나가서야 나무에서 내려와 26층 마법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가는 중에 익숙한 풍경이 보여 발끝을 그쪽으로 틀었다.
캉! 캉!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대장장이 여인이다. 대장간은 15층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녀의 옆에는 근육질의 사내 한 명과 여인 한 명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여울은 그녀와 했던 약속이 떠올라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여전히 눈길도 주지 않고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다릴 생각이 없다.
“이사를 했군요.”
여울의 목소리에 그녀가 망치질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 짧은 인연에도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오…… 오랜만입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그때의 약속은 앞으로도 지키기 힘듭니다. 대신, 없애고 싶은 자가 있다면 말하십시오.”
여인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허헛, 없애고 싶은 자라니, 인상처럼 살벌하시네……. 됐어요. 소문은 들었어요. 나 신경 쓰지 말고 올라가요. 아, 뭐 만들 거 있어요?”
여인은 여울의 허리춤을 살폈다. 그러고는 새하얀 검신이 눈에 띄는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참 희한한 검이네요. 몬스터 뼈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여기 이놈이 그거 검집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져갈래요?”
그녀가 근육질의 사내를 검지로 가리켰다. 여울은 베아를 한 번 바라보고는 품을 뒤적였다. 확실히 검집을 만드는 것이 안전성도 좋고 사람들의 눈에도 띄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그녀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아아, 됐어요. 라브는 이제 넘쳐 나요. 정기적으로 수리하는 사람들이 계속 가져오니까, 그냥 해 주는 거예요. 그냥, 우리 모두 케라브에 있잖아요.”
여울은 아무 조건 없이 그저 베푸는 여인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우리 모두 케라브……. 그녀의 말은 꽤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듯하다.
여울은 베아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검의 검신에 미스릴을 입힐 수 있습니까?”
그녀는 베아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살펴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럼요, 당연하지요.”
여인은 손가락으로 검신을 통통 치며 말을 이었다.
“오, 이거…… 뼈구나? 밀도도 엄청나네. 신기하네, 이거.”
“얼마나 걸립니까.”
“아, 그쪽 바쁘죠? 이거 금방 돼요. 검집도 금방 될 거예요. 모양만 따면 되니까, 한 1시간?”
“알겠습니다.”
여울은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녀는 미스릴이 부글부글 끓는 통에 베아를 살짝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미스릴로 된 뭉툭한 검으로 베아의 검신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녀의 손놀림은 전보다 훨씬 능숙하고 빨랐다.
옆의 사내는 블랙다콘의 가죽을 검 모양으로 잘라 오우거의 힘줄로 엮어 그럴싸한 검은색 검집을 뚝딱 만들었다. 마무리로 미리 만들어져 있는 허리춤에 찰 수 있는 고리를 달았다. 수백 번은 만들어 본 손놀림이다.
베아의 집과 검신에 미스릴을 씌우는 것은 1시간도 되지 않아 끝냈다. 그녀는 그것들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쪽은 참 신기한 무구가 많네요. 이게 다 그 뭐냐, 기여도 보상? 뭐 그런 걸로 얻은 거겠지요? 진짜 세구나.”
여울은 대답 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는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럼.”
“별말씀을. 잘 가요. 살아서 또 와요.”
그녀는 굵고 담백하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여울은 바로 바닥을 박차고 빠르게 위층으로 올라갔다.
* * *
“하아, 하아…….”
25층 휴식층. 아무도 찾지 않는 구석에 한 남자가 나무에 기대어 숨을 얕게 내뱉고 있다. 이곳에서 가만히 앉아 있은 지 사흘, 그동안 아무것도 입에 가져다 대지 않았다.
그는 한쪽 팔을 들어 힘을 주어 보았다. 팔꿈치에서부터 전해지는 힘에 부르르 떨기만 할 뿐, 손가락 하나 굽혀지지 않는다.
한 손으로는 도저히 싸우러 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곳은 대형 몬스터뿐이니 ‘그’처럼 압도적인 무위를 지니지 않은 이상 무조건 파티 사냥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 앞에 절대로 설 수가 없다.
팔 하나가 뭐 그리 대수라고, 두 팔로는 사람들의 정상에 서 있었는데, 삼천 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봤는데…….
하루아침에 자신이 이렇게 비참해질 줄은 몰랐다. 길드원들을 죽음에 빠뜨리고 팔 병신이 된 지금은 사람들 앞에 절대로 나설 수 없다.
그는 고개를 힘없이 떨어트렸다. 힘 있는 자가 대우받고,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것이 옳다고, 그런 법칙을 만든 것도 자신이다.
그런데 지금,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사라져 버린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현실이 자신의 목을 옥죄었다. 김진후는…… 끝없는 절망에 그 자리에서 천천히 썩어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처럼 되고 싶어?
머릿속에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