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42
42
42 특성 습득
어두운 숲속, 차가운 공기,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가냘픈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도와줄게.
마치 바로 옆에 숨결이 닿을 만한 거리에서 속삭이는 듯하다. 진후는 고개를 두리번거리고는 귀를 털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환청까지 들리는 것인가? 인간 김진후가 왜 이렇게까지 망가졌는지 모르겠다. 오른팔 하나가 뭐 그렇게 크다고, tv에서 양팔 없이 다리만 가지고도 희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나오는데 팔 하나가 뭐 대수라고…….
생각하기에는 오류가 있다. 이곳은 케라브, 힘이 모든 것이다. 그처럼…….
-내가 힘을 줄게.
이번에는 선명하게 목소리의 방향이 느껴졌다. 진후의 바로 눈앞이다. 검고 긴 머리로 눈을 가린 소녀가 쪼그려 앉은 채로 한 손을 뻗어 자신의 망가진 팔을 잡고 있다.
“흡.”
진후는 그 모습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귀신인가? 이곳에서는 그 어떤 것이 존재한들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귀신이 나약해진 자신에게 접촉하려는 건가? 잡고 있던 감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고개만 들어 진후를 올려다보았다. 살짝 벌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석처럼 푸른눈이 비쳤다. 진후는 그 눈을 기억해 냈다.
“디므라…….”
소녀는 미세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디므라, 진후가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처음 공략했던 20층 보스의 이름이다. 진후는 왼손 검지에 끼워져 있는 디므라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미 실체도 없는 네가 나에게 어떻게 힘을 준다는 거지?”
이미 진후의 마음에는 공의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사람이 아닌 그녀라면 자신의 팔을 고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뿐이다.
디므라는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 검지를 뻗었다. 그녀가 가리키는 것은 진후의 왼쪽 가슴이었다.
-그것으로 나와 너는 하나가 될 수 있어. 그러면 ‘밤의 귀족’의 보살핌을 받는 ‘그’의 힘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야.
간단한 손짓이었지만 진후에게는 그 의미가 어마어마했다. 왼쪽 가슴, 영혼을 구속하는 반지, 디므라와 하나가 된다는 것.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 자살을 강요하고 있다.
디므라가 말하는 ‘그’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진후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가 ‘밤의 귀족’에게 보살핌을 받는다고 했다. 이건 그냥 넘길 정보가 아니다.
진후는 그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자신이 아무리 쉬지 않고 사냥해도 따라갈 수 없는 존재, 절대 무력, 신비로운 검…….
그것이 모두 그의 특성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도 지금 이 디므라 같은 존재와 계약을 한 것일까?
그때, 디므라가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이고는 고개를 갸우뚱한 채 말을 이었다.
-뭘 고민하는 척하지? 나는 너의 염원 때문에 케라브의 봉인에서 풀려났어. 힘을 갖고 싶다며? 병신 같은 팔이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진후는 그녀의 목소리가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하게 들려왔다. 지금 이 몸 상태로 몇 층까지 있을지 모르는 케라브에서 살아간다? 아니, 그래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던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시 오른팔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 너와 함께하지.”
진후의 대답에 디므라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진후는 왼손으로 검을 역수로 잡아 들어 심장을 조준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강철의 감촉이 이토록 차가웠던가? 검신이 심장을 관통하자 오한이 일며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간다.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뿌옇게 보인다.
“끄으으으…….”
츄아아악!
멀어져 가는 정신을 붙잡고 검을 뽑아냈다. 가슴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온다. 진후는 자신의 피가 묻은 검을 내던지고는 왼손을 그 상처 부위에 쑤셔 넣었다.
평생 알지 못했을 감촉들이다. 다른 것들을 헤치며 그 중심에 있는 심장에 손을 가져갔다. 디므라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온다. 창백한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감싼다. 그녀의 몸이 점점 흐릿해진다. 진후의 세상이 점점 검게 변해 간다.
모든 보이는 곳이 검게 변하였을 때, 의식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헷갈릴 때, 어떤 음성이 들려왔다.
[특성 : 언데드를 습득하였습니다.] [특성 동기화를 진행합니다.]* * *
“케켁, 케헤엑…….”
폐에서 바람이 새는 소리가 들려온다. 블랙티거가 배를 보이고 누운 채 몸을 떨고 있다. 놈의 턱에는 새하얀 검신이 박혀 있다. 그것은 턱을 관통하고 머리를 뚫고 땅바닥에 꽂혀 있다.
스윽.
여울은 베아를 뽑아내고는 가만히 그 하얀 검신을 바라보았다.
“음…….”
베아의 충격파를 장전하기 위해서는 베헤모스의 기운이 필요하다. 기운은 장시간에 걸쳐 조금씩 차오른다. 그런데 베아로 몬스터를 잡으니 미세하지만 기운이 차는 듯하다.
여울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통나무가 꽂힌다. 그는 통나무를 타고 올라가 팔을 들어 올리는 오우거의 목을 향해 베아를 강하게 휘둘렀다.
촤아아악!
목이 쩌억 벌어지며 진녹색 피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바닥에 착지한 여울은 다시금 단전에 집중해 보았다. 이 정도라면 오우거 100마리 정도에 한 번 사용할 기운이 채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면적에 비해 개체수가 적은 21층대에서는 충격파를 쓸 일이 없다. 여울은 빠르게 블랙티거 두 마리를 언데드화시키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케라브, 29층입니다.]보스층 바로 전 층에 도착하니 낯익은 파티가 보였다. 29층은 아직도 이들 말고는 사냥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여울은 티거를 타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갑작스레 티거 두 마리가 다가오자 화들짝 놀란 그들이 사냥을 멈추고는 여울에게 말했다.
“어이쿠, 깜짝이야, 오랜만에 보니까 또 놀랍네.”
“여어, 살아 있었네, 여울.”
“형님!”
“딸은…… 금방 찾겠지 뭐.”
서한의 원팀은 여울을 마치 팀원처럼 반갑게 맞이했다. 여울은 티거에서 내려 그들을 둘러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고마웠다.”
그의 말에 건수는 두 손으로 팔뚝을 비비며 대답했다.
“어우, 이 아저씨 죽었다 살아나더니 느끼해졌네.”
서한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음, 31층 올라가려고?”
눈치 빠른 서한의 말에 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럼 베헤모스 또 잡아야 하는 거 아니야? 사람들 모아야지.”
“아니, 혼자 간다. 잡지 않고 바로 넘어갈 거니까.”
서한은 여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오, 그래, 그래, 한 번 잡아서 마법진은 뚫어 놨으니까, 너라면 쉽게 넘어갈 수 있겠지. 사실 우리가 보스 잡으면 휴식층 갔을 때 사람들한테 미리미리 공략법을 공유하는데 이번에는 차마 못하겠더라고. 미친 피지컬의 영웅이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잡지 않고 피해서 가는 방법만 알려 줬는데, 그것도 사실 나도 엄두도 안 나.”
서한의 말에 담덕이 동조했다.
“응, 엄두도 안 나. 무서워, 베헤모스.”
“그렇군.”
서한은 여울이 딱히 할 말이 없는데도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얼른 가, 살아서 만나자고. 아, 그런데 우리는 전부 5레벨이 되기 전에는 베헤모스한테 도전하지 않기로 해서 한참 후에나 볼 거야. 보고 싶어도 참아.”
“형님, 몸조심해요!”
서한의 말에 여울은 바로 뒤돌아서 티거의 등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알겠다.”
여울은 티거를 타고 두 걸음 가다가 고개만 돌려 말을 이었다.
“살아 있어라.”
여울의 말에 원팀은 서로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케라브, 30층입니다.]보스층에 올라서니 그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가 전신을 압박했다. 여울은 몸을 한 번 털었다가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바로 바닥을 박찼다.
쿠우우우웅!
원래 있던 자리에 베헤모스의 거대한 발자국이 찍혔다. 언데드티거 두 마리와의 연결은 바로 끊겼다. 지금 보니 여기저기 사람들의 시체가 조금 보인다.
여울은 베헤모스를 노려보며 베아를 꺼내 들었다.
‘다크니스 버서커.’
시동어를 말함과 동시에 온몸이 화끈거리며 힘줄이 튀어나왔다. 여울은 바로 베아를 장전하고는 베헤모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쿠웅! 쿵!
내리찍는 베헤모스의 앞발을 피해 가며 놈의 배 아래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뛰어올라 놈의 배에 베아를 찍었다.
푸아아악!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넓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뱃가죽이 찢어진다거나 피가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베헤모스는 앞발을 크게 들어 올리며 포효했다.
“쿠헤에에에에엑!”
타격은 주지 못해도 성질은 제대로 긁은 듯하다. 놈의 뿔이 베아처럼 하얗게 빛을 내는 것을 보니 충격파가 분명하다. 이제야 그것이 보인다. 여울은 다리에 힘을 주며 최대한 놈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베아의 충격파와는 확연히 다른 파워가 느껴진다. 그 기운이 얼마나 강한지 눈앞에 충격파가 형상화된 것이 보인다. 그것은 자신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달려와 전신을 덮쳤다.
여울의 몸이 총알보다 빠르게 날아갔다. 100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맞이해서 내부 충격은 덜하지만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튕겨나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여울은 눈앞에 무서운 속도로 커지는 나무를 보며 두 손을 교차시켰다.
퍼어억!
여울의 몸은 그 나무를 뚫고도 수십 바퀴 구르고 나서야 멈춰 섰다. 충격파 쿨타임이 돌아오면 다시 올라가 뿔에 박아 볼까? 아니다. 뿔은 놈의 가죽보다 훨씬 더 단단하다.
지금 굳이 목숨을 걸고 베헤모스를 잡을 이유는 없다. 역시 혼자서 베헤모스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울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마법진을 찾아 그 위에 발을 올렸다. 새하얀 빛이 그의 몸을 감싸고는 곧 사라져 버렸다.
쿠웅! 쿠웅!
베헤모스는 여울이 사라진 마법진 주변을 빙빙 맴돌다가 갑자기 앞발이 꺾이더니 옆으로 쓰러져 내렸다.
쿠우우우웅!
“푸후우…… 푸후우.”
베헤모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 상태로 한참을 누워 있었다.
* * *
햇빛이 유독 밝아 보이는 강가. 보기만 해도 시원한 그곳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몸을 담그거나 빨래를 하고 있다.
한지연은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강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을 담아 얼굴에 묻혔다.
“푸후, 푸후.”
물의 차가움이 무거웠던 정신을 잠시나마 깨끗하게 해 준다. 아래층 위주로 진후를 찾아다닌 지 일주일, 그때는 왜 진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를 그냥 보냈던 것이 얼마나 후회됐는지 모른다.
백일권은 이제 B등급 이상만 남은 대한길드를 재정비하느라고 함께하지 못했다. 원래 지연의 파티원인 민철과 유라, 기웅만이 그녀를 도와 진후를 찾고 있다.
아니, 민철이 그 누구보다 진후를 찾고자 했다. 그는 진후의 오른팔이 그렇게 된 것이 자신의 탓인 것처럼 몇 날 며칠을 괴로워했다.
이제 어디서 찾아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마치 갑자기 케라브 이외의 곳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그때, 뒤에서 낯익은 중저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연 씨.”
지연의 팀원들은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에는 그토록 찾아 헤맸던 김진후가 서 있었다.
그의 오른팔에는…… 방패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