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49
49
1. 아빠 왔다
우우웅.
여울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찰랑거리는 물이 두 발목을 감싸고 들어 올리는 느낌이다.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은 디카르에는 검은화염이 화르륵 타오른다. 그의 신형이 베헤모스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후웅.
베헤모스의 거대한 앞발이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수언의 컨트롤에 모든 것을 맡겨야만 할 수 있는 방법, 아니, 여차하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의 실력을 믿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수언의 이끔에 따라 여울의 몸이 높은 곳에서부터 아래로 강하게 내리쳐졌다. 베헤모스의 거대한 뿔이 무서운 속도로 커진다.
한 번에 뿔을 자르지 않으면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각도, 수언 이놈, 곱상한 생김새와 다르게 거친 놈이다.
“하압!”
수겅!
손목이 꺾일 듯한 충격과 함께 베헤모스의 뿔 한쪽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현재의 근력이 6레벨 버서커 상태의 근력보다 못할 텐데 한 방에 깔끔하게 잘랐다. 수언의 도움으로 얻은 가속의 힘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찢겨진 손아귀의 얼얼함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몸이 다시 위로 추켜 올라간다. 계획대로 잘하는데 왠지 얄밉다.
금세 반중력이 온몸에 느껴지며 남은 뿔 하나가 가까워진다. 여울은 급히 손아귀에 힘을 주고 검을 들어 올렸다. 휘두르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서겅!
“쿠훼에에에엑!!”
베헤모스의 거대한 두 뿔이 볼썽사납게 잘려 나가 바닥에 뒹굴었다. 놈은 방울 잃은 남성처럼 뿔이 잘린 부분을 앞발로 감싸고 크게 괴성을 내질렀다.
그때, 수언이 여울을 보며 외쳤다.
“5분 지났어요!”
“뭐?”
아직 20미터 상공이다. 그런데 그 말과 함께 바로 몸을 지탱하던 염력이 사라졌다. 수언과의 팀플, 좋긴 하지만 위험한 부분이 많다.
탁.
바닥에 가볍게 내려선 여울은 두 앞발을 자신에게 내려찍는 베헤모스를 보며 뒤로 빠졌다. 이제는 수언의 타임이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또는 높이가 높아질수록 전달되는 염력의 힘이 약해진다고 한다. 그는 백여 미터 거리에서 세 개의 검을 보내어 베헤모스의 목덜미를 끊임없이 베고 있다.
6레벨이 되어 그 근력이 상당한지 놈의 가죽이 숭텅숭텅 잘려 나간다. 이대로는 5분 이내에 판가름이 날듯하다.
쿠우우우웅!
거대한 진동에 고개를 돌려보니 진후와 사람들이 베헤모스를 쓰러트린 것이 보였다. 뿔도 제거하지 않고 처치한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
“여울 아저…… 씻팔!”
수언의 격한 부름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베헤모스가 타깃을 바꿔 그를 따라가고 있다. 놈 정도 되는 몬스터면 ‘기’로 검을 조종하는 자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여울은 다시 놈에게 달려 나가며 허리춤에서 새하얀 검을 뽑았다. 놈의 목덜미 이곳저곳에는 수언으로 인해 피가 흠뻑 젖어 있는 것이 보인다. 이제 마무리를 지을 때다.
탁!
그는 그 근처의 나무를 타고 올라가 높이 뛰어올랐다. 옆으로 지나가는 베헤모스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베아를 놈의 얼굴에 힘껏 찍었다.
콰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수언이 만들어 놓은 검상 부위가 터져 나가며 베헤모스는 그대로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6레벨 때는 그렇게 강력했던 베헤모스의 싱거운 최후였다.
띠링!
크릴의 뿔? 하긴, 항상 네임드의 이름은 달랐다. 여울은 수언을 불러 놓고는 보상 수령을 외쳤다.
“보상 수령, 크릴의 뿔.”
푸르른 빛이 여울의 한 치 앞에 생겨났다. 그는 수언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이리 와. 이것을 집어라.”
“아, 네네.”
수언은 쭈뼛쭈뼛하며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았다. 빛이 사그라지고 크릴의 뿔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길이나 생김새는 비슷한데 빛깔이 전혀 다르다. 베아가 순백의 빛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라면 그것은 베헤모스의 뿔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양새다.
“기운이 느껴지나?”
“네? 무, 무슨 기운이요?”
혹시 기여도 보상이 자신에게 내려진 것이라서 그런가? 여울은 수언에게서 크릴의 뿔을 빼앗아 들어 보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보니 진후가 똑같은 뿔을 들고 지연에게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여울은 지연에게 다가가 그것을 내밀었다.
“엇, 아저씨! 이렇게 또 만나다니! 정말 아저씨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지……. 저 소년은 어떤 특성을 가진 거예요? 어디서 만난 거죠?”
지연의 손짓에 힐끔 돌아보니 수언이 저 멀리서 다가오지 못하고 혼자 멀뚱멀뚱 서 있다. 여울은 그녀의 물음을 무시하고는 뿔을 다시 내밀며 말했다.
“감정 가능한가?”
“아…… 네네, 똑같아 보이지만, 잠시…….”
-이름 : 크릴의 뿔
-재질 : 크릴의 뿔
-특이 사항 : 매우 단단하고 반탄력이 강하다.
“음, 진후 씨 것은 데가베르의 뿔이었는데, 이름만 다르네요.”
이름만 다르다라, 설명은 같다는 것이다. 베아와는 다르게 기운 연결이 아니라, 반탄력이 언급되어 있다. 이러면 소년과의 약속이 어긋난다.
콰앙!
그때, 진후가 데가베르의 뿔을 민철의 방패에 살짝 휘둘렀다. 그러자 민철이 뒤로 날아가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크흡…… 대, 대단한데요?”
코피를 흘리는 민철은 진후에게 한쪽 엄지를 추켜올렸다. 유라는 그런 민철의 코피를 맨손으로 닦아 주며 진후를 째려보았다.
반탄력, 좋은 검이지만 베아와는 비교 불가다. 최초 공략이라서 보상이 다른 것인가? 10층이나 20층은 같았는데 갑자기 바뀐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튼 이대로는 약속을 지킬 수 없다.
여울은 뒤돌아서서 다시 수언에게 크릴의 뿔을 내밀며 말했다.
“수언,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으니 이것도 네가 가져라, 보상 수령.”
“네에?”
여울이 말하자 그의 앞에 조그마한 빛이 생겨났다. 그는 혹시 몰라 수언의 손목을 잡아당겨 그 보상을 받도록 하였다.
“으읏.”
감촉이 이상한지 수언의 표정이 희한하게 변한다. 빛이 사그라지고 나니 그의 손안에 달걀만 한 푸르른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오…….”
손안에 머금고 있는데도 멀쩡한 것을 보면 그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 듯하다.
그는 한 손을 높이 뻗어 그 불꽃을 날려 보내었다. 그러자 그것은 긴 궤적을 남기며 수언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여 댔다. 그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보상이다.
어느새 불꽃을 손안으로 다시 불러들인 수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여울에게 말했다.
“와우! 지, 진짜 고마워요! 최고예요, 아저씨!”
얼마나 마음에 들면 크릴의 뿔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여울은 그것을 들어 수언의 등에 달려 있는 검집에 꽂아 주고는 말을 이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난 이제 내려가야 한다.”
여울의 말에 수언이 고개를 확 쳐들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표정이다. 불꽃은 손아귀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 읍, 그러니까, 아저씨는 딸을…… 개샛끼! 아, 죄송합니다. 그니까 딸을 찾아서…….”
수언은 마치 여울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여울은 그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며 말했다.
“너는 강하다. 곧 올라올 테니 그때까지 레벨을 올려놓고 있어라.”
수언은 고개를 지속적으로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알겠습니다. 레벨을…… 레벨을…….”
여울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걸음을 옮겼다. 아래층에서 은서가 기다린다. 진후 일행과 회포를 나눌 시간은 없다.
그가 파란 마법진 위에 발을 올리려고 할 때, 수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울 아저씨! 빠, 빨리 오십시오!”
“알았다.”
여울은 행동을 멈추고 그에게 시선을 맞추고는 고개를 한 번 깊게 끄덕였다.
* * *
20층으로 내려오니 수천 개의 붉은 안광이 동시에 자신에게 돌아갔다. 베헤모스가 두 마리였으니 마녀는 네 명인가 싶었는데 한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10층은 없어졌을 텐데 바닥에 푸른 마법진은 남아 있다. 자세히 보니 열 개 있어야 할 세모가 아홉 개로 변해 있다. 그는 수천 마리의 해골들이 덮치기 직전에 그곳에 발을 올렸다.
후우웅!
[케라브, 11층입니다.]예상대로 휑한 사막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도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여울은 라브를 찾아 돌아다녔다. 시간이 꽤 흘러서 그런지 라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사막은 보스층을 제외하고는 밤에만 마법진이 열린다. 하니 밤을 기다리는 동안 푸른눈을 만나고 체력을 보충해야 한다.
두근두근.
‘음?’
가슴에서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여울은 가만히 서서 감각에 집중했다.
두근두근.
그 떨림이 더욱 강해졌다. 어디에서 느껴지는지 확실히 알겠다. 그는 바로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감각의 범인을 끄집어내었다.
“삑삑.”
앵무새를 닮은 새하얀 새가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빛내며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손바닥 위에서 마치 위협을 하듯이 날개를 쫘악 펴고 펄럭이는데 그 크기가 완두콩만 하다.
“시…… 이?”
“삑!”
여울은 기억을 끄집어내어 그것의 이름을 불렀다. 푸른눈이 의뢰 성공 보상으로 주었던 손톱만 한 알이 부화된 것이다. 그 신비로운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이 조그마한 것과 놀아 줄 시간이 없다. 여울은 바로 다시 손을 오므려 안주머니에 시이를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놈이 재빠른 움직임으로 손아귀에서 벗어나더니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삐익, 삑삑.”
시이는 그 조그마한 날개에 어울리지 않는 가공할 속도로 자신의 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좁은 주머니 안에서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였다. 여울은 놈을 무시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라브에 도착한 여울은 바로 아무런 준비 없이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사아아아.
익숙한 차가움, 낯익은 공간,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 그런데 의자에 푸른눈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시야를 가리는 안개만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꽤 오래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 직접 찾아보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더 이상 돌아다닐 수도 없다.
여울은 마지막 만남 때를 떠올렸다. 소녀에 관한 이야기, 다급한 모습, 다음에는 언급하지 말라는 말……. 그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나?
여울은 그곳에서 다시 눈을 감아 보았다. 그러자 주변 온도가 달라졌다. 눈을 떠 보니 현실로 돌아왔다. 아직 낮인 것을 보면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하다.
다시 눈을 감아도 그 공간으로는 가지지 않는다. 그의 탐색이 은서를 찾는 데 큰 역할을 할 텐데……. 그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여울은 체력 보충을 위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때, 시스템 음성처럼 머릿속에 소리가 울렸다.
‘삑- 삐익’
‘시이?’
그의 말과 함께 마치 환상처럼 시야가 확 트였다. 푸르른 하늘,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배경, 까마득한 사막, 이것은…… 시이의 시야다.
푸른눈이 시이의 알을 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처음 마주한 자와 눈을 공유하죠.’
시이, 푸른눈을 통한 탐색이 불가능한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다.
* * *
14층 사막의 어느 구석, 피투성이의 거대한 덩치 사내가 빼빼 마른 두 소년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다.
“후웁, 후웁, 이 아저씨라면 복수를 해 줄 수 있을 거야.”
“당연하지! 아까 중철네 부하들 꼴 봤잖아, 후…… 얼른 치료하자.”
이들은 같은 파티원이었던 누나를 중철 일당에게 빼앗긴 소년들이었다. 힘이 없어서 파티원들이 당하는데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복수를 다짐하며 중철의 부하들을 감시해 왔다.
그러던 중에 둥둥이 그들을 응징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구해 온 것이다.
그렇게 사흘이 지난 후, 둥둥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은떠, 은떠한테 가야 해!”
둥둥은 바로 주변을 더듬어 자신의 도끼를 찾아들고는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두 소년이 바로 둥둥에게 달라붙자 그가 도끼로 위협했다.
“너네는 누구냐! 은떠 어딘냐!”
“우, 우리는 피투성이로 쓰러진 아저씨를 구해 줬어요! 중철 일당한테 복수하러 가려면 지금 몸으로는 불가능해요!”
소년들은 아직 비틀거리는 둥둥을 설득했다. 그러나 둥둥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의 고집을 이기지 못한 소년들은 함께 움직이며 그에게 부지런히 라브를 먹여 최대한 체력을 회복시켰고, 15층에 위치한 중철 일당의 주둔지를 알려 주었다.
그 시각, 중철 일당은 그 위층을 수색하며 둥둥을 찾고 있었다.
퍽! 퍼석! 퍼억!
여기저기 팔다리가 날아다니고 붉은 피가 솟구친다. 중철의 움막은 모두 무너져 내렸고 장내에는 피비린내가 가득하다.
한쪽 팔을 잘린 사내는 고통도 느끼지 않는지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마구 뒷걸음질을 쳤다.
“사, 살려 줘, 저, 정말 몰라!”
그의 맞은편 사내, 남의 피로 피 칠갑을 한 둥둥은 도끼를 추켜올리며 외쳤다.
“은떠 어디 인냐!”
“사, 살려 주세요! 제발!”
퍼석!
내려치는 도끼에 사내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이제 중철의 움막에 살아 있는 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무 뒤에 숨어 지켜보던 소년 둘이 슬그머니 나와 둥둥에게 다가갔다.
“거봐, 이 아저씨라면 복수할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
“진짜 대단하다…… 이 개자식들, 다 죽여야…… 음? 아저씨, 왜 그래요?”
소년은 둥둥의 상태가 이상하여 어깨를 툭툭 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염라대왕처럼 압도적인 위엄을 보이던 그가 지금은 고양이 앞에 쥐처럼 몸을 벌벌 떨고 있는 것이다.
“아, 아빠, 아빠다…….”
“아빠? 그런데 왜 이렇게 떨어요?
그는 어두운 숲속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작게 속삭였다.
“으, 은떠 아빠…….”
그곳에는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