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51
51
2. 분노
검은 장막이 드리워져 있는 사막의 밤.
폐허처럼 수십 그루의 나무가 쓰러진 곳에 열댓 명의 사내들이 보인다.
그 끝부분에는 얼굴에 흉터가 있는 한 사내가 누군가의 위에 올라타 검을 추켜들고 있다. 바닥에 깔려 있는 자는…… 교복을 입고 있다.
여울은 머릿속에 무언가가 뚝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이 쏜살처럼 날아가 흉터 사내의 얼굴을 잡아 반대로 내려찍었다.
퍼억!
바닥이 모래인데도 그 충격에 거품을 물고 기절을 한 것이 보인다.
반대편에 누워서 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소녀를 보니 시간이 정지되는 것만 같았다. 여울은 그녀에게 두 손을 뻗으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은서야, 아빠 왔다.”
아빠, 그 단어 하나에 은서의 눈물샘은 무너져 버렸다. 그녀는 태산보다 넓은 아빠의 품에 달려들었다.
“아빠, 아빠아!!”
여울은 아기 새처럼 작은 몸을 소중히 안아 주었다. 머리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피와 모래, 심장의 두근거림, 몸의 떨림, 그 모든 흔적들에서 분노가 인다.
왜 이 작고 여린 아이까지 케라브에 데리고 와서 이 고생을 시키는가? 그때 만났던 그 소녀가, 정체 모를 이 케라브의 관리자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럽다.
그전에, 지금 당장 은서를 이렇게 떨게 만든 자가 용서되지 않는다.
여울은 은서를 조심스럽게 떼어 내고는 그녀의 발목을 잡으며 말했다.
“여긴 왜 그러니?”
“아, 이건…….”
은서는 순간 당황하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여울이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턱!
그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시퍼런 검신이 잡혔다. 검의 주인은 그것을 다시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터엉!
여울이 검 면을 손등으로 강하게 쳐 내었다. 그러자 사내의 손아귀가 찢어지며 검이 홱 돌아가 도리어 자신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기절하는 그의 뒤로 여러 명의 사내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여울은 은서에게 윗옷을 벗어 그녀의 머리에 씌워 주며 말했다.
“내 딸, 귀 막고 100까지만 세고 있어.”
그의 옷을 머리에 뒤집어쓴 은서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그녀는 이 말을 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집에 낯선 아저씨들이 몰려왔을 때다. 그리고 100을 세고 난 후에는 거짓말처럼 아무도 보이지 않았었다.
여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모여든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베아를 꺼내어 기절해 있는 중철의 가슴에 깊숙이 내리찍었다.
푸욱!
“커흡!”
폐는 장기 중에 가장 고통을 크게 느끼는 곳이다. 중철은 그 어마어마한 통증에 신음을 내지르며 눈을 떴다. 여울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기다려라, 너는 마지막이다.”
여울은 품에서 단검을 꺼내며 그의 부하들에게 달려 나갔다. 사방에서 서슬 퍼런 검들이 찔러 오지만, 지루함이 느껴질 정도로 느리다. 이따위 놈들이 은서를 괴롭혔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서걱! 서걱!
그는 몸을 낮추고 그들 사이로 파고들어 아킬레스건을 끊어 버렸다. 놈들은 바닥에 엎어져 발목을 부여잡고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다.
“악! 내 발목!”
“크아악!”
“크흡.”
열댓 명의 사내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지기까지는 채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바닥을 구르며 신음하는 놈들에게 걸어가 이번에는 손목을 하나씩 끊기 시작했다.
“아악!”
“제, 제발, 아윽!”
“이, 이거 놔! 크학!”
1분도 되지 않는 시간, 그들은 바닥에서 수영을 하듯이 팔다리를 휘저으며 붉은 물감을 칠하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여울은 뒤돌아서 중철에게 다가갔다.
“으, 으아! 오, 오지 마! 오지 마!!”
중철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은 이미 이성을 잃고 공포로 물들어 있다. 여울은 단검을 품 안에 갈무리하고는 그의 발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그의 무릎을 발로 내리찍었다.
으드득!
“크하아아아악!”
그의 다리가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여울은 그의 남은 한쪽 다리마저 그렇게 만들고는 그의 팔을 들어 올렸다. 그가 팔을 부들부들 떨며 다급히 소리쳤다.
“제, 제발! 살려 줘! 살려 줘! 대체 저년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이러는 거야? 나는 뭐가 됐든지 저년이 줄 수 있는 것보다 수십 배는 더 줄 수 있다고!”
지인끼리 만나는 일이 드문 케라브이니, 중철은 자신이 지나가다가 은서를 도와주는 것이라 착각하는 듯했다.
여울은 자세를 바꿔서 그의 겨드랑이에 발을 올리고 팔뚝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이, 아빠다.”
“뭐?!”
그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그 순간 여울이 손에 힘을 주었다.
추아악!
“캬하아아악!!”
그의 팔이 생으로 뜯겨 나갔다. 어깨부터 팔꿈치까지의 뼈는 그대로 덜렁덜렁 붙어 있다. 여울은 그것을 부하들에게 내던지고는 나머지 한쪽 팔마저 뜯었다.
“크르르륵…….”
중철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여울은 은서를 힐끔 보고는 중철의 귓가에 속삭였다.
“죽지 마라.”
여울은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옮겨 은서에게 다가갔다.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97, 98…….”
그는 옷을 뒤집어쓴 은서를 그대로 안아 올렸다.
“이제 안 세도 돼.”
* * *
“크흐으으…….”
“아흐윽, 아흐으…….”
“제발, 제발…… 누가 좀 죽여 줘…….”
사막의 밤이 거둬지고, 그 참혹한 현장에는 살아남은 자들의 신음 소리만이 조용하게 울렸다.
끼긱, 끼기긱.
하루가 지나 리젠이 된 해골 한 마리가 슬금슬금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눈을 번뜩이는 해골을 보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크흐…….”
“젠장…….”
해골은 주변을 둘러보며 어느 것 먼저 골라 먹을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중철에게 다가가 입을 쩌억 벌려 그의 턱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까드득, 까드득.
“크하아아아아악!!”
중철의 비명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 * *
모래가 파도처럼 깔려 있는 밤의 사막, 한 남자가 소녀를 안고 사막을 횡단하고 있다.
“아빠, 아빠아…….”
은서는 안긴 채로 여울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어리광을 부려 댔다. 여울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피딱지가 생긴 무릎, 덜렁거리는 발목, 핼쑥해진 얼굴을 보면 아직도 미안함이 가득하여 마음 놓고 웃어 줄 수가 없다. 은서는 그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계속해서 애교를 부리며 재잘댔다.
“나는…… 아빠가 올 줄 알았어.”
“정말?”
“응, 왠지 그냥 느낌이 왔어. 여자의 육감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거!”
“하하핫, 그랬구나, 우리 딸. 신기하네.”
“응, 아빠는 몰라. 휴우…… 좋다.”
은서는 미소를 머금은 채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여울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어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푹 자자, 우리 은서.”
“우웅…….”
은서는 그날, 케라브에 와서 가장 포근하고 깊은 잠을 잤다.
[케라브, 15층입니다.]15층에 들어서자마자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던 둥둥이 정말로 입구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은떠! 은떠가 와따!!”
그는 여울이 안고 있는 은서를 보자마자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크게 소리치며 한달음에 달려왔다. 여울은 살기를 내뿜으며 그에게 한 손을 뻗었다.
“다가오면 죽…….”
“둥두웅! 둥둥! 둥둥, 괜찮아?!”
그때, 은서의 목소리에 여울의 협박이 먹혀 버렸다. 은서는 여울의 품에서 몸까지 기울여 손을 흔들며 진심으로 둥둥을 반가워했다.
“으, 응! 둥둥은 괜찮다! 은떠, 은떠 마니 다쳤냐?! 둥털 때끼 둥둥이 듀겨야 하는데…….”
둥둥은 두 팔을 벌리며 달려오다가 두 걸음 앞에서 멈춰 서고는 여울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빠가 다 혼내 줬어. 이제 아빠 있으니까 다 괜찮아. 그치, 아빠?”
그녀의 말에 둥둥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리고 있던 여울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그래, 그렇지, 우리 딸, 걱정하지 마.”
여울은 은서를 보며 미소 지었다. 둥둥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여울은 한적한 곳에서 은서의 발목을 다시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발목에서 한 치 위쪽의 뼈가 완전히 부러졌다가 제대로 붙지 않은 듯하다.
중철 일당에게 당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꽤 오래전에 다친 것으로 보인다. 고통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절로 주먹이 쥐어진다.
환상에서 보았던, 은서를 항상 목말을 태우고 다녔던 사내는 둥둥이었다. 그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은서의 발이 되어 줬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고마운 마음이 솟아나려고 해서 차단했다.
그는 은서를 죽이려고 했던 납치범이다.
“발목, 어쩌다가 다쳤니?”
“응? 아…… 이거…….”
은서가 눈을 피하며 머뭇거린다. 그때, 한 걸음 떨어져 있던 둥둥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여기 맨 터음에 왔을 때 어떤 놈들이 그래떠요! 은떠 버릴려고 그래때요! 둥둥이 다 두겨뜹니다!”
으드득!
쥐인 주먹에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흐른다. 이가 부러질 듯이 갈린다.
버리기 위해서 어린 소녀의 발목을, 몬스터도 아니고 인간이 부러트렸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자체의 힘이 뛰어난 자들에게 유리하다 보니 어린 소녀는 짐 덩어리로 판단한 것이다. 그녀를 버린 것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갈까 두렵고, 자신의 손에는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 몬스터들에게 죽게 하기 위하여 발목을 부러트린 것이다. 이 어린 소녀를…….
은서가 홀로 고통에 신음하며 두려움에 떨었을 생각을 하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다. 미쳐 버릴 것만 같다.
그때, 은서의 목소리가 귓가를 후벼 팠다.
“아…… 빠? 괜찮아요?”
그녀의 맑은 눈망울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다. 여울은 은서를 확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미안, 미안하다…… 미안하다, 은서야.”
“응? 뭐가……? 아빠가 뭐가 미안해? 난 괜찮아.”
여울은 은서를 조심스럽게 떼고는 그녀의 가녀린 두 어깨를 붙잡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은서야, 미안한데…… 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려 줄 수 있겠니?”
은서를 바라보는 여울의 눈동자는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 * *
2019년, 서울.
빵빵! 빠앙!
클랙슨이 난무하는 복잡한 8차선 사거리, 그 한쪽에 위엄 있게 세워져 있는 40층 빌딩 꼭대기에 거대한 전광판이 걸려 있다. 화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모습이 잡혀 있었다.
“0726 대규모 실종 사건 1주기, 광화문에는 촛불 추모식이 열려…….”
광고판 아래 넓은 도로는 아무런 진동도 없이 갑자기 갈라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세단 차가 잘 나가다가 그곳에 접어들자 바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쿠과아아아앙!
끼이이익!
끼이익! 콰앙!
그 뒤에 오던 차들이 급정거를 했다. 그때, 그 뒤차가 급정거한 차를 박아서 조금 더 앞으로 이동했다.
기기기기기긱!
차가 반쯤 기울어진 채 멈춰 섰다. 그 차에 탄 운전자는 조심스레 차에서 내려 뭔가에 홀린 듯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이건 대체 뭐지…….”
갑작스럽게 생긴 지름 5미터의 싱크홀, 휴대전화 플래시로 비춰 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
우득!
진녹색 손이 뻗어 나와 그의 얼굴을 잡고 그대로 끌고 들어갔다. 가만히 구경하던 사람들은 잘못 봤나 싶어 조용히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진녹색 괴물이 위로 튀어 오르며 방금 끌고 들어갔던 사내의 머리와 몸통을 찢어 버렸다.
“크루카!!”
촤아아아악!
사내의 붉은 피가 장내에 흩뿌려졌다.
“으아아아아악!”
“꺄아아악!”
그 모습에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싱크홀 안에서는 진녹색 피부에 터질 듯한 근육을 가진 괴물들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