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53
53
3. 은서의 바람
36층, 거대한 공동에서 한 파티가 두 마리의 커다란 고릴라를 상대하고 있다.
푹!
서한은 고릴라의 심장에 꽂아 넣은 검을 거칠게 빼고는 숨을 골랐다.
“후우…… 아, 생각할수록 그거 아까워 죽겠네. 괜히 양보했어.”
담덕이 도끼로 다른 고릴라의 대가리를 깨부수고는 그에게 물었다.
“데가베르 뿔?”
건수가 검을 돌려 가며 대신 대답했다.
“그거지 뭐, 아깝기는 하다. 대장이 그거 가지고 있으면 사냥도 훨씬 수월할 텐데.”
문솔이 창대에 몸을 기댄 채 말을 이었다.
“어차피 여울 씨가 40층 깨서 30층 내려가는 마법진은 열려 있을 테니까 가서 리안길드랑 같이 잡지, 뭐. 베헤모스.”
그때 무영이 만류했다.
“그러기에는 40층 보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지 않아요?”
팀원들의 말을 가만히 듣던 서한이 고개를 들었다.
“위에 여울하고 같이 있던 소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올라가 볼까?”
“음…… 그 소년이라면 괜찮겠네요.”
“올라가 보자.”
“인생 뭐 있나, 올라가자!”
그렇게 갑자기 단결된 원팀은 바로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케라브, 39층입니다.]서한의 원팀은 39층에 올라서자마자 한 소년을 발견했다. 등 뒤에 검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니 그때 여울과 함께 있던 소년, 수언이다.
서한은 바로 몸을 돌리는 그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어엇, 이봐, 소년! 잠깐만! 그때 30층에서 봤지? 나 여울 친구야!”
수언은 도망치다가 여울이라는 말에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는.
“개샛끼!”
수언은 돌연 자신의 욕에 화들짝 놀라며 더욱 빠르게 도망쳤다. 그의 뒤로는 네 개의 검과 불꽃이 따라갔다.
“저거 방금 우리한테 욕한 거 맞지?”
“맞긴 맞는데…… 왜?”
“대장 얼굴이 마음에 안 들었나.”
“인정.”
“시끄럽고, 아…… 저 애가 40층 보스 공략법 알 텐데…….”
그때, 시스템 음성이 그들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외부 상황 변화에 따라 케라브 난이도가 상승됩니다.] [층 폐쇄가 30일에서 7일로 변경되었습니다.]“응?”
“난이도 상승?”
“이거 우리…… 지금 엄청난 얘기 들은 거 맞지?”
“어차피 별 상관없는 거 아니야? 지금이 12층인가, 13층인가?”
서한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엄청난 얘기 맞아. 네 달 후면 여기까지 없어지는 거고, 지금까지 따져 보아도 항상 한 층에 7일 이상 걸렸어. 몇 층까지 있는지 모르잖아. 우리 싹 다 쥐포가 될 수도 있다는 거야.”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대장?”
“글쎄…… 먼저 레벨업 좀 하면서 생각해 보자, 너도 아직 4레벨이잖아.”
서한과 눈을 마주한 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적으로 딜이 작은 무영은 아직 5레벨이 되지 못한 것이다.
* * *
거대한 나무들이 울창한 숲속, 한 무리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난이도…….”
“상승이라니…….”
“그게 머냐?”
은서는 둥둥의 물음을 가뿐히 무시하고 고개를 떨군 채 골똘히 고민했다. 아빠와 함께 26층 대에서 사냥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오며 가며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아빠를 마치 왕처럼 우러러보았다.
원래부터 운동을 좋아하고 몸이 좋으니 어느 정도 강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공략파 길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정도로 강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상을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아빠를 ‘격’이 다른 강자 취급을 하고 있다.
“두 달 뒤에 거점을 35층으로 옮겨야겠군.”
“괜…… 찮겠지? 저번에 40층 공략했다고 했으니까 제일 위에 사람들은 지금 45층쯤에 있는 거지?”
여울은 허공에 시선을 둔 채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음…… 아마 아닐 거다.”
“그…… 래?”
은서의 걱정 가득한 물음에 여울은 그녀와 눈을 마주하고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걱정 마, 아빠랑 같이 있잖아.”
“응…….”
“나도 걱떵 안 해, 은떠 아빠 엉청 강하다.”
‘그 말은 맞는 것 같은데…….’
은서는 아빠의 드넓은 어깨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 * *
울창한 숲과 계곡물이 흐르는 25층, 여울은 은서를 데리고 예전에 만들어 둔 나무 위 잠자리로 올라왔다. 둥둥을 믿는다고는 해도 무방비 상태에서까지는 아니다. 그는 나무 아래에 언데드 티거의 등 위에 누워서 코를 골고 있다.
“삑삑.”
은서는 여울의 팔을 베고 누워서 손가락으로 시이의 부리를 콕콕 건드렸다. 그때마다 소리를 내며 부리를 터는 것이 꼭 성질을 내는 것 같다. 은서는 그 모습마저도 귀여운 모양이다.
“진짜 예쁘게 생겼다. 천사같아.”
티 없이 웃음 짓는 은서를 바라보는 여울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시이도 줄 수 있다면 주고 싶다. 어차피 이제 같이 있을 거니 항상 은서에게만 붙어 있게 해야겠다.
“그렇게 예뻐?”
“응! 어떻게 이렇게 조그만 게…… 아, 관찰해 볼까?”
은서의 특성은 환상과 관찰이다. 은서는 시이를 노려보듯이 보며 시동어를 외쳤다.
“관찰.”
-종족 : 시이
-레벨 : 8
-특이 사항 : 각인 대상과 시야를 공유한다.
은서는 관찰 정보를 여울에게 읊어 주고는 중얼거렸다.
“레벨이…… 8이라니.”
이름이 아니라 종족이 시이라는 것도 새로운 사실이다. 그런데 레벨이 8이라니, 자신보다도 높은 레벨이다.
저 조그마한 몸으로 8레벨이라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거지? 여울은 순간 시이가 가공할 속도로 날아다니며 몬스터들의 미간을 꿰뚫는 상상을 했다. 그 속도를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재밌네.”
“그치? 아빠도 해볼까?”
여울은 바로 다른 손을 내밀며 대답했다.
“그래.”
은서는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됐어, 그냥 안 할래.”
그 뾰로통한 모습에 여울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왜? 하기 싫어졌어?”
“응, 졸려졌어, 이제 잘래.”
은서는 그렇게 말하고는 여울의 품을 파고들며 눈을 감았다.
“그래, 내 딸, 잘 자…….”
여울은 별 하나 떠 있지 않은 밤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꺼풀을 닫았다.
사아아아.
기이한 소리와 함께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여울은 천천히 눈을 뜨고 앞에 있는 존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못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일이 좀 있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잘 끝나서 이렇게 앞에 왔습니다.”
푸른눈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정자세로 자신을 맞이했다. 그는 돌연 두 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바닥을 마주 부딪쳤다.
짝!
“탐색 대상을 찾았더군요. 축하합니다.”
“음…….”
매우 기계적인 움직임이다. 말투를 보니 최근에 알게 된 눈치다. 그동안은 자신을 지켜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푸른눈은 한 손을 뻗어 허공을 한 번 휘적거렸다. 그러자 검은 옷이 생겨났다. 그는 그것을 여울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보상입니다. 그런 누더기는 벗고 이걸 입으시죠.”
여울은 그 옷을 봤다가 고개를 내려 자신의 옷 상태를 보았다. 안에 입은 검은 티셔츠는 중간중간 찢어지고 너덜너덜하다. 겉옷은 블랙다콘의 가죽을 잘라서 대충 걸치고 수풀로 덧댄 옷이다.
옷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것은 케르베로스의 화염 때문에 녹아내려 거지꼴이 따로 없다. 이 옷을 입고 은서를 맞이했다는 것이 창피할 지경이다.
여울은 푸른눈이 내민 옷을 바로 받아 들었다. 턱 바로 아래까지 지퍼를 올릴 수 있는 트레이닝복 형태의 점퍼인데, 매우 얇아서 과연 방어 능력은 있는지 심히 의심이 되었다.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여울을 보며 푸른눈이 말했다.
“많이 달라지셨군요.”
“그런가…….”
“네, 마음에 여유가 생기셨나 봅니다. 음…… 다음 의뢰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무조건 의뢰를 수락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곤란해집니다.”
그의 몸가짐이 조심스럽다. 아무래도 이번에 잠시 어디를 다녀온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어차피 자신에게 알려 주지도 못할 일이다. 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한다. 바로 탐색으로.”
이제는 은서를 위해서 안전하게 이곳을 올라가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아니, 그 무엇보다도 더 강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조그마한 힘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챙겨야 한다.
푸른눈은 한 손을 뻗었다가 멈칫했다.
“아, 그러면…… 네, 반나절 전 모습입니다.”
위와 옆이 막힌 동굴이다. 그 중심에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검은색 긴 코트를 입고 검은 낫을 등 뒤로 창처럼 들고 있다. 날의 끝부분이 붉다.
화면이 점점 위로 가면서 옆으로 돌아간다. 칠흑처럼 검은 머리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고, 새하얀 피부에 갸름한 얼굴형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여울은 자신도 모르게 그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주인노’라는 살인마라는 것을 확신했다. 은서를 위해서라도 위험 인물은 미리 제거해야 한다.
여울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옆에는 은서가 자신의 팔을 베고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새근거리고 있다. 그는 얼굴에 붙은 은서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겨 주었다.
어깨를 보니 6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두 달, 은서의 레벨을 업시키고 난 후에 잠시 다녀올 생각이다. 케라브가 통합되어 아무리 넓다고 해도 시이가 있는 이상 층대가 탐색된 대상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최소 기간 10일을 잡고, 은서의 안전과 레벨업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는 은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봤다가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은서가 일어날 때까지 팔을 뺄 수 없다.
그리고 잠시 후, 은서의 긴 속눈썹이 들어 올려졌다. 그녀는 미묘한 눈빛으로 여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 *
터벅, 터벅, 터벅.
블랙티거 한 마리가 느릿하게 천막 사이로 걸어왔다.
“어엇.”
“앗! 아…….”
자리에서 쉬던 사람들은 흠칫하며 반사적으로 검을 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 위에는 교복을 입은 소녀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서는 리안 앞으로 가서 언데드 티거를 앉히고는 보디가드처럼 딱 붙어서 따라온 여울과 둥둥에게 손을 휘적거렸다.
“여자들끼리 할 비밀 얘기가 있어서.”
그녀의 말에 여울은 리안과 은서를 번갈아 보며 주춤주춤했다. 리안은 여울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걱정 마.’
여울은 그제야 둥둥을 데리고 뒤돌아서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것을 확인한 은서는 리안을 보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물어볼 게 있어요. 저한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니까 꼭 사실대로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요.”
리안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흥미롭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질문이기에 아빠까지 내쫓고? 이거 엄청 기대되는데?”
은서는 그녀의 진지하지 못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허리를 낮추어 그녀에게 가까이 밀착하며 작게 속삭였다. 은서의 표정은 매우 진중했다.
“우리 아빠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알고 싶어요. 저 위에 공략파 길드들에게 얼마만큼 필요한 존재인지…….”
그녀의 물음에 리안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잠자리로 돌아가는 길목, 팔짱을 낀 채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빠가 보인다. 그 뒤에는 뻣뻣하게 서 있는 둥둥도 있다.
자신을 발견하고는 팔짱을 빼고 한달음에 다가오는 아빠를 보며 방금 전에 리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빨리도 묻는다. 길게 얘기할 것도 없이 엄청 간단해, 10층에서 40층까지 모든 보스 최초 공략자가 네 아빠다. 한마디로, 이 케라브 내의 최강자라고.’
* * *
사냥을 시작하기 위해 26층으로 올라가는 길, 오늘따라 어리광을 피워 대는 은서를 업고 걸어가는 중이었다.
“아빠.”
“응?”
“나 무서워. 여기 빨리 나가고 싶어.”
“아, 그래…….”
여울은 그렇게 힘없이 대답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은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빠가 위로 올라가면 더 빨리 나갈 수 있어?”
은서는 아빠가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울은 대답 없이 걸어가다가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조금.”
“아빠, 올라가.”
“응? 안 돼, 거기는 은서한테 위험해.”
“나랑 둥둥이 빼고, 아빠만 올라가.”
“그럴 수 없어. 우리 딸, 다시는 위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
단호한 여울의 말투에 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아니, 여기 이렇게 둥둥이도 있고 티거도 있잖아. 나 이제 안 위험해. 나는 아빠가 빨리 여기를 나가게 해 줬으면 좋겠어.”
턱!
여울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생각했다.
은서의 말이 맞다. 지금 은서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자는 매우 드물다. 수언이나 진후 급은 되어야 한다.
케라브를 빠져나가는 것과 은서 옆에 있는 것,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확실히 자신이 올라가는 게 이상적이다. 하지만 전처럼 은서가 또 위험에 빠진다면…… 시이는 자신과 같은 층에서만 활동이 가능하니 붙여 놓을 수 없다.
그때, 여울의 머릿속에 리안이 떠올랐다. 당차고 지혜로운 그녀라면 은서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 큰 안전장치를 설치하면……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다.
여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은서에게 물었다.
“정말 아빠가 갔으면 좋겠어?”
“아니아니, 맨날 옆에 있으면 좋겠어. 근데 여기 빨리 나가고 싶은 게 더 커.”
여울은 다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음…… 기여도 20퍼센트면 환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니?”
“응? 응. 근데 그건 왜?”
은서는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여울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케라브, 30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