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54
54
거대한 나무가 부러져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이 마치 죽은 숲속 같은 느낌이다. 여울은 저 멀리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베헤모스를 한번 바라보고는 은서에게 고개를 돌렸다.
“은서야, 아빠가 놈의 뿔을 자르면 그때부터 티거와 환상을 이용해서 공격하면 돼.”
“웅웅.”
긴장감 없이 대답하는 은서의 눈을 똑바로 보며 여울이 검지를 들어 올렸다.
“절대, 절대로 가까이 오면 안 돼. 몇 발자국 뒤로 있어야 한다고?”
“200발자국!”
여울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둥둥에게 시선을 돌렸다.
“옳지, 둥둥은…….”
여울과 눈이 마주친 둥둥은 한껏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은서랑 같이 있어야지.”
기대감 가득했던 바람이 한순간에 쑤욱 빠진다.
“에? 네…….”
둥둥에게 여울은 여전히 거부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다. 게다가 그가 없으면 은서가 돌발 상황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여울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베헤모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막 우리를 눈치챈 모양이다. 뿔을 위로 추켜들고 머리를 털며 달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 더 가까이 오기 전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여울은 바로 베헤모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쭉 뻗은 오른손에는 검고 끈적한 액체가 늘어지며 검의 형태를 갖췄다. 그는 점점 가까워지는 베헤모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다크네스…… 버서커.’
순간 온몸에 근육이 팽창하며 힘이 솟아오른다. 그늘이 드리워져서 보니 베헤모스의 앞발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
후웅!
여울은 검을 위로 휘두르며 뛰어올랐다. 놈의 발가락 두 개가 잘려 나가며 그 자리에서 그가 튀어나왔다. 그는 놈의 앞발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7레벨의 버서커 상태는 놈의 반응 속도를 초월한다. 놈의 어깨가 가까워 올쯤에 바닥을 박차고 올라가 뿔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터엉!
여울의 검이 놈의 뿔에 단단히 박혔다. 기대 이상으로 깊게 파였다. 그는 뿔을 잡고 매달린 채로 검을 한 번에 뽑고는 다시 그곳을 정확하게 후려쳤다.
서겅!
검을 두 번 휘두르는 것으로 놈의 뿔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놈은 괴성을 내지르며 여울의 머리 위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여울은 잘린 뿔과 함께 떨어지다가 다가오는 앞발을 보고는 몸을 뒤로 젖혔다. 그 위로 앞발이 지나간다. 그는 그곳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그러자 떨어져 내리던 여울의 몸이 앞발과 함께 위로 치솟았다. 그는 남은 뿔 하나가 아래에 보이자 검을 뽑고는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퍼석!
이번에도 검은 뿔의 반 이상을 뚫고 박혔다. 그는 검 손잡이를 잡고 매달린 채로 허리춤에서 베아를 꺼내어 그곳에 찔러 넣었다.
콰아아아앙!!
“쿠웨에에에엑!!”
뿔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넓게 퍼져 나갔다. 덜렁거리던 놈의 뿔은 완전히 부러져 나가 여울과 함께 떨어지는 중이다.
바닥에 가뿐히 착지한 그는 베헤모스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소리쳤다.
“은서야!”
“알겠어!”
은서는 블랙티거의 환상을 소환하여 총 세 마리의 티거로 베헤모스의 뒷다리 공격을 시작했다. 베헤모스가 티거들에게 시선을 돌리자 여울은 다시 뛰어올라 놈에게 검을 휘두르며 시선을 끌었다.
쿠우우우우웅!
그렇게 반복하기를 50여분, 베헤모스의 그 거대한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은서는 그제야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우와…… 진짜 징글징글하게 크다. 이러니까 이렇게 안 죽지.”
은서는 너덜너덜해진 놈의 뒷다리를 바라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여울은 놈의 숨이 완전히 멎는 것을 확인하고는 은서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은서야, 환상을 불러들일 수 있겠니?”
“모르겠어. 한번 해 볼게.”
은서는 둥둥에게 말하여 베헤모스에게 조금 더 다가가서 유심히 바라보더니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환상…… 베헤모스 개단!”
쿠구구구구궁!
은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20여 미터 앞에서 흙먼지가 일며 쓰러진 놈과 똑같이 생긴 베헤모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히이이익…….”
“음…… 크군.”
둥둥은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그 거대함에 기겁했다. 실체감이 20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해도 웬만한 사람들은 압도적인 기운에 주눅 들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할 듯하다.
올라가기 전에 베헤모스 환상 작업을 하길 잘했다.
[기여도 보상 ‘개단의 뿔’을 수령하시겠습니까? 24시간 이내에만 수령 가능합니다.]마지막 선물이 남았다. 여울은 은서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보상 수령.”
후우우웅.
여울의 앞에 푸른빛이 생성되며 크릴의 뿔과 동일한 형태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그것을 집어 은서에게 내밀었다.
“은서야, 반탄력이 깃든 검이란다.”
은서는 두 손으로 받아 들더니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그것을 살폈다.
“우와~ 진짜 좋아 보인다.”
검을 뒤집어 가며 꼼꼼히 보던 은서는 돌연 여울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큰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근데 이거는 둥둥이 갖는 게 더 낫지 않아?”
“아니, 이건 호신용이야. 둥둥이는 둔기를 사용하니까 나중에 다른 걸 구해 주면 돼. 이건…… 꼭 은서가 지니고 다녀야 해.”
걷지 못하는 은서에게는 환상 쿨타임인 10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눈빛에서 여울의 진심이 묻어났는지 은서는 그것을 소중히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여기 이렇게 가지고 있으면 되지?”
은서는 교복 안주머니에서 갈색 가죽 주머니를 꺼내더니 개단의 뿔을 그곳에 넣고 손잡이만 살짝 튀어나오게 했다. 전에 10층에서 주머니를 구한 듯하다.
“그래, 잘했어.”
이로써 은서에게 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모두 끝났다.
여울은 은서와 둥둥을 데리고 25층의 리안길드로 찾아갔다. 다행히 해가 넘어갈 때라 그런지 리안이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방금 사냥에서 돌아왔는지 블랙다콘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서슴없이 벗어 버리고는 입을 열었다.
“일찍 찾아왔네? 애가 아빠 닮아서 그런가 강단이 있네.”
그녀는 이미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눈치다. 여울은 뒤에서 쭈뼛거리는 은서와 헤벌쭉해 있는 둥둥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이 둘을 맡겨도 되겠나?”
“이거, 팔자에도 없는 보모가 되게 생겼군.”
“불가능한가?”
리안은 땀에 젖은 티셔츠 밑단을 잡고 들썩거렸다. 그 길이나 높이가 꽤 아슬아슬하다.
“아니, 농담이지. 저 둘이면 우리 전력도 훨씬 업그레이드 될 거야.”
“그렇군.”
“언제 올라가는데?”
그녀의 물음에 여울은 고개를 돌려 은서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한숨을 고르고는 대답했다.
“지금.”
은서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자신이 가라고 했지만 이렇게 빨리 헤어짐이 찾아올 줄을 몰랐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안은 여울에게 쿨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 천하의 크로우가 어련하시려고. 잘 다녀와. 걱정 말고.”
“알았다.”
여울은 바로 뒤돌아섰다. 둥둥과 은서는 그와 리안을 번갈아 보며 주춤거리고 있다. 이제부터 그들의 결정권을 쥘 사람이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리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작별 인사 진하게 하고 와.”
“네엡…….”
은서는 그제야 둥둥의 머리를 두드려 걸음을 재촉했다.
26층으로 올라가는 마법진 앞, 눈시울이 붉어진 은서는 작은 목소리로 여울에게 말했다.
“아빠, 절대 다치면 안 돼……. 혼자 다니지 말고 거기 센 아저씨들이랑 꼭 같이 다니고.”
“딸, 걱정하지 마. 아빠는 강하다.”
은서는 한 손으로 눈가를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울은 시선을 내려 둥둥의 어깨를 붙잡고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둥둥, 은서를 잘 지켜 줘라.”
“아, 알게뜹니다!!”
둥둥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듬직한 포즈와 대답으로 여울을 안심시켰다. 여울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손을 뻗어 은서의 볼을 만졌다.
“내 딸, 두 달 안에 올 테니까 여기 있어. 같이 올라가자.”
“응…… 알겠어. 다치지 마!”
“그래…….”
여울은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바로 새하얀빛이 여울을 휘감았고 곧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은서는 흩어지는 빛무리를 바라보며 훌쩍거리다가 고개를 살짝 내리고 둥둥에게 말했다.
“둥둥…… 이제 우리 아까 그 여자 말 잘 들어야 해, 알지?”
둥둥은 고개를 살짝 들더니 이내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니안, 이쁘다! 가뜬도 크다!”
“어휴…… 좋아? 우리 아빠는 갔는데?”
둥둥은 더욱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떠 아빠 무서따. 니안 이쁘다. 가뜬도 크다!”
“에고…… 그래, 가자. 그 가슴 큰 여자한테.”
“가댜!”
둥둥은 조금 전과는 달리 경쾌한 발걸음으로 그 자리를 떴다.
* * *
35층 휴식층, 상하층 계단과 바로 직결되는 12시 방향의 거대한 공동. 그 구석에는 나뭇가지와 검은 가죽으로 쳐 놓은 막사가 몇 개 있다.
그 중심에 가장 큰 막사에는 네 명의 남녀가 테이블을 중앙에 두고 진중한 표정으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길드장님, 많은 길드원들이 지쳐 있습니다. 일정을 조금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권의 말에 진후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조정은 없습니다. 조금 피곤하다고 레벨업을 게을리했다가 언제 어떤 위험이 닥쳐올지 모릅니다. 처음부터 강행하기 위해 이렇게 정한 겁니다. 우리는 일반인이 아닙니다. 길드원들도 곧 적응할 겁니다.”
그의 말에 지연이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했다.
“길드장님의 마음은 알지만…… 억지로 지친 몸을 이끌다가 다치지는 않을지 걱정이 돼서요.”
진후가 미간을 좁히며 지연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뒤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민철이 혼자 뜨끔하여 고개를 숙였다.
“케라브 난이도 상향은 저만 들은 겁니까? 두 배, 세 배도 아닌 무려 네 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위층 공략이 점점 더뎌지고 있지요. 피곤하다고 쉬다가 모두 벽에 깔리고 싶습니까?”
일권은 그에 맞서 얼굴을 들이대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모든 일은 그에 맞는 최적의 효율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쾅!
진후는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려치고는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더 이상, 조정은 없습니다. 오늘 회의는 끝내겠습니다.”
그는 멍한 표정을 짓는 셋을 뒤로하고 바로 데가베르와 방패를 챙겨 들고는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연이 일권에게 말했다.
“많이…… 변하셨죠?”
일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연민이 서려 있었다.
푸욱!
“쿠웨엑…….”
화염고릴라의 등 뒤로 새하얀 검신이 경쾌하게 뚫고 나왔다. 그곳을 기점으로 놈의 몸이 쩌적 갈라지더니 이내 부서져 내렸다.
데가베르의 뿔을 처음 사용할 때는 몬스터들을 무조건 튕겨 내기만 했다. 그리고 약 100회 정도 연속으로 튕겨 내면 반탄력이 사라져 시간이 지나야 사용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반탄력 발동과 미발동의 미세한 차이를 조절할 수 있다. 그전에는 느껴 본 적이 없던 단전의 감각을 자극하면 반탄력이 발동하는 것이다. 냉기 방출과 비슷한 원리다.
사냥이 계속되어도 진후는 지치지 않는다. 자신을 지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쉼이다. 자신은 이제, 전투 병기라고 해도 부인하지 못할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곳 케라브는 혼자 아무리 강해져도 모두를 지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직접 지킬 최소한의 힘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진후는 남은 대한길드만큼은 꼭 모두 살아서 나가게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퍼엉!
방패에 정통으로 맞은 화염도마뱀이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 버렸다. 그때, 뒤에서 성별을 쉽게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강해 보이는데?”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진후는 방패를 꽈악 쥐고는 바로 뒤돌아섰다. 한 청년이 세 걸음 거리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긴 머리에 검은색 롱 코트를 입고, 어깨에는 커다란 낫을 걸치고 있었다.
* * *
“크…… 흐…….”
아무도 보이지 않는 휑한 동굴, 누군가의 신음이 낮게 들려온다.
“흐…….”
벽면에는 검붉은 피가 흩뿌려져 있다. 방패를 쥐고 있는 한쪽 팔이 따로 떨어져 있다.
피의 흔적을 따라가니 허리가 두 동강이 난 몸이 보인다. 몸통에 붙어 있는 남은 팔 하나가 미세하게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그 끝에는…… 데가베르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