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55
55
4. 각성
“크, 크으…….”
손가락 끝이 경련이 일어난 듯이 떨린다. 생기를 잃어 가는 검은 눈동자에는 분노가 담겨 있다.
‘그’도 아닌 자에게 패배하여 사지가 잘렸다……. 저자는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저렇게 강하지? 나는 이 힘을 가지기 위해 산목숨까지 내버렸는데?
분하다. 억울하다. 이가 갈리고 울분이 솟구친다. 약해 빠진 이 몸뚱이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크아으…….”
분리된 진후의 상체가 미친 듯이 흔들리더니 갑자기 툭 멈춰 섰다. 진후의 뜬 눈도 죽은 자의 그것처럼 그대로 멈췄다.
스스스스.
뱀의 혀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붉은 피 웅덩이에서 무언가가 생겨났다.
긴 머리, 작은 몸집, 마치 소녀의 외형처럼 보이는 그것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써서 얼굴을 식별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진후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닫혀 있던 입술이 떨어지자 그 사이로 찐득한 피가 주욱 늘어졌다.
“히이…… 조심해야지…….”
그것은 진후 앞에 쪼그리고 앉아 검지로 진후의 볼을 콕콕 찔러 댔다. 그의 볼에는 검붉은 피가 툭툭 찍혔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우리는 하나가 되어 가는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절을 하듯이 엎드리더니 진후의 몸 안으로 빨리듯이 스며 들어갔다.
동시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진후의 신체 절단면에서 검은 안개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서로 자석처럼 끌어당겨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 * *
“키헥, 키헤…….”
화염도마뱀이 좌우로 고개를 돌려 가며 한 시체 주변에서 기웃거리고 있다. 그러고는 이내 그 시체의 얼굴에 대고 입을 쩌억 벌렸다. 그곳에서는 들끓는 화염이 쏘아져 나왔다.
“캬하…… 학?!”
화염을 뱉어 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놈의 목줄기가 누군가의 손아귀에 단단히 틀어막혔다.
스으윽.
시체라고 생각했던 자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얼굴은 화염에 피부가 뚝뚝 녹아내리고 있다. 그 위로는 검은 수증기가 뒤덮여 얼굴 생김새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퍼억!
그는 도마뱀을 바닥에 강하게 내려찍었다. 그러자 놈의 몸이 유리처럼 와장창 깨져 나갔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검과 방패를 챙겨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동굴을 한번 둘러보더니 돌연 고개를 위로 추켜들었다.
“크하아아아!!”
울분에 찬 괴성이 동굴에 넓게 울려 퍼졌다.
* * *
터벅, 터벅.
막사로 돌아오는 길, 아직 이른 시간인데 어수선하다. 진후를 발견한 일권이 사람들을 물리고는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위층, 무슨 일입니까.”
“7조가 귀환하지 않습니다.”
두근!
진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는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몇 층입니까.”
“32층, 동쪽입니다. 탐색조를 파견했습니다.”
진후는 고개를 숙이고는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놈인가? 그놈이면 어떡하지? 친위대와 함께라면 이길 수 있을까? 일권이 있다면?’
그는 길지 않은 시간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친위대를…… 아니, 모두 여기 계십시오.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친위대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같이…….”
“아니요. 일권 씨도, 지연과 민철도, 모두 여기 계십시오. 제가 다시 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절대로 여기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진후의 눈빛은 단호했다. 일권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눈치다. 일권은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진후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걸음을 옮기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간간이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주인노’라는 살인마로 추측된다. 검은 코트에 창과도 같은 거대한 낫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거의 확실하다.
그를 휴식층에서 봤다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라타 일당 역시 휴식층에서는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것을 그대로 믿은 것이 가장 큰 실수로 이어졌다.
살인마라는 말에 일권에게 요청하여 소문을 수집한 적이 있다. 기억나는 대로 떠올려 보면 그에게 공격을 받았다가 살아남았다는 이는 없었다.
그가 지나가는 모습을 본 자들만 있을 뿐이다. 그가 지나온 자리에는 사람들의 시체가 있었던 적이 몇 번 있었고, 그로 인해 살인 사건만 생기면 주인노를 의심하는 일이 많아져 후에는 희대의 살인마라는 소문이 퍼지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가 정말 살인마일까, 라는 안일한 의심을 했었을 때를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자신이 직접 그 당사자가 될 줄이야.
주인노의 움직임은 빠르고 낫의 궤도는 예측할 수가 없었다.
다시 싸운다면?
필패다. 하지만 시간은 끌 수 있다. 최악의 상황만은 아니길 바란다.
챙! 채쟁!
32층에 도착하니 화염도마뱀 세 마리와 드잡이질을 하는 파티가 보인다. 진후는 그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바로 데가베르를 뻗었다.
쩌정!
도마뱀 한 마리가 벽으로 날아가 터져 버렸다. 나머지 두 마리를 처리한 무리가 진후에게 고개를 숙였다.
“길드장님!”
“길드장님 오셨습니까!”
진후는 대강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을 바라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당장 올라가서 일권 씨에게 합류하십시오.”
“네? 하지만…….”
“설명할 시간 없습니다. 어서!”
“아, 알겠습니다! 3조, 귀환한다!”
조장의 명에 그들은 빠르게 위층으로 이동했다. 진후는 그들의 뒷모습을 힐끔 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32층에 들어선 지 4시간, 짙은 피 냄새가 풍겨 온다. 화염도마뱀은 죽을 때 몸을 모두 태워 버리니 피 냄새가 나지 않는다. 자신이 냉기로 죽였을 경우에만 녹은 후에 피가 흐른다. 특유의 쇠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 냄새는…… 사람의 피다.
진후는 방패를 다잡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꺾이는 부분을 돌자 화염도마뱀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그 중심에 한 무리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음?”
“혼자네?”
“32층에서 솔플?”
“강한가 봐.”
그들은 진후를 발견하고는 이죽거렸다. 이들에게서 피 냄새가 더욱 진하게 풍겨 온다. 검은색 가죽 갑옷을 입었기에 피가 묻었는지 아닌지는 구별할 수가 없다.
진후는 천천히 걸어가 그들의 두 걸음 앞에서 멈춰 섰다. 그들은 진후를 올려다보며 히죽히죽 웃어 댔다.
“이 근처에서 사냥하는 다른 파티를 본 적이 있습니까.”
“있습니까, 큭큭.”
“군대 온 줄. 조교 출신인가?”
“목소리 까는 거 봐, 엄청 무게 잡네.”
진후는 그들이 이죽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자 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한번 털고는 턱을 살짝 들고 말했다.
“아아…… 기억해 보자…… 보긴 본 것 같은데, 남자 다섯에 여자 둘, 하나는 늙은이…… 맞나?”
“맞습니다.”
사내는 진후가 왔던 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의 손가락에는 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저기로 간 것 같은데, 한 두세 시간 됐나? 그치?”
“물러.”
“맞겄지.”
진후는 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사내가 가리킨 방향의 반대 방향이다.
“어이, 거기 아니라니까?”
“허허 참, 운도 나쁜 놈이네.”
“그러게, 굴러들어온 복을 차다니.”
그들이 진후의 뒤통수에 대고 알 수 없는 말을 할 때, 그쪽 꺾이는 부분에서 한 사내가 바지춤을 추스르며 나왔다. 진후와 눈을 마주한 그는 멈칫했다.
“어라, 넌 뭐다냐.”
“큭큭, 저거 표정 봐라.”
“시원하게 쌌나 보네.”
뒤에서 계속 이죽거리는 소리가 거슬린다. 이자에게서 피 냄새가 더욱 짙게 풍긴다.
“파티원을 찾으러 왔습니다.”
“엉? 파티원? 혹시 얘냐?”
사내는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타악 튕겼다.
터벅, 터벅, 터벅.
느릿하게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실루엣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옷이 모두 풀어헤쳐져 있고 왼쪽 가슴에는 피가 흥건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는 실종된 7조의 조장이다.
“아니~ 남자가 다섯이니까 힘들어 보이길래~ 우리가 좀 도와줬지.”
“킥킥, 운동을 해서 그런지 아주~ 탄력이.”
진후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가 붉다. 그 눈과 마주치자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후웅!
진후의 방패가 바로 앞 사내에게 휘둘러졌다. 냉기 방출은 쓰지 않는다. 이들에게 마취 효과는 사치다.
퍼억!
그의 방패에 정통으로 맞은 사내가 마치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단번에 머리가 깨져 피가 터져 나온다.
그 모습에 뒤에 있던 사내들이 무기를 챙겨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뭐야, 죽었냐?”
“역시, 괜히 혼자 온 게 아니여…….”
“오랜만에 재밌것네.”
동료의 머리가 터졌는데도 그들은 태연하다. 진후는 더 이상 생각할 것 없이 바로 그들에게 돌진했다.
“야, 뭐여, 자동차여? 피해!”
그들은 다급히 옆으로 벌려 돌진을 피했다. 진후는 바로 뒤돌아서며 투포환을 하듯이 방패를 던지고는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두 사내가 방패에 맞고 그대로 깔렸다.
진후는 심장을 찔러 오는 검을 무시하며 상대에게 그대로 손을 뻗었다.
‘리덕션.’
터엉!
검이 튕겨 나가며 놈의 손아귀가 찢겨 나간다. 놈의 머리채를 낚아챈 진후는 그대로 끌어당겨 무릎에 찍었다. 놈의 이가 뒤로 밀려나고 코뼈가 함몰되는 감촉이 느껴진다.
축 처진 놈의 몸을 거칠게 집어던진 진후는 바로 뒤돌아서 다른 사내들에게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맹수의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퍼석! 퍽 촤악!
“크아아악!!”
“케헤엑…….”
진후는 검을 쓰지 않고 맨손으로만 그들을 상대했다. 얼굴을 으깨고 팔을 뜯어내고 내장을 터트렸다. 그는 케라브에 처음 왔을 때의 오크와도 같은, 아니,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는 아수라의 모습을 보였다.
1분이 조금 지난 시간, 장내에는 적막만이 맴돌았다.
“크흐으…… 흐으…….”
한 사내만이 낮은 신음을 흘리고 있다. 진후는 놈에게 다가가 반지가 끼워져 있는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우득!
“흐…… 으악!!”
그의 손가락이 뜯겨 나가며 반지가 커졌다. 진후는 그것을 자신의 손가락에 끼우고는 놈의 머리를 발로 밟았다.
으득, 으드득.
놈의 눈알이 빠지고 뇌수가 튀어나올 때쯤, 발을 멈추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약했다. 주인노에 비하면 발톱만큼이나 약한 놈들이다. 아무리 수가 적다고 해도 이런 놈들에게 당한 길드원들이 한심스럽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스으으으.
사방에서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자신에게 흘러 들어온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주 가늘고 붉은 연기가 함께 들어오고 있다.
“흐으읍…….”
진후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그 연기들은 더욱 빠르게 흡입되었다. 그리고 완전히 흡수가 끝나자 이질적인 감각이 온몸을 맴돌았다.
“크흐으으…….”
짜릿한 기운이다. 힘줄이 점멸등처럼 붉게 반짝이며 점점 더 굵어지더니 이내 가라앉았다. 몸에는 전에 없던 힘이 느껴졌다.
진후는 지금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몬스터를 잡으면 최상의 상태를 유지시켜 주며 다친 곳을 재생시켜 주는 기운이 흡수된다. 그 레벨에서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을 죽이면 레벨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그의 눈은 붉은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불그스름한 힘줄을 바라보며 힘을 느끼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런 힘을 원하는 것이 아니야,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