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60
60
6. 고통을 안는 자
[케라브, 30층입니다.]베헤모스의 보금자리, 거대한 나무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폐허 같은 정글, 3미터 허공에서 새하얀빛이 생겨나며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탁!
“어이쿠!”
“이런.”
베헤모스의 뿔을 구하기 위해 내려온 원팀이다. 서한은 가뿐하게 바닥에 내려서며 바로 검을 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쿠우웅! 쿠우웅!
마법진 이동의 빛이 꽤 강렬했는지 저 멀리서부터 베헤모스가 이쪽을 보고 다가오고 있다. 아무리 레벨이 올랐다고 해도 저놈은 원팀만으로는 상대 불가능하다. 6레벨에 격이 다른 강함을 지닌 여울도 놈을 처리하며 초죽음 상태가 되었지 않은가.
서한은 등에서 투척용 단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내가 유인한다. 다들 마법진 찾아!”
“오케이!”
“알겠어요, 대장!”
그는 금세 거리를 좁혀 오는 베헤모스에게 마주 달려 나가며 단검을 집어던졌다. 이제 갓 6레벨이 된 그의 투척력은 전성기 때 박찬호를 애기로 만드는 수준이다.
후웅!
단검이 총알처럼 날아가 베헤모스의 목 아래에 깊이 박혔다. 놈은 고개를 높이 쳐들며 괴성을 질렀다.
“쿠하아아아!!”
화가 난 놈이 앞발로 가슴을 몇 번 두드리고는 서한을 따라갈 때, 저쪽에서 문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오케이!”
팀원들이 모두 빠지고, 서한은 베헤모스의 다리 사이로 지나가 몸을 돌리는 사이에 마법진으로 내려갔다.
원팀의 가장 큰 단점은 탱커가 없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태어날 때부터 탱커 같은 담덕은 사실 극딜러이기 때문에 민첩 특성인 건수와 서한이 회피 위주로 메인어그로를 맡아 사냥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보스 레이드를 제외하고는 일반 사냥은 그 어떤 파티보다 빠른 것이다.
베헤모스는 여울 같은 미친 피지컬의 딜러가 없는 이상 탱커가 필수다. 그것도 놈의 충격파를 민철만큼은 버텨 낼 수 있는, 원팀은 함께 레이드를 할 사람들을 찾아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중, 27층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로! 방패 들고! 지금은 막아!”
카리스마 넘치는 중저음의 주인공은 바로 여장부 리안이었다. 건수는 그녀를 발견하자 두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대며 격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미인을 밝힌다.
“여어! 리안! 리안!”
커다란 덩치의 사내를 엄하게 가르치던 리안이 원팀을 보고는 한 손을 들어 경례 자세를 취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리안의 파티원은 그녀를 제외하고는 7명이었다. 익숙해 보이는 리안빠 사내 4명에, 처음 보는 덩치 큰 사내 1명, 그리고 블랙다콘의 가죽을 탄탄하게 덧댄 티거를 타고 있는 소녀 1명이었다. 그녀의 옆에 또 한 마리의 티거가 으르렁거리며 원팀을 경계했다.
무영은 소녀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와…… 반지를 두 개나 가지고 있나 보네.”
이제 막 사냥하던 몬스터를 마무리한 리안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 원팀에게 관심을 주었다. 그녀는 마치 동성 친구처럼 서한과 손을 맞잡고 끌어당겨 어깨를 부딪치며 반가움을 표했다.
“이야, 이게 얼마만이야? 왜 내려왔어? 위에 빡세?”
“우리가 누군데? 그럴 리가. 진후 대장님이 뿔 가지고 있는 거 보니까 부러워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베헤모스 뿔 얻으러 왔어.”
“그래? 우리 이번에 새로 탱커 생겼는데, 잘됐네.”
방패를 들고 헉헉거리는 덩치를 리안이 잡아당겨 앞으로 내세웠다. 그는 수줍어하면서도 그녀의 이끌림에는 힘없이 딸려 왔다.
그때, 그를 위아래로 훑어본 건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이 돼지는? 방패 잘 잡아?”
그는 확실히 근육질이라기보다는 지방이 많아 보였다.
“나 대디 아니야!”
하지만 생각지 못한 팩트 폭력에 그가 욱하여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바로 건수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턱!
갑자기 주먹을 내지를 줄 몰라서 움찔한 건수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담덕이 어느새 앞으로 나서서 그의 주먹을 한 손으로 막은 것이다.
“이익…….”
그가 나머지 한 손도 들어 올려 그와 힘 싸움을 했다.
‘음?’
아래층이라서 사람들도 만만하게 봤던 담덕은 생각지 못한 힘에 살짝 당황하며 제대로 힘을 주었다.
으드득!
둘 사이에 신경전이 지속되며 주변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리안은 오히려 팔짱을 낀 채로 그 모습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문솔이 나와서 말리려던 그때, 뒤쪽에서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둥둥! 그만해!”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둥둥이라 불린 사내는 바로 힘을 뺐다. 덕분에 힘을 주고 있던 담덕이 중심을 못 잡고 앞으로 살짝 비틀거리는 민망한 모습이 펼쳐졌다.
“으, 은떠, 미아내.”
혀 짧은 소리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서한은 고개를 돌려 그 소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은서? 네가 여울 딸?”
“우리 아빠 알아요?”
“알다마다, 제일…… 친, 친할걸? 네 이름도 알잖아.”
건수가 은서에게 한 걸음 나서며 말을 이었다.
“친하기는 개뿔. 이름은 여울 님이 이곳저곳 퍼트렸으니까 다 아는 거고, 그나저나 지연 씨랑 왜 이렇게 닮았어?”
은서는 몸을 움츠리며 티거의 몸을 한 발짝 물렸다. 리안길드에 들어와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껴도 아직은 적응이 덜되었다. 문솔도 가까이 다가와 은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진짜 예쁘네. 지연 씨 딸이라고 해도 믿겠어.”
“그럼 얘네 엄마도 지연 씨만큼 예쁘겠네?”
건수의 말에 은서는 그를 바라보며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저는 엄마 없는데요.”
“아, 미, 미안.”
“본 적도 없어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응, 그렇구나…….”
한 달 동안 데리고 있던 리안도 모르던 사실이다. 순간 장내에 정적이 찾아왔다.
문솔은 100일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은서에게 말했다.
“아아, 맞다. 여울 씨는 잘 있어. 강한 길드원들하고 안전하게 사냥 잘하면서 지내고 있어.”
“어? 혼자 올…… 읍읍.”
문솔은 눈치 없이 떠들려는 담덕의 입을 봉쇄했다. 은서는 아빠의 소식에 반색하며 얼굴이 화악 밝아졌다.
“앗, 그렇구나…… 아빠가 두 달 뒤에 여기로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이제 한 달 남았어요.”
그녀의 말에 문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레이드 날짜를 그렇게 잡았구나.”
“그렇지. 두 달 뒤면 여기도 간당간당하니까. 빨리 잡고 내려와서 데리고 가야지.”
서한은 리안에게 다가가 말을 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베헤모스 잡을 사람들 모으러.”
“둥둥이 말고 마땅한 탱커가 있으려나…….”
“혹시, 5분 탱커도 되나요?”
은서의 말에 서한과 리안이 동시에 뒤돌아섰다.
* * *
“우…… 와…….”
원팀은 입을 쩌억 벌리고 앞을 바라보고 있다. 그곳에는 거대한 베헤모스 두 마리가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은서의 베헤모스가 앞발로 상대의 뿔을 잡고 있다. 힘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5분 동안에는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는 강점이 있다.
“대단한데?”
“나도 오늘 처음 알았어…… 저 요망한 꼬맹이.”
“큭큭, 가자고. 5분밖에 없다면서.”
“그래…… 리안길드!! 공격!!”
그녀의 외침에 단창부대가 베헤모스의 옆구리를 향해 돌격했다. 반 이상이 4레벨인 리안길드는 25층 내에서는 최고의 집중 공격을 자랑하는 화력 부대다.
퍼버버버벅!
놈의 옆구리가 순식간에 피를 폭포수처럼 쏟아 낸다. 그사이 원팀이 은서의 베헤모스 위로 올라가서 상대 베헤모스의 머리 위로 뛰어내려 뿔을 공략했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6레벨의 서한과 무영이었다.
“무영 저거 날라 다니는데?”
“그러게, 어째 5레벨 되더니 나보다 센 느낌이다.”
무영은 원팀 팀원들에게 자신의 레벨 완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말할 타이밍을 놓친 후에 오랜 시간을 보내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혼자 깨달은 것이다. 최고의 팀에서 더 이상 발전이 없어 어울리지 않는 자신이 쫓겨날까 두려운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궁!
산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베헤모스가 어마어마한 피를 뿌려 대며 쓰러져 내렸다. 놈의 가슴은 미사일이라도 맞은 듯이 뻥 뚫려 있었다.
기여도 보상은 서한이 받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전체 기여도 보상은 리안길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것을 얻기 위해 왔지만, 상황이 이러니 머뭇거리는 서한에게 리안이 손을 휘휘 저었다.
“가져, 이거 얻으러 내려온 거라며.”
“어? 어, 음…….”
서한은 뿔과 리안길드 길드원들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보았다.
“우리도 덕분에 저 꼬맹이랑 같이 잡는 방법을 경험했으니까, 다음에 또 잡을 수 있어서 괜찮아.”
“그럼 사양하지 않고 받지.”
세 번이나 권하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서한은 마음이 바뀔까 바로 품 안에 챙기고는 그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그래서, 언제 올라오는데?”
“여울이 오는 한 달 뒤. 3레벨도 많아서 레벨업은 시키고 가야지.”
그곳은 4레벨 이하면 파티 단위로 다녀도 화염도마뱀 3마리면 전멸일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4레벨은 되어야지, 그 전에 올라가면 점점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기만 해야 할 것이다.
“그래, 그럼 그때 봅세.”
“50층 보스 공략 잘해, 죽지 말고.”
“오케이, 은서도 안녕, 아빠랑 같이 올게.”
“네…… 아빠 몸조심하라고 해 주세요!”
“그래!”
서한은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손을 맞잡고 어깨를 부딪치고는 31층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 * *
터벅, 터벅, 터벅.
35층 대한길드 막사, 진후는 방패를 어깨에 걸치고 한 여인을 두 손으로 안고 걸어오고 있었다. 옷에 피가 많이 묻어 있는 것을 보고는 지연이 다급히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일단 여기에 눕혀 주세요.”
두꺼운 옷을 몇 겹이나 입었는데 많은 양의 피가 묻어나 있다. 진후는 말없이 여인을 눕히고는 바로 일어나 뒤돌아섰다. 지연은 오우거의 피와 라브를 준비하고는 그녀의 옷을 벗겼다.
“이, 이게…… 뭐지?”
지연의 목소리에 진후가 살짝 뒤돌아보았다. 그녀는 한쪽 손에 오우거의 피가 담긴 주머니를 든 상태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시선을 따라가니 여인의 오른팔이 반쯤 잘려 나가 덜렁거리고 있는데, 그것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붙고 있는 것이었다. 초록색이 묻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오우거의 피를 쓴 것도 아니다. 자가 치료되고 있는 것이다.
진후는 그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분명 처음에 만났을 때는 한쪽 팔도 멀쩡하고 몸도 건강해 보였다. 라브를 먹은 이후로는 사람들에게 잔병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 둘을 희한한 마법으로 치료하고 난 뒤에 그와 비슷한 자상이 생겼다. 그 전에는 분명 없었다.
정황상 확실하다. 그렇다면 한 가지 가설에 무게가 실린다.
이 여인은…… 남의 상처를 자신에게 옮기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 *
여인은 이틀 만에 완전히 멀쩡한 상태로 깨어났다. 그녀의 이름은 주보라, D구역에서 지내던 여인으로 닭목 하나 꺾지 못할 것처럼 생겨서 레벨이 5나 된다고 한다. 하긴 비슷한 체형의 지연도 5레벨이다.
진후는 그녀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컸다. 왜 자신과 다른 구역이었는지, 왜 이제야 자신의 앞에 나타났는지, 그녀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지만 미운 마음이 드는 진후였다.
‘하지만…… 그랬다면 주인노에게 이미 죽었겠지.’
언데드 특성을 가지게 된 것은 운명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특별한 특성을 지닌 것이니, 이 후천적 특성으로 그들을 따라가야 한다. 밤낮 없이 사냥하여 6레벨도 한 달 만에 올리지 않았던가.
주보라만 함께한다면 즉사가 아닌 이상 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과감하게 전투를 치를 수 있고 상호작용으로 올라가는 전투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녀의 존재 자체로 훨씬 더 강력해지는 대한길드가 되는 것이다.
진후는 아직 보살핌을 받는 그녀를 찾아갔다. 깔끔하게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아주 맑은 계곡물처럼 청초한 느낌을 주었다.
“주보라 씨, 우리는 곧 45층으로 주둔지를 옮깁니다. 여기서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최고의 대접을 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갑시다.”
주보라는 침상에 앉은 채로 진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저는…… 아픈 게 싫어요…… 어쩌다가 이런 특성을 얻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지나치면 죄책감이 들게 되었지만, 난 정말 아픈 게 너무 싫어요.”
그녀의 말에 진후는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이 저 능력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거절이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은 너무 귀중하다.
“출혈이나 절단되었을 때는 오우거의 피로 충분히 치료하여 고통을 최대한 절감시킨 뒤…….”
“죽을 만큼…… 죽을 만큼 아픈 거 느낀 적 있으세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이 정도 고통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편하다고 생각한 적이 수십 번이에요. 지옥에서는 죄인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고, 다시 살려서 또 태워 죽이는 것을 반복한다지요. 저는…… 지금 삶이 생지옥이에요.”
그녀의 눈빛에는 광기마저 맴돌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공감할 순 없지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진후는 더 이상 설득을 잇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남이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군요. 본인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진후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넘기고는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그날 밤, 주보라는 대한길드 막사를 떠났다.
며칠 후, 서한의 원팀이 대한길드에 들렀다. 속성이 상성인 40층 보스 공략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다. 이제 미리 45층에 자리를 잡고 보스 공략을 준비할 때다. 진후는 일권을 보며 외쳤다.
“미호 씨 외에 비전투 인원 분들 준비시켜요. 45층으로 갑니다.”
“예, 길드장님.”
진후는 두꺼운 미스릴 방패를 챙겨 들고는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