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64
64
8. 결전
“어…….”
“이게 무슨 말이야?”
“저 아이는 뭐지?”
소녀의 퇴장 이후 토벌대는 혼란에 빠졌다. 못 알아들었다고 하기에는 자신들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 하나가 들렸다.
‘케라브 수료…….’
24시간 후에 나타날 어떠한 존재에 의해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느냐 마느냐가 정해진다는 것.
지금 가장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25층과 35층,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기에 24시간은 짧은 시간이다.
여울은 바로 진후에게 다가가며 보상 수령을 말했다. 그 앞에는 하얀빛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진후, 알아서 필요한 자에게 줘라.”
빛을 보고 기여도 보상이라고 눈치를 챈 진후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참가했을 때는 획득 대상의 활약이 애매할수록 분쟁만 더 일으킬 뿐이다. 너는 모두가 수긍할 만큼 자격이 충분하니 가져가라.”
“맞아, 정 가지기 싫으면 나중에 나한테 몰래 주고.”
서한이 진후의 의견을 거들었다. 여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것을 챙겼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은색 줄에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보석이 달려 있는 목걸이다.
서한은 그 목걸이를 대충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여울이는 바로 딸한테 갈 거지?”
“그래, 25층으로.”
진후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결전을 준비해야 한다. 모든 휴식층에 파티 단위로 대원들을 보내어 이 소식을 알리고, 나는 49층에서 나가의 검과 라칸의 가죽을 챙겨 가겠다.”
“아, 그래. 역시 리더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니까. 원팀도 남을게. 여울이는 25층 사람들한테 잘 알리고.”
“알았다. 그럼.”
여울이 마법진으로 걸음을 옮기는 중에 지연이 달려왔다.
“잠깐만요! 저도 같이 가요. 길드장님한테는 허락 맡았어요.”
고개를 돌려보니 진후가 지연의 뒷모습을 힐끔 봤다가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여울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란색 마법진 위로 발을 올렸다.
후우웅!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눈앞에는 이미 쓰러져 있는 케르베로스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두 파티가 보인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여울과 지연을 보고는 멍청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여울은 그들의 눈빛을 무시하고는 바로 다음 마법진 위로 발을 옮겼다. 지연은 다급히 그의 뒤를 쫓으며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25층에서 봐요!”
그 말과 함께 지연의 신형이 빛무리에 감싸였다. 남은 파티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중얼거렸다.
“25층?”
“거길 왜?”
“저 사람들 내려오는 걸 보면…… 공략파인 거지? 방금 50층 공략한…….”
“그럼 뭔가 있지 않을까?”
“음…….”
후웅!
30층에는 베헤모스가 보이지 않았다. 놈은 케르베로스보다도 잡는 데 시간이 더 걸리니 패스한다. 여울은 다시 파란 마법진 위로 발을 올렸다. 24층까지 사라졌으니 바로 25층으로 이동될 것이다.
후우웅!
빛이 사라지며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나무, 사람 몸통만 한 이파리, 물이 흐르는 계곡, 여울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이제 막 도착한 지연이 그의 뒤를 급히 따랐다.
“오, 오빠 같이 가요!”
아까부터 갑자기 호칭이 바뀐 지연이었다.
리안길드의 막사, 리안의 처소는 비어 있었다. 대충 둘러봐도 둥둥이나 은서는 보이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던 길드원들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여울을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여울 님이다…….”
“50층 공략하고 오셨나 봐…….”
“여, 여울 님 오셨습니까!”
“은서 아빠다…….”
은서아빠라는 말에 여울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여울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은서는 어디 있지?”
여울의 힘을 직접 봐서 알고 있는 그는 입술을 떨며 대답했다.
“으, 은서는 길드장하고 사냥 갔어요…… 위층으로…….”
“몇 층?”
“그건 잘…….”
“알겠다.”
여울은 바로 뒤돌아서 마법진으로 향했다. 길드원은 그가 멀리 떨어지자 그제야 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살 떨려.”
“그나저나 뒤에 여성분은 누구시지…… 엄청 예쁘시네.”
“은서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설마 엄만가?”
“엄마가 저렇게 젊어?”
“모르는 거지, 동안일지도.”
* * *
28층, 한 파티가 두 마리의 오우거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다. 한쪽에는 덩치가 큰 사내가 오우거와 도끼를 마주하고 있고, 다른 쪽은 티거로 보이는 몬스터가 오우거의 목을 물어뜯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육감적인 체형의 여인이 팔짱을 끼고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제 둘 다 레벨도 올랐겠다. 위로 올라가도 될 거 같은데, 여울은 언제 오려나…….’
두 오우거가 거의 동시에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
리안이 파티원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찰나, 저 멀리서부터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쿠우웅!
콰직!
몬스터들의 괴성이 들리고 나무가 쓰러진다. 그 소리는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졌다. 리안과 그녀의 파티원들은 무기를 추켜들고 숨을 죽였다.
“크헤엑!”
블랙티거 한 마리가 수풀을 뚫고 날아온다. 배가 하늘 위로 향한 모양새다. 놈의 대가리는 반쯤 함몰되어 있었다.
털썩!
놈은 리안 바로 앞에 떨어져 내렸다. 그 상태로 몇 번을 헐떡이더니 이내 숨을 거뒀다. 단 한 방, 어떤 무기로 공격했는지는 몰라도 단 한 방에 블랙티거의 목숨을 거둔 것이다. 리안은 마른침을 삼키며 티거가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그때, 그곳으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성큼 튀어나왔다.
“아, 아빠!”
“은서야, 이리 와.”
은서는 높이가 3미터는 되는 티거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허벅지 힘으로만 이동하여 옆으로 그대로 쓰러지는 모양새다. 여울은 순간이동을 하듯이 다가가 은서를 받아 들었다.
“아빠아!!”
“으, 은떠 아빠다…….”
여울의 품에 안긴 은서는 가슴에 얼굴을 부비 대며 아양을 부렸다. 리안은 그런 은서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둥둥은 그의 뒤에서 이도저도 못하고 주춤거렸다.
마치 다른 아이를 보는 듯하다. 평소에는 중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른스럽고 영민한 모습을 보이던 은서였는데, 지금은 두 달 동안 함께 지내 오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행동이었다.
“아…….”
갑자기 속도를 내는 바람에 뒤늦게 따라온 지연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정확하지도 않은데 눈에 물기부터 차오른다.
“응?”
고개를 돌린 은서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둘의 시간이 멈췄다. 은서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지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얗다. 그사이 은서의 시선이 돌아갔다.
“하…….”
“지연, 50층 공략하고 온 거야? 아니, 근데 왜 울어?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응? 으…….”
리안은 지연을 안아 주고는 진심으로 토닥여 줬다. 그러다가 몸을 떼고는 지연과 은서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렇게 보니까 둘이 진짜 닮았다. 예쁜 것들이 모여 있으니까 더 재수 없는데?”
은서는 뾰로통한 눈으로 리안을 흘겨보았다.
“아니거든요. 안 닮았는데요.”
“어라, 아빠 왔다고 바로 반항하는 거야?”
여울은 눈물을 급히 훔치는 지연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연, 말해 줘라.”
“네? 아, 네…… 리안 씨, 일이 생겼어요. 아주 큰일이…….”
지연은 진중한 어투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리안은 자신의 길드원들을 총동원하여 사냥 중이던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25층의 모든 길드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믿지 않는 사람들, 바로 합류하여 결전을 돕는 이들, 미적지근하게 반응하고는 다른 층으로 피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약속된 시간까지는 대략 16시간. 그동안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리안은 25층의 사람들과 함께 거대한 나무를 쓰러트려 목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연은 은서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이동하는 것을 보고는 여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은서가 혹시…… 다리를 다쳤나요?”
그 말을 하는 순간 지연의 숨이 턱 막혀 왔다. 살기다. 지독한 살기가 지연의 온몸을 휘감은 것이다. 여울은 지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릴 쯤에 그것을 깨닫고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렇다.”
“컥, 허억, 헉…… 그, 그렇군요…….”
방금 그 반응만으로 은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누군가의 고의적인 행동으로 인해 은서가 다친 것이 분명하다.
“이, 이제 와서……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35층에서 어떤 여인을 봤어요.”
주보라에 대한 이야기였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여울이지만 그 이야기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녀만 있다면, 은서의 발목이 완치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다. 여울은 시이에게 25층을 샅샅이 뒤지도록 지시했다.
시이를 날려 보낸 후,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뒤돌아 가는 지연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여울의 입술이 열렸다.
“너는…… 은서에게 뭐지?”
지연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아무것도 아닌가?”
그 질문에 지연은 뒤돌아서지 못하고 번개라도 맞은 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여울은 한 번 눈을 감았다 뜨고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가라.”
지연은 끝내 뒤돌아보지 못했다. 여울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 * *
챙! 채앵!
쇳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진다. 진후의 커다란 방패와 라칸의 몸뚱이가 정면으로 부딪친다. 라칸의 몸은 새하얗게 변하여 뒤로 날아간다. 다른 파티원들이 그 뒤를 바짝 따라가 경직된 라칸의 배에 검을 꽂아 넣는다.
퍼벅! 퍽! 콰직!
방패 끝으로 라칸의 대가리를 으깬 진후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후의 친위대와 서한의 원팀, 그리고 일권과 그 외 5레벨 이상의 대원들이 사냥을 하면서 나가의 검과 라칸의 가죽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4시간 남짓, 내려갈 시간이다. 진후는 뒤돌아서 대원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귀환!!”
“귀환!”
“귀환!”
다른 대원들이 그의 말을 복명복창했다.
그렇게 빠르게 다시 50층으로 모인 인원은 약 100여 명, 가장 알짜배기 인원이다. 진후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25층으로 내려갈 시간이다. 그 소녀가 소환한다는 보스는 나가 여왕보다 몇 단계는 뛰어넘은 보스로 예상된다. 너희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직접 나서서 보스를 처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들은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걸고 지켜볼 것이다.”
진후는 말을 끊고는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맹수처럼 이를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딴 눈빛 따위 무시해라.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마지막 결전이다. 몇 시간 후면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겨 있을 것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진후는 굳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패를 어깨에 메고 걸음을 옮겼다.
“가자!”
“와아아아아!!”
* * *
케라브 25층 마법진, 눈을 가리는 빛무리가 사라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 그 중심에는 리안과 지연이 보였다. 구석에서 한 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진후 님이 오셨다!!”
“김진후 님이다!”
“대한길드가 왔다!”
“와아아아!!”
그 함성은 순식간에 전염되어 25층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최종 보스와의 결전이라는 두려움을 대신하여 짊어질 수 있는 존재, 그 양심의 찌꺼기를 날려 버릴 수 있는 행동은 힘찬 응원밖에 없었다.
진후는 그 많은 사람들을 주욱 둘러보다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결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4레벨 미만은 최대한 구석으로 피신해 계시고 그 이상만 이곳에 남아 주십시오. 지금부터 이동합니다.”
“이동합시다!”
“이동합니다!!”
진후의 명에 수천 명의 사람들은 분주하게 이동했다. 그렇게 중앙에 남은 사람들의 수는 약 700여 명, 최종 보스와 직접적으로 싸워야 하는 자들이기에 자연스럽게 얼굴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리안이 미리 준비한 목책을 사방에 놓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중, 그 중심에 전처럼 기이한 소리가 들려 왔다.
지이이익!
이번에도 가녀린 손이 튀어나와 공간을 갈랐다. 소녀는 산보를 나온 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싸울 인원이 이게 다인가? 뭐 아무튼 상관없지. 최종보스가 바뀌었어. 어차피 인간의 몸에 현신한 마족이라는 것은 변함없으니까 상관없다는 결론이 났거든. 꼭 이기라고. 그럼…….”
소녀가 검지를 머리 위로 쭉 뻗었다. 그러자 그 위에서 검은 원형이 생겨나더니 점점 크기를 더해 갔다. 그것은 지름 3미터 정도의 크기로 벌어지더니 그곳에서 누군가가 발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긴 코트에 검고 커다란 낫, 새하얀 얼굴에 긴 머리를 지녔다. 그의 눈은 그 누군가처럼 파랗게 빛을 내고 있었다.